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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77화 (768/1,590)

< 777화 마지막 (10) >

“이기영 후배… 그럼 당분간 다른 업데이트는 하지 않는 거야?”

“네. 일단 균열을 막는 걸 최우선으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불안정한 시스템부터 손을 본 이후에 추가하는 게 더 합리적이에요.”

“그, 그래도 모험가들이 새로운 던전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대륙에 숨겨져 있는 던전들과 이스터에그들을 몇 개 가지고 왔는데 한 번 체크해 볼래? 일단 이것부터 봐.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전설 중에 하나거든…. 고대의 전사들이 잠든 대지, 매일 밤 고대의 전사들이 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는 거로 시작되는 이야기야. 클리어 보상도 인간들한테 도움이 될 것 같고… 신성도 조금만 투자하면 바로 활성화될 것 같아. 완전 거저라니까?”

“…….”

“…….”

“일없습니다.”

“서사 페이지를 채우는 건 중요한 일이라구, 이기영 후배. 당장은 눈앞에 커다란 이득이 떨어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런 전설들이 살아 숨 쉬는 대륙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신앙심에….”

“던전 위치가 어딥니까?”

“인…간들이 캐슬락이라고 부르는 지역이야.”

“신성 교국이네요.”

“으응….”

“클리어하는 모험가는 베니고어 님의 신자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건 모르는 거니까… 굳이 내 신자가 이름을 남기는 게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렇잖아. 이기영 후배도 알고 있잖아. 안 그래도 컨텐츠가 바닥나서 할 게 없는데… 이런 시간이 너무 길게 지속되면 안 좋아. 대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인간들도 점점 무기력해질 거구… 슬슬 새로운 페이를….”

“그래도 안 됩니다.”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장난삼아서 이걸 가지고 온 줄 알아? 보상에서 전설 등급의 석재나 광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보석도 나올지도 모른다니까. 지금 전설 등급의 광석들이 모조리 소진돼서….”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이게 전부 다 네 탓이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베니고어의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야. 안 그래도 인간들이 발전이다 수복이다 뭐다 해서 대륙의 자원들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전설 등급으로 책정된 것들은 주변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는 거 알고 있는 거지? 이렇게 마구잡이로 소비하면 대륙의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걸.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봐. 세계수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라니까.”

“…….”

“아! 이미 극단적인 예가 있구나? 이기영 후배 신전 짓는 데 요정의 호수 조약돌이 들어갔었네. 요정의 호수가 오염될 뻔한 걸 막느라 빠져나간 신성이 얼마였더라… 그러고 보니까 태양의 보석도 들어갔네. 일대 지역의 온도가 조금 내려갔었지 아마?”

“…….”

“오리하르콘이 씨가 말라서 드워프들이 힘들어 한데. 그 소식을 들은 거 맞는 거지? 이기영 후배? 무분별하게 광산 채굴하다가 지반도 많이 약해졌네. 주변 몬스터 생태계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진짜 너무 한다니까… 진짜로 너무해.”

“몇 개… 정도는 나쁘지 않겠네요. 기획서 가져오시면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에는 이겼다는 승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럴 줄 알고 가져왔어. 이기영 후배.”

심지어 이미 계획이 되어 있었단다. 슬그머니 기획서를 받아 읽어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석재나 광석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조금 더 넓게 보면 베니고어의 말도 틀린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 기획서 안에 몇 가지 속임수가 들어가 있었다는 것.

뭉텅이로 함께 넘긴 제안서 중에는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것들도 눈에 띄었다. 기왕 결재받는 김에 은근슬쩍 함께 결재받겠다는 거겠지.

[등급 외 던전]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

두더지들의 성녀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지하신전의 밖을 한 번도 빠져나오지 못한 성녀. 삶의 평생을 지하신전에서 지내며 추대받은 성녀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던전이었다.

위치는….

‘베니고어 신전 지하.’

던전 활성화에 들어가는 신성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고대 전사들이 잠든 대지가 싸게 먹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상도 정확하지 않고 기획서 자체도 빈약하다.

살짝 베니고어의 눈을 보다 필사적으로 이쪽의 눈을 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얘가 무슨 생각인지, 두더지 성녀는 뭔지, 무슨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수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잘못한 게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잘못이기는 하니까….

‘김현성 시바.’

아까 베니고어가 서술한 그대로, 이기영의 신전을 짓기 위해 여러 가지 자본들이 투입된 것이 문제였다.

자금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은 파란 길드와 김현성 개인일 거라고 판단했지만 그게 위까지 영향이 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륙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빛의 성자의 신전 건설이 대륙 균형에 문제를 일으킬 줄은 누가 알았을까.

물론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정의 호수에서 조약돌을 꺼내 왔을 때는 내가 다 황당해 입을 벌렸을 정도, 호수를 지키는 가디언은 애초에 활성화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김현아의 검 한 번에 부서져 버렸을 테니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광석을 구하겠다고 광산의 끝까지 기어들어 가다 활성화되지 않은 대지의 정령을 깨워 놈을 부숴 버렸다.

온갖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발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 새끼가 움직일 때마다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는 것.

기왕이면 화려하게 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기야 했지만 이 정도까지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니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시바, 이해는 해.’

정확히 어떻게 해야 신전을 완성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조각상에 내가 깃드는 게 가능한지 궁금했을 테니까.

