회귀자 사용설명서 974화
알타누스 (11)
“…….”
“그렇게 즐거워 보이시는 성녀님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습니다. 물론 성녀님을 뵙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지만… 갑자기 들어오셔서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사제님께서는 성녀님과 잘 아는 사이이신 겁니까? 혹시 저에 대해서 뭐라고….”
“…….”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저들은 성녀님과 제가 만나는 것을 원치 않은 것 같더군요.”
“…….”
“그러고 보니… 이 손거울이라고 불리는 물건도 그렇고… 이번에는 성녀님까지… 사제님은 대체….”
“…….”
“그러니까. 알타누스 성녀님은….”
“알타누스 성녀….”
“네. 알타누스 성녀님 말입니다… 혹시….”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입을 열어왔던 메텔이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만큼 내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인지, 본인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까지 떠들고 있었던 입을 꾹 닫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방금 방에 들어왔던 아텐타가 알타누스 성녀님이 맞습니까?”
“그건….”
질문은 던졌지만 대답은 듣지 않았다. 어차피 답이 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베니고어가 알타누스였던 거야.’
“베니고어가 알타누스였어….”
조금만 생각해 보면 결론을 내리기 쉽다. 애초에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 던전 입구에는 그녀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으니까.
다른 어떤 것도 그것보다 더욱더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
다른 아텐타들과 명백하게 차별적인 행동 역시 눈에 띈다. 아무리 이 지하신전이 특수한 기관이라고는 해도 아텐타는 명백히 신전 내의 최하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직종이다.
신의 봉사한다는 개소리 아래에서 이름까지 빼앗긴 이가 하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마치 캐릭터 시트에 만들어진 듯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처럼 느껴진 위화감은 결코 위화감이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아텐타를 연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어설프게 말이다. 오히려 눈치채지 못한 이쪽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지.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이미 베니고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시점에는 분명히 눈치챘을 것이다.
진실에 대한 생각과 기억을 막은 것은 나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기억을 삭제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만약 메텔이 아니었다면 무의식이 끝까지 이쪽을 방해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완벽하게 나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
“사제님?
“네. 네. 괜찮습니다. 메텔 수호자님.”
“…….”
“그보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한 잔 드세요. 오늘 밤늦게까지 공부하시려면.”
“혹시… 제가 실수한 겁니까?”
“아니요.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드세요. 혹시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따로 정리해 두세요. 내일 아침에 봐 드릴 테니까요.”
“감… 사합니다.”
“저는 잠깐 방에 들어가서 정리 좀 하겠습니다. 수호자님.”
“네… 네.”
그동안 의문이었던 부분도, 조금은 흐릿했던 타임라인도 대충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째서 베니고어가 현세의 일을 기억 못 하고 있는지, 어째서 알타누스의 의지를 이어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건지 말이다.
‘알타누스의 존재가 지워진 거야.’
알타누스는 스스로 철의 처녀에 들어가 결국 과거의 대륙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고… 현재 대륙을 관리하고 있는 루키페르가 좌천된 이후의 이야기.
새로운 교단, 새로운 문명, 새로운 대륙이 출범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김현성은 아주 잘 알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다.
‘1회 차.’
알타누스는 김현성을 회귀시키는 조건으로 자기 자신을 갈아 넣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게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게 아닐 것이다. 알타누스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의지를 이어받은 베니고어는 남아 있었으니까.
알타누스의 기억과 인격,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대륙의 시스템은 그녀의 뒤처리를 해 줄 인물로 베니고어라는 껍데기를 남겼다.
물론 베니고어는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모든 시스템이 포맷된 하드웨어, 이전의 저장되어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간 컴퓨터였다.
위화감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알타누스라는 이름이 베니고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김현성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김현성뿐만이 아니다. 윗놈들 중에 몇몇 역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 위화감에 대한 의문 역시 이제야 대충은 해결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스템이 그걸 조정했을 거야.’
심지어 베니고어 자신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말이야.
알타누스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였다. 철의 처녀 안으로 들어가 위로 올라가고, 대륙을 관리하고 김현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 그게 딱 그녀의 역할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그걸 인지하는 도중이지 않은가.
일이 어떻게 되든 간에 미래는 내가 알고 있는 타임라인대로 흘러가야 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떠올리는 것을 방해할 무의식을 만들어놨을 확률이 높다.
‘개인적인 감정은 완전히 지워야 하니까.’
알타누스의 비극에 혹시라도 동정심을 느낄까 봐?
‘아니야. 내가 솔직히 그렇게 착한 놈은 아니지.’
알타누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 내가 혹시라도 베니고어와 알타누스를 동일시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 때문이다.
‘아니다. 기왕이면 알타누스의 비극에 동정심을 느낀다고 하는 게 더 좋겠네.’
그게 더 듣기 좋아 보이기는 해.
