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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08화 (89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08화

세라 (8)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갑자기 튀어나와서….”

“일단 상황을 보고받으시면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부길드마스터.”

“뭔데요. 굳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정확한 시간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오늘 오전 9시 11분 경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몬스터의 최초 발현지는 수도 시계탑에서 반경 1㎞ 안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몬스터로 인해 일대는 완전히 마비됐고, 많은 사상자와 피해자들이….”

“그렇게 격식차려서 보고하실 필요 없어요. 요점만 빨리 이야기해 줘도 됩니다, 혜진 씨. 수도 내에서 몬스터가 출현했고 많은 피해가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네. 다행히 근처에 있었던 박덕구, 안기모, 김예리 님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걔네는 거기 왜 있었던 거야.’

내 표정을 살피던 조혜진이 말을 이었다.

“박덕구 님의 주최로 수도 탐색을….”

‘무슨 갑자기 수도 탐색이야. 그냥 놀 구실이 필요한 거 아니야?’

“시계탑 근처 주점에서 회식 중이셨다고 하시더군요.”

“무슨 아침부터 회식을 해요?”

“그 전날 밤부터. 계속….”

“술 처먹은 상태에서 몬스터를 잡았다고요? 이 돼지 새끼….”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상태는 조금 어떻습니까?”

“당시에는 중상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회복력 하나는 기가 막히네. 시바.”

수도 탐색을 나선다는 이유로 밤을 새우도록 술판을 벌인 것은 어처구니없지만 그 상태로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했다는 것도 당황스럽다.

어째서 박덕구 이 새끼가 직접 보고를 안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분명히 혼나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리라.

사실 별다른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어째서 도심 한가운데에 몬스터가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셋은 대륙 최상위 모험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사실 박덕구가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생각보다 레벨이 높았나.’

지금의 박덕구는 어지간한 몬스터의 공격으로는 가벼운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는다.

한계를 돌파한 내구수치도 내구수치지만 녀석의 방어구 역시 온갖 기능이 붙어 있었으니까.

정하얀과 한소라를 지켜보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 그나마 김예리나 안기모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이 없는 걸 보니 그 정신없었던 와중에도 자신의 롤을 수행한 것 같았다.

“말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하긴, 거기서 그 지랄이 났으니 사람들이 전부 다 찍고 있었겠네요. 그러다 죽은 사람들도 있겠네.”

테이블을 두드리자 여신의 거울이 떠오른다. 곧바로 동영상 탭으로 가니, 파란 길드원 VS 몬스터 따위의 검색어가 순위권에 뜨기 시작한다.

영상이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게 무슨 난리냐니깐!

-그러게. 몬스터…

-네. 몬스터인 것 같군요. 저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봅니다.

누가 봐도 취한 것 같은 3인이 눈에 띈다. 아니, 김예리 쟤 왜 저렇게 취했어. 쟤 술 먹어도 되던가?

-거, 세 명이서 동시에 환각을 보고 있는 것 같다니까. 거, 아니면 내 꿈에 둘이 등장한 거 아니요?

-일단. 잡아야지. 몬스터.

-신성주문 외워드리겠습니다. 진지하게 합시다.

비틀거리면서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안기모의 발언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수도에서 온 경비병들이 주변을 통제하는 사이에 박덕구는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몬스터에게 뛰어들기 시작.

그 와중에 몬스터의 전체적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거대한 덩치, 기괴하게 생긴 얼굴과 부자연스러운 몸, 저걸 무슨 몬스터라고 불러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몬스터와의 차이점은 있다.

등 뒤로 뻗어 있는 하얀색 날개 한 쌍. 우우… 같은 소리를 내는 녀석의 겉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이다.

-이게! 물리 마법이라니까!

-그렇다면 저는 피에 미친 광전사 역할을 하면 되는 겁니까?

-매혹의 춤.

시바 니네 그만 좀 해. 동네 부끄러워서 내가 어딜 나가지 못하겠어.

-우우우우우!

-만, 만만치 않은데…

-조금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매혹의 춤. 2장. 성인식.

