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7화 알프스(2) >
‘들어가 봐야 하는 걸까?’
주제넘은 짓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들어가서 괜찮다고,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선뜻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내가 뭐라고….’
자신이 뭐라고 들어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있다고?’
어떻게 조혜진 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동시에 잃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도움이라도 받았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이지혜 님? 조혜진 님과 자주 시간을 보내던 그분 역시 며칠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보듬어 줘야만 한다고 느껴진다. 자신이 무슨 심리치료사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조혜진은 현재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나도 그랬잖아.’
그녀가 느낄 고통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흰둥이가 다가와 주지 않았다면….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니 꼬리를 흔들고 있는 흰둥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 일단 가 보는 거야.’
건방진 행동이다. 문을 똑똑 두드리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 잠깐.”
하지만 곧바로 문을 열어야 했다. 틀림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겠지.
다시 한번 평소와 같은 얼굴과 말투로 자신을 맞이할 것이다. 들어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일단은 빠르게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혜진 님?”
“…….”
“조혜진 님.”
흐트러진 모습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망가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황한 것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허벅지에서 흐르고 있는 혈액 때문이었다.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듯한 상처.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처 난 곳을 찌르고 또 찔렀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되지는 않으리라.
차마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참혹한 자상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 동안 정신이 멍해지기는 했지만 저게 어떤 상처인지에 대해서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자해.’
자해한 거야.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울음기 섞인 얼굴에는 당혹감이 감돈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이내 분노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사방을 옥죄어 오는 살기는 그녀가 대륙의 상위에 위치한 모험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었던 거대한 악의와 살기가 머리를 뒤흔든다.
“이게….”
“저… 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묻고 싶다. 하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황급히 상처를 가리는 모습을 보고서도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공포 때문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채워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래턱은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고 온몸이 땀으로 뒤덮인다. 저도 모르게 정신을 놔 버릴 것 같았던 그때였다.
왕!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몸을 옥죄는 살기와 마력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떨리던 몸이 진정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금 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무슨 용기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라면 할 수 없었던 한마디를 더 내뱉게 된다.
“조… 조혜진 님이야말로 뭐… 뭘 하시는 건가요?”
“…….”
“그… 그 상처는 뭔가요?”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겠어요….”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명령입니다.”
“나… 나가지 않을 거예요.”
“나가세요.”
“나가지 않을 거예요.”
“제기랄! 나가!”
“나가지….”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튕겨 나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등과 가슴에 통증이 있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제 말이 말 같지 않습니까. 분명히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한 손으로 자신을 깔아뭉갠 이후에 압박하고 있는 모습.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공감할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 자기혐오로 얼룩져 있는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지금….”
“다 괜찮을 거예요.”
“…….”
“전부 다 괜찮아질 거예요.”
뭐가 어떻게 괜찮아질 것인지, 정말로 상황이 이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필사적으로 내뱉고 있는 말이었지만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로 힘들 때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건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계속해서 입을 열어보자.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말을 걸어보자.
“전… 전부 다… 잘 될 거예요. 저는… 저는 길드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고 그… 실제로 조혜진 님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시는지, 얼마나 괴로울지도 모르고… 또 이 말이 지금 상황과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아질 거예요. 틀림없이 이겨내실 수 있으실 거예요.”
“괜찮지 않습니다.”
“…….”
“전혀… 전혀 괜찮지 않아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눈물을 닦는다. 살짝 몸을 일으킨 이후에 그녀를 꽉 안아주자 계속해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 제 탓이었습니다.”
“…….”
“아무것도… 아무것도 막지 못했… 히극… 못했… 끄윽… 아무것도… 나는….”
“…….”
“내… 내가….”
“…….”
“내가… 내가… 끄윽… 히끅… 이번에도… 멍청한… 둔하고… 병신 같은 년.”
목이 메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알… 알고 있었는데… 내가… 막을 수… 있… 있….”
“…….”
“내… 내가….”
“조혜진 님 탓이 아니에요.”
“머저리… 같은….”
“그렇게 혼자 자책하시고… 감당하실 필요 없어요. 그 누구도 조혜진 님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네. 분명히… 분명히 그럴 거예요. 자책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입을 열며 상처 부위에 천천히 포션을 문지르자 고통스러운 듯이 찡긋거리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치료가 되는 과정이지만 아마 쓰라릴 것이다.
그 감각이 조금이나마 그녀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살짝 위를 올려다보자 어정쩡하게 앉은 채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자해한다는 사실을 들킨 것도 부끄러울 것이고 엉엉 운 것도 부끄러울 것이다. 흥분해서 이쪽을 밀치고 압박한 것도 부끄럽겠지.
새파랗게 어린 신입 길드원에게 이렇게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울까.
감정에 휩쓸려서 이것저것 저지른 일들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져야 돼.’
“혼자…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더욱더 뻔뻔해져야 한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 줘야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줘야지.
“아니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붕대도 감아드릴게요. 흰둥이 때문에 익숙하거든요.”
“왕!”
“…….”
“…….”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사과드리고 싶은 걸요. 제… 제가 조금 무례했죠?”
“…….”
“그래도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고… 약하고… 또 길드에 적응도 잘 못해서 붕 떠 있지만… 그래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서…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서….”
“…….”
“제… 제가 길드에 입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처음… 면담했을 때. 길드 마스터가 이런 말씀을 해준 적이 있었거든요.”
“…….”
“힘이 들면 말하라고 하셨어요. 누구라도 좋으니 말하라고요. 좋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자매나 남매 같은 사람이 있으면 말하고 기대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짐이 줄어들 거라고, 몸도 가벼워지고 힘이 날 거라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거고… 무거운 짐을 드는 것도 즐거워질 거라고 이야기하셨어요. 물론 당연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 말씀하셨던 길드 마스터의 얼굴이… 너무 확신에 차 있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었어요.”
“…….”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고 무거운 걸 같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요. 비록… 비록 실수투성이에 멍청이이기는 하지만… 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조혜진 님이 느끼고 계실 고통을 덜 수 있게… 그러니까… 네. 그렇게 해도 될까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건방진 소리 하지 말라며 핀잔이 오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아주 천천히,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긍정에 표현인 거겠지? 저거 긍정 맞는 거지?
저도 모르게 웃게 된다. 조금이나마 힘이 된 것 같은 안도감에 눈에서 괜스레 눈물이 차올랐다. 긴장이 풀린 건지 모르겠지만 몸에 힘에 다 빠지는 것 같다.
붕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민망해 재빨리 눈물을 닦았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네… 네?”
“함께 가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요.”
“물론이에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
“…….”
“길드마스터가 계신 곳으로.”
“…….”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잠깐 동안 침묵했을 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마스터가 살아계실지도 모릅니다.”
“…….”
“살릴 수 있을지, 정말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길드마스터를 치료 중입니다. 당신도 잘 아는 사람이 말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기쁜 소식이기도 했다. 길드 마스터가 살아계시고 치료 중이라고 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라파엘.”
“아.”
“라파엘입니다.”
베니고어 가라사대, 대륙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성스러운 검을 그 손에 쥐고 거짓된 천사를 연기하는 악마들의 어둠에 대항할 것이라 하시니, 그는 노을빛의 검을 휘두르는 영웅의 왼편에 서, 인류를 어둠에서 구하는 것에 이바지할 것이라 하셨노라.
“예언.”
읽어본 적이 있는 구절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