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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63화 (95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63화

성과 (2)

카스가노 유노가 굳이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지금 펼쳐지는 상황은 충분히 비상식적이다.

‘뭐야 이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어두운 폐허에 쓰려져 있는 내 새끼들이 보인다.

내 새끼들뿐만이 아니다. 원정대는 사실상 궤멸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

깃발은 여기저기에 꺾여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많은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진 군사 시체도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겠지.

물론 내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다. 쟤들 생사는 내 소관이 아니었고 진 군사의 생사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눈에 띄는 것은 내 새끼들.

목과 몸이 분리되어 있는 내 새끼들이었다.

돼지 새끼의 온몸은 넝마가 되어 있다. 비교적 깔끔하게 눈을 감고 있는 후위들과는 다르게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다.

오른팔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지만 남은 왼팔은 아직도 방패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녀석의 역할은 뒈지기 직전까지 얻어맞는 거였으니까.

정하얀도 다르지 않다. 머리카락은 전부 백발, 마력을 한계까지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정하얀의 마력이 바닥난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거니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펼쳐져 있는 장면은 틀림없이 현실이었다.

그런 정하얀을 감싸고 있는 것은 한소라.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로 그녀를 끌어안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후위들은 한꺼번에 무더기로 쓸린 것만 같다.

선희영, 엘레나, 황정연.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것인지, 제대로 몸을 피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다.

파란의 후위들을 지키는 롤을 맡고 있는 안기모와 유아영은 이들보다 더 오래 버틴 것 같기는 했지만 이후에 쳐들어온 적을 버티지 못했다.

신입인 벨리에, 알프스 역시 마찬가지.

레인저인 김예리와 김창렬, 박리안은 보이지 않는다. 병과가 병과인 만큼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먼저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현성은….

김현성은 날개가 뜯긴 채로 쓰러져 있다. 내 앞을 가로막은 채로 온몸에 칼과 창이 박힌 채로 죽어 있었다.

마치 외신전쟁 때를 연상케 하는 모습, 심지어 목 위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카스가노 유노가 안내한 세계에서의 나는… 눈을 부릅뜬 채로 김현성의 잘려 나간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배경이 뒤바뀐다.

넓은 가마 안이 보이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카스가노 유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

괜스레 머리를 흔들어 봤지만 한 번 박힌 기억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희라 누나랑 유노도 죽었을 거야.’

사실상 공격대 전체의 패배였고 가장 참혹한 형태의 원정 실패였다.

제대로 퇴군하지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총력을 기울인 마지막 전투에서도 완전히 개 박살이 났다.

어떤 방향으로 전투가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전력 차가 압도적이었을 때의 정황이라 봐도 무방했으니까.

‘가마 안이 조금 답답하네.’

창을 열어 바깥을 확인하자 여느 때와 같이 행군 중인 병력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전히 모든 게 정상이다. 정하얀과 한소라는 가마에 딱 붙어서 이동하고 있었고, 안기모와 엘레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박덕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니까! 거기서 형님이 나한테 말했다는 거 아니요.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는 더 잘할 수 있어. 덕구야. 나는 너를 믿는다. 라고… 사실 당시에는 별로 와 닿지는 않지만 거, 그때부터 조금 생각을 고쳐먹었던 것 같소. 나도 할 수 있다고… 나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요.”

“크으… 우리 박 형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그렇다니까! 내가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형님 때문이요.”

덩치는 산만 한 놈들끼리 무슨 수다를 그렇게 떨고 있어?

타 길드의 탱커들과 벌써 말을 튼 모양인 것 같았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확인한 것일까. 멀찍이서 선희영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부길드마스터?”

“네. 희영 씨.”

“괜찮으십니까?”

“네? 뭐가….”

“…….”

“이런 말을 할 게 아니라 희영 씨. 혹시 현성 씨 좀 불러주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잠깐….”

“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현성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영 씨.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박리안, 김창렬, 김예리에게 배정된 정찰 임무들 전부 회수해 주세요.”

“네?”

“제가 알겠다고 할 때까지 그 어떤 임무도 배정하지 마세요.”

“혹시 그들이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을… 창렬 씨라면 이해가 가지만 예리는….”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징계도 아니고… 그저 제가 따로 시킬 일이 있다는 것만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영 씨… 지금… 괜찮으신 겁니까?”

‘왜 다들 괜찮은지 물어보고 난리야.’

“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혹여나 몸이 편찮으신 거라면 조금 쉬었다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뇨. 몸은 정상입니다. 행군을 늦추지 마세요.”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거울에 비친 모습이 눈에 보였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만 같다. 손도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잠깐 숨을 몰아 내쉬자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있는 잡념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악몽을 꾼 김현성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자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은 느낌.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간에 그 셋은 모든 임무에서 배제하는 걸로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항상 말씀드리지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네. 기영 씨가 걱정하지 않아도 원정대의 안전은….”

