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792화 (783/1,590)

< 792화 마지막 (25) >

[에베리아 왕국의 멸망. 새로운 위협에 공포에 떨고 있는 대륙. -린델일보 김성경 기자.]

[대륙보호관리 위원회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기영 전 위원장이 사라진 관리위원회의 무능함을 고발한다. -린델일보 김성경 기자.]

[그날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 그 날의 참상. -교국신문 메를리아 기자.]

[파란 길드의 엘레나, 공식적으로 파란 길드 탈퇴. 길드원들과의 불화는 없어. 왕국을 잃어버린 엘프들을 위한 결단. -다완일보 천위 기자.]

[노을빛의 검사의 행방이 묘연해… 파란 길드에서는 길드마스터의 은퇴설을 일축. 하지만… -린델일보 김성경 기자.]

[노을빛의 검사는 정녕 대륙을 저버린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기행, 명예추기경을 잃어버린 충격은 이해하지만… -대륙소식통]

[이제는 그 역시 슬픔을 이겨내야 할 때. 대륙의 시민들은 노을빛의 검사를 기다리고 있어… -교국신문 메를리아 기자.]

에베리아가 완전히 멸망했다는 소식은 대륙의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기다렸다는 듯 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심판의 날보다 더욱더 혼란스럽게 느껴질 정도.

사실 이런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세상의 멸망이라고 한들, 외신 디펜스는 북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평범한 이들이 실질적으로 위험을 체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이 조금 더 피부로 와닿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에베리아가, 시바, 지도에서 사라졌으니 오죽하겠어.’

모험가들 같은 경우에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비전투 인원들은 다르니까.’

거대한 파도를 그저 견뎌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이의 두려움은 확실히 다르다.

그 두려움이 표출되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본인들이 영향력을 끼칠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에 알 권리를 촉구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교환하거나.

대부분 쓸데없어 보이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개인의 발언과 여론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몇몇 집단들은 이 상황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꼴 보기 싫었던 것들을 몰아내자 이거지.”

-…….

“기사들은 뭣 하러 계속 보고 있어요?”

-그냥…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부길드마스터가 길드마스터를 배제하려고 말씀하신 건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네?”

-무거운 것을 견디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부담감과 압박감을 견디면서 싸우고 계셨던 건지… 새삼스럽게….

“…….”

-사라진 에베리아보다 길드마스터에 대한 기사가 더 많습니다. 심지어 악의적인 내용의 기사들도…. 물론 적당한 선을 지키고 있다지만… 말 그대로 선을 지키고 있을 뿐이에요. 좋은 말로 쓰여 있다고 한들, 이들이 길드마스터를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네… 뭐.”

-아니, 만약 비난할 의도가 없었다고 한들, 이들이 길드마스터를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길드마스터가 다시 한번 검을 쥐는 것이 얼마나 길드마스터를 힘들게 하는지… 길드마스터에게 다시 한번 전면에 나서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까지 정치적으로 물고 늘어지다니….

‘딱히 그런 이유 때문에 배제한 건 아니기는 한데….’

-지혜 씨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건지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 생각 하지 마. 단현성은 오반데 단혜진은 더 오바자너….’

“이지혜 심정은 이해하지 마세요. 뭐 왕국 하나를 날린 사람 심정을 이해하려고 그러세요? 혜진 씨는 혜진 씨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돼요. 사실 딱히 나쁜 상황은 아닙니다.”

-어떤 게 나쁜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까? 엘리오스 님은 행방불명됐습니다. 지혜 씨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악마에게 정신을 먹혀 버렸습니다. 힘든 싸움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조금이라도 정신이 남아 있다면… 자신이 저지른 일을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별로 안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오히려 네가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상황이 조혜진을 괴롭히는 것만은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판단하기에도 힘들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이지혜 때문에 느끼는 정신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모든 상황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엘레나의 파란 길드 탈퇴, 언론 대응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길드 업무, 공식적으로 해결할 문제들도 많이 있었고 비공식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도 많았다.

내가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정상적으로 길드가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에베리아 왕국에서 봤었던 정신 나간 새끼의 미친 발언이 수긍이 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재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개새끼들 내가 기억해 놨다. 진짜. 시바.’

파란 길드를 적대하고 있는 버러지 같은 놈들, 그리고 침몰하는 배에 함께 있기 싫다고 탈출하는 새끼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놨다고….

-이런 말씀을 드리기 정말 부끄럽지만 부길드마스터가 있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뭐 그건 부끄러워할 부분은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닐지도 모른다니깐요.”

-네?

“자세하기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지혜 씨가 조금이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그녀가 현재 제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능성은 적습니다. 대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상황이 저한테는 좋게 작용하고 있네요. 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하면 이해하기 편하시겠네요. 현성 씨를 찾고 있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신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었나요?”

