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633화 (624/1,590)

# 633

회귀자 사용설명서 633화

여왕의 무덤(3)

“조금 어떠셨습니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이렇게 쉽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회 차 가면쓰레기에 의해 언데드가 되어 대륙을 떠돌아다녔던 기사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무척 놀랐다는 얼굴이다.

솔직히 내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지만, 콧대가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뭘 그렇게 간을 보고 있었어?’

성검 용사 파티는 강하다. 아마 일반적인 파티였다면 아까처럼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사는 가디언들의 내구와 마법방어력을 벗길 만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사제는 그런 마법사의 화력 일부를 버텨줄 수 있는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전위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을 가졌고, 마법사들이 만들어놓은 틈을 벌릴 수 있는 예리함을 갖추고 있었다.

이 정도 스펙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모였다면 중간보스 정도는 빠른 속도로 처리해야 한다.

“역시, 역시 형은… 대단해요. 아까도 그렇고, 이번에도… 만약 형이 없었다면 어쩌면 위험해졌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니요, 라파엘 님처럼 제 눈에도 충분히 대단해 보이십니다. 난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여왕의 기사들까지 나왔을 때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사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냥개의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문지기들보다는 방금 놈들이 더 어렵기는 했지.’

기본적인 오더만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했었던 문지기와는 다르게 방금 전에 일어난 전투는 제법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었다.

무덤 안으로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닥쳐오는 여왕의 병사들과 그런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는 8인의 기사.

거대한 도시 안에서 벌어졌던 시가전은 솔직히 이 파티로도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병사들 구성도 제법이었고.’

검과 방패를 들고 와 무작정 달려드는 녀석들이 아니라 마법병단과 궁수부대를 보유하고 있는 진짜 군대.

조혜진마저 한 손 거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다른 의미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성검 용사 파티의 경험치를 단숨에 끌어올릴 기회였으니까.

전쟁과 비슷할 정도로 규모가 커다란 전투는 평화의 시대를 맞은 지금은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체훈련을 한다고는 하지만 훈련으로 어떻게 실전을 대처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방금의 전투는 제법 박진감 넘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었으리라.

뭔가 지시가 나올 거라고 나를 바라보던 녀석들의 모습은 가관, 내가 알아서 해보라는 듯이 입을 잠그자 그제야 부랴부랴 파티를 정비하던 라파엘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물론 8인의 기사들을 마무리 지은 것은 전술 라파엘을 비롯한 진두지휘였지만, 그전까지 고군분투하던 성검 용사 파티의 모습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우던 녀석들의 모습에서 놈들이 얼마나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알 수 있었고, 1회 차의 영웅들답게 전투 중에도 계속 성장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이 코인은 된다! 이 코인은 돼! 너희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시바.’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진형이나 방식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스펀지가 물을 먹듯이 쑥쑥 흡수하는 놈들의 모습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나온다.

8기의 기사 중 마지막 3기는 따로 지시를 내릴 필요도 없었다.

짧은 경험이기는 했지만, 본인들이 어떤 포지션에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특히나 라파엘 님을 집중적으로 케어해 주셨을 때는…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더군요.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느낌이라… 파티 전체가 라파엘 님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하, 자꾸 그렇게 치켜세워 주시니 부끄럽군요. 별것 아닌 일입니다.”

‘물론 마음의 눈이 있다면.’

“아니요, 그 누구도 형처럼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 누구도….”

“실례되는 말이지만 제게도 가능한 일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사냥개 이주혁?’

갑작스럽게 질문해 온 녀석은 라파엘에게 미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는 녀석.

갑작스러운 발언에 이쪽으로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주혁이 가능하다면 자신도 가능한 것은 아닌지, 여기사 역시 기대감이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라파엘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이제는 개나 소나 전부….’

“글쎄요….”

“…….”

“…….”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아마 효율이 썩 좋지는 않을 겁니다.”

얘도 재능이 나쁘지 않은 모험가이기는 했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죄송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개인이 가진 무력 그 자체를 전술로 사용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아, 물론 주혁 씨를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팀 내에서의 역할이 다르니까요.”

내가 만약 저 사냥개를 써야 할 순간이 온다면 커다란 무력을 가진는 개인을 붙잡아두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끈질기고 독한 놈인 데다가 실제 전투 역시 그런 식으로 벌이는 녀석이었으니까.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우리 기적의 사제, 마리엔 님께서 다시금 입을 열어오셨다.

“그럼 조혜진 님은 어떤가요?”

“글쎄요, 반 반 정도….”

유니콘을 탄 조혜진이라면 한정적이지만 써볼 여지가 있다. 물론 이런 난전 상황에서는 힘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쩌다 전술 김현성이 이렇게 핫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가 동네 시정잡배들도 자기 한번 봐달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확실히 대단하기는 했어요. 저희 파티장님이 강하다는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지만… 어림잡아서 3배, 아니, 그 이상은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솔직히… 별로였는데. 이걸 말할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강해지는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강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개인이 볼 수 있는 시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는 그걸 보완해 주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위원장님은 먼 곳뿐만이 아니라 지척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전부….”

