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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72화 (663/1,590)

# 672

회귀자 사용설명서 672화

한소라 데뷔(2)

“이기영 님,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주셔서 기쁘기 그지없네요.”

“저도 오랜만에 희영 씨를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편안한 느낌도 들고요. 다들 길드에 보이지 않던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요즘에는 일이 끝난 후에 곧바로 덕구 씨, 예리 씨, 기모 씨 그리고 정연 씨와 창렬 씨까지 함께 훈련하고 있습니다. 엘레나 씨도 마찬가지고요. 전술훈련을 한다고 들었는데, 덕구 씨에게 제안받았다더군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이 돼지 새끼… 또 쓸데없는 짓 하네.’

“아영 씨는 이기영 님께서 주문하신 방패와 방어구를 만들고 계신 것 같고… 좀처럼 작업장에서 나오지 않아서… 저도 얼굴을 본 지 오래됐네요. 기영 님은 잘 지내셨나요? 평소보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몸은 조금 괜찮아지셨나요?”

“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체력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 건강에 다른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모두가 힘든 상황이니까요. 이제 16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열심히 준비해야죠. 슬슬 대륙에 발표해야 할 시기도 다가오고 있고, 전술도 가다듬고, 준비하는 일 대부분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니…. 사실 저보다는 희영 씨가 더 걱정됩니다. 개인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시면서 길드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현성씨 도 길드 일을 완전히 놓아버렸고, 김미영 팀장님도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고요. 이상희 님께서 도와주신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길드 업무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 아닌가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현재 저에게 주어진 일이니, 제 대답도 이기영 님과 같네요. 시간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기영 님이 더욱더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에 와서는 조금 작아지는 목소리, 이유는 모르겠지만, 끝말을 얼버무리는 게 느껴졌다.

긴 머리에 차분한 사제복을 입고 있은 여전했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확실히 분위기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 만에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다.

특히나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건 무척 오랜만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으니까.’

그럴 시간조차 없다. 그녀는 길드 일 때문에 바빴고, 나 역시 위원회의 일 때문에 바빴다.

공적인 일로 통화나 메시지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따로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조혜진은 그나마 호위 명목으로 함께 놀기도 했지만, 선희영과 나는….

‘포지션이 꽤 겹치지.’

한 곳에 때려 넣으면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정하얀만큼은 아니지만 내게 꽤 의지하는 선희영에게 미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얘가 사고라도 치고 생떼라도 부렸으면,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얼굴을 비쳤겠지만, 선희영은 혼자서도 잘하는 타입이었다.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믿고 내버려 둘 수 있는 인재였다. 본인 일을 기가 막히게 잘 찾기도 했고, 심지어 그 일을 모나지 않는 선에서 완벽하게 처리하기도 했다.

김현성, 조혜진, 심지어는 김미영 팀장까지 실무에서 벗어난 지금 파란 길드는 선희영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행정지휘 쪽은 조혜진보다 나은 느낌. 김현성과는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것도 조금 그래.’

어느 정도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맞다.

“차는 어떤 거로 드시겠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이기영 님.”

“아니요. 오늘은 제가 타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별건 아닙니다만, 항상 제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그… 렇지 않습니다.”

‘오늘은 내가 서비스해 줄게. 그냥 앉아 있어, 누나. 내가 다 알아서 할게.’

“편안히 앉아 계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아니요. 편하게 앉아 계세요. 제가 예전에 정원에서 가꾼 식물형 촉매 중에 피로 회복에 좋은 촉매가 있어서 차로 만들어봤었거든요. 피로 회복 마법보다는 효과가 좋다고 할 수 없겠지만 아마 조금은 피로가 풀릴 겁니다.”

“…….”

“…….”

“향이 좋네요….”

향을 맡은 뒤에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보니, 확실히 기분이 좋기는 한 모양이다.

극도의 친절함으로 무장한 내 행동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건 선희영이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당연하지만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는 호감이 들어서 있다. 본래부터 그랬던 것 같았지만, 오늘따라 조금 더 기분이 좋아 보인다.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긋나긋한 얼굴로 친절하게 웃으며 접대 아닌 접대를 해주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알프스는 조금 어떻습니까?”

“훈련에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인선에 투입해야 하는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본인이 열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덕구 씨가 주최하는 훈련에도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고요.”

“희영 씨를 많이 따른다고 들었었는데, 아마 희영 씨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네요. 누구에게나 다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하시니….”

“아니요. 그렇지는….”

이런 대화도 조금씩 해주고. 당연하지만 신학이나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녀 역시 사제였고, 나와는 은근히 취미도 비슷했으니까.

