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1화 마지막 (74) >
‘마력이….’
시야에 비친 것은 형형색색의 마법진의 향연이었다.
‘정하얀 님.’
“정하얀 님… 보이세요?”
“…….”
“보고 계세요?”
“…….”
그 광경은 뭐라고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워, 왠지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풍경이기도 했다.
조금 감정적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틀림없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몸에 있는 마력이 대부분 빠져나가 육체적으로 한계에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이 극적인 상황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온몸이 녹초가 돼서 괜스레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거요? 거, 소라 후배도… 누님도… 전부 다 괜찮은 거요?”
“네, 저는… 괜찮아요.”
“…….”
“누님은….”
“…….”
“아직도….”
“네.”
그것도 아니면 정하얀 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한때는 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한 지금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마주쳤을 때를 상상하는 건 싫지만… 이제는 정하얀 님이 가지고 계신 아픔이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남의 심리를 읽거나 하는 것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정하얀 님에 대해서 모든 걸 파악한 것도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거나 직접 들은 이야기들로 미루어봤을 때 드는 생각일 뿐이고 그것마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정하얀이라는 사람은 무척 불쌍한 사람이었다.
‘미친 거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미친 거야.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거 일지도 몰라. 정신 차려야 하는데… 정말로 정신 차려야 하는데….’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
그건 정하얀 님의 트라우마였으며 그녀의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말 그대로 정하얀 님께서는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 자리는 애초에 거부감을 보였고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자리에서도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타인이 먼저 벽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하얀 님이 먼저 벽을 쌓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인데….’
혼자 있는 걸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게 이상하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래서 벽을 쌓는 것일지도 모른다.
벽을 두드린 사람들과 헤어지기 무서워서, 벽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실이 두려워서, 미리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하면 안 되는 생각이지만 분리 불안 장애를 겪고 있는 강아지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 벽 안에 발을 들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 때의 정하얀 님은 확실하게 비정상적이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고 하고 하기 싫은 생각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버린 가족들처럼, 벽 안으로 발을 들인 이들도 자신을 버릴까 끊임없이 걱정한다.
이런 이들은 정하얀이라는 사람을 작동시키는 부품이나 다름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부품들.
부품이 빠지면 일반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거야.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는 것처럼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그녀에게 직접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이건….
‘정신병이겠지.’
슬그머니 옆을 바라보자 지팡이를 든 채로 하늘을 위로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입과 눈에서는 끊임없이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는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언데드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어떻게든 정하얀 님에게 닿으려고 하는 언데드들은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정하얀 님을 지켜라!”
“정하얀 님! 괜찮으십니까.”
“내가 보조하겠다. 모두 주문을 외워. 마력이 다해도 좋으니 계속해서 주문을 외워라.”
“저 더러운 언데드들이 더 이상 활개 치게 내버려 두지 마라! 이 천인공노할 놈들! 이 더러운 놈들! 감히 정하얀 님에게 해를 끼치려고 해? 감히!”
“정하얀 님! 정하얀 님!”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 마탑의 길드원들, 그녀를 손녀딸처럼 아끼던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녀를 존경하는 학자들과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수습생,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어떻게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까.
단순히 그녀의 힘을 숭상하거나 그녀를 우러러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정하얀 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고, 그녀의 인간적인 면에 끌려온 이들일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다.
‘정하얀 님, 다른 사람들도 조금 만나시는 게 어때요?’
‘…….’
‘마탑에서 같이 식사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안, 안 갈래. 그냥 소라랑 같이 먹을래.’
‘그래도….’
‘왜, 왜, 왜? 내, 내… 내가 갔으면 좋겠어?’
‘아니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저는 그냥….’
‘내, 내가 갔으면 좋겠냐구우… 내, 내, 내가….’
‘그런 뜻이… 아니에요.’
‘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사, 사람들이니까.’
여러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흐윽… 끄으윽….’
어두운 방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었던 모습이나.
‘나, 나는 마법의 신이 될 거야.’
조금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며 애써 자신을 위로하던 모습도 말이다.
‘나도 신이 될 거야. 소, 소라는 마법의 천사가 될 거니까.’
‘…….’
‘오, 오, 오빠랑 만날 수 있을 거야. 오빠가 만약에 내려오지 못해도 내가 올라가면 되니까. 그, 그러니까 별로 힘들지 않아. 목표가 있으면 집중할 수 있대. 오빠가 그렇게 말했어. 힘든 것도 잊을 수 있다고… 오, 오빠가… 응… 오빠가….’
‘정하얀 님… 정하얀 님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울지 마세요. 차근차근히 계획을 세워 봐요. 저번에도 하다 말았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최근에는 웃는 얼굴을 본 것 같지도 않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들은 눈물을 훔치는 얼굴이나 이불을 뒤집어쓴 모습밖에는 없다.
간혹 즐겁게 웃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우울해지고는 했다.
