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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15화 (806/1,590)

< 815화 마지막 (48) >

-고생하셨습니다. 용병여왕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길드마스터.

-다들 오랜만이네. 그래. 다음 웨이브는 언제야?

-…….

-알아와.

-네. 알아보겠습니다.

-목욕할 거야.

-준비해 놓겠습니다.

-식사도.

-네. 나오신 이후에 드실 수 있도록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네.

-아주 많이.

-네.

성문을 직접 열고 들어오는 차희라를 반기는 것은 린델의 시민들뿐만이 아니다.

그녀와 함께 모습을 감췄던 붉은 용병의 단원이 가장 먼저 도열해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말없이 무거워 보이는 털 외투를 그녀에게 덮어준 간부의 눈에는 커다란 존경심이 깃들어 있다. 다른 녀석들 역시 다르지 않다.

위협적일 정도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 다시 한번 붉은 용병의 부활을 알리려는 정치적 의도 따위는 들어가 있지 않을 것이다. 저건 본인들이 믿고 따르는 붉은 전사를 위한 존경의 표현이다.

‘쟤네들도 참 대단하기는 해.’

하나같이 대륙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모험가들이 그녀가 몸을 일으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녀석들의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정도.

머리를 잃은 집단이 붕괴한다는 말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저 거친 용병들이 사고 한 번 안 치고 제자리를 지킨 것 역시 신기할 지경이다.

아마 본인들의 길드마스터가 곧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안기모 이 새끼가 붉은 용병 나온 것도 이해가 돼.’

얼떨결에 입단해 활동하기는 했지만 아마 성향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파란에서 영입 제의를 했을 때 묘하게 기뻐하던 녀석의 얼굴이 괜스레 생각난다.

‘뭐….’

아무튼 간에 지난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던 차희라에게 붙어 보고 사항들을 읊는 최영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차희라의 모습 역시 눈에 보인다.

-신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위원회의 실세는 송수경이라는 자로 보이며 빛의 아들의 후예, 혹은 현신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네 개인적인 평가는 어때?

-야망이나 욕심이 커 보이지는 않지만….

-…….

-꺼림칙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자가 정말로 대륙을 위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 판단에 책임질 수 있어?

-네.

-좋아. 다음.

-신대륙 위원회에서 내려온 공문입니다. 대륙의 영웅들에게 협력을 요구하는 공문으로써, 협력 기관을 만들어 지정 대상들을 특별 운용한다는 방침이 적혀 있습니다. 명단에는 차희라 님도 포함되어 있으며….

-누구 마음대로.

-…….

-누구 마음대로 하라 마라야. 머리통 으깨지고 싶지 않으면 직접 찾아와서 설명하라고 전해. 다음.

-이기영 님의 시신을 목적으로 한 암살자들이 파란 길드에 들이닥쳤었습니다.

-…….

-파란 길드에서는 현재….

-개판이네. 다음.

‘오늘 엄청 바쁘겠네.’

차희라가 바쁜 것이 아니라 붉은 용병의 직원들이 바빠질 것이다. 아마 며칠 동안은 개인 운동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지 않을까.

지금껏 미루고 미뤄왔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으니 아마 직원 중 몇몇 놈들은 근 손실을 걱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던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는 건가?

-최대한 빠르게 알아보겠습니다.

-검은백조한테 협조 요청해. 마탑에… 아니, 우리 세컨드한테 간단한 보고서라도 하나 받아오고. 전담팀 만들어서 던전, 네임드 몬스터 위치 파악해. 수도부터.

-네?

-교국 수도. 라이오스. 연방. 그리고 북부.

-네임드 몬스터의 위치라고 하시면….

-던전이잖아. 정확한 방법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바 아니지만 보스몬스터 때려잡는 게 가장 원초적인 공략 방법이고. 빛의 아들이 희생된 대륙이라는 네이밍이 붙어 있는 던전이 있다면 우리 자기가 고생했던 지역에 네임드 몬스터가 있을 게 뻔하지 않아? 연방 특히 잘 둘러봐. 27군단 사태. 그거.

‘희라 누나 예리해.’

저게 옳은 공략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힌트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름 핵심을 찔렀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생각 안 해봤었어.’

파란 길드원들 역시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회의를 거친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대륙 전체가 던전이 되어 있다는 특수성과 클리어 방법이 정해져 있다는 것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방향성을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파란이 여러 가지 변화해 적응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차희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에 접근한 것이다.

네임드 몬스터가 존재할 거고, 그게 빛의 아들과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지혜가 그냥 넘겼을 리는 없지.’

어떤 방향이든 간에 기본적인 구성은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던전 공략이 단서라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던전에 네임드 몬스터가 없으면 섭섭하니까.”

-쓸 만한 놈들 몇 모아서 바로 떠날 수 있게. 조치하라고. 그리고… 김현성 불러와. 아니, 정식으로 초대해 봐.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하는 게 좋겠네.

-네.

‘근데 이 누나는 왜 더 세진 것 같지.’

몸을 씻고 난 이후에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동안 영양 상태가 부실하다고 판단했는지 목구멍으로 계속해서 음식을, 아니, 영양분을 밀어 넣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식사라기보다는 싸울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하얀이 심장으로 계속해서 마력을 얻는 것처럼 그녀 역시 계속해서 다른 종류의 힘을 얻고 있는 것만 같다.

