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937화
젠 (16)
‘너무 늦게 왔어. 이 새끼.’
“하아… 하윽….”
‘시바. 깜짝 놀랐네. 진짜 완전 깜짝 놀랐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는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내지른 소리보다 몇 배는 크게 들려오는 감미로운 선율에 몸이 떨려온 것은 당연지사.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다혈질남의 분노조절장애가 치료되고 있는 광경. 그것은 신의 기적이나 다름 없는 광경이었다.
‘베니고어 님의 기적이자너. 더럽게 아프겠자너.’
“아악! 끄아아아아아악!”
‘가락 좋고!’
“끄악! 끄아아악!”
‘얼쑤!’
“으허어어억!”
‘조타!’
얼굴이 일그러진 젠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입술을 꽉 깨물고 파들파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쥔 녀석이 보인다.
주먹에 맺혀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중.
다혈질 남을 피떡으로 만든 자랑스러운 주먹. 사랑스러운 주먹이었다.
사실 얼굴은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다. 온갖 감정이 들어가 있는 표정,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녀석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남의 이목을 끈다는 행동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녀석이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빛의 성자. 타인만을 위해서 살았던 그가 악의가 가득 들어 있는 폭력에 노출된 것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가 바닥을 굴러 더럽혀지고, 무뢰배에게 침을 맞으며 모욕당하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녀석은 빛의 성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이룰 수 없는 꿈에 무책임하게 매달린 것은 아닌지.
매일 매일 교국의 성자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사무치게 힘든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라거나.
‘더 이상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라거나.
‘지키고 말 거야. 이제는 더 이상 상처 입게 내버려 두지 않아.’
라거나.
사실 나야 알 바 아니지만.
별의별 생각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자너.
이제야 막 자리를 잡아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려고 했던 타이밍, 더 이상 상처 입히지 않겠다고, 이제는 내가 지키겠다고 마음을 다 잡은 타이밍에 일어난 뜻밖의 사고.
“네가 감히… 네까짓 게 감히….”
“아악! 끄악!!!”
매번 이성적이었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분노한 모습, 이미 전투 의지를 상실한 다혈질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 올리는 장면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심지어 이 새끼가 악당처럼 보일 정도, 아마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직접 바라본다면 녀석 역시 놀랄 것이다. 평소의 젠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뻔하지. 뭐.
“괜, 괜찮습니다. 젠 님… 저는 괜찮아요. 잠깐 사고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분을 놓아주세요.”
명예추기경은 시바 그 누구도 상처 입는 걸 바라지 않는다. 설령 자신을 상처 입힌 사람이라고 해도, 종국에는 그를 용서한다.
‘아주 죽여! 시바! 나 얼굴에 멍든 것 같은데. 아주 얼굴을 으깨버려.’
“이자는….”
“제가… 우윽… 그분께 먼저 실례를 범해서….”
“당신은… 지금 당신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이자는…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인 건지 알고 계신 겁니까? 지금 어떤 모습으로 제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냔 말입니다.”
“무언가 사연이 있으신… 아윽…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만 놓아주세요. 치료를….”
다시 한번 몸이 벽 쪽으로 부딪힌 것은 바로 그때.
“개새끼!”
“아아악!”
갤러리들도 이미 여신의 손거울을 꺼내놓은 상황에서 놈들이 이걸 못 보고 있었을 리가 없지.
신입 중 한 명이 검을 꺼내 든 채로 젠에게 돌진해 온다.
제법 빠르고 날카로운 움직임. 훈련은 김현성에게 받았는지 스텝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검에 마력까지 가득 담은 것을 보니 단칼에 젠 님을 베어버리겠다는 투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가 뭉개진 채로 바닥에 처박힌다.
‘쟤 죽었어?’
“끄억!”
팔과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다. 파티의 사제가 황급하게 신성력을 쏟았지만 대미지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다.
‘치명상이자너.’
리더로 보이는 녀석 역시 곧바로 몸을 쇄도해 오지만 통할 리가 없다.
‘수준 차이 봐.’
“으억!”
“아아아악!”
애초에 레벨이 다르다. 알프스의 흰둥이가 박덕구에게 시비를 거는 격. 조혜진이 이기영에게 체스를 두자고 하는 격. 진 군사가 내 앞에서 비즈니스에 대해서 떠들어 대는 격.
“멈… 멈… 멈추십시오!”
“…….”
“감히 파란 길드와 척을 질 생각입니까!”
그렇죠. 안 될 것 같으니까. 바로 파란 길드가 나와 버렸죠. 전형적인 악당 새끼들이 되어버렸죠?
그제야 그들의 가슴팍에 달려 있는 인장이 보인 것인지 눈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젠 녀석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로 정보 수집을 했을 테니, 파란 길드 공화국지부와 연관성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느 정도 결론에 도달한 이후에는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젠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길드의 신입생들, 매번 멤버들을 컨트롤했던 리더 녀석은 눈에 띄게 긴장한 표정으로 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하지는 않네.’
상대방이 자신을 웃도는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할래?’
파란 길드의 이름을 들먹이며 소리를 친 것 역시 그러한 이유일 터, 뒷배경만 믿고 설치는 애송이가 되기는 싫겠지만 다른 선택지에 발을 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대충 보기에도 아득한 산처럼 보이는 강자.
