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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13화 (90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13화

세라 (13)

“그럼… 안녕히.”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베니고어 님의 아래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가 아닙니까. 언제든지, 편하실 때마다 찾아와 주셔도 됩니다. 저는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몇 가지 이벤트를 해치운 뒤, 이제는 녀석을 보내줘야 할 시간.

이 새끼가 덫에 걸려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내게 호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어떤 종류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베니고어의 아들과 하늘을 유영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건 돈 주고도 사기 힘든 경험이니까. 적어도 나를 적대하지는 않겠지.

사람 좋은 빛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줬으니 어쩌면 이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럼 더 좋고….

너무 갑작스럽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는 않아.’

젠과 나는 신앙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으니까. 그래. 신앙 말이야. 사람 사귀는 방법 중에 이것보다 더 편한 게 뭐가 있겠어.

우리는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다른 환경에서 지냈지만… 결국 같은 신을 모시는 형제자너. 그렇지?

“실례가 아니라면 다음 행선지는 어딘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마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임무라고 하시면… 아… 그러고 보니….”

“네.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었지만….”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명예추기경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그리 마음 써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제가 불편하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불편이라니요. 여러 가지로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에 대해, 베니고어 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륙을, 교단을 베니고어 님을 위해 힘써주시는 젠 님과 함께한 시간입니다.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된다는 말은 그냥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살짝 미소를 지은 것만 같다. 그래. 웃어야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명예추기경님.”

“저기….”

“네?”

“꼭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와인 한잔하면서 신앙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마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녀석을 찾아갈 테니까. 교황청에 한번 들러야 될 것 같거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교황청 내부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바젤 교황은 내게 부담을 주기 싫은지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템플러들이 일선에 나섰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변화가 아니었던가.

아무리 템플러가 독립기관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베니고어 교단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여러 가지로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겠지.

기적이라는 것은 곧 힘이고 권력이다. 템플러들의 등 뒤로 솟아난 기적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들의 뜻이 그게 아닐지라도, 템플러들은 현재 교단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들이 됐을 확률이 높다.

‘바젤 교황 이 사람도 참 머리 아프겠어. 말년에 갑자기….’

“후우….”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네요.”

“네?”

“저 사람 말이에요. 뭔가 꺼림칙한 게 있는 것 같아요. 형.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죠? 신성을 가진 몬스터의 등 뒤에 있는 날개와 종류가 같아요. 비슷한 신성력 역시 느껴지고요. 표정이 왠지 모르게 어두운 것도….”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 분 역시 베니고어 교단의 신도입니다. 라파엘 님.”

“죄, 죄송해요.”

“아니요. 라파엘 님이 어떤 부분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네… 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였어요. 경계심을 낮추지 말아야 한다는 거요. 그래도 성과가 많은 하루네요. 새로운 샘플도 사냥할 수 있었고… 연구에도 진전이 있었던 것 같고요. 마리엔도 뭔가 가닥을 잡은 것 같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네. 어쩌면 던전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거 교황청 지하에 있어.

“이번 일은 평범한 던전 탐색이 아닐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데….”

알겠어. 근데 형 피곤하니까. 그만 좀 가.

“제… 제가 조금 귀찮게 했죠? 그럼 쉬세요. 형.”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혀요. 진짜.

솔직히 조금 피곤하거든. 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단 말이야. 평소면 조금 상대해 주겠는데. 나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지.

“그렇지 않습니다. 라파엘 님. 다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게 많은 터라… 세라핌과 케루빔의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아… 그, 그랬죠.”

“무엇보다 현재 교단의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교단에 한번 들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형이 직접 기도회를 주도하시는 건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아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래. 그렇게 해봐야겠어. 아니, 그게 좋겠네.

사실 교황청과 엮이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해왔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너무 깊게 연관되는 것은 이쪽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고 엄밀히 말하면 나는 외부인이었으니까.

물론 베니고어의 아들을 외부인 취급하는 신도는 없었지만, 달고 있는 타이틀이 많다 보니 교단 쪽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바젤 교황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것도 밝힐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

바젤 교황님은 내가 조금 더 교단 안에 깊숙이 들어와 줬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조금 더 깊게 들어갈수록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벌써부터 눈을 빛내고 있는 라파엘을 보고 있자면… 까놓고 말해 귀찮아질 것 같기야 하다.

“이번에 몇 번째였죠?”

명실상부 교국 최대의 이벤트, 대륙 전체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기도회를 기다리고 있는 신도들이 수천만 명이다.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의복부터 예식, 바젤 교황과 오스칼, 심지어 린델의 삼대 길드는 물론, 여러 협력 업체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이벤트. 이런 걸 정기적으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저, 기도회는 전부 참석했어요. 형. 교황청에서 배려해 주신 덕분이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거든요.”

‘나도 기억하고 있어. 너 맨날 맨 앞 열에 앉아 있었잖아.’