‘이미 인간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자너.’

대륙의 강자라고 부를 수 있는 모두가 인간을 벗어나 있지만 차희라 만큼 인간을 벗어났다는 느낌이 드는 강자는 없다.

수련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데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건… 특권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능, 아니, 재능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에게 위로 올라가거나 벽을 뛰어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케루빔이 그녀를 붉은짐승이라 불렀는지, 어째서 벨리알과 베니고어가 차희라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했는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을 정도.

아마 김현성 역시 그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차희라 옆에 자리한 녀석 역시 묘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으니까.

정식으로 초대받은 것 치고는 단출한 만남이었지만 의미가 있는 자리이니 구태여 시간을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랜만입니다. 붉은용병 길드마스터.

문제가 있었다면 김현성이 잠깐 동안 묘한 생각을 품었다는 것.

나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찰나였고, 정확히 그게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생각이었다.

김현성 역시 무의식중에, 별 의미 없이, 혹은 자신도 모르게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민감한 차희라는 방금의 것이 뭔지에 대해 깨달은 것 같다. 조용히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너 웃긴다.

-…….

-정말로 웃기네. 정말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차희라 님.

-나야말로 네가 뭔 의도로 거기서 그러고 있는지 알고 싶은데.

-저를 초대하신 것은 차희라 님입니다. 용건이 있으신 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트집을 잡고 싶으신 거라면… 다음번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용건, 그래. 용건이야 있었지.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파란과 붉은 용병이 서로 동맹이니 뭐 겸사겸사 초대했다고 보면 돼. 근데 이상하지? 너는 나랑 같은 부류가 아닌데….

-…….

-분명히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는 나랑 같은 부류가 아닌 것 같단 말야. 외신 쪽 파랭이 같은 느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왜 우리 파란 길드마스터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를 재봤을까.

-…….

-너. 나랑 치고받는 생각 했지.

-…….

-무의식중에 떠올린 거 맞지?

-착각이실 겁니다.

-착각은 개뿔. 생각했잖아. 누가 뒈질까. 하고 생각해 본 거 맞잖아. 그 검으로 찌르면 내가 죽을까 생각해 본 거 맞지.

-착각입니다. 만약 그렇게 느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하고 말고 할 게 아니야. 딱히 너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가끔 생각하거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야. 그게 본능이니까. 살기도 없었고, 순수한 투쟁심이라고 보면 뭐 재미있게 느껴지지. 근데 이상하지 뭐야. 이유가 없으면 싸우지 않는 놈이 왜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같이 던전 공략을 위해 협력해야 할 놈이 왜 갑자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냐 이거야.

-…….

-네가 우리 자기를 배신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네가 딴 맘을 품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

-빛의 아들의 부활 말고, 첫 번째 선택지에도 뭐가 있기는 있어?

‘분위기 왜 이래.’

-나는 모르는데. 너 혼자만 알고 있는 거 있냐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좀 같이 알자. 우리.

‘뭐야 분위기 왜 이러냐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차희라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는 김현성.

‘희라 누나 눈치 왜 이렇게 빨라….’

차희라는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것뿐이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본능에 자신을 맡기는 걸 즐기는 것뿐이지 항상 미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위험에 민감하고 또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김현성에게 저런 말을 건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왜 이래? 이 누나. 술 마시면서 깨달음이라도 얻었어?’

말 그대로 나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찰나였다.

‘김현성 너는 또 왜 그래. 진짜 미쳤어?’

아니, 김현성도 적의를 드러낸 것은 아니다. 칼밥을 먹고 살아가는 모험가라면, 전사라면, 상대의 강함을 재보는 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애초에 차희라 본인이 온몸으로 ‘나 X나 세’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데 한 번쯤 부딪쳐 보는 상상을 해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왜 그런 걸 생각하려고 그래. 아직 망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부터 플랜 B를 상정하고 그러냐고. 아주 조금이라도 플랜 B에 관심 가지지 마. 진짜.

둘 모두 그냥 가볍게 떠보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차희라의 입장에도 별생각 없이 던진 떡밥였고, 김현성도 무의식중에 떠올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차희라가 히죽히죽 웃으며 온몸으로 마력을 뿜어대고 있었고, 김현성 역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붉은 머리가 마력의 영향을 받아 조금 씩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다.

붉은짐승의 눈이 변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는지, 김현성의 손이 움찔 거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방어 본능이다. 저 포식자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방어 본능.

저 여자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 마. 시바. 장난으로라도 너네 그러지 마. 희라 누나 그러지 마.’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그러지 마. 현성아. 바로 그거야.’

-그래? 내 눈에는 아닌 것 같은데.

‘누나 왜 꼬투리 잡고 그래. 그러지 말라니까.’

-지금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 미친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차희라 님. 수도입니다.

-나 지금 바빠.

-수도에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언데드 드래곤, 그 위에 정체불명의 인형이 교국의 성 위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

-보고드립니다. 라이오스로 거대한 마력이….

-하….

-보고드립니다. 연방에….

-웃기는 장난질이네….

-보고드립니다.

-아주 웃기는 장난질이야.

김현성과 차희라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연방으로 간다.

-저는….

-…….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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