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881화
에필로그 (4)
“면접자래… 출입증 확인해 봤는데 문제없대… 어… 어떻게. 해? 기모 아저씨?”
“글쎄요. 슬슬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은데….”
“이제 곧 일어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희영 님. 마침 자리에 계셔서 다행이군요. 아무래도 머리를 다친 것 같아서….”
“네. 세 분은… 사유서 제출할 각오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더군요.”
“아. 안 되는데. 이러면 오빠가.”
“길드마스터와 부길드마스터께는 이미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어차피 감춘다고 감춰질 일도 아니니까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들이 보인다.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왠지 모르게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하나.
‘김예리 님.’
파란 길드에는 천재가 세 명 있다고 했었다. 길드마스터, 부길드마스터.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눈앞에 있는 저분이다.
단검부터 장검, 그리고 활까지. 레인저 훈련도 마치시고… 파란 길드 마스터에게 직접 훈련받으신 만큼 근접 전투도… 그야 별명이 파란의 딸이잖아.
어째서 자신이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기절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옆에는 앞머리를 밑으로 내리고 알 없는 안경을 쓴 잘생긴 사람 하나.
‘안기모 님이다.’
완벽한 육각형의 형태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성기사. 죄송해요. 이것밖에 아는 게 없어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자 의자에 앉아 있는 미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사람은 전형적인 사제복을 입고 있다.
포근한 인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차가운 면도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수녀님이 입을 열어왔다.
“눈 크게 떠보세요.”
“네… 네.”
따뜻한 빛이 흘러들어온 직후에는 정신이 점점 맑아진다.
“선희영 님?”
“네. 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네요.”
“김예리 님.”
“…….”
“안기모 님까지… 계시네요. 진짜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로 영광이에요. 다 팬이었거든요. 아. 그, 그리고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저는 침입자가 아니라 이번에 파란 길드로 면접을 보러 온….”
“…….”
“아… 면접.”
“…….”
“면접!”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다 누군가와 부딪혔는지 이마에 통증이 느껴졌다.
“악!”
“괜찮으십니까?”
하는 짧은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눈은 시계를 좇는다.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다 여신의 손거울을 펼치자….
‘늦었어.’
“…….”
“…….”
“어떻게 해.”
“…….”
“어떻게… 해….”
약속했던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나 늦어버린 상황, 어처구니없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이 시간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렇게 일이 틀어져 버리다니. 저절로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은 물론 계속해서 손발이 떨린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벨리에 씨.”
“네?”
“길드의 실수로 일어난 사건이고 파란 길드가 그 정도로 융통성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부길드마스터께서는 이미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보고를 받으셨습니다. 잠시 후에 직접 찾아주신다고 하니 그때까지 누워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이 상태로 면접을 보… 보나요?”
“미안.”
“아니에요. 김예리 님.”
“저도 함께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시면 제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전부 내. 탓이야.”
“예리 씨의 탓이기는 합니다만 저도 같이 사과드리겠습니… 윽!”
“정말로 괜찮아요. 잠깐 당황하기는 했지만 결국… 잘 됐으니까요. 누구라도 의심했을 거예요. 길드 하우스 한복판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나저나 정말 꿈만 같네요. 만약 길드에 입단하게 된다면 길드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로 설레었는데… 이렇게 미리 만나 뵙게 돼서 여한이 없어요. 만약에 떨어지더라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희 부길드마스터라면 이런 인재를 놓치기 싫어하실 겁니다. 열심히 노력하신 것 같더군요. 무투가로서 성장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칭찬해 주시니 너무 부끄럽네요. 손도 못 써보고 당했는데….”
“하하하….”
“미… 미안해.”
‘좋은 사람들이야.’
조금 긴장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원래 예리 씨가 조금 성격이 급합니다.”
“하지 마.”
“저번에는.”
“아저씨. 나 두 번 말 안 해.”
“하하… 후배 앞에서 위엄을 지키고 싶은 선배의 마음이….”
“이익!”
“아악!”
지금 자신이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사실 분위기가 조금 더 딱딱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대충 봐도 허물없게 지내는 게 느껴진다. 일이 끝나고 주점에 모여 신나게 떠들던 초창기 자신과 파티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구나.
‘어. 알프스 님이다.’
“다들 여기 계셨네요?”
“온 김에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세요.”
“네, 선희영 님. 아! 손님이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흰둥아 안 돼!”
“괜찮아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모습이 귀엽다.
“면접… 아… 최종 면접자셨군요. 저도 드디어 후임이 생기는 건가요!”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주먹을 꽉 쥔 알프스 님의 모습 역시 귀여워 보인다.
“우리보다는 짧네.”
“여기 앉으세요. 아영 언니.”
