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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39화 (830/1,590)

< 839화 마지막 (72) >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

“전체적으로 상황을 살피고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게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저도 큰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합니다. 그게 기본이라는 거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에요? 작은 이득을 굴리고 불려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니까요. 하지만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잡아서 집중적으로 조정해 주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

“군사님이 왜 그 자리에 있게 된 건지 생각해 보세요.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던졌다고 남을 머저리 취급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제가 어째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입 다무는 거 봐.’

아무 말도 못 하죠?

애써 이쪽의 말을 무시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자꾸 궁금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쓰레기 같은 방해공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최선의 결과로 돌아오자 의아하기는 한 것 같았다.

아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상 홀슈아 계곡 점령전은 허상이었으니 말이다.

적 병력의 시선을 끌기 위한 수로 써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전투, 사실상 점령하는 게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생각해 소모전으로 써먹으려고 했던 전선에서 들려온 승전보.

아예 신경을 끄고 있었던 놈의 입장에서는 되감기라도 하며 전장을 복기하고 싶을 것이다. 아마 모든 전장이 정리된 이후에 곧바로 홀슈아 계곡 전투를 복기하지 않을까.

자존심 때문에 당장 물어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하찮게 보인다.

---실언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궁금증이 크기는 한지 은근슬쩍 간을 보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흥미롭기는 하군.

“그래?”

---어째서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거지? 아니,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건지… 별로 관심은 없다만 네가 말하고 싶다면 들어보도록 하지.

“스스로 깨달으셔야죠.”

---개자식.

“원래 모르면 맞아가면서 배우는 겁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남의 노하우만 슬쩍 하려는 못된 심보가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네요.”

---…….

“자, 이제 누가 머저립니까.”

---말 걸지 마라. 이기영. 지금 바쁘니까.

“누가 머저리죠?”

---개자식.

‘솔직하지 못 하자너.’

사실 이쪽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눈을 잘 써먹었을 뿐이었지만 놈이 짜증 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기야 했다.

제대로 전장을 확인할 도 없기 때문에 아마 더 궁금하지 않을까.

정확히 무슨 명령을 전달받은 건지 스미스 대령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세세한 전술을 지정해 준 것도 아니다. 간단한 부대 지정과 공략 포인트를 집어 주기는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간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어디까지나 홀슈아 계곡을 점령한 것은 스미스 대령의 개인적인 능력이었다.

‘어디서 이런 게 여기 숨어 있었어?’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은 스미스 대령의 얼굴이 눈에 띈다.

얼굴의 반을 뒤덮은 수염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 각진 얼굴에 깊이 있는 눈동자가 보인다.

‘주인공이 힘을 숨김이네.’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있는 경우다. 특히나 이런 경우는 더욱더 흔하지 않다.

나쁘지는 않지. 수복하는 연방 전선의 지휘관이라는 거.

괜찮은 자리이기도 하고 딱 적당히 해먹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해. 하지만 녀석의 능력을 생각하면 부족하다 못해 쓸모없는 자리이기까지도 하다.

조용히 살고 싶었던 건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연방 연대장이 무슨 부귀와 영광이 있다고, 딱 봐도 자기 사람들 챙기려고 얻은 직책일 게 뻔하고… 너는 운이 없다고 생각해.

녀석 역시 운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병력에게 홀슈아 계곡으로 향하라는 건 그곳에서 최대한 많은 병력들을 소모시킨 이후에 뒈지라는 말처럼 들렸을 테니까.

살아남으려면 점령하는 수밖에 없다. 지키고 싶은 걸 위해 힘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스미스 대령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 그런 자세 좋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조금만 더 엎질러지자.

추정 전투력은 이전의 8좌 이상, 고유 전설 등급의 직업 마탄의 사수, 간단하게는 손가락으로 마력을 쏘아내는 능력자, 높은 신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중장거리, 심지어 초 근접전에서도 영향력을 끼치는 전투 직군.

고유능력은 소비된 마력을 재장전하는 리로드.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전장을 보는 눈도 뛰어날 수밖에 없겠네.

이런 놈을 안 쓰고 참을 수 있겠냐구.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사용한 것은 실력이다.

“혜지나. 스미스 대령이랑 연결해. 조금만 봐주게.”

-알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아, 그리고 군사님한테 주요지역 몇 개 가지고 간다고 전해줘. 홀슈아 계곡, 라이칸리아 분지, 그리고….”

-전달하겠습니다.

“아마 별말 없을 거야. 여신의 거울 띄우고. 한번 시작해 보자.”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는 무슨.”

이런 건 무리라고 할 수도 없다.

통신 채널이 연결됐는지 표정이 한층 더 굳은 스미스 대령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눈을 질끈 감기까지 하는 모습은 본인의 존재가 드러났다는 걸 깨달은 것 같은 얼굴.

본인 입으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중얼거렸지만 막상 땅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물통을 보자니 속이 쓰린 것 같았다.

‘원래 전쟁이라는 게 그래.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거든.’

예상했던 것처럼 진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까의 비밀이 궁금했는지 조용히 수십 개의 거울을 꺼내고 있는 조혜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미스 대령을 비치고 있는 거울, 타 전선의 병력과 합류해 새로운 전선으로 이동해 새로운 전선으로 발을 디딘 스미스 대령이 입을 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전선에 도착했습니다.

