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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09화 (800/1,590)

< 809화 마지막 (42) >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네.’

송수경, 김현성, 그리고 조혜진까지 계속해서 이쪽을 부르고 있다 보니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사실 어제 일이 터진 순간부터 머릿속 한편에 울려 퍼지고 있는 목소리에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지경.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성검을 내 준 이후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일이 틀어진 송수경과 이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조혜진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조혜진 역시 김현성만큼 당황하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계속해서 조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중. 조금이나마 설명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은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부길드마스터. 부길드마스터?

“…….”

-부길드마스터?

“아….”

-기영아 내 목소리 들려?

“아. 들려. 혜진아. 무슨 일이야.”

-왜…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습니까? 어제부터 계속 불렀는데!

“…….”

-아니, 설마 억지로 연결 끊어놓고 있었던 겁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바빴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을 해주셔야죠. 길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 모르실 리가 없겠군요.

“진짜로 바빴어요.”

-길드마스터에게 검을 내린 것도 부길드마스터가 맞습니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한테 직접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기영 씨가 내린 검이라고… 잘 부탁한다고, 앞으로 잘 보조해 줬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혜진 씨도 피차 선택받은 입장이니 말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네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숨기고 있는 거 맞아요?”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깨끗한 흰 천에 감싸 신줏단지 모시듯 모시고 있으니 말이 나오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간혹 마력을 집어넣는지는 모르겠지만 붉은빛이 천을 뚫고 나오기도 하고요.

“길드 상황은 어때요?”

-분위기가 좋지는 않습니다. 하얀 씨와 정연 씨, 소라 씨가 함께 조사하고 있지만… 머리를 열어봐도 나오는 게 없다고만 전해 들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머리를 연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길드 내의 마법사들이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하면…. 마탑에 의뢰를 맡긴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겁니다. 아무튼 어제까지만 해도 보안 등급을 최상으로 조정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또 한 단계 내린다고 하시더군요. 아니, 부길드마스터가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제 질문에 먼저 답변해 주셔야죠. 지금 제가 모르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맞습니까?

“뭐…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혜진 씨가 신경 쓰실 일은 아니에요.”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습니까. 부길드마스터의 시신을 노리고 암살자와 레인저들이 길드 안에 침입했는데. 이러려고 창을 내린 게 아니잖습니까.

“혜진 씨는 다른 쪽에 집중해 주시면 돼요. 이지혜 꼬리 밟아야죠. 뭐 시신에 큰 의미를 가지고 그래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내가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던 거라니까. 여기도 상황이 급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누가 이딴 짓을 벌인 건지는 알고 있는 겁니까?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벌인 건지….

“그걸 알아도 혜진 씨한테는 말씀 못 드려요. 현세에 함부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조항이 걸려 있어서.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말씀을 드리는 건데 시신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래도 넘겨줘야 할 것 같으니까.”

-…….

“…….”

-너 미쳤어!

“놀리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묻지 마세요. 그냥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 신들이 신탁을 내릴 때 아리송하고 해석할 여지가 있게 내리잖아요. 자세히 말씀 못 드리니까 그냥 그렇게 알고 계시면 돼요. 긍정적인 효과로 돌아온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

-시신을 넘겨주는 게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겁니까?

“말 못 한다니까요.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너 진짜로 미쳤냐고!

‘뭐야 너 나한테 지금 소리친 거야?’

-이 미친 새끼 진짜!

김현성을 교훈 삼아 일단 침묵으로 일관하려고 해봤지만 조혜진이 보여주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이럴 거면 왜 창을 내린 거야?

‘나 말 안 해.’

-이 미친 새끼! 이기영 이 미친 새끼 진짜!

신창에 감겨 있던 천을 풀어헤친 이후에 발로 콱콱 밟고 있는 모습이 무섭게 보인다.

어차피 부러지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른 창을 가져와 창을 내려치는 것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너 왜 그래. 답지 않게.’

-이럴 거면! 왜 창을 내린 거냐고! 혼자서 다 할 거면! 왜 그 지랄을 떤 거냐고! 나도 안 해. 나도 안 해!

‘그긍더 혜진이 어디 갔어. 너 왜 그래. 안 어울리게 왜 그래.’

-미친 새끼! 미친 새끼! 혼자 해! 안 할 거니까. 혼자 하라고!

“아니….”

-그게 어제 온종일 기다리던 사람한테 할 소리야? 뭐라도 좀 이야기를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이 미친 새끼! 쓰레기 새끼!

단순히 떠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화가 난 것만 같은 느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히기는 했다.

일은 벌어졌는데 창은 온종일 응답이 없지, 이미 상황이 터지기는 했지만 다른 일이 더 벌어진 것은 아닌지 불안했을 것이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을 테니 화가 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입 닫고 있으면 부러지지 않는 저 창이 꺾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동안 쌓여 있던 게 폭발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얘도 갑작스럽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 조금 지쳐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정보를 너무 많이 줬나 봐.’

