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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69화 (96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69화

알타누스 (6)

‘이미 망해가고 있다 봐야지 뭐.’

이 시점의 대륙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야 위대하신 루키페르 님,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루키페르 님, 자애롭고 현명하신 루키페르 님 하면서 지껄이고 있겠지만 내 눈에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탁을 내릴 여유도, 홍보용으로 사용할 기적이나 강림 따위의 이벤트를 수행할 여유도 없다.

알타누스 성녀를 지하에 처박아 놓은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구멍 난 지상을 대신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고, 자기 대신 안정적으로 대륙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대륙은 무척이나 멀쩡해 보인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읽었던 현시점의 지상의 문명 수준과, 의식 수준, 대륙민들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무척 높다.

지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포칼립스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자원 역시 풍부했으며 오염된 지역도 확인되지 않았다.

물론 전쟁이나 기아, 빈민 같은 사회문제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떠안고 있는 문제였다.

초월적인 존재가 바라본 대륙의 겉모습은 완벽에 가깝다.

언제나 그렇듯 겉이 완벽하면 속이 썩어 있게 마련, 현 대륙은 지금 버블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루키페르야 여기저기에서 신성을 당겨 대륙을 운영하고 있을 테고, 발전이나 구멍 난 대륙을 틀어막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균열 박물관도 이 시대 즈음일까.’

이쪽이랑 영혼결혼식까지 마친 우리 막아들 어머님께서 균열을 틀어막으시려다가 목숨까지 잃으셨다지 아마.

이런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런 배경이 깔려 있으니 지하가 없으면 지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대륙을 돌볼 여유가 없어 알타누스를 이곳에 처박아 놓은 루키페르의 행태.

그 행태를 생각해 보면 이 양반이 대륙의 사제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유효했다.

‘몇십 년, 아니, 몇백 년 만의 기적인 거야?’

길고 긴 기다림이었을 거야.

‘얘네들은 이것만 보고 사니까.’

어설픈 이벤트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이유였다.

“그건… 지금 신도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신 건지… 정확히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라고 어찌 이런 말을 입에 담고 싶겠습니까. 드락타리스 님.”

“…….”

“하지만 제가 들은 것은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루키페르 님께서는 알타누스 성녀님이 결국 빛을 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륙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근간이 흔들리고, 커다란 위협이 당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정을 가득 담아낸다.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줄줄 떨어뜨린다.

“대륙의 어둠이 드리우고, 모든 이들이 고통과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흐윽….”

“이… 이를 어찌….”

“그런….”

“루키페르시여… 어찌….”

“저는 직접 목도했습니다. 알타누스 성녀님께서 빛을 잃고 난 이후의 지상을, 그리고 이곳을 모두 두 눈에 똑똑히 담았습니다. 어둠에 완전히 잠식된 대륙인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루키페르 님을 저주하는 목소리를 입에 담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 런….”

“루키페르시여… 정녕 대륙을 버리시나이까… 당신의 어린 양들을 저버리시는 겁니까.”

“사… 사제….”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지랄 발광도 조금 해주고.

“사제님을 진정시키거라! 어서!”

“어둠이! 어둠이!! 몰려옵니다!! 흐윽… 흐으윽… 아아아아아!!”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사제님!”

“알타누스 성녀시여! 루키페르시여! 어찌하여… 흐으윽… 아아… 아아아아아!!”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발광을 시작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놈들의 얼굴이 보인다.

우락부락한 호위기사들이 나를 붙잡았지만 내 몸을 붙잡을지언정 멘탈은 붙잡을 수가 없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너무 울어서 눈이 아프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마치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은 느낌. 사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정신이 흐릿했으니까.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흐윽… 흐으으윽! 아아아아… 흐으으윽!”

“위험… 위험합니다.”

어, 뭐가 위험해.

“하악… 하아… 흐으으윽… 아아아!”

“사제님! 사제님! 괜찮으세요?”

나 지금 발작 일으키고 있나 봐. 심장이 어쩐지 너무 빨리 뛴다 했어. 숨쉬기도 너무 힘들어지네.

“사제님을! 어서!”

“흐윽… 루키페르시여… 루키페르….”

신성력이 이쪽을 향해 떨어지자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칠게 몰아쉬던 숨도,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눈물도 점차 멎어든다. 온몸에 진이 전부 빠진 것은 물론 땀으로 흠뻑 젖었다.

“…….”

“…….”

일련의 소동이 지나가고 난 이후에는 당연히 무거운 침묵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그만큼 연기력이 오지기는 했어, 진짜.’

진짜 완벽했다구.

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이미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것 같은 느낌.

대주교 드락타리스를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남우주연상도 울고 갈 명연기에 자신들도 모르게 이입한 것이 분명하리라.

패닉에 빠진 신탁의 주인공의 모습에 아포칼립스로 향하는 대륙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까.