‘예리야. 너 정신 놨어?’

-잠, 잠깐만… 생각보다 세다니까. 잠깐만! 으힉! 아프다니까!

-매혹의 춤. 3장. 장밋빛 바람.

-김예리 님! 매혹의 춤을 추고 있을 때가…

-매혹의 춤. 4장. 치명적인 유혹.

-으헥!

“이거 영상, 제가 본 다음에 바로 내리고 저 셋은 사유서, 아니, 반성문 열 장씩 써서 제출하라고 하세요.”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있는 영상이라….”

-매혹의 춤. 진. 오의. 김예리라는 여자. 다른 수식어 따위는 필요 없지. 각성. 서큐버스 모드.

“그래요. 시바. 그럼 평생 남겨 놓는 게 좋겠네요. 이걸 보고 한번 자기 모습들이 어땠는지 봐야지.”

-끄윽! 물리무공. 금강불괴!

-피에 굶주린 자. 광폭화!

-으으으아아악! 물리무공. 천근추!

“아니다. 쟤네들 벌금 먹일게요. 제 이름으로 길드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수위의 징계를 먹이는 거로 합시다. 연봉 삭감하고, 장비 두 달간 반납하라고 하세요. 벌금은… 그래 10만 골드씩 내라고 하시고요.”

“좋은 선택입니다. 부길드마스터.”

저 돼지 새끼 저거. 버티다가 날아가는 거 봐. 저 때 다친 건가?

벽에 처박히는 박덕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윽고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속을 쓸어내린다. 아마 저 때 뼈가 부서졌을 거야.

계속해서 개소리를 지껄여대며 몬스터에게 맞서고 있는 이들은 아슬아슬해 보이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롤은 잊지 않은 모양이다.

전위인 박덕구가 몬스터와 정면으로 맞서고, 김예리가 박덕구를 이용하며 딜을 넣는다.

안기모가 박덕구를 보조하며 신성력 지원을 하는 모습은 박기리 삼 남매의 전형적인 전투 패턴이다.

취권이라도 하는 것마냥 비틀거리면서 여기저기 쏘다니는 김예리의 모습은 발군, 단검으로 몬스터의 등 위를 찍으며 올라간다.

건물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 손목에 달려 있는 와이어를 시계탑에 연결시켜 도시의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거의 원맨쇼인데.’

경비대나 모험가들 역시 준비가 된 모양인지, 진영을 갖추고 활과 화살을 쏘아 보내고 있다.

녀석이 흥분한 듯 거칠게 팔을 휘두르지만 박덕구가 녀석의 팔을 붙잡는다.

김예리가 그 팔에 올라타 단검으로 놈의 팔에 상처를 입히며 난도질하기 시작, 사실상 이쯤 되면 전투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놈이 회복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신성력이네요.”

“네. 신성력입니다. 이 이후의 영상은 다른 모험가가 올린 영상이 있습니다.”

“뭐, 굳이 볼 필요 없겠네요. 다른 모험가들도 전부 참전했을 테고, 피해는 조금 있었지만 몬스터는 성공적으로 잡아냈다. 맞아요?”

“네. 부길드마스터. 추가로 몬스터의 시신도 이곳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마 궁금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마침 잘 오셨네요. 저희도 비슷한 걸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비밀조약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겠네요. 교국이 전부 다 알게 됐으니까. 라파엘 파티에서 이 근처에서 비슷한 몬스터를 사냥했습니다.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결은 같을 것 같네요.”

“…….”

“성검용사 측에서는 던전과 관련된 몬스터라고 판단하고 있고…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확실히… 던전에 의한 이상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군요.”

“네.”

“부길드마스터는….”

“도와주고 있고요.”

조금 여유가 생기자 오랜만에 보는 조혜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전히 긴 머리를 묶어 올린 모양새, 갑옷은 꽤 삐까번쩍해졌지만 보노보노색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개인의 취향은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물론 희생과 부활의 신이 내린 창도 그대로였고….

