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893화
휴가 (11)
아비규환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가면쓰레기는 고개를 저었다.
“워프게이트를 막은 건가?”
녀석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답이 뻔한 질문이었으니까.
기본적인 워프게이트의 통제는 한소라가 담당한다. 마탑에서 어떤 코어를 빼돌렸든 간에 열어놓고 닫아놓고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이쪽에 있다는 거지.
본래는 항상 열어놓고 있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닫아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여기에 있는 적폐 새끼들한테 인생의 쓴맛을 보여줄 수 있자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지.
슬쩍 밖을 바라보면 상황이 무척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입구와 출구가 완전히 막혀 버리자 여기저기에서 혼란이 일어나게 된 것은 당연지사.
마켓 쪽에서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단순한 헤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겠지만 억류되어 있는 몬스터가 미쳐 날뛰고 있는 마당에 차분하게 현재의 상황을 관망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포션 효과가 괜찮나 보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공포는 전염된다. 눈앞에 있는 것밖에 볼 수 없는 이들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들에 혼란스러워한다.
대충 주문을 외우자 손가락에서 작은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 잠깐 의자 위에 올라서 천장에 가져다 대자 화재 경보 마법이 울린다.
위험을 알리는 붉은색의 조명이 사방을 뒤덮고 축축하고 기분 나쁜 물줄기가 천장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여기저기에서 비상 경보가 울리고 있고 도망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몬스터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공포에 질린 이들의 비명 소리가 다시 한번 퍼져 나간다.
쏴아아아아아.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아아아아아아악!”
“시발!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도망쳐! 제기랄!”
“꺄아아아악!!”
“비켜! 비키라고!”
“여러분 통제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마켓의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비상시에는….”
“어디로 가야 돼? 어디로!”
“이 미친놈들아 어디로 가야 되냐고!”
‘알 리가 없자너.’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무작정 몇몇 개의 무리를 짓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
워프게이트 쪽으로 도망치는 이들은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자 비명을 지르며 게이트에서 멀어진다.
“살려줘! 제기랄… 살려줘!”
우르르 몰려다니다 지들끼리 발이 걸려 넘어지고, 밀치고, 저러다가 몇 명 압사당하겠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꺼내 드는 놈들도 있다.
“아아악!”
“비켜! 이 개새끼들아!”
“씨발!”
권력자들 같은 경우에는 호위집단에게 보호받고 있는 편이니 상황이 좀 나은 편이지. 근데 너희들은 거기서 죽는 게 차라리 덜 괴로울 거야. 장담할 수 있어.
“헤너리스 백작부인!”
“여기 계셨군요.”
“호위병력을 합치는 게 좋을 것 같소.”
“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단은 여기서 살아서 나가는 게 먼저요.”
“네. 그, 그래야 겠죠.”
당연히 몰려 있는 군중은 호위병력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권력자들이 있는 장소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
“살려주시오!”
“살려줘!!”
“막아라! 저것들이 못 들어오게 해!”
“아아아아악!”
“이 개새끼들이 찔렀어! 제기랄! 이 새끼들이 찔렀다고! 이 씨발 새끼들! 지들만!”
“밀어! 씨발!! 밀어!!”
‘아주 개판 오 분 전이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지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순식간에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곳에서 녀석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악취미로군.”
“뭐 악취미까지야. 그냥 벌을 받는 거예요. 감히 빛을 배신하고 욕망에 취한 죄를 묻는 거 아니겠습니까. 뿌린 대로 거두는 거죠, 뭐.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군사님은 저 지켜 주셔야 됩니다. 그리고 포션도 좀 챙겨야 되겠네요. 분석해 보고 싶은 게 몇 개 있어서. 혹시 장물 중에 괜찮은 거 보신 기억 있습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그것도 조금 챙기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골드도 챙길 수 있겠네. 이게 다 얼마야.”
“…….”
“참고로 여기 있는 건 전부 제 전리품입니다. 아니, 제 거가 아니라 대륙보호관리 위원회에서 압수해야 할 재산이라는 거…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대륙발전기금으로 쓰일 예정이거든요.”
“기대도 하지 않았다.”
“호위 비용은 따로 챙겨 드릴게요.”
“…….”
“10만 골드…?”
“…….”
“키에에에에에엑!”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포션을 챙기고 있었을 때였다.
잠깐 움찔 하기는 했지만 조용히 앞을 가로막은 녀석을 본 이후에는 약간은 안심할 수 있었다.
칼날처럼 길고 날카로운 팔을 그대로 흘린 이후에는 품 안에 파고들어 가볍게 손바닥으로 밀어친다.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그대로 벽에 부딪히며 으스러졌다.
탁탁 소리와 함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은 가관.
꼴랑 영웅 등급의 몬스터를 처리한 것치고는 시선 처리와 액션이 과하기는 했지만 일단 이쪽을 돕는다는 스탠드를 취한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진다.
“군사님 놀이터는 만들어드릴게요. 블랙마켓은 계획에 없었는데… 하나 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게임만 하게 해드리면 되는 거죠? 손목 날리기. 그거.”
혼란스러워진 장내를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은 당당한 편. 별로 움직인 것 같지도 않은데 파앙 파앙 소리를 내며 빌런 새끼들과 몬스터들이 튕겨 나간다.
“그다음은?”
“관리자를 찾아야죠. 생포하는 게 베스트이기는 해요. 금고는 그다음에 갑시다.”
