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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95화 (786/1,590)

< 795화 마지막 (28) >

“오늘 커피 맛 괜찮네.”

“감, 감사합니다. 아버님.”

“자꾸 아버지라 부르지마 새끼야. 정들자너.”

“…….”

“내가 그럼 그럴 줄 알았지. 지능이 낮지는 않은데… 전술 김현성은 개뿔, 전술 흰둥이도 버거워할 게 눈에 보이는데…. 욕심마아아아아아안 많아 가지고. 에라이… 푸…흐흐흣. 푸하하헤헤헷. 엿이나 먹어라, 새끼야. 전술 흰둥이부터 배우고 와야지.”

“평…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고렇지?”

“당연합니다! 제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한낱 인간 따위가 어떻게 아버님을 흉내 낼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지력이 높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거니와 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하고 분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 아닙니다.”

“그래?”

“만약 운이 좋아 성공한다고 한들, 흉내 내기나 열화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운이 좋아 성공한다고?”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입니다.”

“꺼져.”

“…….”

‘성공은 개뿔….’

지금 보여주고 있는 꼴을 보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지혜 누나도 손 놓은 걸 지가 어떻게 해?’

지휘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지혜조차 전술 김현성을 제대로 다루지는 못했다.

몇 가지 간단한 입력어를 넣어주는 것이 한계, 그마저도 그녀의 전술적 선택에 의거한 것에 불과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누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누나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 종류가 다르기는 했어.’

누나가 한 것은 김현성 개인을 부린 것이 아니다. 김현성을 빠른 보병 집단으로 가정해 써먹었다는 점에서는 커다란 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럴 거라면….

‘굳이 전술 김현성을 만들 이유가 뭐가 있겠어?’

빠른 보병 집단을 훈련시켜서 기용하면 되는데. 안 그래?

물론 김현성만큼 빠른 보병 집단은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가정 자체가 의미가 없지만….

뭐 요지는 김현성은 김현성으로 움직일 때 가장 커다란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거다.

전술을 지시하는 이의 개인적인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김현성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하다.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녀석이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현재 컨디션이 어떤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나 습관, 아주 사소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했고 이걸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전장을 함께 헤쳐나가며 쌓은 유대감과 진정한 우정,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그 합체기.

‘우리 필살기자너.’

마음의 눈이라는 능력이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메인은 이쪽이었다.

‘암만, 시바, 연습해 봐라. 그게 되나.’

뭘 생각하는 건지는 알겠어. 전술 김현성이 솔직히 인상적이기는 했지 그 정도로 멋있는 광경이 또 어디 있겠어?

막 파바바박 하고 파바바박 하는데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하는데….

애초에 시바 김현성은 상대 안 해줄걸. 최신 스마트폰 쓰다가 구식 2G폰으로 갈아타 봐라. 그게 되나.

휴대폰이 터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지금 녀석의 상태처럼 머리가 뻥 하고 터져 버리지 않을까.

-우웨에에에에에에엑! 하아… 하아… 하아….

-괜찮으십니까?

-우웨에에엑… 하아… 하아….

-송수경 님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천사의 탈을 쓴 악마와의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하아… 하아….

-…….

-최대한 빠르게 적응해야 합니다. 대륙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안전하다고 느껴야 해요.

-…….

-분명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명예추기경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분도 저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조금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지력 스텟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그리고 남아 있는 물약이 있으면 그걸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물약 중에 지력 올려주는 물약이 있었나?’

“도핑까지 하겠다 이거죠?”

각성제 비슷한 효과를 주는 물약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걸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놓은 게 끝일 테니까.

‘지금 시판되고 있는 건 효과가 구릴 거고….’

-장치의 출력을 조금 더 올릴 수는 없는 겁니까?

-문제는 없습니다만 아마 신체에 무리가 갈 확률이 높습니다. 현재로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제한적입니다. 제 눈으로는 이곳에 있는 것들이 전부 커버가 되지 않으니…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방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출력을 높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출력을 올려주세요. 분명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장치가 그런 용도였던 모양이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아주 뒈질려고 작정했죠?’

마음의 눈과 망원경이 없으니 저런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쓰고 있던 헬멧이 어떤 역할을 해주는 것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뇌로 정보들을 때려 박는다면 그나마 비슷한 효율을 낼 수 있겠지.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줄인다는 것만으로도 녀석에게는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기야 하겠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지금 당장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뭘 기다려?”

다시 한번 마음의 눈으로 놈을 살펴본 것은 당연지사. 특이점이 눈에 들어온다.

지력 89.

그리고….

“전직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슬슬 전직할 때가 된 건가? 싶기도 했다. 지력 90이 넘어가면 새로운 특성이 열린다는 건 이미 대륙에 알려진 이야기, 전직에 대한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시스템은 모험가의 행동 패턴에 맞춰 전직할 수 있는 직업을 제안한다.

