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7화 끝으로 (16) >
‘역시 이럴 때가 제일 재미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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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와! 드루와! 새끼야! (0/1)]
‘아, 시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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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척하더니 속 빈 강정이었네. 별거 아니자나. (0/1)]
‘기분 째진다 진짜.’
원래 이런 종류의 싸움에서는 먼저 흥분하는 새끼가 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김현성과 녀석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 놈의 싸움이 그렇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안 그래도 흥분해 있는 상태에 있는 놈의 속을 살살 긁다 보니 지금까지 머리를 아프게 해왔던 스트레스가 전부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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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개뿔. 네가 진짜 뭐라고 되는 줄 알았어? 그런 거 아니야. 눈앞에 있는 걸 봐 병신아. 인간은 저런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는 거야. 너는 날개 달린 버러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덜떨어진 신 흉내 내지 말고 지금부터는 그냥 납작 엎드리기나 하세요. 네? (0/1)]
-이… 이 기생충 같은 놈!
‘흥분하면 뭘 어쩔 건데? 응? 네가 뭘 어쩔 거냐고. 우리 현성이 이길 수 있어? 시바? 이길 수 있냐고. 네가 시바 이길 수 있냐고오!’
울 현성이 좀 봐라.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고 싸울 때 말 많은 놈들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없어요.
묵직하게 제자리 지키고 있는 놈이 진짜 세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세잖아.
너랑은 종자 자체가 달라요. 근본이 다르다고. 근본이. 네가 뭐 대단한 놈이라도 되는 양 생각 하지 마.
무척이나 흥분한 얼굴로 다시 한번 손을 뻗는 녀석이 보였지만 한 번 막힌 공격이 유효타로 들어갈 리가 없었다.
패턴 파악이 끝났다기보다는 스펙의 우위로 찍어 눌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만약 다른 패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녀석의 처형은 그저 떨어질 뿐인 공격이다.
무수히 많은 숫자의 검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한 목표물을 향해 떨어진다는 것밖에는 없다.
이전과 다르게 현재의 김현성은 그 검을 인지하고 피할 수도 있고 막아낼 수도 있다. 걱정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이지 않은가.
‘방심은 금물이기는 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다른 패턴을 추가할 것이다. 이른바 2 페이즈로 진입했다고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백금색의 검을 뽑아 들기 시작. 접근전이 약할 거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선입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사실상 거리가 의미가 없기는 해.’
어차피 놈은 하늘 위에 떠 있는 검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저 검은 세라핌을 노리지 않는다.
심판과 처형이 김현성에게 들어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거겠지. 아까보다는 더 까다로워질 것 같기는 했지만 전처럼 긴장되지는 않는다.
나는 김현성이 뭘 할 수 있을지 알고 있고, 녀석이 지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조금 복잡할 거야. 그래도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 처형이 떨어지는 순간 거리를 좁히면 한 타이밍을 벌 수 있는 거. 내 생각 이해하고 있지?’
단언컨대 무수히 떨어지는 검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세라핌을 방패로 삼으면 돼.’
새로운 패턴이 생기면 새로운 공략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이 공략법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내 확신은 김현성이야.’
사랑스러운 회귀자라면 가능하다.
-이이익!
잔뜩 흥분한 채로 검을 휘두르는 세라핌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김현성 역시 최대한 집중하는 것 같은 얼굴로 녀석과 검을 맞대고 있다.
세라핌의 신체 능력에 커다란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계속해서 놈이 쏘아내고 있는 검의 파도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현성에게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히겠다기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형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게 하겠다는 심산, 실제로….
‘쉽지는 않네.’
한 발을 허용하면 다음을 허용할 확률이 높다. 다음을 허용하면 그다음을 허용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연쇄적으로 무너질 확률이 높다는 거다.
그래도.
“실수하면 안 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기영 씨.
김현성은 침착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검을 휘두르는 세라핌의 검을 막은 이후에는 곧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쳐낸다.
계속해서 발을 놀리며 공간을 찾아낸다. 순식간에 날개를 펼치며 김현성에게서 멀어지는 세라핌의 모습을 확인한 이후에는.
‘뭐해. 붙어야지. 검 날아오잖아.’
곧바로 날개를 펼치고 세라핌에게 근접하는 김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회귀자를 노리던 심판의 검들이 어느새 공중에 우뚝 멈춰 선 것이 보인다. 세라핌이 입술을 깨물고 곧바로 김현성을 밀어냈지만.
‘시간 벌었지?’
김현성이 검으로 원을 그리며 쏘아지는 공격들을 모조리 쳐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화살도 쏘시네요. 이거 히든 패턴 맞지? 그렇지?’
녀석이 쏘아 보낸 한 발의 화살이 김현성이 만든 검의 원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봤지?’
김현성이 고개를 비틀어 머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화살을 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시바 흉터 남겠자너.’
뺨 한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는 아니다.
-괜찮으십니까?
“통각 차단해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보다 집중하세요. 집중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네가 나한테 죄송할 필요는 없지. 다치는 건 내가 아니라 넌데. 그래도 긴장을 너무 풀지는 말자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직!!
-처형!!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움직이겠습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처형!!!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대는 땅바닥에서 하늘 위로.
공중에서 선이 되어 계속해서 부딪치는 둘의 모습, 검의 파도는 계속해서 김현성의 뒤를 쫓고 있지만 단 한 자루의 검도 허용하지 않는다.
‘집중.’
