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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56화 (747/1,590)

< 756화 끝으로 (15) >

‘근데 쟤는 한쪽 눈이 왜 저래? 어디서 당하고 왔어? 케루빔이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녀석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

‘아니, 왜 저래?’

한쪽 눈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케루빔에게 당했거니 생각하기도 했겠지만…… 그토록 형제자매들을 사랑했던 녀석이 세라핌의 눈을 후벼 팠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금 의아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내 의문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녀석의 한쪽 손에 구겨져 있는 더미월드의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뭐야?’

“…….”

분노로 떨리고 있는 한쪽 동공이 시야에 들어온다.

‘진짜야?’

더미월드를 집어둔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진짜 덤기영이 그랬어?’

가장 최근에 리셋 했을 때가 덤기영이 바깥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혜 누나가 코웃음을 치며 다음 회차 버튼을 누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번 회 차에는 그 방법을 찾아 자신들을 괴롭히던 악마 같은 녀석에게 한 방 먹인 모양.

‘와 시바 진짜. 무섭기는 무섭다. 내가 이 새끼 언제 한 번 사고 칠 줄 알았는데…… 와 그 쥐방울만 한 얘들이 어떻게 세라핌 눈을 후벼 파냐. 이전 회차는 어떻게 계속 기억하고 있는 거야? 무의식 속에서 남아 있는 건가? 그런 트리거가 있는 거야?’

시스템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김현성을 보라 누가 녀석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지에 대해 예상이나 했을까.

수천, 아니, 수만 번을 넘게 같은 회차를 반복했던 더미세계에서는 일생일대의 저항이요. 최후의 발악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통제하려고 한 초월적인 악마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그들이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계속해서 똑같은 삶을 살아가며 실험용 생쥐처럼 취급당하는 삶에 부당함을 느끼며 들고 일어섰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세라핌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신들이 운명에 저항할 수 있다는 걸 초월자들에게 알린 것이다.

하지만…….

‘악마 같은 자식.’

녀석들의 창조주는 작은 세계를 부숴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산산조각 나 부서지고 있는 더미월드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참혹할 것이다. 만약 더미월드의 생존자가 있다면 세라핌을 세상을 종말 시킨 악마라 평가하지 않을까.

‘그 쪼그마한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던 나로서는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시바. 너무 빡 친 표정이기는 하더라. 이거면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치 깠겠는데.’

놈이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조금 더 철석같이 믿고 있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했는데. 뭐 이것도 나쁜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으니까.’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코인이 휴짓조각이 된 와중에도 신인류 계획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본인이 속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지 않았을까. 별것 아니라면 오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쪽 눈까지 박살 난 마당에 그런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왜 하필 눈이 다쳤는지도 대충 궁예질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내가 떨어뜨리고 간 더미월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가져다 대다가…….

‘회심의 일격 맞은 거자너. 와 진짜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진짜.’

그 고통과 함께 모든 게 블러핑이고 개구라 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는 세라핌의 얼굴은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놈이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얼마나 억울하겠어. 진심전력으로 밀고 있던 주식이 순식간에 상장폐지 됐자너. 케루빔도 지 손으로 찌른 거잖아. 벌써부터 싸울 태세 만반이네. 현성아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거지?’

-기필코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더러운 쓰레기. 구역질 나는 개자식.

‘나한테 한 소리지?’

-…….

‘나한테 한 소리 맞는 것 같은데. 시바 저 새끼가 한 말 들었지 현성아? 저 새끼가 형 죽인단다.’

-절대로. 절대로 평범한 모습으로 살려두지 않을 거야. 이 쓰레기 같은 개자식. 평생을 영겁의 고통에서 헤엄치다 죽게 해주마. 평범한 고통이 아닐 거야.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네 영혼과 육체에 고통을 새기고 유린하겠어. 네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것을……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주마.

‘들었지? 시바 현성아. 저 새끼가 나 유린한대.’

-네놈만은 기필코 고통스럽게 만들겠어. 기필코! 네놈만은! 네놈만은 용서할 수 없어! 네놈만은!

‘흥분하자너. 무섭자너. 제정신 아닌 것 같자너.’

-듣고 있다면 대답해라! 개자식! 이 구역질 나는 쓰레기 자식! 이기영! 이기영!

‘한마디 해줘야 겠자너.’

“현…… 현성씨.”

-두려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기영씨.

‘역시 우리 현성이 자너.’

-네놈은 존재 자체가 악이야! 존재 자체가 해악이고 해로운 존재야! 이 세상에 네놈 같은 쓰레기가 돌아다닌 다는 것 자체가 대륙의 불운이며 차원의 실수야.

‘조금 더 창의적인 욕 없어?

-네놈이 본래 살고 있던 차원이 어째서 네놈을 뱉어 냈는지 알 것 같구나! 알 것 같아! 이 더러운 오염물 자식! 대륙으로 버려진 인간들은 피해자들이다! 네놈을 뱉어내다 실수로 같이 뱉어낸 인간들이겠지. 이 구역질 나는 인간! 네놈은 그 어떤 신에게도 선택받지 못할 것이다. 네놈은 모두에게 버림받아 마땅한 존재야.

‘이건 조금 창의적이다.’

-아니! 네놈은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존재다. 네놈은 악마보다 더 지독하며 기생충보다 더 남에게 기생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구더기야! 나는 절대로 네놈을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진짜 맛탱이 간 것 같은데.’