기억을 잃었을 때처럼 적당히 연기해도 상관없었는데… 조혜진을 너무 지혜 누나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긴밀히 협력할 대상이 필요해 조혜진에게 창을 내렸지만 그녀의 사고방식은 이쪽 부류와는 다르다.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을 잘못 던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 일단을 말을 이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만해요.”

-뭘 그만해요? 뭘 그만합니까?

“진정하라니까요. 제가 진짜로 숨기려고 이러는 것 같아요? 일단 이야기는 들어주셔야죠.”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들, 제가 그 미친 일에 손을 얹을 것 같습니까? 확실하게 말씀드리건대 저는 협력하지 않을 겁니다.

“시신은 어차피 되돌아올 겁니다. 잠깐 넘겨주는 것뿐이고요. 저라고 안 꺼림칙하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들어갈 몸인데. 누구보다 자기 몸 아끼는 사람이 저라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부길드마스터가 정말로 자기 몸을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상황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니라니까. 이 모든 게 계획의 일부라니까.”

-미친 소리 하지 마.

“모든 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

“정말로 자세한 건 말씀을 못 드리지만, 아니, 다시 한번 말하건대 안 드리게 아니라 못 드리는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패널티를 받아서 정말 이런 대화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아무튼 말씀드릴 수 있는 것 하나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저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잘은 모르겠지만 이 과정이 결론으로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걸 부길드마스터가 알고 있는 겁니까?

“이지혜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부탁드렸던 겁니다.”

-솔직히 부길드마스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계시면 돼요. 제 희생으로 외신을 몰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이미 확인한 사항 아니에요? 이번에도 같습니다. 의문스럽다는 건 알지만 이 행동이 좋은 결과로 도출될 겁니다. 저도 빨리 내려가고 싶어요.”

-…….

“정말로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말씀드리건대, 나도 빨리 내려가고 싶다니까. 솔직히 조금 더 천천히 하면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일 필요도 없겠지만 제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빨리 현성이 하얀이 덕구, 우리 애들 멘탈 케어해 줘야 되자너.’

“조금 더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패를 하나 더 만든 겁니다. 제 몸은 쓰일 데가 있을 겁니다. 제가 계획한 일이니 혜진 씨는 동요하실 필요도 없고, 불안해하실 필요도 없어요. 자세한 건 내려간 이후에 말씀드릴 테니까.”

-내가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대화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일단 이 문제는 여기서 잠깐 마무리하기로 하죠.”

‘2층 보스가 작정하고 틀어막으면 더 탈취하기 힘들어지는데….’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혜진도 자기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도 들어 놨으니까.

‘애초에 공략이 불가능해.’

파란 던전을 정말로 던전으로써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다시 한번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던전 안의 마물들과 보스몬스터들이 던전 밖으로 뛰쳐나오게 될 것이다.

당연히 송수경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이상 두 번째는 조금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아마 기회를 노리고 있지 않을까. 전쟁을 기다리는 것은 지혜 누나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그래도 빈틈이 없는 건 아니지.’

-파란 길드를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부길드마스터. 애초에 시신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아니 좀….”

-길드가 아니라 린델 모두가, 교황청과 교국에서도 길드마스터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협정을 내렸습니다. 길드마스터가 직접 주도하고 추진하신 계획입니다. 도움을 받는다고 하시더군요. 파란 길드의 힘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상황이 터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빨리?’

-단언하건대 시신을 가져간다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침입자가 누군지, 목적이 뭔지, 부길드마스터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이미 예상을 하고 던진 말이기는 했지만….

“훌륭하군.”

벨리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오스칼, 바젤 교황, 교국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어째서 녀석이 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는 뻔할 뻔 자. 성검을 내린 이후에 말했던 신탁을 따르고 있는 거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의 얼굴에는 언뜻언뜻 불안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로 믿는 게 좋을지, 파란 길드 외의 인간들을 믿는 게 옳은 행동일지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그 불안감을 성검을 부여잡는 행위로 해소시키고 있었다.

-모두가 힘을 모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명예추기경… 아니, 빛의 아들께서 말인가.

-예. 교황님. 인간을 믿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 안에 남아 있는 빛을 믿어달라고 하셨습니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을 찾고 모두가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네.

-괴로운 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라고… 제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함께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파란이, 교국이 기영 씨를 지킬 수 있게 힘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교국은 힘을 보탤 것입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교황청 역시 마찬가지일세.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말 그대로였다.

파란 던전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교국 던전을 공략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본래 어떤 집단이든 규모가 커지고 인간이 모일수록….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자너.’

송빌런이 병신이 아니라면 이 사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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