대륙에 숨은 고수는 많고도 많지만 이 새끼들이 마주한 강자는 정말로 손꼽히는 강자 중에 한 명이다.
막말로 이 새끼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어도 우리 젠 한쪽 날개도 감당하지 못할 거야.
“역겨운 자식들.”
“…….”
갤러리들도 소란스러워지죠.
“이게 무슨 일이야.”
“경비원들은 어디 간 건가요?”
“파란 길드원들이 시비가 붙은 모양이에요. 글쎄 제가 보고 있었는데 저 사람이 저분을 마구잡이로 때리지 뭐예요?”
“지, 지금 신고해야 되나요? 어떻게 하나요. 저분은….”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신의 손거울을 들어 올려 촬영을 하고 있는 이들도 보이고 말이야.
젠 녀석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분노에 몸을 심하게 맡긴 터라 어떤 행동이 정답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겪어봐서 알아. 머리랑 행동이랑 따로 놀지. 가슴 속이 막 부글부글 끓는 것만 같고, 표출하지 못하면 터질 것 같은 감정이잖아. 아, 거기 신입도 그런 표정이네.
‘안녕. 친구들 나 다시 왔어.’
“이 쓰레기 같은 자식들.”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는 겁니까? 우리는 파란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신은 실수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 잘 알고 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다혈질 남이 벽에 부딪힌다. 슬쩍 던진 것 같은데 부딪히는 타격감이 남다르다. 이 새끼는 아직 말할 기운도 있나 보네.
“아으… 살… 살려줘… 살려… 이제 그만….”
“너는 감히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이를 이리 핍박하다니요.”
“아무 잘못이 없어? 지금 이분을 보고도 너희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
“저… 분은… 후우… 아무래도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시… 뭔가 오해가… 혹시 어떤 길드에서 나오셨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저희가 추후에 정식으로 사과를 드릴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
“사과가 필요하시다면 물질적으로 보상을….”
‘아냐. 이번에 원하는 건 골드가 아니야.’
“이… 쓰레기들이….”
‘오히려 그건 스위치지.’
“젠 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젠 님!”
“제가….”
“젠 님! 그만하세요!”
“…….”
“이제 제발 그만하세요!”
그만두지 마. 시바. 더 때려 아주 본때를 보여줘.
“더 이상 이분들을 상처 입히지 마세요.”
상처 입혀. 아주 뼈와 살을 분리시켜 버려. 나 멍든 것 같아. 너무너무 아프다구.
겨우 이 정도로는 분노가 가시지 않아. 뼈에 금도 간 것 같아. 갈비뼈가 너무 아파. 4배로 되갚아줘. 40배로 되돌려줘.
죽여! 아주 죽여 버려! 그냥!
“하지만….”
“그보다 어서… 어서 나가요.”
경비들 오기 전에 튀어야지. 근데 그전에 조금 더 때려.
“저는 괜찮습니다. 젠 님. 네. 저는….”
“어째서 매번 괜찮다고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말로 괜찮아요.”
신입들 표정 왜 저래. 동일인물 맞아. 내가 그 새끼 맞다구.
“무엇이 목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란 길드는 이번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란 길드는 좌시할 거야. 너 이 새끼 네가 좌시하지 않는 거겠지. 괜히 길드 이름 팔지 마. 허세 하나는 시바 아주 기가 막혀요.
“어서… 어서 가요. 젠 님. 제발… 흐윽… 제발….”
다시는 새장 속에 들어가기 싫단 말이에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기 싫어요. 근데 시바, 참지 마. 저 새끼들 아주 혼쭐을 내줘.
빛의 성자의 눈물을 거절할 수는 없던 것인지.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며 내 손을 잡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파란 길드는 절대 오늘의 일을!”
넌 좀 닥쳐 이 새끼야. 거 더럽게 시끄럽네.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죄송합니다. 이기영 님… 죄송합니다.”
“아니요. 젠 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닌걸요. 그럼….”
“도시를…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마 못 빠져나갈 거야. 진 군사가 애들 설치 잘해놨지.
아니나 다를까 포위망이 쫙 깔려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물론 이단심문관이나 성기사단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아마 워프게이트에서 물밀 듯이 쏟아지겠지.
“이쪽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흐윽… 죄송합니다. 젠 님.”
“이기영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야밤의 탈출극 그림이 되는 장면이기는 해.
이거 아마 다른 사람들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 * *
-길드마스터.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갑작스러운 사고가… 네? 네… 죄, 죄송합니다.
-…….
-처음에는 단순히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마도 타 길드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조직적으로 길드를 노리고… 네. 그렇습니다. 그와는 정확히 3번 마주쳤지만… 저희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온 것처럼… 네, 네… 일단은 군사님에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아… 네. 저희를 노렸다기보다는 파란 길드를…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 길드의 명예에 흠집을… 죄송합니다. 길드마스터.
-…….
-자세한 상황은… 네. 현재 베니고어넷에 퍼지고 있는… 그 영상이…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죽… 죽여주십시오.
-…….
-네?
-…….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혹시 기영 씨라고 말씀하신 게 맞으십니까? 기영 씨가 누구….
-…….
-…….
-…….
-…….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