조금 지나치게 흥분하신 거 아닙니까. 거 체통을 좀 지키셔야죠. 아무리 그래도 천사 중의 천사신데. 입이 왜 이렇게 상스러워?

-내가…… 내가 네놈에게 속을 줄 알았어?

‘이미 속은 것 같은데.’

-쥐새끼 같은 쓰레기 자식! 더러운 기생충!

‘그만 좀 해. 진짜 왜 그래? 구질구질하게. 저 새끼 한쪽 눈깔 돌아간 거 봐. 현성아 저거 내버려 둘 거 아니지? 그렇지? 소름 끼쳐…… 아으…….’

“아으…….”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형은 너만 믿고 있어. 현성아.

흥분한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비둘기의 모습은 꽤나 우습게 비쳐진다. 솔직히 녀석에게 갚을 빚이 있는 나로서는 이보다 통쾌할 상황은 쉽사리 나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내 목소리를 놈이 들을 수 있다면 실컷 비웃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 내 정신 좀 봐. 비웃어 줄 수 있지?

[일반 등급의 강제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비융신! 비유유우웅신!(0/1)]

[세라핌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세라핌은 보상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이 개자식! 이 쓰레기 자식!

[일반 등급의 강제퀘스트를 생성합니다.]

[푸핫푸흐하하하하하핫!(0/1)]

-기필코 죽이겠다! 영겁의 고통에서 헤엄치게 해주…….

[일반 등급의 강제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야이! 비유우웅신아! 눈깔은 어디다 두고 왔어?(0/1)]

-구더기 만도 못한 쓰레기가!

[일반 등급의 강제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비유우웅신아! 눈깔은 어디다 두고 왔냐구? 그거 참 아파 보이는데 말입니다.(0/1)]

-네 살가죽을 하나하나 벗겨주마. 네 혓바닥을 가장 먼저 뽑은 이후에…….

[일반 등급의 강제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신인류계획! 아디오스! 신인류! 야 근데 그 소식 들었어? 케루빔 미국 간 것 같더라고 신인류 계획이랑 같이 미국 갔댄다.(0/1)]

-이 개자시이이이이익!!!

결국에 흥분을 참지 못한 녀석이 하늘로 손을 뻗는다.

‘현성아 전투 준비 됐지? 전투 준비 된 거지?’

머리는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몸은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김현성도 그랬고 나 역시 그렇다. 아무래도 온몸에 검이 박혀 있었던 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았지만 억지로 걱정을 삼키는 게 정답이다.

“질 확률은 없어.”

놈은 강하지 않다. 나와 김현성이 함께라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

-심판!!

‘너는 죄가 없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별 의미가 없는 대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내가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김현성은 자신의 원죄를 외면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공중에 불어난 검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절로 입술을 꽉 깨물게 된다.

‘형이 한 발도 안 맞게 해줄 수 있어. 믿지?’

-믿고 있겠습니다.

‘마음 통했네.’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로 숫자가 많은 백금색 검들이었지만 공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비를 피하는 것 같은 미션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김현성은 그걸 실현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췄다. 만약 김현성이 저 검에 한 발이라도 꽂힌다면…….

‘내가 개 쓰레기 새끼다. 시바.’

-천벌!!!!!

공중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검이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최대한 많은 숫자의 검을 눈에 담는…… 아니,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검을 눈에 담는다. 잠깐 동안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안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기는 하지만 그 생각마저 다른 곳으로 날려 보낼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어깨 쪽으로 떨어지는 건 몸을 비트는 걸로 피할 수 있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지.

‘등 뒤쪽으로 떨어지는 것도 보이네. 피할 수 있지? 내가 찍어준 공간 보이지? 거기서 비틀고 저건 쳐내야겠다. 아. 지금 보고 있는 것도 쳐내는 데 그걸로 위에 떨어지고 있는 것까지 튕겨내야 돼.’

몸을 비튼 김현성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검은색 선이 되어 그림을 그렸던 이 전과는 다르게 땅바닥에 발을 굳힌 채로 계속해서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전부 다 쳐낼 수 있어. 네가 더 빨라.’

하늘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검보다 네가 더 빨라.

자세를 유지한 채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도 김현성의 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타인이 보기에는 희뿌연 보호막이 김현성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심판!! 천벌!!!

‘할 수 있어. 전부 다 보이잖아. 어떤 것부터 쳐내야 하는지 알고 있잖아.’

녀석은 바닥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

-천벌!!! 천벌!!! 천벌!!!

본인이 저지른 원죄들을 쳐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다. 실제로 별 의미는 없었지만 뭔가 상징적이잖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지직!

콰드드드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주변으로 처박히는 검들은 커다란 굉음을 내고 있지만 아쉽게도 김현성에게 닿는 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X나 세진 것 같아. 현성아. 그지? 시바 무적이라고.’

김현성 역시 자신이 만든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날개가 부르르 떨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환희의 표현일 것이다.

내가 봐도 소름이 돋는 장면이었으니 오죽할까. 산더미처럼 꽂혀 있는 검의 무덤의 한가운데, 아무 상처 없이 서 있는 놈의 모습은 나를 기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반 등급의 강제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비유우우웅신. 그것밖에 안 돼? 벌써 끝났어?(0/1)]

[세라핌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세라핌은 보상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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