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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49화 (740/1,590)

< 749화 끝으로 (8) >

눈에 보이는 것은 광활한 전장이었다. 북부 전체다. 북부 전체라고 할 수 있는 맵들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모든 것들이 화면 안에 비치는 한 명의 영웅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째서 명예추기경님께서 여신의 손거울을 꺼내 전장을 바라보고 계신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파란 길드마스터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지, 파란 길드원들은 어째서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들어본 적은 있다. 박 씨 아저씨, 아니, 이제는 박덕구 대장님이 술만 취하면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형님이랑 형씨랑 힘을 합치면 무적이라니까. 거,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다니까. 솔직히 나도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파바박 파바박 하고 우르르 쾅쾅 하고 콰득 콰직거리면 금방 해결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평소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귀담아듣지도 않았지만 저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아주 예전에 베니고어 넷에서 읽었던 게시물이 스쳐 지나간다.

유동닉이 게시한 글이었기 때문에 어그로성 게시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마저도 몇 분 만에 내려갔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게시글이었다.

‘뭐라고 했었지?’

공화국과의 전쟁 때 파란 길드마스터에 관한 이야기. 정확히 이야기하면 함께 그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였다.

‘명예추기경님이 파란 길드마스터 한 사람을 위해 전장을 사용한다고 했었나?’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리플이 달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대부분이 검증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허공에 치유 주문과 체력 회복 주문을 외웠더니 파란 길드마스터가 짠 나타났다든가. 엉뚱한 곳에 화살을 날렸더니 적 지휘관의 심장에 화살이 꽂혀 있다든가. 마치 기적을 간증한 것만 같은 게시글이었다.

물론 규모가 있는 길드들은 모두 컨트롤 타워를 가지고 있고 그들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소규모 전투나 대규모 전투 가리지 않고 그들은 여러 전투에 공헌하고 있었고, 실제로 유명한 길드들은 유능한 지휘부를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너무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대륙에서 모험가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 게시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자신 역시 대륙 우상화 작업의 일환이 아니라며 코웃음을 치지 않았던가.

“신기합니까?”

“아! 안 씨 아저… 아니, 부대장님. 죄, 죄송합니다.”

“질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하. 네. 뭐, 신기한 광경이기는 하죠. 제게도 익숙한 장면은 아니니까요. 부길드마스터의 저런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저도 처음입니다. 아마 덕구 씨도 그렇고 예리도 처음 보는 광경일 겁니다.”

‘알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두 분이서 무슨 일을 만들어낼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네?”

“두고 보시면 압니다.”

심지어 믿음직스럽다는 눈빛이다. 자신만 비정상인이 된 것 같지 않은가.

‘저게 도대체 뭔데.’

우스꽝스럽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도 아니다.

명예추기경님은 커다란 방패에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있고 박 씨 아저씨는 그 방패를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있다.

부대원 전체의 여신의 손거울이 서로 각각 다른 화면을 송출하고 있었고 마도학자 황정연 님께서 저 손거울을 공중에 띄우고 있다.

혹시 모를 적의 습격을 대비해 보호 마법과 방패로 둘러싸인 채로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중요한 화물이라도 옮기는 것 같다.

자신 역시 방패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저 광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작은 상황실, 화면이 빠르게 흘러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게 뭔데?’

자그마한 여신의 손거울 8개를 붙여서 만든 커다란 화면에 비치는 것은….

‘??’

단순히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었다.

차를 운전할 때 보이는 풍경, 혹은 기차를 타고 갈 때 보이는 풍경과도 같았다.

조금 달랐던 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이 뒤바뀌었다는 것, 너무나도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화면 때문인지 저게 뭔지도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저게 뭔지 눈치챌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롯이 그 옆에 보이는 화면 때문이었다.

미친 듯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한 사람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도.’

파란 길드마스터가 바라보고 있는 시야.

‘정말로?’

노을빛의 검사라고 불리는 김현성이 바라보고 있는 전장.

“아….”

놀라움에 입을 벌렸던 것도 잠시,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5중대. 힐러들 준비하세요. 현성 씨는 그대로 직진하시면 됩니다. 네임드 개체 위치와 움직이는 예상 동선 전부 보내드렸습니다.”

노을빛의 검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인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다.

잠깐 눈을 깜빡인 사이에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되어 있다. 마치 텔레포트 마법이라도 사용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옆에 보이는 3인칭 화면에서 파란 길드마스터의 몸이 빛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확인.

파란 길드마스터가 바라보고 있는 시야에 비친 것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5중대의 사제.

-말… 말도….

‘말도 안 돼….’

사제의 황당한 말이 여신의 거울에 들리기도 전에 노을빛의 검사는 몸을 움직인다.

게시글에서 봤던 상황이 뭔지 드디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게시물이 뭘 말하고 있었던 건지 드디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치솟아 오른 채로 검을 휘두른다.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악마들이 쏘아낸 빛이 파란 길드마스터를 노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위험한 거 아니야?’

하지만 노을 빛의 검사는 동요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미 몇 초 전에 무시해도 된다는 지령을 받았으니까.

명예추기경이 예상하고, 노을빛의 검사가 믿었던 것처럼 허공에 커다란 벽이 생성되기 시작.

악마가 쏘아낸 빛은 보호 마법에 막히고 노을빛의 검사는 다시 한번 전장을 빠져나간다.

이번에도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마법사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당연히 저런 표정을 짓게 되겠지. 저 마법사가 받은 지령은 시간에 맞춰 허공에 보호 마법을 깔아달라는 것뿐이었으니까.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망설임은 없다.

“24번 전진기지에 진입합니다.”

-특이 사항은….

“전진해요.”

-네, 알겠습니다. 확인.

