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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99화 (89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899화

성검용사와 명예추기경 (2)

“설마 같…… 같이 던전에 들어가 주시는 건가요?”

“글쎄요. 시간이 된다면 함께 하고는 싶지만…… 정확히 말씀을 드리기가 어려워서…… 일단 던전을 찾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이후 일정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율하는 게 좋겠네요. 피차 할 일이 있으니…….”

“아…….”

‘너무 씁쓸해 보이자너.’

“하지만 라파엘 님의 일이니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되지만…… 형이 편하신 대로…….”

말과 표정이 다르다. 근데 괜찮아. 나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

“아니요. 사안이 사안이니까요. 신성력을 품고 있는 몬스터라니……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아니죠. 라파엘 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아마 던전 때문에 주변 지역에 이상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클 겁니다. 던전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들과 함께 생태를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단순한 변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의아한 점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런가요?”

“네. 일단은 몬스터가 발견된 곳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캠프가 그쪽에 있나요?”

“네. 몬스터를 발견한 곳에 캠프를 만들어 뒀어요.”

‘지금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식사하고 다른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캠핑도 나름 운치가 있으니까.

모닥불 하나 켜놓고 사진 찍으면 꽤 분위기 있자너.

거기에 스튜하나 끓여놓고 서로 맥주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는 맛이 있지.

무조건 베니고어그램에 담아야 하는 장면 아니냐고.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한 번 가봐야 하는 장소이기는 했다. 무턱대고 교황청 지하에 던전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던전에 대한 정보는 엄연히 보안이 걸려 있는 정보였고 내가 알려주고 싶다고 해서 유출할 수도 없는 정보였다.

일반등급이나 희귀등급의 던전도 아니고 무려 등급 외 판정을 받은 던전이 아니었던가.

다소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킬 수는 있지만, 관리자가 필요 이상의 치트를 사용하는 건 시스템의 공분을 살 확률이 높으니까.

가능한 것은 옆에서 슬그머니 힌트를 내어주는 것 정도, 성검용사 파티가 정상적으로 던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같이 한 번 가볼까요?”

“네? 정말…… 요?”

“네. 시간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살펴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자리가 있다면 하룻밤 정도는 지내도 될 것 같고요.”

“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하시면…….”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잠, 잠깐만요. 그럼 준비 좀……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요.”

“…….”

허겁지겁 손거울을 꺼내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벽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만 같다.

의견조율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윽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근데 이걸 어떻게 알려줘야 되지.’

내가 알려주는 것도 치트라고 판정받으면 문제가 있는데…….

길드에서 조사를 들어가면 조금 더 결과가 빠르게 나오겠지만 그것도 내키지는 않는다.

물론 라파엘이야 괜찮다고 말하겠지만 성검용사파티는 파란 길드 소속이 아니다.

파란 길드가 라파엘 파티의 성과를 가로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만큼 괜한 분란을 사서 만들 필요는 없다.

“디저트만 먹고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형.”

“네, 라파엘 님. 아, 혹시 몇 명 동행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네. 형이 편하신 대로…… 혹시 파란 길드 분들인가요?”

‘신경 쓰이겠지.’

“길드 소속은 아닙니다. 뭘 걱정하시는 건지 이해하지만 안심해 주셔도 됩니다, 라파엘 님. 이런 말로 안심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발견된 던전의 소유권은 라파엘 님의 파티의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던전의 소유권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실 그런 건 상관없거든요. 형이 필요하다면 드릴 수도 있지만…….”

“하하, 말씀뿐이라도 고맙네요. 최대한 불편할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파티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배려해 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라고 말을 줄이는 모습, 그 밖에도 식사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별로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시간을 때우기에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들, 녀석이 다시 한번 말을 꺼낸 것은 바라보고 있던 손거울에서 작은 진동이 울린 직후였다.

“이제 슬슬 일어나요, 형”

“아…… 네. 혹시 좌표를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라파엘에게 받은 좌표를 문자로 전송한 이후에 밖으로 나서자 녹색의 그리폰이 눈에 보였다.

사실 화이트 폴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안장이 두 개가 있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사진 좀…….”

“네.”

[라파엘님의 녹색 그리폰과 함께.]

[#야간비행 #일탈 #새 출발]

이 정도면 괜찮지.

“꽉 잡으세요.”

“…….”

조금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름대로 편안한 비행, 천천히 린델이 멀어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활기찬 시내와 상가를 뒤로하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이 눈에 보이기 시작, 곳곳에서 불빛이 피어오르고 있다.

아마 원정이나 사냥을 위해 밖으로 나온 파티겠지.

대충 중급 모험가들처럼 보이는 이들은 서로 모닥불 앞에 모여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하거나, 다음 날 사냥 준비에 열을 올린다.

별 것 아닌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꽤 판타지 소설 같은 풍경, 너덜너덜한 천막과 최대한 간소화시켜놓은 캠프들은 괜스레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저게 국룰이기는 하지.’

그것과 비교하면 저 멀리 있는 캠프는 무척이나 눈에 띄는 모양새.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외관이었다.

일단 규모가 무척이나 크다.

조금 과장해서 천막의 성을 보는 것 같은 느낌, 혹은 작은 마을을 세운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동식 천막과는 다르게 평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텐트, 글램핑을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물건들을 램프가 비추고 있다.

