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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78화 (669/1,590)

# 678

회귀자 사용설명서 678화

드래곤(3)

“키엑! 키에에에엑! 헥헥헥!”

꼬리를 한 번 흔들 때마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진동이 느껴졌다.

이전에 한번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항상 인간형으로 지내다 보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똘똘이의 모습은 딱 호랑이 정도의 크기. 코끼리보다 더 커다란 듯한 모습을 보니 당황스럽다.

커다랗고 똘망똘망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반가웠던 모양이다.

계속 안기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만, 본인의 커다란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애초에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안아줄 수 있을까.

“너무 흥분해서 본 모습이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디아루리아, 집중해야지.”

“헥헥! 헥! 키에에에엑! 헥헥!”

내 몸보다 커다란 혓바닥이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모습에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만나지 못한 시간 대부분은 수면기였으니까.’

“디아루리아, 디아루리아?”

깜짝 놀라 어버버거리는 엘레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지만, 시선을 빼앗는 쪽은 인간형으로 변하고 있는 디아루리아.

곧바로 꽈악 안기는 게 느껴졌다.

“아빠! 아빠!”

“오이구! 우리 디아루리아. 그동안 잘 지냈지?”

“응, 응, 응!”

매미가 나무에 달라붙어 있듯 매달려 있는 모습. 그 뒤로 디아루기아가 막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오는 게 눈에 보였다.

“수면기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보러 가지 못해서 미안해, 루리아.”

“아니야, 이해할 수 있어요. 엄마도 아빠가 매일 바쁘다고 했으니까.”

“동생이랑은 잘 지냈지?”

“응!”

막스와 처음 만났을 때 몸통박치기를 꽂았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전처럼 몸통박치기를 꽂는다면 아마 갈비뼈가 부서지지 않을까.

아직도 디아루기아의 손을 잡고 있는 막스의 표정이 정상인 것을 보니, 이제 몸통박치기는 완전히 끊은 모양이다.

기벽은 그대로 인 것 같았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 같다.

디아루기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예전과는 다르게, 그녀의 포지션을 인정하는 느낌.

“아빠 무거우시잖니.”

“…….”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 건 여전했다.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매달려 있으니, 서서히 숨이 차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디아루기아가 손을 뻗어 그녀를 떼어냈다.

“많이 컸네, 우리 루리아.”

“응, 그래도 엄마만큼 커지려면 한참이나 걸린대요. 나도 빨리 컸으면 좋겠다.”

“금방 클 수 있지 않을까. 학교는 잘 다니고 있고? 이제 막 다시 다니기 시작했지?”

그녀의 질문에 답한 건 디아루기아 였다.

“1년이나 자고 있었는데, 다시 재입학하자마자 진도도 금방 따라잡았지 뭡니까? 특히 체육 쪽이나 기본전투 같은 과목은 곧바로….”

‘쟤, 드래곤인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최상위 모험가 정도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전투 능력으로만 따지면 상위에 발을 들였을 거다.

똘똘이와 수업하는 꼬맹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보다 우리 똘똘이가 더 강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디아루기아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게다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당연하겠지, 용인데.’

“물론 똑똑하기는 막스가 더 똑똑하지만.”

‘그래도 차별 대우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기본적으로 디아루기아가 막스를 바라보는 눈에 애정이 담겨 있다. 막스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자기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말 안 듣고 자신만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는 똘똘이와는 다르게 막스는 말 잘 듣는 자식의 정석이다.

디아루기아의 속을 썩인 일이 한 번도 없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오히려 고통받는 디아루기아를 위로해 주고, 지지해 주지 않았을까.

“이제 뭐 하면 돼요, 아빠?”

‘아니, 그렇게 말하면 괜히 미안하잖아. 필요할 때만 부르는 것 같자너….’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대륙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아빠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도 알아요.”

‘많이 컸구나, 똘똘아, 진짜.’

나뿐만이 아니라 디아루기아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애가 언제 이렇게 생각이 깊어졌을까 하는 듯한 표정.

솔직히 대본 쓰고 적당히 연기하려고 했지만, 약간은 생각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우리 디아루리아가 어떻게 잘 지내는지 보려고 불렀지. 일단 밖으로 나갈까? 막스도 같이 나가자.”

살짝 엘레나에게 눈짓하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뭘 어떻게 해요. 애들 뛰노는 거나 찍으려는 건데.”

“…….”

“그럼 뭐, 역병드래곤이라도 하자는 줄 알았어요?”

정말로 역병드래곤이라도 시킬 줄 알았던 모양이다.

경험자의 연기 팁을 전수해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디아루기아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이종족 꼬마들 몇 명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오히려 똘똘이한테는 더욱더 잘된 일이다.

그녀가 드래곤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성숙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인 성장이 빠르기는 하지만 아직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디아루기아와 함께 앉아 있자, 엘레나가 디아루기아에게 아이들을 소개해 주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당연하지만 엘프, 드워프는 사뭇 긴장한 얼굴, 특히나 드워프 꼬마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다른 소수종족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두려움과 어색함이 공존하는 얼굴이었고, 심지어 디아루리아는 심드렁했다.