놈이 밥 처먹고, 시바, 이 짓만 반복한다고 가정하면 이 행동에 적합한 직업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와, 시바, 이 지독한 새끼….”

성향에 떠 있는 분석가가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가 된다.

“이 쥐새끼 같은 여우 새끼.”

놈은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효율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러 타이밍을 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노린 것이 맞다면 꽤 오래전부터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실 그렇다고는 해도….

“네가 그래 봤자지. 시바.”

전술 김현성이 거저로 만들어진 건 아니니까. 슬그머니 김현성에게 시선을 돌린 것은 당연지사.

조금 힘없어 보이는 어깨가 괜스레 눈에 들어온다. 북부에서 뭔가 커다란 성과를 얻지 못한 채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양.

뭔가 이상한 유물이나 아이템 같은 걸 가지고 온 것 같기는 한데,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처량해 보이기는 해.’

검이라도 한 자루 내려줄걸 그랬자너.

베니고어가 가지고 온 엘룬의 계정을 이용해 마켓에 접속하자 여러 가지 이름의 검이 눈에 띄기 시작. 적당한 걸 찾아봤지만….

‘검은 너무 비싼데….’

다른 차원의 영웅들도 검을 선호하는 모양인지, 가격대가 많게는 5배 정도가 차이가 난다.

듀렌달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검이 이 정도 가격인 게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것보다는 현세로 내려보낼 때 드는 비용이….

‘세금 너무 빡세… 살기 너무 팍팍하자너.’

어마어마하다.

발이 움푹움푹 꺼지는 설산을 굳이 걸어 내려오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굳이 예상해 보자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이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멍하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근처 동굴을 발견한 이후에는 잠깐 앉아 있다….

주르륵 눈물을 떨어뜨린다. 고개를 한 번 뒤흔들고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본인의 얼굴을 짝짝 친 이후에는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한번 벽면에 등을 보낸다.

천천히 여신의 손거울을 꺼낸 이후에 두툼한 손으로 버튼을 꾹꾹 누르는 모습, 얼굴이 잠깐 동안 펴지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이윽고 심각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날개를 펼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각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접한 것이다.

거대한 날개로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멋있기야 한다.

-김미영 팀장님 계십니까? 김미영 팀장님?

-네. 부길드마스터. 김미영 팀장입니다.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방금 전에 제가… 아니, 정확히 언제부터였습니까? 언제부터였어요?

-조각상에서 피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21일 11시부터였습니다.

-어째서 더 빠르게 알리지 않은 겁니까! 제길!

-…….

-…….

-죄송합니다. 길드마스터.

‘왜 김미영 팀장한테 뭐라고 그래… 네가 안 읽은 거자너… 팀장님 상처받겠다. 김미영 팀장 진짜 요즘 힘들단 말이야….’

사회생활하기 힘든데… 김미영 팀장님 파란 관두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안 그래도 스카우트 제의 들어오는 곳도 많아 보이던데….

-아니… 아니…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잠깐… 죄송합니다.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김미영 팀장님.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길드마스터. 조금 더 직접적으로 연락드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제 불찰입니다.

‘대인배자너… 우리 팀장님 진짜 보물이야.’

-아닙니다. 제가 지금…. 네…. 그래서… 다른 징후가 있는 겁니까? 다른 메시지가 내려온 겁니까? 길드 차원으로 조사가 들어가고 있는 게 맞습니까? 지금 이 일을 알고 있는 이들은… 혜진 씨는 알고 있는 게 있는 겁니까? 그 창에서는….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네. 일단 말씀을….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신전 출입 통제하세요. 지금부터 통제해 주세요! 하얀 씨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으십니까?

-정하얀 님은 현재 이 사실을 모르시고 계십니다만… 말씀하신 위치로 정하얀 님을 보내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아니… 괜찮습니다. 모르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잘 조치하셨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가고 있습니다. 신전으로 바로 향하겠습니다.

날아가면서도 눈을 감고 기도 비슷한 걸 하고 있다.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기를 기도하는 것만 같다.

한 명이 죽고 서로 만난 지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변함이 없지 않은가.

신뢰로 똘똘 뭉친, 진정한 유대감을 토대로 쌓아 올린 이 건전하고 건강한 관계.

저 오만방자한 놈이 나를 대신할 수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김현성이 이기영을 버릴 상황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버림받을까 벌벌 떨었던 옛날 생각이 나기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지.

사실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까. 여유롭게 할 일이나 하면서 검 말고 다른 거 줄 거 있나 찾아봐야지.

‘형은 널 믿는다.’

메시지도 보내놔야겠다.

[저는… 저는… 노을빛의 검사를 믿고 있습니다.]

애절한 톤으로.

-기영 씨! 기영 씨! 제길! 기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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