연기하다 숨이 멎을 뻔한 사제의 심정에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템플러 제니의 모습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아직 어린 나이, 세상의 진실에 부딪히기에는 어린 나이다.

불안한 모습, 눈물이 고여 있는 눈, 창백하다 못해 질려있는 얼굴. 저게 이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리라.

그나마 쟤는 훈련돼서 저 정도지… 진짜 일반 꼬맹이였으면 레알 기절초풍했을 거야.

“…….”

“…….”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조용히 이쪽으로 향하는 녀석.

“저… 사…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네… 네… 제가… 지금….”

아직도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자.

“충격이 크신 것 같습니다. 드락타리스 님. 아무래도 조금 휴식을 취하시게 하는 편이….”

“나도 그게 좋을 것 같다만….”

“이 일을 어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일단은 숨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겠지. 단체로 패닉 올 일 있어? 그건 아닐 거 아니야.

일반 신도들한테 알리는 건 당연히 에바고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에게 말하는 것도 고민 좀 해야 할 거야.

말단 사제라면 곧바로 달려가 윗분들에게 이 일을 고하겠지만 드락타리스는 말단 사제가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 세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위 템플러들의 버금가는 호위 성기사들을 대동하고 있는 진짜 중의 진짜.

이 일이 퍼져 나갔을 때의 파장에 대해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을 이용할 적폐세력들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했다.

당연히 몇몇은 더 알게 되겠지,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건 내 쪽에서 조금 작업을 쳐놓고 억제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드락타리스와 그가 믿을 만한 호위병 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템플러 제니가 전부였으니까.

개인 호위에게 몇 마디를 건넨 드락타리스는 다시 한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무거운 진실을 혼자 간직하고 있었던 사제의 손을 꽉 잡은 녀석. 당연히 무슨 말을 이어올지 예상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선수를 치는 게 맞지?

“대주교님.”

“…….”

“주제넘는 말이지만….”

“…….”

“이 일은 당분간은… 알리지 않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네 생각이 맞아.

“사제님….”

드락타리스의 눈앞에 있는 사제는 신앙심만 깊은 사제가 아니다.

‘나 엘리트 사제야.’

이번 일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고 있고,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제.

고등 교육을 받고, 정치적인 관계도 이해하고 있으며, 판을 이해하고 있는 뜻 있는 사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재였다. 그것도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인재.

물론 방금까지 지랄발광을 떨며 패닉을 일으킨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내 스폰서, 아니, 내 스폰서가 되실 드락타리스 대주교님께서는 이쪽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이 있고 현명해 보이는 눈.

‘그래 몸가짐도 잘 봐.’

대충 보기에도 귀족의 예법이 베여 있는 몸가짐.

‘조신 그 자체.’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손, 햇빛을 많이 받지 않은 새하얀 피부.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제가 된 몰락 귀족이라든가, 뜻을 품고 세상 밖으로 나온 루키페르 님의 종이라든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등용해야 한다고. 이 사제를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사제님이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주교님.”

“이후에 일어난 일들과, 이번 일로 일어날 파장을 걱정하고 계시는 것이겠지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말을 맞춰 놓는 것이 좋겠군요.”

“…..”

“루키페르시여….”

“그리고….”

‘그래. 템플러 제니가 문제지?’

쟤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 사람이 아니잖아.

아니나 다를까 싸늘한 표정으로 템플러 제니를 바라보는 대주교의 눈이 보인다.

그의 호위 역시 검에 손을 올려두고 있다.

제니는 어리지만 바보가 아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호위가 한 명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건 둘, 심지어 밖에는 더 많은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얘는 죽으면 안 되지.’

나비효과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분명히 더 쓸 데가 있을 테니까.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대주교님.”

“…….”

“제가 잘 다독이도록 하겠습니다. 비밀이 새어 나가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대주교님.”

‘호위는 좀 닥쳐.’

“조용.”

“…….”

“…….”

“약속할 수 있겠느냐?”

“저는….”

“여기서 일어난 일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루키페르 님에게 맹세 할 수 있겠느냐.”

‘당연히 맹세해야지.’

“저, 저는….”

“템플러 제니.”

‘내가 힘이 되어줄게.’

“…….”

‘무거운 비밀을, 가혹한 운명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야.’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믿기 때문에 맹세한다는 것 같은 얼굴.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믿으면 그다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것인지, 놈은 확고한 믿음을 내보내고 있다.

“맹세하겠습니다. 대주교님. 루키페르 님께 맹세코 오늘의 일을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않겠습니다.”

얘도 얘지만 드락타리스와도 꽤 가까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설마 공략 중에 개소리 지껄이지는 않겠지….’

* * *

-예언의 사제가 말하던 멸망이 눈앞까지 왔구나! 아아아!! 어디에 있는 것이냐! 예언의 사제여… 예언의 사제여! 그가 없으면 나는… 나는!!

“전투 준비!”

“거, 전투 준비 하라니까!”

-아아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제길!!”

* * *

지껄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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