눈앞에 있는 또래보다는 나와 함께 있고 싶은지, 자꾸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도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자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나쁘지 않네. 솔직히 보기 좋아 보여.’

대충 봐도 그림이 되지 않는가. 이종족 아이들이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어색함이 가시고 있다.

물론 본능적으로 디아루리아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순수한 꼬맹이들은 이내 하나가 되어, 재미있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똘똘이는 ‘유치하다, 하등한 놈들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막상 뛰어노니 신나는지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막스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디아루리아도 디아루리아였지만, 매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막스의 새로운 모습에, 나도 저 꼬맹이들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졌다.

“디아루리아랑 막스가 처음 만난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네요.”

디아루기아의 한줄 평도 나쁘지 않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꽤나 감격한 듯했다.

“이게….”

“네?”

“이게 명예추기경님이 바라시는 세상이었군요.”

엘레나의 평 역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기영 님께서 바라시는 세상이었어요.”

“…….”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희 엘프 중에서는 인간들을 믿지 못하는 이가 많아요. 대륙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과거의 상처들과 서로 대립했던 시간, 그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네, 그럴 수밖에 없겠죠.”

“정말로 인간과 이종족들이 화합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이들도 있고요.”

“그것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그래요. 물론 이기영 님이나 파란 길드 분들이 좋으신 분들이라는 건 알고… 인간 중에서도 바른 생각을 품은 이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여전히 더럽혀진 영혼을 가진 이들 역시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안 좋은 생각들도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날아가는 것 같네요.”

“…….”

“이기영 님이 정말로 원했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이기영 님이 뭘 지키고 싶었던 건지, 이기영 님께서 그리는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 아마 모두가 이해할 겁니다.”

“…….”

심지어 디아루기아마저 새삼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확고하게 나를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디아루기아의 썩어버린 마음마저 정화할 정도의 광경.

다른 게 정화가 아니다. 이 아이들이 뛰어노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 어떤 쓰레기라도 예전의 그 순수했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 똘똘이는 용 폼까지 선보이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솔직히 저 폼으로 놀아 주기를 더욱더 바라고 있기는 했다.

‘친구들한테는 진실된 모습을 보여줘야지.’

당연히 깜짝 놀란 꼬맹이들이 다시금 경계하거나 울음을 터뜨렸지만, 다시 한번 적응 기간을 거친 이후에는 디아루기아의 등이나 꼬리에 타서 함께 노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나 꼬리를 이용해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다.

드워프 꼬마는 미끄럼틀 타기는 무서운지 발에 꼭 달라붙어 있었지만, 저것만으로도 경계심이 허물어졌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다.

“아이들 배고프겠네요. 식사준비라도 해야겠습니다.”

“저도 같이 갈게요, 디아루기아 님.”

“저도 같이 갑시다.”

“아니요. 아이들을 볼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솔직히 움직이기 싫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왜 이렇게 표정이 따뜻해, 디아루기아.’

인연을 맺은 이래로 가장 따뜻한 얼굴이 적응되지 않는다. 아마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엘레나가 이빨을 잘 털어준 덕분이다. 즐거워하는 똘똘이를 보며 이게 똘똘이가 자랄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솔직히 나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한다. 굳이 아이들이 자라게 한다면 이런 환경이 좋다. 아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드래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초 대륙에 퍼져 있는 용들 역시 엘프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대륙을 수호하고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였으나 인간들에게 배신당했다.

용 사냥도 용 사냥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그들을 실망하게 한 것은 인간 그 자체였을 거다.

지구의 암은 인간이라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들의 눈에도 대륙의 인간들이 암처럼 비치지 않았을까.

인간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화합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든 드래곤들이 이 장면을 봤으면 좋겠다.

거짓 하나 없는 투명한 진심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흙투성이가 된 꼬맹이들의 모습, 막 아들이 가장 재미있게 논 것 같다.

디아루리아까지 인간 형태로 되돌아와서는 이쪽으로 뛰어온다. 아마도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친구를 소개해 준다거나 뭐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하려는 거겠지.

내 안에 있는 순수한 마음이 자극됐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빛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한다.

아이들의 눈 때문인지 자꾸만 참으려고 해도 날개가 튀어나오려고 한다.

진짜 하늘에 맹세컨대 좋은 그림을 노린 것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조금은 노렸지만, 여기서 대놓고 노렸다고 하면 너무 쓰레기 같으니까….

10장의 찬란한 날개가 나오는 것은 내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는 걸로 하자.

“우와아아아아아!”

“우와….”

“아빠! 아빠… 너무 예쁘다. 너무 예뻐… 아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대륙의 미래를 향해 날개를 뻗었다. 본인들이 흙투성이라는 걸 깨달았을까.

너무나 깨끗한 빛의 날개에 손을 대기 힘들어 보였지만, 나는 이종족 아이들을 꽉 감싸 안았다.

‘대륙의 미래,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기대에 부응하듯.

광고를 본 드래곤 고기방패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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