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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64화 (655/1,590)

# 664

회귀자 사용설명서 664화

승리할 확률(6)

‘생각보다 쓸 만할걸.’

이틀 정도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차희라의 의견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혼자서도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 파란 길드는 뒀다 뭐 할 거야? 김현성, 조혜진, 정하얀 그리고 자기가 빠진다고 해서 파티가 무너지는 게 아니야. 자기 눈에는 걔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그놈을 제법 괜찮다고 평가하거든… 탱커라는 타이틀 달고 내 주먹 몇 방 버티지 못하는 놈들이 대다수야. 붉은 용병에서도 찾기 힘들다니까. 그놈은 최소한 한 방에 뒈지지는 않잖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진작에 성장이 멈춘 줄 알았던 박덕구의 내구 수치는 이미 대륙 탑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27군단 사태 때도 도노반을 상대로 시간을 끈 것을 보면, 맞으면서 버티는 것에는 도가 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껏해야 최약체 도노반을 상대했다고 해서 사대 천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애초에 도노반이 처음부터 진심 펀치를 휘둘렀다면 박덕구는 옛날 옛적에 피떡이 됐을 것이다.

그놈의 입장에서 박덕구와의 결전은 잠깐의 여흥에 불과했을 테니까. 막말로 전력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스탯이 받쳐주지 않은 돼지는 두드려 맞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처맞다가 뒈지라고 녀석을 무대 위에 세울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럼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건데? 어디에 쓰면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싸고도는 것도 안 좋아. 걔가 조금 모자란 것처럼 행동하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파티의 중심은 탱커야. 그놈은 충분히 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약속의 1년이 지나고 난 이후에도 성장한 것은 스탯뿐이다.

사기의 외침 같은 특성을 이끌어낸 것을 보면 녀석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5년 이후라면 써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차희라는 파란 파티를 과대평가하고 있지만 사실 파란 파티가 가진 위상은 앞의 김현성과 정하얀, 조혜진에게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무력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하얀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김현성과 조혜진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력과 별개로 파티를 이끌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무력이 달리기는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 뭔가 하나씩 나사가 빠진 듯한 파란 파티의 능력을 수십 계단이나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건 간부급들의 개인 능력 덕분이다.

그나마 선희영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위 3명이 없을 때의 대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의 장점은 지휘가 아닌 다른 곳에 있고, 본인 역시 그 사실을 아주 잘 자각하고 있다.

‘혹시 그치들에게 따로 미션을 하달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불안해하는 건 아니지? 자기가 따로 봐주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누나가 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상식적으로 누나가 나보다 더 잘 알겠어? 돼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만약 박덕구를 정말로 사대 천사를 잡는 패로 사용한다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조혜진이라도 집어넣어야 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처맞기만 할 줄 아는 돼지를 메인으로 내세웠으니 이 돼지에게 신성력을 뿌려주는 사제의 존재로 필수적이겠지.

한 구역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엘레나와 선희영 둘 중 하나를 녀석에게 고정으로 박아 넣어야 한다.

제대로 검도 휘두를지도 모르니 김예리도 꽂아 넣어야 하고, 보조 탱커와 예비 사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안기모도 넣어야 하고….

이렇게 셋팅 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승리를 점칠 수가 없으니 이득보다는 손해가 많다고 느껴졌다.

‘자기가 과보호하고 있는 거야.’

“과보호는 개뿔. 누구 말이 맞는지 보자고.”

의자에 앉아 데이터를 천천히 입력해 보자.

리무르아나 도노반이 가진 스탯을 상향 조정하고 박덕구, 김예리, 안기모, 엘레나, 김창렬을 포함한 5인 파티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한다.

전술 능력은 최하로 고정하고 위기대응 능력도 최하로 고정해야지.

신성력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도노반과 리무르아와는 다르게 이 천사는 그런 약점도 없으니, 엘레나의 기본 능력치는 상대적으로 하향시키는 게 맞다.

“전쟁은 혼자 해? 주변에 다른 변수들도 고려해 봐야지.”

여신의 거울에서 전투가 재생된다.

도노반이 곧바로 도끼를 휘두르자 역시나 박덕구는 버티지 못하….

“어. 버티네.”

버티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버프빨이자너, 시바.”

가상 엘레나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버프를 밀어 넣었다.

애초에 첫 일격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가정했다.

문제는 지구력, 박덕구의 체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형편없는 마력 수치가 고갈된다면 곧바로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아마 이제 곧….

‘나쁘지는 않네.’

나쁘지는 않다. 심지어 박덕구가 외치는 사기의 외침이 주변의 변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로 보이는 아군 병력은 틀림없이 적군 병력을 밀어내고 있었다.

여신의 거울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살펴본 것이 당연했다. 아니면 내가 데이터를 잘못 입력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 입력한 것도 아닌가.’

전투가 시작되고 약 두 시간이 지난 시점, 아직은 균형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결국에는 가상 도노반이 가상 박덕구의 뚝배기를 깨버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시바.”

‘아니, 그래도 두 시간이면 꽤 잘 버틴 거 아닌가?’

“겨우 두 시간 버틴 거지, 뭘 잘 버텨?”

딱 기본형과 상대하게 했으니 이 정도로 무난하게 버틴 거지, 조금 귀찮은 타입이랑 상대하게 했으면 10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 비둘기가 어떤 능력과 특성을 갖췄을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 않은가.