다른 이들과 만남을 가지는 게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그게 정말로 옳은 행동인지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수한 목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설득한다면 타인과 자리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정하얀 님께 부탁을 드릴 게 있어서….’
‘거절하겠습니다. 공적인 이야기를 하실 생각이라면 길드를 통해 문의하세요. 정하얀 님, 가요.’
‘아… 아. 어… 괜찮아?’
‘네. 괜찮아요.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퉤. 더러운 인간.’
‘죽, 죽여줄까?’
대부분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길드에 영입 제의를….’
‘입 다물어. 개자식. 앞으로 연락하지 마.’
“…….”
‘새로운 마법을 연구 중이에요. 소라 언니.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하지만 조금만 도움을 주신다면….’
‘앞으로 보지 말자.’
대놓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놈들이 부지기수였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한 줌의 지식을 탐낸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실제로 정하얀 님의 지식을 훔친 이도 있다.
한창 공부에 열중할 때 조수로 고용한 마법사였고, 혹시나 자신이 다른 일이 있을 때 빈자리를 채우라고 고용한 사람이었다.
며칠 후 자취를 감췄을 때, 실망하지도 않았던 정하얀 님도 기억에 남는다.
어째서 그녀가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고 그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지도 않았다.
애초에 아무 생각도 없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하얀 님….’
‘혹시… 그….’
‘나, 나는 몰라. 모, 모르는 일이야. 정말로 몰라.’
‘…….’
자신조차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에게 힘을 주고 그녀에게 건강한 인간관계를 부여할 수 있는 이들이 없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버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나 많네요.”
“뭐가 말이요.”
“정하얀 님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아요.”
“거, 누가 누님을 싫어할 수 있겠냐니깐.”
“아무 조건 없이 정하얀 님에게 힘을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아요. 정하얀 님. 정하얀 님은 자신이 혼자라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것 보세요. 저 광경을 보세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하얀 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거, 당연히 누님은 혼자가 아니요. 누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소라 후배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파란 길드원들도 모두 누님을 믿고 있다니까. 혜진이 누님도, 거, 신입 길드원 알프스도… 안 본 지 오래됐지만 희영 누님도 가끔씩 우리 누님 걱정하고 그랬다는 거 아니요.”
“보고 계세요? 정하얀 님?”
“거, 현성이 형씨도 그렇고, 형님도 그렇고, 기모 형씨도, 예리도, 김미영 팀장님도 아영 후배나 창렬 후배도… 그, 그리고 길드원들뿐만이 아니라 누님은 전 대륙에서 가장 사랑받는 마법사 아니요. 아마 모두가 누님을 응원하고 있을 거요.”
“네. 모두가 정하얀 님을 응원하고 있어요. 마탑 분들도, 교국에서 오신 분들이나 린델 분들도, 가끔 산책갈 때 마주치는 분들이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눈인사하셨던 분들, 모두다 정하얀 님을 좋아하고 생각해 주시고 계세요.”
그녀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광경을 봐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아마 모두가 기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마력에 맞서는 수많은 마법사, 그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수천, 아니 수만 개의 마법진,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마력을 대가로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들도 주문을 외우며, 그녀를 바라보며 기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라이오스 시민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요. 두 번이나 구하고 있는 거 아니요.”
“네.”
그럴 것이다.
“힘내세요. 정하얀 님!”
“힘내라! 대마법사!”
“라이오스의 전 병력은 들어라! 절대로 언데드들이 대마법사에게 향하게 하지 마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라! 중립국의 은인을 위해! 라이오스를 위해! 우리도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지키자!”
이상하게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정하얀 님… 보고 계세요?”
정하얀 님의 등에서 커다란 날개가 뻗어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수한 마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날개.
마력의 응집체, 아니, 마력의 결정체… 아니, 마력 그 자체.
거대한 마력을 품고 있는 날개가 뻗어 나오자 라이오스의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마력의 영향 때문인지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4쌍의 날개에 둘러싸인 정하얀 님의 모습은 정말로… 정말로 천사처럼 보인다. 입과 눈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마력도 어느 순간 사그라든다.
계속해서 소리를 내질렀던 이전과는 반대로 차분해진 얼굴은 한층 성숙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날개를 활짝 펼치자 마력의 빛무리가 하늘로 뻗어 나가기 시작.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웅장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방벽이 다시 한번 라이오스를 감싸고 있었다.
“정하… 얀 님? 보고 계시는 거죠?”
“으… 응.”
“정하얀 님은….”
“소, 소라야. 나, 나….”
“네!”
“나, 나… 나 마법의 신이… 된 것 같아. 아직 부족하지만….”
“네! 정하얀 님을 믿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멍, 멍, 멍청이 같은 사람들 덕분에.”
“네?”
“바, 바보들도 도움이 될 때가 있네. 그, 그, 그렇지?”
“아뇨… 그… 그게….”
“이, 이, 이리와… 소라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마어마한 마력의 줄기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였다.
“천사로 만들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