대륙의 빛이 머물 장소였고 인간과 신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대충 짓는다고 해서 시스템이 신전 판정을 내린다는 보장이 없었으니 김현성 입장에서도 애가 타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조각상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지도 걱정됐을 테고….’

아무 곳에나 냉큼 들어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테면 시스템에 영업 신청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아영이 아이템을 만들 때 등급 판정을 받는 것처럼 신전 역시 등급 판정을 받는다.

어느 정도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신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잘못된 경우 등급판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김현성이 이런 복잡한 상황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아마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

잘못 만들면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거야.

물론 그게 돈과 전설 등급의 자제들로 처바른다고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률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재를 받고 희희낙락 뛰어가는 베니고어의 뒷모습이 눈에 보인다.

재무팀의 루 팀장은 그런 베니고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중, 나 역시 괜스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슬슬 파란 길드원들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완성되려나.’

거의 6개월이 지난 시점, 파란 길드의 신전 건설 계획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다시 한번 시선을 돌리자 지나치게 화려한 신전이 눈에 띈다.

‘이거, 시바 너무 사치스럽다고 까이는 거 아니야?’

농담 하나 보태지 않고 베니고어의 신전보다 더 화려하다. 휘황찬란한 보석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누가 보기에도 값비싼 자제들로 만들어져 있다.

누가 보면 신전이 아니라 재력가가 사치를 위해 만든 공간이라 착각하지 않을까.

그나마 신전 같은 느낌을 주는 포인트는 천장 전체가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다는 것, 어떻게 설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빛이 들어오면 마치 신전 전체에 노을이 내려앉은 것만 같은 모습이다.

뭔가 마법적인 설계가 들어간 것 같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갔다는 것 정도만 확신할 수 있었다.

‘파란 길드 자금 상황 괜찮은 것 맞지?’

어두운 김미영 팀장의 얼굴을 보니 전혀 괜찮지 않은 모양이다.

빛의 성자의 신전을 짓기 위해 교국과 타국의 지원 요청까지 했지만 그래도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았다.

파란 길드에서 관리하고 있었던 부동산도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으니 그녀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한소라가 조각상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쟤는 진짜 전직해도 되겠다.’

아마 직업을 바꾸겠냐는 메시지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의 미래를 위해 거절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직업을 바꿨어도 먹고사는 것에는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진짜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만들었을까?”

“많이 미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조금 미화되기야 했죠.”

“아니요. 많이 미화됐습니다.”

등 뒤로 활짝 펼쳐진 날개. 양팔을 교차시킨 이후에 가슴에 살짝 얹어 놓은 포즈가 눈에 띈다.

살며시 뜬 눈에 박혀 있는 요정의 조약돌과 태양의 보석은 정말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복장은 추모식 때 입은 복장을 입고 있다. 거장 조각가들이 깎은 것 같은 디테일이 인상적이다.

정말로 피부가 부드럽게 만져질 것 같고 입고 있는 옷은 당장에라도 바람에 날려 나풀거릴 것만 같다.

살짝 벌어져 있는 입에서도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지 않은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한소라가 새삼스레 대단하게 느껴진다.

‘생명력을 담아서 조각 하고 있는 것 같자너….’

정하얀이 그런 한소라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몇 개월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정하얀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한소라가 있었다면 여러 가지로 챙겨줬겠지만 아무리 그녀라 하더라도 저런 걸 만들면서까지 신경 써줄 수는 없었겠지.

-거, 거, 거의 다 끝난 거야? 소라야?

-네, 일단은… 하지만 끝났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끝이 있는지, 마무리 짓는다고 마무리 지어지는지 모르겠네요….

-조, 조금 쉬면서 할까?

-아… 네… 쉬는 게 좋겠네요.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아, 아니. 아직. 입, 입맛이 없어서.

-마침 제가 가져온 게 있는데 같이 드시면 되겠네요.

-그… 그렇게 하자. 그, 그런데… 오, 오빠가 저기 들어올까?

-아마 들어오시지 않을까요. 아직 완성은 안 됐지만 길드 마스터가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조각상 쪽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분, 분명히 들어올 거야. 그렇지?

-네.

조용히 있다가 갑작스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한 정하얀이 눈에 보인다.

-끄으윽… 끄윽… 끄으으으윽… 들어올 거야. 그, 그… 렇지?

갑자기 보고 싶어진 모양이다.

-끄윽… 끄으윽… 히끅… 히끅….

허겁지겁 정하얀의 눈물을 한소라가 닦아주기 시작했지만 본래 위로를 받으면 더 울고 싶어지는 법이다. 계속해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가슴이 조금 아파졌다.

-분명히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정하얀 님. 만약에 안 나타나시면 같이… 네… 같이 올라가면 되니까요. 그렇죠?

-으응… 끄으윽….

-장거리… 네. 장거리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준비만 되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장거리 연애나 다름없네요.

-히끅… 으으응….

‘진짜 왜 저렇게 서럽게 울어….’

어깨랑 턱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조금 희망차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힘든 상황이었으니 쟤는 오죽할까. 솔직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울지 마세요. 정하얀 님.

“그래. 하얀아, 울지 마.”

-그래요. 울지 마세요… 부길드마스터도….

-?

-?

정하얀과 한소라가 멍한 표정으로 조각상을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오, 오빠?

[플레이어 한소라가 세기의 걸작을 완성시켰습니다.]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 한소라는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화 등급의 조각상이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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