기억 건에 관해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다.
희생과 부활의 신 이기영은 알타누스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그녀의 앞에 펼쳐져 있는 비극적인 운명과 험난함에 비통해했다.
그와는 별개로 그는 미래가 그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자신의 기억과 무의식을 손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는 변수를 만들지 않도록, 아주 작은 나비효과로 인해 지금의 대륙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현실을 겪지 않도록 말이다.
‘문제는 이걸 내가 알아버렸다는 거겠지.’
물론 깨달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건 베니고어를 위한 일이기도 해.’
알타누스는 내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더 냉정해지면 되는 거야.’
베니고어는 내 새끼지.
껍데기만 같을 뿐 안에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알타누스가 사라짐으로써 현재의 베니고어가 있다.
지금의 베니고어가 베니고어로 있기 위해서, 알타누스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지금 와서 내가 뭘 어쩔 건데.’
만약 다른 방법을 찾는다고 한들, 루트를 바꿀 시간이 없다. 이미 타임라인은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이 방법 외에 미래와 과거를 전부 타임라인에 맞게 조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계획은 그대로 가야 돼.’
그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느끼고 있다.
베니고어가 사실은 알타누스의 그림자 시녀라는 싸구려 설정이 붙어 있지 않다면 지금 내가 정리한 것이 진실이다.
“다른 변수는 없나?”
마음의 눈으로 베니고어의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
‘알타누스가 마음의 눈을 무효화시키는 정보창을 바꿨을 수도 있고….’
내가 장난을 쳐 놓은 거일 수도 있지.
확률은 낮지만 루키페르가 뭔가 수를 썼을지도 몰라.
무의미한 가설이지만 루키페르가 내가 원하는 게 같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해진다.
루키페르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게 승계의 과정이라면, 그녀가 빈털터리가 되어 쫓겨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녀가 그린 그림이었다면….
‘멀리 내다본 거일 수도 있고….’
제대로 한탕 해 먹고 헌신짝 버리듯 대륙을 버린 것이라면 그녀가 내게 협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존재한다.
만약 이 무의미한 가설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진짜 엘룬보다 더한 쓰레기네. 이건.
얘는 분리수거도 안 되는 오염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신보다는 악마가 더 어울린다는 거지.
조용히 앉아 다른 변수를 정리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제님. 템플러 제니입니다.”
‘바쁜데. 시바.’
“네. 금방 나가겠습니다. 템플러 제니.”
바깥으로 나가자 어색하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템플러 제니와 메텔 수호자가 눈에 보인다. 당연히 웃으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메텔 님은 괜찮아지셨는지요.”
“보시는 것처럼….”
아무래도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것이 메텔이 편하지는 않은 모양, 방 안으로 들어오라는 액션을 취하자 허리를 살짝 숙이며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저 대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템플러 제니.”
“아닙니다. 사제님. 이런 식으로밖에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걸요. 저도 워낙 정신이 없었던 터라… 사제님이 부탁하신 걸 제대로 마쳤을지….”
템플러 제니에게 맡긴 것은 사교회의 뒷정리였다. 내가 사교회장에서 사라진 이후 이쪽의 빈자리를 메울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편지를 받아온다든가 대신 말을 전해 듣는다든가 하는 정도의 잡무.
정말로 높으신 분들이야 드락타리스 대주교를 통해 말을 전하겠지만, 대주교는 이쪽의 하인이 아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서 긴히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을 테고… 무엇보다 드락타리스는 이쪽보다 더욱더 바빴을 테니 나를 케어해 줄 시간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사교회가 잘 마무리됐는지 궁금합니다. 혹시나… 제가 많은 분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습니다. 사제님. 오히려 사제님의 신성력과 덕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답니다.”
‘그래? 그건 예상했어.’
“너무 많은 분들이 사제님과 말씀을 나누시기를 원하셨던 터라… 내일 사교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실 분들의 목록을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일단 황녀님과 다른 대주교분들과의 약속….”
‘너무 당연한 반응이지.’
오히려 이런 반응이 없었다면 섭섭했을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실 것 같아 몇몇 분들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리지 못했는데… 사제님께서 직접 보시고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
“관심이 조금 부담스럽네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아니에요. 다른 사제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사제님께서 신에게 선택받은 성자일지도 모른다고… 지하신전에 크나큰 복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건 별로 반갑지 않은데.’
그와는 별개로 내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피어나고 있었다.
신에게 선택받은 성자라는 워딩에서 나도 모르게 생뚱맞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래와 과거를 전부 타임라인에 맞게 조립할 수 있는 방법.
‘왜 나는 여기로 불려 온 거지?’
플랜 A보다 더 확실하게 타임라인에 맞는 미래를 조립할 수 있는 방법 말이다.
혹시.
‘내가 알타누스일 가능성은 있나?’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