사지로 몰아넣는 것만 같다.

‘이건 위험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술을 글로 배운 자신이 보기에도 24번 전진기지의 전황은 많이 기울어 보였으니까. 아니, 기운 정도가 아니라 천사들로 꽉 차 있는 것만 같다.

손거울로 보이는 화면의 시야가 흐려진 것은 바로 그때.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손거울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노을빛의 검사가 보고 있는 시점 역시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있지만 당장 3미터 앞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저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교국 8좌. 안개 소환사. 천관위.’

명예추기경님이 지시를 보낸 것이 틀림없으리라. 24번 전진기지 전체를 안개로 뒤덮은 그의 마법에 입을 벌렸던 것도 잠시. 더욱더 황당한 상황에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저 정도 규모의 마법에 캐스팅이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적어도 10분.’

아무리 빨라도 8분이 걸리는 캐스팅을 미리 외워두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그 말인즉슨….

‘알고 있었던 거야.’

명예추기경은 알고 있었다. 8분 전에 노을빛의 검사가 24번 전진기지에 진입할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30번 전진기지에서 24번 전진기지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정확히 8분이고 그 시간에 오차는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래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미래를 내다본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저게 가능하다고?’

만약에 미래를 보고 있지 않으면 저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의 모든 변수를 고려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판단을 내리고 지령을 내려? 저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을?

인간의 뇌로 그걸 계산하고 판단하는 게 가능해? 아니, 애초에 저렇게 움직이는 걸 눈으로 담을 수나 있는 거야? 정말로 미래를 보고 있는 거 아니야?

봐봐, 지금도….

“허공을…바라보고 있잖아….”

“원래 부길드마스터는 종종 허공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무엇을 보고계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뭘 바라보고 있겠어요. 안 씨 아저씨. 미래를 보고 있겠죠. 저거 봐요.’

“원거리 저격수. 준비. 지금 찍어 보낸 좌표에 화살.”

-네. 파란 부길드마스터. 오랜만이네요.

“지금 당장.”

-네.

‘저거 보라고요.’

같은 교국 8좌에 원거리 저격수 위란, 안개소환사 천관위로 함께 다완의 명성을 드 높인 모험가는 허공을 향해 화살을 뿌린다.

한 번에 백여 개가 넘는 빛줄기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쉬지 않고 안개 속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원거리 저격수는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결과는 곧바로 노을빛의 검사가 바라보고 있는 1인칭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의 바로 코앞에 있는 악마 하나의 머리가 화살에 내리꽂힌다. 옆에 있는 녀석도 마찬가지, 그 옆에 있는 악마 역시 마찬가지다.

안개에 가려 시야가 흐렸지만 화살로 인해 만들어진 빛줄기는 계속해서 비둘기들을 두드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저 화살은 노을빛의 검사를 노렸을 것이다. 조금만 더 포인트에 당도하는 속도가 빨랐다면 노을빛의 머리에 화살이 박혔을 것이다.

움직이는 것에 망설임은 없다. 아군과 적군이 만들어낸 화살 빗속에서도 노을빛의 검사는 끊임없이 안개를 뚫고 전진한다.

“…….”

-확인.

“…….”

-확인.

“…….”

-확인.

무섭지도 않은 건가. 정말로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걸까.

마침내 안개를 뚫고 온 노을 빛의 검사의 입에 미소가 걸려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살짝 옆을 바라보니 코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미친놈처럼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명예추기경님의 얼굴이 보인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지 않은가.

이 광활한 전장에서 미친 짓을 하는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꾸만 웃음을 참고 있는 것만 같은 명예추기경의 입가가 신경 쓰인다. 커다랗게 웃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만약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박 씨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웃어버릴 것만 같다.

“21번 전진기지. 진입.”

-확인.

‘전장의 5분의 1을 내질러서 달려왔어.’

어째서 북부 전체의 맵을 띄워놨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양! 준비해야지! 이제 신전 나갈 거라니까!”

“아… 네! 박 씨 아저씨.”

“방패 들어! 방패!”

“네… 넵!”

“방패 들어! 전진! 전진! 오른쪽에 적 마법, 오른쪽에 적 유탄! 마법사들 캐스팅 외우라니까!!”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그냥 전진해. 돼지 새끼!”

‘방금 명예 추기경님 목소리였나?’

-무슨 일 있었습니까? 기영 씨? 잠깐 통신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임무 수행하세요.”

-확인했습니다.

“마법 날아온단 말이요! 마법!”

“그냥 전진.”

허겁지겁 마법이 떨어지는 쪽과 명예추기경님이 계신 곳을 번갈아 봤지만 여전히 중얼거리기 여념이 없는 모습.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는 없어 보인다.

“형님이 그냥 전진하라고 합디다! 그냥 전진! 그냥 전진!”

‘뭐야. 뭐야? 진짜로? 저거 직격탄인데?’

“그냥 전진해! 전진! 망설이지 말고 전진합니다!”

‘안 씨 아저씨 정말로 그냥 전진해도 되는 거 맞아요?’

“전진해. 빨리. 뒤처지지 말고. 빨리. 전. 진.”

‘김예리 님 정말로요?’

“전진!”

명령이 들려오면 따를 뿐이다. 눈을 질끈 감고 달려봤지만 폭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천천히 눈을 뜨자 커다란 뿔을 달고 거대한 날개를 펼친 채 이쪽에 떨어진 공격을 막아선 노을빛의 검사의 뒷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기영 씨? 괜찮으십니….”

“다음.”

“네.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윽고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김현성과 이기영은 잠깐 눈을 마주쳤지만 이내 명예추기경님은 손거울을 바라보고 노을빛의 검사는 전장을 바라본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인간이 아니야.’

신에게 선택받은 무언가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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