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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66화 (657/1,590)

# 666

회귀자 사용설명서 666화

벽 넘기(2)

“그다지,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거 아니요?”

‘중요한 일은 중요한 일이지.’

“훈련 문제 때문에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 희라 누나한테서 요청이 왔었거든”

“그렇구만, 그럼 현성이 형씨도 훈련 때문에 바쁜 거요?”

박덕구의 말에 대답한 것은 김예리였다.

이때다 싶어 냉큼 대답하는 모습, 그나마 이 중에서는 김현성을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응, 엄청 바빠. 사람들 별로 만나지도 않고,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연락해도 잘 안 받는 중.”

‘그래? 잘 받던데.’

아무래도 김예리의 연락만 잘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구만….”

박덕구가 뭔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상한 데서 눈치가 빠른 만큼, 상륙 작전이 전부 다 개구라였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말을 이어오는 모습에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거, 형님.”

“응?”

“나는 훈련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은 거요?”

“따로 훈련하고 있잖아.”

“아니, 그런 거 말고 뭐 특별 훈련 이런 거 말이요. 대충 분위기를 보니까 대륙에서 내놓으라는 사람들은 전부 다 맡은 역할이 있고,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 나도 형님 참관하에 특별훈련…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글쎄….”

“차희라, 그 사람도 그렇고, 하얀이 누님도 그렇고, 현성이 형씨도… 심지어 혜진 누님도 뭔가 벽을 깨부수는 훈련을 하는 거 아니요. 다들 무슨 임무를 할당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 형님이 내게 준 임무도 사실 보통 일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중요하면 중요했지, 부족하지는 않은 거 아니요.”

“…….”

“나도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하는 것 같은데….”

‘입에 묻은 음식부터 좀 닦고 이야기해.’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덕구야. 벽을 부순다는 게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소수의 인간이나 그런 방법으로 강해질 수 있는 거지. 내가 보기에 너는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준비하는 게 맞아. 남들이 뛰어간다고 해도 뛸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형님 말도 맞지만… 그래도 형님이 봐주면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니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효율이 낮지.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오르는 폭이 크지는 않을 거고….

박덕구한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녀석은 성장 한계치 맥스를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별 방법으로 녀석을 강화해 겨우 이 정도로 올려놓기는 했지만 녀석은 어쩔 수 없는 일반인이었다.

조금 관리해 줬다고 벽을 뚫을 정도였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33일밖에 안 남은 거니까.’

굳이 시간을 쓴다면 차희라와 정하얀 쪽에 들이붓는 게 더 옳다.

얘네 같은 경우에는 벽을 한 번 뚫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니까.

“너는 지금도 충분히 강해.”

“부길드마스터의 말씀이 맞습니다. 예리 씨와 대련해도 요즘에는….”

“헛소리. 내가 더 세. 덕구 아저씨 공격은 스치지도 않아.”

“그렇다고 해도 쉽게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들어간다고 해도 두꺼운 내구를 뚫기 힘들고… 1년 전에 비교한다면 무척 많이 성장했습니다.”

“거, 기모 형씨한테 많이 배웠으니까 그렇지.”

“저야말로 덕구 씨한테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안기모, 쟤는 원래 붉은 용병 소속이었지.’

확실히 둘이 함께 다닌 경험이 녀석을 성장시킨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도 노력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 보고 싶다니까.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해 주쇼. 아니면 상륙 작전이나 연습하는 게 좋을까.”

아무래도 이쪽에서 액션을 취하기 전까지는 쉽게 물러설 것 같지가 않다.

녀석을 슬쩍 바라보자 본인도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에는 슬쩍 무한의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육체의 성장보다는 그나마 이쪽을 집어넣는 게 녀석에게 이로울 것이다.

“그냥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괜찮아. 육체의 성장 말고 이쪽을 공부하는 쪽이 더 괜찮을 거다.”

“아, 저도 읽어본 적 있는 책이로군요.”

[파티플레이의 기본]

[전투이론 초급편]

[전투이론 중급편]

[기초전술의 이해]

‘이해도를 높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야.’

전술 능력 최하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 않은가.

이유야 어찌 됐든 녀석이 현장지휘를 할 순간이 올 거라는 건 거의 확실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낭비하는 동선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고 판단 능력이 더 빨라지는 것만으로도 녀석은 반 발자국 정도 더 올라갈 수 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해도도 올라갈 테니 전술적인 선택지로 길어질 테고….

유일한 문제는 녀석이 이걸 받아들일까에 대한 것.

아마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곧바로 책을 덮어버리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박덕구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마 이 선물도 껄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왠지 예상되는 반응에 슬쩍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어, 생각보다 좋아하네.’

의외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안기모가 슬쩍 손을 뻗으려고 하자 허겁지겁 내가 넘긴 책들을 품에 꼭 안는다.

“그렇지, 공부해야지, 아암.”

“…….”

“안 그래도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니까. 만약 상황이 터지면 모두가 정신이 없을 테니까. 음, 음.”

‘너무 좋아하니까 또 미안해지네.’

대충 툭 던져준 거에 저런 반응을 보여줄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반응하지 않고 있던 양심 세포에 조금씩 통증이 온다. 마치 대륙의 미래가 자신에게 걸렸다는 얼굴이지 않은가.