“얼마 걸리지는 않겠군.”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군사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
“꺼져라.”
물론 무작정 손을 쓰지는 않는다. 애초에 가까이 다가오는 걸 거부하는 놈들도 있었으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살짝 비현실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온통 난리가 난 장내, 고함을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서로를 창으로 쑤시며 몬스터가 날뛰는 이 공간에서 여유로워 보이는 건 녀석과 나뿐이다.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 마치 둘만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아아아아악!”
“검투사들이다! 제기랄!”
어떻게 풀려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예 검투사들도 바깥으로 뛰쳐나와 무작정 검을 휘두르는 중.
마켓의 회원 중에는 모험가들도 있어 나름대로 살 길을 마련한 놈들도 보이기는 했지만 아마 꼬맹이 하연수가 처리하지 않을까.
노예 구출은 조금 있다가 하면 되고…. 계속해서 조명이 터져 나가고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 본격적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인간들이 눈에 보인다.
“죽여! 제기랄! 다 죽여!!”
기회라는 듯이 날뛰는 놈들도 있고, 하나같이 기벽들이 다 위험해 보이잖아.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놈들만 모여 있는 곳이니 이렇게 변한 것도 이상하지도 않지.
미친 싸이코패스 새끼들은 얼씨구나 하고 있을 거고 여기서 일하고 있었던 놈들도 기회다 싶어서 상품들을 챙기려고 하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물건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놈들도 보여.
“그 손 내려놔. 이 개새끼야!”
“내 거야. 이 새끼들아! 가까이 오지마! 제길…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림자의 영웅은 중얼거렸다.
“품위 없군.”
카리스마 빌런이 내뱉을 만한 대사.
“마켓 관계자들입니다. 애초에 품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데 들락거렸겠어요? 아, 물론 군사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군사님이야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아! 저기 산적 같은 놈들 오네요. 곧 마주치겠다.”
대놓고 이쪽으로 오는 걸 보니 목적은 뻔하겠네. 생각한 것보다 뭉치는 것도 빨라. 칼밥 좀 먹고 산다는 놈들이 힘을 합쳤자너.
원래부터 같이 온 놈들인가. 이해관계가 어쩌다 맞았나 보네. 튜토리얼도 생각나고 그래.
“저 여자는 놓고 갑시다. 공화국의 군사님.”
“…….”
“요구에 따르면 안전하게 호위해 드리겠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전쟁터가 됐으니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림자의 영웅님도 합류하게 해드릴 테니 저 노예 좀… 우리가 군사님 대신 즐겁게 해드릴 테니까.”
“주제도 모르는 것들.”
‘카리스마는 있어. 오만해.’
“우리도 결코 수준이 낮지는 않은데. 후위에서 머리나 쓰던 양반이 이만한 숫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데… 서로서로 좋게 갑시다.”
“가진 건 머릿수밖에 없는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구나.”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는데. 이거 우리도 어떻게 배려해 드릴 수가 없네. 얘들아!”
콰아아앙!!
손을 펄럭 한 것 같은데 몇 놈이 벽에 처박히고.
‘즉사했네.’
“아아아아아아악!”
“씨… 씨발! 도망쳐!”
도망치는 놈들을 향해 손을 뻗자 피슉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가 놈들의 미간에 꽂혔다. 아마 마법이겠지.
상황이 정리되는 것은 빠르다. 뭣 모르고 설치던 녀석들은 거의 쓰러지고 녀석은 쓸데없이 힘을 뺐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분명히 속으로 이런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깟 놈들한테 마법을 사용했군. 같은 생각 말이야.
“바퀴벌레 같은 놈들.”
“군사님 꽤 세네요.”
“기본 소양이다.”
“여전히 재수 없기도 하고요.”
‘아주 별별 놈들이 다 등장해.’
“이때를 기다렸다. 진청 이 개자식.”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는 놈들. 손목의 원한을 갚고 싶었나 봐.
“저자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노예를 데려와라!”
아까 경매장에서 열심히 경매에 참여하던 놈들.
“넌 누구야.”
자신이 써 내려간 이야기가 절정에 닿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지후까지.
‘아… 시바.’
“도련… 님?”
“누나. 누나 맞아요?”
심지어….
“…….”
갈림길에서 마주친 김현성도. 아니, 너는 왜 나와.
넌 또 뭐야. 진짜.
“기연… 씨?”
얘는 왜 여기에 있어.
자신이 그지 같은 일에 휘말렸다는 얼굴로 이지후의 얼굴을 바라보는 진청. 의외의 인물에 등장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는 지혜 누나. 애매한 시선 처리를 하고 있는 김현성.
삼거리에서 운명처럼 만난 네 사람.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명장면.
-이기영 이 개자식! 이건 또 무슨 짓거리.
좀 맞춰줘. 제발. 딱 이번만.
-오빠. 대박이네요. 진짜. 대박이야. 이런 그림이 나오네? 이거 오빠가 기획한 거 맞아요? 혹시 선물인 거예요? 김현성까지 불렀어요? 어쩜 이렇게 로맨틱해요? 저 청혼받은 거 맞아요?
이게 어떻게 로맨틱이야. 누나 제발 가만히 있어. 그렇게 신났다는 듯이 말하면서 눈물 흘리지도 말고.
“어째서 여기에….”
너도 입 다물어. 현성아. 돈 벌어오라고 했더니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