“아니요. 원정대가 아니라 현성 씨를 포함한 파란 길드원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공략에 최우선 사항은 안전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안전이에요.”

“네.”

“그럼….”

“네. 제6공격대가 머물고 있는 캠프에 가까워지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영 씨….”

뭔가 안심이 될 만한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적절한 멘트가 따로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나는 손가락으로 내 눈을 툭툭 두드렸다.

녀석은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잊지 마세요.”

“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잊지 마세요.”

“네.”

녀석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는 창문을 닫았다. 이후에는….

행동 지침을 만드는 것이 먼저, 본래 안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기는 했지만 상황이 심각해진 만큼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했다.

‘시바.’

물론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김현성이나 정하얀, 차희라가 어떻게 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었으니까.

이미 이 셋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였고… 조금 부족하지만 반신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단순한 무력만이라면 위에 있는 놈들 못지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안심하고 있는 것 역시 이 셋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기인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일은 벌어질 것이다. 전령 겔크에게서 나온 성과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의 템플러들과 예전의 템플러들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두더지 성녀의 힘을 먹었다고 하지만 젠과 시몬은 많이 쳐줘야 반쪽짜리.

진짜들이 들어갈 그릇에 불과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릇을 닦고 있는 중인 거야.’

결국에는 자신들을 계승하는 것에 성공한 건지, 성공하지 못했는지 템플러 육성 실험보고서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이 실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겠지.

지금까지 나온 템플러들, 내가 알고 있는 템플러들은 계승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이전 템플러들의 무력 수준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교국 8좌 정도의 수준,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신에 가까운 혼을 담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템플러들의 머릿속에 잔존사념처럼 숨어 있을 것이고, 이들의 육신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날개를 단 지금은….

준비됐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공격대가 전멸한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늙은 망령들이 순진한 젠과 다소 야비한 시몬의 몸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보이지 않은 나머지 한 명, 그리고 이 보고서를 작성한 놈 역시 계승에 성공했다.

정확한 전투력을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최소 우리 현성이 정도는 된다고 판단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이 셋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베니고어 시바….’

그래 사실 네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기는 해. 이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으니까.

지금이 아니었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졌을 수도 있었을 거야. 그것도 이해해.

그리고 너도 이해한다고 말 못 할 사연도 있을 거고, 어쩌면 금제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바 일이 수틀리면 나는 너를 원망할 거야. 그건 알아둬. 책임은 네가 지는 거야. 그거 알아 두라고.

“이기영 님… 괜찮으십니까.”

“…….”

“이기영 님.”

“네. 괜찮습니다. 혹시 따로 보이는 건 있나요?”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해할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알고 있었으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고… 아무튼 이것 받으세요.”

“네?”

“제6공격대와 만나면 혜진이한테 전해주세요. 1공격대와 합류하면 진 군사한테도 전해주시고요. 아직 수정할 부분이 많지만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유노 님도 마찬가지고요.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도 안전입니다. 그리고 이건 하얀이랑 소라한테 보낼 편지, 이건 검은백조에 이지혜에게 전할 편지입니다. 희라 누나 것도 있어요. 제가 사라지면 바로 현성이한테 이거 보여주세요. 혹시나 유노 님이 의심당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무슨 말씀을….”

챙겨야 할 게 많다. 소형 연금키트, 각종 물약, 그리고 촉매, 성과로 나온 아이템들까지.

정신없이 가방에 사용해야 할 것들을 욱여넣는다. 물론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상황이 온다면 반갑지 않을 거다.

다음에는 옷을 갈아입는다.

‘사교회에 이런 꼴을 하고 들어갈 수는 없자너.’

아무래도 종교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니까. 예복을 입고 가는 게 좋겠지.

혹시나 해서 장을 열어보자 다행히 하얀색 예복 한 벌이 눈에 들어온다.

무거운 장식도 없고…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게 눈에 많이 띌 것 같지는 않다.

조금 헐렁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행동하기 편해서 좋아. 빨빨거리면서 행동해야 하니까.

‘이게 맞는 걸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애초에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미래는 움직여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창문을 열자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섞여 들려왔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

…….

“안녕하십니까. 사제님.”

“…….”

“저는 안내를 도와드릴 템플러 제니라고 합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많이 봐줘야 15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야 이 새끼는… 사상 최악의 범죄자.

템플러 젠과 꼭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녀석의 전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믿길 정도였다.

“알타누스 성녀님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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