김현성과 1회 차 성검 용사가 상대했던 녀석들의 경우는 논외, 박덕구가 상대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한쪽 손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녀석의 스펙과 특징을 입력하자 역시나 1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전술 능력 최하와 위기대응 능력 최하가 박덕구 파티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바꾸면 어떻게 되지?’

호기심에 전술 능력과 위기 대응 능력 수치를 최상으로 상향 조정하자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되어 돌아가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별 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팽팽함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어 속도를 높여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8시간, 9시간, 13시간이 지나도록 치고받는다.

심지어….

‘뭐야, 시바. 어떻게 이겼어….’

이해할 수 없는 혈투 끝에 녀석을 잡아냈다. 당연하지만 곧바로 같은 전투를 계속 반복시켰다.

어쩌다 한 번 우연으로 잡아낸 결과가 우연히 눈 앞에 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수치가 나오는 것이 문제, 내가 예상한 수치는 3% 미만이었지만 이 시스템은 23% 이상을 점치고 있었다.

‘합리적인 수치이기는 해.’

가장 부족한 수치 두 가지를 최상으로 올렸으니, 사실상 전술 박덕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박덕구 파티를 따로 봐줄 시간이 없다. 전 지역을 컨트롤해야 했기 때문이다.

‘훈련이라도 한번 시켜볼까.’

남은 33일 동안 속성으로 파티를 가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김현성이 도와주러 가기 전까지는 버텨줄 수도 있다.

현재의 김현성은 1회 차의 김현성보다 강한 상태일 테니, 놈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겠는데, 진짜. 시바.’

그 무엇 하나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왠지 모르게 박덕구 1회 차가 생각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만 이 돼지가 뒈지는 루트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세뇌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봤을 정도였다.

괜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는 장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몇 시간 전부터 온다고 말해놓고 왜 지금에야 오는 거요?”

익숙한 목소리 역시 들려온다.

“좀 바빴지, 뭐. 오히려 내가 늦게 와서 다행 아닌가. 시킨 거, 제대로 끝내놨지?”

“…….”

‘이 새끼….’

설마 했는데 진짜인 모양, 아마 시간 내에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말은 당당하게 하고 있었지만, 내가 오기 전에 맞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박덕구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옛날에 튜토리얼 던전에서 형님 뒤치다꺼리나 하는 박덕구인 줄 아는 모양이요. 형님이 키운 박덕구 아니요. 형님이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착실하게 착착 진행하고 있다니까.”

“자신 있어? 체크해도 괜찮을 것 같아?”

“거, 두고 보쇼. 안 그래도 형님이 늦게 오는 바람에 내가 몇 번이나 더 체크했으니까. 그나저나 누님이랑은 요즘 잘 만나고 있는 거요?”

“말 돌리지 말고 앞장서라, 덕구야.”

“말 돌리는 게 아니요. 진짜로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형님도 요즘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현성이 형씨도 마찬가지고… 누님은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소라 후배는 누님이랑 같이 가 있고 혜진 누님도 요즘 따로 일하고 있는 거 아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알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번 뭉쳐야지. 진짜로 전쟁이 터지기 전에 자리 한번 가졌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이런 말 하는 건 싫지만, 누구 하나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럴 일 없다. 아무도 안 죽으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너는 네 할 일이나 똑바로 하면 되는 거야. 봐라, 돼지 새끼야. 뭐, 하나 빼먹은 거 있는 것 같은데.”

“어?”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

허겁지겁 몸을 움직이며 짐을 뒤져보는 녀석의 모습이 괜스레 꼴사납게 보인다.

노아의 방주 안에 보급품 채워 넣으라는 말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모습에, 이 새끼는 아니라고 한 번 더 확신하게 된다.

“아, 거, 아… 내가 조금 착각이 있었던 모양이요. 한 페이지를 깜빡 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게….”

“안기모는 어디서 뭐 하고.”

“잠깐 따로 할 일을….”

“네가 또 혼자 해보겠다고 나댄 건 아니고?”

“그런 건 아니요. 기모 형씨도… 따로 할 일이….”

“너한테는 뭘 못 맡기겠다, 진짜.”

“그런 게… 아닌데. 진짜로 깜빡 한 건데….”

“내가 이거 중요한 이야기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

“내가 왜 너한테 이걸 맡겼는지도 모르지?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하는 거 맞지?”

“거,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누구 말인데. 거, 이 배 타고 상륙작전 하는 거 아니요. 전선이 밀리면 곧바로 적의 심장부로 들어가서!”

“그런데. 배 안에 필요한 물건들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

“아니다, 시바. 하지 마라, 덕구야. 그냥 너는 다른 거 해. 길드 직원들한테 시켜도 되는 일을 왜 너한테 맡겼는지는 아는 거 맞지? 상륙작전 돌격대장이고 나발이고, 선봉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너는 후방 지키는 게 낫겠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미, 미안….”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적당한 곳에서….”

“…….”

“…….”

‘아, 이 새끼 표정….’

“이번이 시바, 마지막 기회야. 네 임무가 뭐라고?”

“메인 기지 수성전 참가.”

“그리고.”

“나이스 보트 지키기.”

“그리고?”

“상륙 작전.”

“그래, 그거야.”

‘그래, 시바. 얘한테 뭘 맡기겠어. 개오바지. 무조건 오바야.’

백번을 생각해도 박덕구에게 딱 맞는 과업은 노아의 방주 지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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