“아. 스미스 대령.”

-네.

“자네는 지금부터 13연대를 지휘할 필요가 없네.”

-…….

커피를 홀짝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자네를 쓸 예정이니 그렇게 알게. 포인트로 찍은 전선에 단독으로 이동하게나. 나머지는 전부 알아서 해줄 테니.”

-지금 제게 죽으라고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다시 한번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스미스 대령을 왜 죽여? 이렇게 유능한 인재를.’

“자네는 죽지 않을 거야. 대륙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지. 움직이라면 움직이게 명령에 불복종한다면….”

-확인했습니다.

이윽고 전선에 도착한 스미스 대령이 곧바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눈에 비쳤다. 이동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놈의 공격속도와 그 범위는 그렇지 않다.

순식간에 마력을 태우고 다시 한번 탄창을 충전하고 다시 한번 마력을 태우고 탄창을 충전한다.

악마군대의 사이로 수십 수백 개의 마력을 쏘아대는 모습은 가히 장관, 솔직히 이쪽과 궁합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선다.

그래 봤자 수준이 낮기야 하지만 한 전선을 맡기기에는 충분할 정도.

거대한 도끼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이후에는 놈의 머리에 한 방, 날아오는 검을 막은 이후에는 놈의 눈에 한 방.

언제나 그렇듯 계속해서 지원들이 놈에게 떨어진다.

탕! 탕! 탕! 탕! 탕! 탕탕탕!

화려해.

근데 군더더기가 없네.

마나통이 적은 게 흠이야.

리로드라는 고유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마나통이 적으니 능력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딜레이되는 시간이 있다는 게 약점인 것 같았지만 내가 쓴다면 약점을 커버할 수단은 많다.

전장을 보는 눈이 나쁘지 않은 만큼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네임드 개체가 전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힘을 최대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놈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불안한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전장과 일체화하는 감각은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고유능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피로감을 느끼는 건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더 쓸 만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련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은근슬쩍 조혜진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어떤 걸 하고 있는지 궁금했겠지.

근데 너 이거 당해봤잖아. 물론 그때랑 지금은 비교도 안 되지만 아무튼 맞아보지 않았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진청의 멘탈이 아니다.

‘우리 역병 쓰레기 멘탈이지.’

“뒤통수 크게 맞았을 거야. 그렇지 않아요?”

---똑같은 방법으로… 질리지도 않는 건가.

“잘 알잖아요. 효과적입니다. 이 대 일이라는 건 이래서 좋아요. 효율적으로 적재적소에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잖아. 악마 군단 무너지는 거 보여요? 이거 예상하지 못한 거라니까.”

지금껏 진청을 견제하고 있었던 역병 쓰레기의 입장에서는 홀슈아 계곡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새로운 전장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의아함을 너머 분노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등한 벌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전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타들어 가겠지.

본인이 직접 컨트롤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겠어? 악마 소환 쓰레기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할 수 있겠냐구. 둘이 신나게 치고받고 있을 때 이쪽은 꿀 빨자너.

‘인간의 힘을 얕보지 마라. 더러운 역병 쓰레기 자식. 이게 정의의 힘이야.’

“스미스 대령 죽을 각오로 움직이게나. 자네가 움직일수록 자네가 아끼는 부하들이 하나라도 더 살아남는 거야.”

-…….

‘이게 빛의 힘이라고. 역병 쓰레기.’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정책에 불응하고 있었군. 자네는 사전 신고를 해야 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힘을 숨기고 있었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 하지 말게. 명령에 따르는 것만이 자네가 살길이야. 전쟁 영웅으로서 대륙에 이름을 남기게. 내가 손을 써주도록 하지. 최소한 자네가 아끼는 연대는 좋은 방향으로 처리해 줄 수 있도록 조치하겠네.”

‘보고 있어? 동료들을 위해 싸우는 빛은 절대로 어둠에게 무너지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과 굳어 있는 몸은 녀석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등한 벌레들에게 거하게 당하고 있으니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지는 반응이다.

길길이 날뛰고 소리치는 게 당연한 반응, 하지만 그런 반응이 품위 없다고 생각하는지, 분노를 속으로만 삼키고 있었다.

‘나였으면 소리 질렀자너. 진짜.’

물건 하나는 집어 던졌을 거야.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던 상황에 찬물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끼얹었다.

놈이 나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면 분명히 금이 가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그다음이야 뻔하지 뭐.

---죽여주마. 반드시 네놈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을 선물하겠다.

‘한 놈은 이미 지옥에 있는뎁쇼.’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나 보군.

‘뭐?’

---선물이다. 하등한 놈들. 자신의 무력함을 저주하며 죽어라.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기다렸다는 듯 라이오스가 떨리기 시작한다.

바깥에 나가 있던 박덕구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놈이 이걸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라이오스의 위에 떠 있는 마력이….

“떨어지고 있는 거네.”

---…….

“너, 이 씨발 악마 소환사 새끼야! 이 배신자 새끼!”

---내가 아니다. 제길….

“이 새끼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내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제기랄… 이건 도대체….

“연기하는 것 봐. 혜진아. 이 배신자 새끼 목 빨리 날려!”

---이기영! 이 미친 개자식!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정하얀 불러! 하얀이! 우리 하얀이 불러! 내 사랑 하얀이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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