“혹시 시간이 언제인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알려주지 않으셔도 상관없지만 요즘 여러 가지 일에 걸쳐 있는 만큼 스케줄을 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김현성 이 새끼도 올 거 아니야. 아니, 모르게 하면 되지.’

“글쎄요. 기왕이면 빠르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교단 측의 입장도 들어봐야 할 것 같고… 템플러들 역시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너무 기도회를 등한시한 것 같아 민망하기는 하지만… 아마 교황청 측에서도 환영할 겁니다.”

“아. 혹시 이번 일 때문에….”

“네.”

그래. 너 때문이야. 귀찮은 기도회에 나가는 이유.

물론 라파엘 때문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교황청에 조금 더 깊숙이 관여해야겠다는 것 하나다. 던전이 교황청의 지하에 있는 만큼 어차피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바젤 교황이 교단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 일이 쉬워지겠지만 만약 정치싸움을 하고 있는 도중이라면 나도 손을 내밀어 줘야 하니까.

젠 놈과 더 가까워져야 할 필요성도 있고, 무엇보다 라파엘 파티가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는 활동 무대를 교황청 쪽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럼 저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파엘 님.”

“네. 계속 붙잡고 있어서 죄송해요. 그리고… 정말로 기뻐요.”

“기회가 된다면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 정말 그래도 되나요?”

아니. 진짜로 한다 그럴 줄은 몰랐네. 네가 자격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랑 같이 하면 불편해서 그래.

그저 조용히 웃음을 보내는 것으로 애매한 대답을 보내도록 하자. 바로 인사하고 말이야.

“그, 그럼 정말로 들어갈게요.”

시바. 이제야 들어가겠네.

한숨을 쉬고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세라핌과 케루빔이 시야에 비친다.

아….

“저… 아버지… 그러니까.”

가볍게 무시한 채로 손을 흔들자. 조용히 방 안에서 빠져나가는 모습, 얘네 이거 한소라가 여기로 데려다 놓은 건가.

분명히 나는 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했었는데. 초조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귀여운 배신자들이 천막 안을 빠져나가는 꼴은 비 맞은 강아지 같기도 하다.

“아. 세라핌.”

“네… 네?”

“어머니한테 가 보려무나.”

“하, 하지만….”

“가 봐.”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으니까.

그러고 보니.

‘하얀이 얘는 언제까지 숨기려고 하는 거지.’

혹시라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들킬까 조용히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게 좋으려나. 아니면 들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련해야 하나.

시간이 조금 남으니 메시지라도 보내볼까.

[하얀아. 어디 있어?]

[저 지금 소라랑 쉬고 있는 중이에요. 오빠. 무슨 일이세요?]

[수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아?]

[네… 죄송해요… 그런데 수도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기도회를 열어야 할 것 같아.]

[네? 정말이에요?]

[응.]

[저도 같이 갈래요!!]

[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같이 가고 싶어요.]

문자로 보니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네.

-오, 오빠가 교황청에서 기도드리나 봐!

-정말요?

-으… 응. 그, 그래서 수도에 가야 된다는 것 같아.

-아프다고 말씀드린 거 맞죠?

-그… 그래도 기도회에는 참석해야 하니까. 오, 오빠가 기도드릴 때마다 입는 옷 있잖아. 그… 그거 이번에도 볼 수 있을 거야. 녹화 준비도 해야겠다. 소, 소라가 해줄래? 그, 그리고 이번에도 맨 앞 열에 앉을 수 있겠지? 그… 그때는 두 번째 열에 앉았었잖아.

-그… 때는… 초청기도회였으니까 그랬죠. 각 교단의 지도자분들이 앞 열에 앉으셔야 했으니까요. 이번에는 앞 열에 앉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제가 미리 말해 놓을게요. 어? 세라 왔니? 정하얀 님. 세라 왔어요. 칭찬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잖니. 우리 세라. 마무리를 못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용감했었는지 이모는 다 들었어.

-아… 아… 아….

-그래도 그런 위험한 일은 다시는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적어도 엄마나 이모가 보는 앞에서….

-네… 이, 이모….

-자. 정하얀 님도 어서요.

-아… 으응….

어색해하는 게 왠지 모르게 부끄럽게 느껴진다. 초롱초롱한 얼굴로 정하얀을 올려다보는 녀석.

갑작스레 여신의 손거울에 진동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반사적으로 망원경에서 손거울로 시선을 옮긴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명예추기경님께서 주관하는 기도회에 함께 하게 됐습니다. 정확한 시일은 아직 미정이지만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명예추기경 #성검용사 #베니고어 교단 기도회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조만간 만나요]

어쩐지. 시바.

손거울이 터질 것 같더라니.

“이걸 시바. 그냥 이렇게 무턱대고 올려 버리면 어떻게 해?”

이 새끼. 이거 미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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