사실 다른 형태로도 연락할 수 있었지만 아마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게 편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마도 등급외 던전일 겁니다. 난이도는 신화급 정도로 판단하고 있고요. 단순히 던전 때문에 생긴 이상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나타난 몬스터의 레벨이 꽤 높잖아요.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놈들이 몇 놈 더 나타나겠죠. 몬스터의 사체는 어디에 있어요?”

“지금 오고 있는 중입니다. 부길드마스터.”

“그럼 일단 성검용사 파티가 잡은 몬스터가 있는 쪽으로 같이 가 봅시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걸 안 물어봤네. 제가 베니고어 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건데….”

“네?”

“어떤 남자랑 파란의 조혜진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무슨….”

“요즘 베니고어 넷 안 들어가 봤어요? 하긴 이미 식은 떡밥이기는 한데….”

“아!”

“…….”

뭔가를 깨달은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데이트 아닙니다.”

“?”

“잠깐 식사를 같이했을 뿐이에요. 제가 실수로 그분의 그리폰을 상처 입혀서 말입니다. 배상하려고 했더니 식사나 한번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이전부터 팬이었다고… 경박하고 무례한 사람이라 사실 곤욕이었습니다. 이지후라고 했었나… 첫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예의가 없더군요. 아무튼 부길드마스터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아니니 관심 끄세요.”

‘갑자기 여기서 이지후가 왜 나와.’

조혜진의 말대로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었는지 인상을 구기는 모습이 들어왔다.

“조심하세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순진한 우리 혜지니 이용해서 한탕 해 먹으려고 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럴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이상한 칭찬을 하는 게 조금… 아니,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일단 가시죠. 아! 그리고 성명도 발표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성명이요?”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입니다. 오스칼 님과 바젤 교황님께서도 공식적으로 요청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하긴 그럴 만도 하네.

대륙 던전화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이기는 하니까. 혹시나 다른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을 시민들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아직 용서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혹시나 대륙의 신들이 다시 한번 인류를 시험대에 세우는 것은 아닐까. 종말론이나 뭐 이런저런 일들로 불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교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식성명이 필요한 거고…. 분위기가 더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바로잡자 이거지.

조혜진과 적당히 라파엘 파티의 캠프를 거닐다 보니 어느새 몬스터의 시신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끝내고 온 한소라와 눈치를 보고 있는 정하얀도 보이고…

“하얀아. 몸은 괜찮아졌어?”

“아… 네… 네. 아직은 조금 피곤하기는 한데….”

“들어가서 쉬어도 되는데….”

“아, 아니에요. 그, 그보다 조혜, 혜, 혜진 님. 오셨네요.”

“네. 정하얀 님. 한소라 님도 안녕하셨습니까?”

“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맡은 업무가 차이가 있다 보니 원정도 없는 최근에는 마주칠 일이 없기는 했지. 언제 한번 다 같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에서 나온 사체는 이쪽으로 옮겨 달라고 하세요. 혜진 씨.”

“네. 부길드마스터.”

“그리고 소라 씨는 라파엘 파티 좀 불러 주세요. 아무래도 상황이 달라진 것 같으니까.”

“네.”

입구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녀석을 해부하고 있는 도미니온스.

얼굴에 이상한 뭔가를 덕지덕지 묵힌 채로 인사하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다.

인사를 해올 것 같아 적당히 손을 흔들자 다시 한번 본인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쓰로누스는 근처를 수색하고 있나.

어디에선가 거대한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우우-

“…….”

“…….”

“세 번째군요.”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라파엘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형. 괜찮으신가요? 지… 지금 안전한 곳으로….”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뭣보다 엄청 멀리서 들리잖아. 여기에서 뭔 일이 일어나겠어?

것보다 저거 세라랑 케루빔 있는 쪽 아닌가.

-케, 케루! 저것 봐. 저, 저걸 데리고 가면 아버지가 용, 용서해 줄지도 몰라. 공, 공을 세운 거니까.

응 아니야. 용서 안 해.

-…….

너도 동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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