“물론 기초 훈련도 빼먹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 한 달 안에 네 권을 꼭 다 읽는 거야. 내가 한 번 읽었던 거니까.”

“아, 형님이 읽었던 거였구만! 거, 밑줄 같은 것도 쳐져 있고 그런 거 아니요?”

“아마 쳐져 있을걸. 그건 네가 알아서 확인해 보고… 나는 이만 일어나야겠다.”

“왜? 조금 더 있다 가지.”

“할 일이 있으니까.”

“…….”

“왜?”

“거, 30일 안에 볼 수는 있는 거요? 아무리 그래도 다 같이 한 번 모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나면 자리 한번 마련해 볼게.”

“자리를 마련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무조건 한 번 뭉쳐야 한다니까. 거, 추진은 내가 해볼 테니까 잠깐이라도 시간 비워놓으쇼. 떨어진 지 너무 오래돼서 몇몇 사람들 얼굴은 까먹을 지경이요. 길드도 전부 정비 문제로 바꾸고… 이렇게 이상한 곳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헤쳐 나가고 인연을 만든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최소한 얼굴은 봐야지. 형님 말대로라면 대륙 최대의 위기가 아니요.”

“알겠다. 내가 한번 만들어볼게.”

“정말이요? 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다 같이 한 번 봤으면 좋겠다니까.”

“물론. 네 말이 맞아. 필요한 일이지.”

망원경으로 전부 볼 수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만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도 했으니까.

큰 전투를 앞에 둔 만큼 길드원들을 한 번씩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쌓여 있는 일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면 모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테고, 다 같이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은 박덕구의 표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예전처럼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이 새끼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니까. 아마 파란 길드 내에서도 정이 제일 많은 사람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녀석을 기용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누구 하나라도 다친다면 본인 탓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고,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멘탈이 바닥 끝까지 떨어져 버릴 것이다.

그게 전투의 영향을 끼친다는 건 너무 자명한 일이고, 결국에는 본인까지 갉아먹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파란 파티뿐만이 아니더라도, 녀석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외면할 수 있을까.

사대 천사 중 하나가 다른 모험가들에게 총구를 내밀었을 때 그걸 무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단언컨대 박덕구는 무시하지 못할 거다. 저도 모르게 뛰쳐나가 전열을 흐트러지게 하는 장면이 예상이 간다.

‘맞아, 스펙이나 확률 이전의 문제야.’

중심에 서는 사람은 냉정해야 했고 박덕구는 냉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새끼는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괜스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한 번 두드린 후에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는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헤어지기 싫다는 게 팍팍 느껴졌지만, 이쪽도 이곳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는 없다. 아까 이지혜의 말처럼 차희라와 정하얀의 일도 급했으니 말이다.

결국에 남은 시간은 조금 더 두 명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 명 모두 좀처럼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으니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하는 건 마음의 눈으로 대충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현 상황에 마음에 드는 스펙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단번에 고개를 저을 수 있다.

그만큼 시간이 부족했으니, 널뛰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이번 일의 취지라 할 수 있으리라.

먼저 제안한 것은 내가 아닌 차희라 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거울이 울리는 게 느껴진다.

[자기, 최대한 빨리 안 돼?]

[왜 지금 해야 할 것 같아?]

[글세, 그건 해봐야 알 것 같은데… 시원하게 치고받고 싸우면 머리가 조금 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근처에 있는 숲에 들어가 봤지만 영 아니올시다고… 말했잖아. 그나마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랑 붙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자기는 어때. 걔는 결국 빼기로 마음먹은 거야?]

[일단은… 뭐. 그래도 완전히 쳐낸 건 아니야. 두고 보다가,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던지기는 해봐야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또. 그래서 시간은 언제야?]

[얼마 안 걸릴 거야. 준비할 시간은 있어야 하니까.]

[조금 더 빨리하면 안 되나? 몸이 조금 찌뿌둥한데…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 더 오래 날뛰게 되는 듯한 느낌이라 조금 짜증 나. 최근 들어서는 제어하는 연습을 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네. 그런데 왜 김현성이 아니라 정하얀이야?]

[현성이는 따로 할 일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얀이가 문제를 조금 겪고 있거든….]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모양이네.]

[응.]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조금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뭐,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솔직히 지금도 꾸준히 성장해 주고 있고, 굳이 이런 과정이 필요한지 나도 의문이지만… 아무래도 확실한 게 좋으니까. 스펙상으로는 위에 있을걸? 누나보다 강할지도 몰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아니, 누나가 꼭 이겨줘야 돼.]

[그걸로 될지 모르겠네. 우리 세컨드가 나한테 깨진다고 분해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물론 충격을 먹기는 하겠지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아니야. 누나한테 지는 게 아니지.]

[무슨 소리야?]

[하얀이는 박미진이라는 마법사에게 지게 될 거야. 모의 전투 훈련에서 누나가 신예 마법사 박미진에게 깨졌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아마 누나보다 하얀이가 더 기다리고 있을걸.]

[…….]

대충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느낌의 메시지였다.

[재미있겠네.]

‘아니, 누나…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괴수 대격돌을 내 손으로 직접 실행시키게 될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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