힘내라 현성아. 시바, 너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싸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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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넌 덜떨어진 새끼야. 내 그림자나 쫓고 있었던 멍청한 새끼잖아. 그렇지 않아? (0/1)]
-닥쳐! 닥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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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게 있는 법이야. 나는 네 추악한 욕망이 뭔지 알아. 세라핌. 네가 누구를 닮고 싶어 했는지도 알고 있고, 실제로 누구를 흉내 냈는지도 알 수 있다니까? 푸하하하핫! 어때? 즐거웠어? 조금이나마 네가 이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어? (0/1)]
-닥쳐라! 이기영! 그 입 다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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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우웅신아. 너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가면의 영웅이 될 수 없어요. 아무리 애써봐도 카피캣은 카피캣이야.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인간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넌 인간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본질은 변하지 않아. 너는 영원히 1회 차의 세라핌일 거다. 추하고 질투심 많으며 역겨운 비둘기. (0/1)]
-닥쳐! 닥쳐어어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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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흥분했죠? 울어? 너 우냐? 푸하흐하헤헤헷! 울어요? 울어? (0/1)]
-닥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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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영웅은 절대 흥분하지 않아요. 비둘기.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조금 더 확실하게 배웠어야지. (0/1)]
-이 더러운 배신자! 추악한 기생충! 차원이 뱉어낸 쓰레기가! 누, 누가 네놈을… 흉내 냈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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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기는 누구겠어. 너지, 너. 세라핌. 그리고 누구보고 배신자라고 지껄이는지는 모르겠는데 애초에 가면의 영웅은 배신자였던 적도 없었어. 처음부터 인류를 위해 싸우는 영웅 중에 영웅이었다고. 시바. 어디서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 담아? 진짜 배신자는 네 형제를 저버린 너야. (0/1)]
-그 혓바닥을 뽑아주마. 기필코 네놈의 혓바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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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모습이 그렇게 싫었어? 내 흉내를 내고 싶을 만큼 네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우리 불쌍한 세라핌. 자존감도 낮은 우리 불쌍한 비둘기. 보지 않아도 네 1회차 때 모습이 어땠는지 알 것 같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거야. 응? (0/1)]
-이기영… 이기영…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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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흥분할 필요도 없어. 세라핌. 그게 원래 너희의 모습이잖아. 내 말이 틀려? 네가 스스로 흉내 내고 만들어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들, 전혀 이상 할 것도 없지 않아? (0/1)]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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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원래 만들어진 놈들이잖아. (0/1)]
놈이 우뚝 움직임을 멈춘 것이 눈에 보인다.
‘팩트가 너무 세게 박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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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는 다르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놈들이잖아. 그래서 인간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던 거잖아. 그들을 관리하겠다고, 그들의 위에 서겠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것부터가 자기방어야. 인간들보다 너희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네놈들 스스로 만들어낸 방어기제였다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망가질 것 같으니까. 목적을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부러워 미칠 것 같으니까. 너희 비둘기들은 스스로를 과대 포장했던 거야. (0/1)]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모습도 눈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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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세라핌. 너는 원래 태생이 그래. 만들어지고. 푸핫! 또 만들어지고! 푸흐흐하헤헷! 또 만들어진 불쌍한 비둘기. 푸흐하하하핫! 하하하흐허헤헷! (0/1)]
심지어 궁지에 몰린 것 같은 얼굴도 눈에 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이다.
‘봤지? 현성아. 형도 시바, 열심히 싸우고 있어.’
-닥, 닥… 닥쳐… 닥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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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차원이 뱉어낸 쓰레기라 평가했지만 아무런 차원에도 선택받지 못한 진짜 폐기물들이 너희들이야. 비유우우웅신아. 이 세상, 아니, 대륙 전체, 아니, 차원 전체를 뒤져봐도 네놈들을 사랑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아. 너희들은 피조물로 치지 않거든. 그렇지 않아? 누가 조립된 놈들을 사랑하겠어? 누가…푸… 푸흡. 조립된 놈들을 상대로 진지하게 그런 걸 생각하겠냐고. 푸흣… 푸… 푸하하헤핫! (0/1)]
너무 딜을 세게 박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는 하네. 왠지 내가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시바. 세라핌이 주인공이었으면 조연 동료가 나와서 외쳤겠지. 아니야! 시바! 우리들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하면서 세라핌한테 용기도 주고 살아갈 이유도 줬겠지만 어쩌겠어. 저 새끼가 빌런인데.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애들도 전부 미국 갔잖아. 아 근데 너무 심했나 보다. 쟤 저러다가 자살하는 거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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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너희를 만든 이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있어. 불쌍한 세라핌. 우리 가여운 세라핌. 너희들이 어째서 인간 흉내를 내는지 알려줄까? 솔직히 정답인지 확신은 못 하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 어쩌면 너희들의 창조주가 네놈들을 사랑해 줄 거라는 무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거. 코미디가 따로 없지? (0/1)]
-…….
녀석이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과 심판과 처형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부터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진데 팩트로 정신을 두들겨 맞으니 멘탈이 많이 망가진 모양.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동공은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건 안 좋은데….’
다른 건 몰라도 아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얄미운 놈에게 한 방 먹여주고 말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지 않을까.
‘그 정도도 생각 못 할 정도로 병신은 아니지? 그래도 가면의 영웅한테 배운 게 있기는 있을 거 아냐. 한 방 먹었으면. 한 방 먹여줘야지? 그렇지?’
암만 저놈이 모지리라도 그 정도 머리는 돌아갈 것이다. 분노로 잃었던 이성이 되돌아오면 무엇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인지하게 될 것이다.
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였을까. 천천히 숨을 고르는 세라핌의 모습이 보인다. 김현성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그래. 네 역할은 그거야.’
무대는 얼추 마련됐고, 개연성 역시 충족됐다.
세라핌은 김현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비위도 좋구나. 불쌍한 인간.
‘옳지.’
-자신의 삶을, 영혼을, 모든 걸 망친 인간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니 정말로… 비위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