물론 와인을 좋아하거나 체스를 잘 두는 건 아니지만, 그걸 제외한 다른 쪽으로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게 누군지 묻는다면 단연 선희영 쪽이었다.

지혜 누나도 있지만 이 누나는 일 중독이라 만나면 필연적으로 일 이야기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바젤 교황님께서 집필하신….”

“네, 저도 읽어봤습니다. 아!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오신다고 하셔서… 몇 달 전에 던전에서 발견된 고서라고… 이기영 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서 챙겨왔습니다.”

“우연이네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물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무한의 가방에 있는 서적을 꺼내자, 선희영의 얼굴이 금방 풀어진다.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갔다. 솔직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괜찮은 시간이었다.

아마 그녀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지 않을까. 선희영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 듯한 모양새,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마치 김현성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고백하기 직전과 같은 얼굴.

선희영 얘도 갑자기 회귀자라고 고백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저…….”

“네?”

“…….”

“…….”

‘분위기 왜 이래.’

조금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장내가 침묵에 잠겼지만 이내 선희영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나중에… 일이 끝난 다음에 말씀드리고 싶은 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니요. 지금은 그럴 말씀을 드릴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 안 그래도 머리 아프실 것 같고….”

“그럼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겠군요.”

“자, 자리는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

“…….”

“그… 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바쁘신데 제가 너무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본래는 길드의 상태가 어떤지 보러 왔습니다만, 이미 희영 씨에게 여러 가지로 전부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마침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습니다. 희영 씨 덕분에 푹 쉴 수 있었어요. 마음 놓고 차를 마시고 떠든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인데… 일이 끝난 뒤에는… 정말로 이런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그래, 시바. 노후는 이렇게 보내야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희영 씨.”

“그, 그러고 보니 따로 부탁하실 일이 있다고… 했었는데… 제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 본론이네.’

“혹시 라파엘의 상태 때문인가요?”

‘솔직히 걔는 생명 유지 장치 뗄 때도 됐어. 못 일어나, 못 일어날 거라고.’

선희영을 비롯해 길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사실 여기까지 온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침 자리도 슬슬 마무리되는 시점,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했던 내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지 그녀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왔다.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오신 건지 물어도 될까요?”

“별건 아닙니다만….”

“네.”

“디버프 좀 걸어주셨으면 해서요….”

“네?”

“저랑.”

“…….”

“소라 씨에게 각각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크게 심각하게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디버프가 찝찝하시다면 버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실험해 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실 테지만 희영 씨는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으시잖아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실 것 같은데….”

“아.”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시는데, 아니, 완벽히 자리 잡은 건가요?”

“네, 보고드린 대로 아직 몸속에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신성력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힘이기는 하지만 뭔가 이상이 있는지.”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희영 씨의 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다른 부작용이 없다는 것도 맞아요. 정말로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연구할 수 있으면 연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큰 뜻이 있는 게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 여기 포션 병에다가도 부탁드립니다. 제가 꺼내놓은 물품에 전부 부탁드려요.”

“물론입니다. 제가 도움된다면 당연히.”

“연구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말씀드릴게요.”

“네, 그런데 소라 씨는 어디… 하얀 씨랑 같이 살고 있지 않았나요?”

“아니요. 최근에는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어서… 아마 곧 올 겁니다.”

괜스레 침묵이 길다.

“그거… 괜찮은 건가요?”

‘아니, 별로 안 괜찮아 보여.’

선희영마저 정하얀이 괜찮은 건지 묻는 걸 보면, 한소라가 정하얀의 억제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게 나뿐만이 아닌 모양인 것 같았다.

‘하긴 그럴 만하지.’

정하얀과 한소라는 마탑에서, 선희영은 길드에서 지내기는 했지만 린델이라는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정하얀이 많은 부분을 한소라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나 보군요.”

선희영이 문을 열자, 한소라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불안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감돈 것은 당연지사.

꿈에도 그리던 전출을 얻은 사람치고는 편안한 얼굴은 아니었다.

“오랜만이에요, 선희영 님.”

“네, 오랜만이네요, 소라 씨. 일단… 앉으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조금… 네, 잘 지냈어요.”

“하얀 씨도 잘 지내나요?”

당연하지만 한소라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곳에 위치한 장소는 정하얀이 지내고 있는 거처.

-…….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는 정하얀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 순간 한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내시겠죠? 네, 잘 지내실 거예요.”

-흐으윽, 끄으으윽, 끄윽….

‘아니, 잘 못 지내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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