이제는 유아영 님까지, 왠지 점점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선희영 님은 자꾸만 늘어나는 사람들이 별로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미소를 띠고 계신 걸 보니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요새 창렬이 오빠랑 조금 어때요?”
“글쎄… 지금은 좀 바쁜 시기여서… 좀처럼 만날 시간이 없었네.”
“창렬 씨는 특히 할 일이 많으니까요. 길드에 들어와 있는 시간도 제일 짧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얼굴 본 지 제법 오래된 것 같습니다.”
“우리 저번 주에도 모였었어. 아저씨. 정기회의.”
“그래서 여기는….”
“아… 벨리에라고 합니다.”
“제 후임이에요!”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걸요.”
그래도 함께 하고 싶다. 정말로 서로가 서로를 가족처럼 챙기는 게 느껴진 탓일지도 모른다.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아마 식사나 훈련도 같이하겠지. 긴 원정길도 무척 즐거울지도 몰라.
처음에는 그저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길드이기도 했고, 누구나 입단하기를 꿈꾸는 길드였으니까.
연봉은 물론이거니와 조건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이 사람들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 돼지 새끼. 시바. 네가 책임질 거야? 고소 맞으면 길드 직원들 대신에 네가 변호할래? 길드에 찾아온 손님 대가리를 갈겨? 우리 길드에 찾아온 손님들이 전부 뒤통수 걱정했으면 좋겠어?”
“그게… 내가 한 게….”
“입 다물어. 이 새끼야. 네가 한 게 아니면. 그렇게 말하면 끝이야? 그러면 모든 상황이 끝나? 넌 뒈졌어. 진짜.”
희미한 목소리라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 저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여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길드마스터. 들어오십니다.”
“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혹시 자신도 일어나야 하는 걸까. 어찌할 바를 몰라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을 때 어깨를 꽉 누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김예리 님이다. 굳이 일어설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오셨습니까.”
“모두 앉아계셔도 됩니다.”
투명한 목소리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한 목소리.
이윽고, 박덕구 님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기영 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기품 있는 걸음걸이. 순백의 사제복에 뒤덮여 있는 모습은 뭐라고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될 정도로 그 모습은 표현하지 못할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쪽이….”
“벨리에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려온다. 목소리가 뇌를 찌릿찌릿 울리는 것만 같다. 조용히 속삭이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고개를 들어도 되는 건가. 얼굴을 보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건가. 혹시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 똑바로 봐도 괜찮은 걸까.
“고개 드셔도 됩니다. 벨리에 님.”
항상 봐왔던 얼굴이었다.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혹은 사진으로, 베니고어 넷에 올라온 게시글로 많이 접했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확인한 모습은 숨쉬기조차 어렵다.
후광이 비추는 것만 같다. 아니, 정말로 비추고 있는 거 아닐까.
누군가 심장을 세차게 두들기는 것 같아 가슴을 꽉 움켜쥐고 싶지만 그럴 수조차 없다. 손발이 떨리고 온몸이 저릿저릿거리는 게 이상한 반응인 걸까. 이상해. 이거 너무 이상해.
‘몽마 같아.’
몽마는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물론 불경한 생각이다. 저렇게 순수하게 빛나고 있는 성자를 어떻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자신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작게 열린 입술… 긴 목.
하지만 그런 감정 역시 사라진다. 고개를 잠깐 흔들어 보지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슬픈 표정. 대륙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늘로 내려온 천사. 스스로의 직위를 포기하며 인간이기를 원한 성자의 얼굴.
가녀린… 마치… 마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툭 하고 손을 가져다 대면 그대로 허물어질 것 같은… 꺾이기 전의 꽃처럼… 아니, 이미 꺾여 시들기 전의 꽃처럼… 수백 번이나 꺾이고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봉우리를 피우려고 하는 꽃처럼….
“흐윽….”
나 왜… 울고 있지.
“흐윽… 흐으으으윽… 허엉….”
어째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건가요. 명예추기경님. 왜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감정이… 흐윽… 주체할 수가 없어서….”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아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분은 모든 대륙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니까.
작은 내 존재가 명예추기경님을 다시 대륙에 불러 들어오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분이 모든 것을 희생하게 만들게 한 원인일지도 몰라.
“흐으으으윽… 흐으으으윽….”
계속해서 흐르는 한쪽 눈물을 닦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은 너무 가녀린 것처럼 느껴졌지만 너무나도 따뜻해….
“베니고어 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할 것입니다.”
“흐으으으으으윽… 흐어어어어엉….”
그 품 안에서 그렇게 한참이나 안겨 눈물을 흘렸다.
“흐어어어어엉….”
한참이나 말이다.
“죄송합니다… 흐으윽… 정말로… 죄송합니다.”
“…….”
“…….”
“떨, 떨, 떨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