-아니요. 솔직히 부길드마스터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냥 지혜 씨가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지혜 누나 방식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확률이 높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이지혜가 미쳐 버려 일을 벌였다는 쪽에 조금 더 힘이 실리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저지른 지독한 짓이 이지혜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녀는 뱀이다.

덩치를 키워 블러핑하거나 커다란 충격을 줘 시선을 쏠리게 만드는 건 내 방식이지 누나의 방식이 아니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당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면서 끝끝내 목을 조르고 질식시키는 게 이지혜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만약 지혜 누나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면 이런 커다란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륙은 자기들의 목이 조여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질식해 침몰했을 거라는 거다.

물론 누나가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해 떠올리고, 내 방식으로 복수해 주겠다는 로맨티스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지혜는 감성보다는 이성을 따른다.

‘나랑 소통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

의도적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접촉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만약 저 가설이 맞다면 루시퍼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뭐.

에베리아의 소멸로 얻은 것이 꽤나 많다.

첫 번째는 현재 정하얀이 조사하고 있는 포탈.

두 번째는 이지혜와 루시퍼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세 번째는 신성이 모여들 수 있는 판이 깔렸다는 것.

가장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두 번째 힌트.

‘알고 있는 거 아닐까?’

이지혜가 루시퍼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고 있는 것아 맞다면, 내 뒤통수가 아니라 루시퍼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어쩌면….

이지혜는 내기의 내용, 혹은 내기에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어쩌면 그냥 대놓고 죽어라, 죽어라, 인간들 다 죽어, 하면서 화풀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이렇게 가정하는 걸 원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역에 역으로 뒤통수 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네.

“지혜 누나가 악마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아, 아마 그럴 겁니다. 네. 지혜 씨는 강인한 사람이니까요. 영혼 약탈자에게 영혼을 빼앗기고도 꿋꿋이… 꿋꿋하게 이겨내신 분입니다.

‘영혼 약탈자… 시바.’

“약간의 시간을 두며 방향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지혜가 우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가정으로 움직일지, 완전히 적이 되었다는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선택이요.”

-당연히 전자입니다.

“지금 당장 선택하지 마요. 전자라고 생각해 주사위 던졌다가 후자였습니다, 이렇게 마무리되면 그대로 배드엔딩이에요.”

-저는 지혜 씨를 믿습니다.

“저는 반만 믿어요. 그래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겁니다. 이지혜가 사라진 포탈을 추적하는 것.”

-네.

“그리고 지금 들어갈 회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끌어내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사는 그만 찾아보고 움직입시다.”

-…….

“다른 사람들 기다리겠습니다.”

-네.

약간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혜진이 눈에 들어온다.

살짝 문을 열자 수행원으로 함께 따라온 알프스가 기다리는 중.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혜진을 바라보던 신입 길드원은 이내 반 발자국 뒤에서 그녀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얘도 이제 슬슬 알 건 아는 시기인 만큼 이 모임이 힘들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겠지.

-파란 길드의 길드마스터 대리. 조혜진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에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의도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보내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충 봐도 적대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

자리에 착석하기까지 시선이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노을빛의 검사께서는 많이 바쁘신 겁니까?

-길드마스터께서는 현재 다른 일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허허… 거 참….

-…….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중요한 일이신가 봅니다. 에베리아 왕국이 멸망했습니다.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말입니다. 대륙이 위기에 빠진 이 시기에 노을빛의 검사 정도가 되는 분께서 나 몰라라 하고 있다니… 하… 거… 참….

-이봐요! 대륙을 구한 영웅에게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대륙을 구한 영웅이기에 더욱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엘리오스 님의 행방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아주 작은 힘이라도 더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파란 길드는 이번 일에 크게 관심이 없나 봅니다.

-말조심하세요… 금수도 은혜를 잊지 않는 법입니다. 파란 길드가 있었기 때문에….

-파란 길드 혼자서만 대륙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아니에요. 대륙 모두가 힘을 합쳤기 때문에 그 성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겁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대륙이 모두 힘을 합쳐 이번 위기를 벗어나야지요. 한데… 이게 뭡니까. 이기영 님께서 대륙보호관리 위원회를 만드신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이 말입니다!

‘이 새끼 내 이름 파는 거 봐라.’

-노을빛의 검사뿐만이 아니라 용병여왕 역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륙보호관리 위원회의 정신을 계승한!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의 뜻을 계승한 더 강한 통제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

-다시 한번 뜻을 모아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여러분.

호랑이 없는 곳에서는, 시바, 여우가 왕이라더니….

이 새끼들이 뭘 노리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희들이, 시바, 현성이를 통제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지? 시바놈들아.’

웃음기가 사라지고….

‘전술 김현성 해보겠다 이거야?’

짜증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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