혹시나 싶었지만 그리폰은…….

“저곳입니까?”

“네. 조금 조촐하지만…….”

‘저게 어딜 봐서 조촐해.’

“형이 불편해할까 봐 조금 신경을 썼어요.”

‘그 짧은 사이에?’

“아직 다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너무 일찍 온 모양이네요.”

“그러실 필요는 없었는데. 라파엘 님의 파티원들에게 민폐를 끼친 것은 아닐까 걱정되네요.”

“아니요. 안 그래도 진전이 없었던 상태였거든요. 파티원들도 틀림없이 기뻐할 거예요.”

‘그건 니 생각이고…….’

모르긴 몰라도 갑작스러운 일에 휘말리게 된 성검용사 파티는 인상을 구기고 있지 않을까.

도움을 받는다는 건 기쁘겠지만 휴식할 시간에 일어나 캠프를 꾸미는 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차피 철수할 캠프라고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의미 없는 짓이 또 없을 것이다.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마무리가 될 작업일 텐데…… 심지어 얘네는 직원들도 따로 안 쓰고 있잖아.

초일류 모험가들이 직접 저런 거나 설치하고 있다니 얼마나 현타가 오겠냐고.

당연하지만 실용성 따위는 없다. 애초에 캠프를 만들어 놓은 목적은 던전찾기였다.

파티 내에서 보안이 걸려 있는 만큼 저렇게 눈에 띄는 캠프는 오히려 방해라는 거다.

아니, 어떻게 보면 성공적이기는 하네. 누가 저 꼴을 보고 조사를 나온 파티라고 생각하겠어.

분명히 돈 많은 이지후 같은 놈들이 놀이라도 나온 거라고 생각하겠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겠네.

그만큼 보기에는 좋다. 사진도 나름 잘 나올 것 같고…….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캠핑 잡지에서나 나올 것 같은 비주얼이다.

아까 언성 높였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봐.

한참이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그리폰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 착지한 이후에는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명예추기경님.”

“네, 이주혁 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사냥개. 카리스마 여전해.

“안녕하세요. 명예추기경님. 이렇게 뵙게 돼서 기뻐요.”

“저도 기쁜 마음입니다. 마리엔 님.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 걸요.”

기적의 사제 마리엔.

“명예추기경님을 뵙습니다.”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도 마음의 눈으로 천천히 읽어주면서 하나하나 전부 인사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못 본 사이에 파티의 규모가 제법 커진 느낌, 내가 모르는 얼굴들도 눈에 띈다.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칭호랑 같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회색의 마법사라고 불리우는 네이나 님이 아니신지요.”

“어…… 어떻게…….”

“꼭 한 번 따로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닿는군요. 라파엘 님과 함께하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실…… 파란에서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었습니다만…… 저희가 한발 늦은 모양이군요.”

봐. 환장하잖아, 아주. 입꼬리 귀에 걸린 것 좀 봐.

“제가 지금까지 많은 캠프를 봐 왔지만 이렇게 멋진 캠프는 처음이네요.”

애네 노력에 대해서 칭찬 한 번 해주고.

호감을 사기 위한 마무리는 역시 서민적인 척이다.

누구나에게 다 먹히는 것은 아니지만 따로 클랜이나 길드 하우스를 두지 않고 야전 생활에 익숙한 파티들은 보통 이런 걸 좋아하거든.

“예전 생각이 나는군요.”라면서 모닥불 한 번 뒤적거려주면 환장한다고.

이런 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이 생긴 연약한 사람이 이러는 것 좀 봐.

벌써 얘네 얼굴 보라고. 명예추기경님은 달라, 이런 생각하고 있잖아.

“제가 할게요, 형.”

“괜찮습니다, 라파엘 님.”

“저희가 너무 불편해서 그래요, 명예추기경님. 와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제가 괜한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파란 길드는 이 파티의 성과를 가로챌 생각이…….”

“오, 오빠.”

라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타이밍이…… 조금 그렇네.’

“오, 오, 오빠……?”

“혹시…… 정하얀 님 아니신가요?”

회색의 마법사라고 불리우는 네이나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정하얀 님이신가요?”

“네…… 네.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정하얀, 옆에 자리한 한소라까지 눈에 보인다.

조금 낯선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니 기쁘기는 했지만 얘는 왜 이런 타이밍에 등장했을까.

분명히 연락을 넣은 사람들은 얘네들이 아니었는데.

설명하라는 듯이 바라보자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열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아이들끼리 오기에는 위험한 곳이니까요. 보, 보, 보호자 동반으로…… 제, 제가 대표로 왔…… 어요.”

‘뭐가 위험해. 걔네 어지간한 모험가들은 비비지도 못하는 얘들인데…….’

조용히 정하얀과 한소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아이들.

케루빔,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세라핌.

“아버지를 뵙습니다.”

“아버지를 뵙습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입을 맞춘 이후에는 허리를 굽히기 시작,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라파엘 파티원들에게 조금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도움을 줄 아이들입니다.”

“쓰로누스라고 합니다.”

“도미니온스라고 합니다.”

“케루빔이라고 합니다.”

“세…… 세라핌이라고 합니다. 자,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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