‘캐치하지 않냐고?’

“제가 조금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단순히 관찰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거다, 마리엔. 저건 재능의 영역이야. 그것도… 압도적인 재능.”

‘주혁아, 고맙다. 시바, 내가 살다 보니까 이런 소리도 들어보네. 형이 나중에 시간 내서 너도 함 봐줄게.’

“천재… 명예추기경님은… 천재로군요.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비극의 여기사님. 얘 이름이 뭐였더라… 너도 한번 꼭 봐줄게.’

그런 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젓기는 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발언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왠지 내 속마음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조혜진만이 혀를 차며 나를 바라봤지만. 굳이 다른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니 저런 칭찬을 받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계산이 선 모양이다.

“하하하, 천재라고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여기 있는 라파엘 님 같은 사람을 천재라고 부르는 게 맞겠죠.”

“그렇다면 어떤가요? 파란 길드마스터와 비교하면….”

‘누가 더 천재에 더 가깝냐고?’

말을 전부 잇지 못하는 마리엔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질문처럼 보였지만, 휴식시간에 농담 따먹기 같은 느낌으로 나올 만한 이야기이기는 했다.

대륙에서 잘나가는 모험가 취급은 으레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느낌이 아니었던가.

매일같이 가십에 휩싸이기도 했으니…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민감하게 들려오지는 않았다.

술자리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이를테면 내가 들어도 재미있는 주제들처럼 말이다.

지능을 0까지 깎은 차희라와 김현성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로렌과 엘룬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장애물이 없다고 가정하면 유니콘과 그리폰 중에 누가 더 빠를까.

진청과 이토소우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악마숭배자와 악마소환사 중에 누가 더 강할까.

그런 주제들.

마치 예수님과 부처님을 싸움 붙이거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원초적 질문에 쓸데없이 열을 올리는 평론가들이나 백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당장 베니고어 넷을 들어가도 저런 주제들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은 진청과 이토 소우타, 악마숭배자와 악마소환사의 싸움.

당시 베니고어 넷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진청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지만, 뭐 이건 쓸데없는 이야기다.

잠깐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출하기는 했지만….

‘흐음….’

갑작스러운 질문을 괜스레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진지하게 받는 게 무의미하기는 하다.

‘라파엘?’

녀석이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여지가 없지만, 천재 중에 천재. 휴먼 중에 휴먼 김현성에게 비교하는 건….

‘그건 아니지….’

어떻게 상처받지 않게 대답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일단은 하하하, 하면서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것이 전부.

대충 분위기를 읽었는지 마리엔이 괜스레 민망해했다.

‘그래,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근데 네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 네가 아직 현성이를 못 봐서 그래. 진짜 걔 하는 거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고. 슉슉 슉슉 날아다닌다니까. 시바, 비교가 안 돼요, 비교가. 걔 재능은 진짜 대체 불가야. 노력하는 천재 알지? 시바, 그거라니까. 근데 회귀까지 했데요. 그러니 어떻게 비빌 수 있겠어? 절대로 안 비벼진다니까.’

“하하하, 그건 조금… 대답해 드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역시 조금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네요. 그럼 명예추기경님의 지시를 받는 상태의 라파엘 님이라면 어떨까요? 파란 길드마스터와 비교해 보면… 역시 가능성이….”

“아뇨, 당연히 못 이깁니다.”

무슨 의도로 던진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있다.

“네?”

“장담하건대 못 이길 겁니다. 가능성을 크게 잡아봤자 1%예요. 절대로 못 이깁니다, 절대로요. 지금 이곳에 계신 분 중에 저희 길드마스터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본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마 제대로 한 번 본다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바로 이해할 겁니다. 절대로 못 이겨요, 절대로요….”

“…….”

“라파엘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계신 파티원분들에게 제가 따로 오더를 내린다고 해도 가능성은 5%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지금 상태보다 3단계 정도 더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그제야 조금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던 기사가 입을 열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나 차이가 나는 겁니까?”

“네, 그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이 단기간 내 강해졌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어요. 자신감도 있고 실력도… 대륙의 상위 파티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예요. 라파엘 님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다른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예전의 파란 파티보다도 성장이 더 빠르다는 것 역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빠르게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봅니다. 정말로 빠르게요.”

“…….”

“경험 부족을 논하는 게 아니에요. 스펙 자체가 다릅니다.”

“…….”

“아마 승부는 10초 안에 날 겁니다. 마리엔 님이 첫 일격에 당한 이후에 그대로 리타이어. 그 이후에 싸움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조금 강하게 말하면… 이 파티로 부딪치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깝습니다.”

“…….”

과장 하나 보태지 않은 발언. 시대가 변하기는 변했나 보다, 진짜.

‘너네가 진짜 우리 현성이가 얼마나 센 줄 모르는구나, 시바.’

김현성이 진심으로 싸우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다면, 이런 쓸데없는 질문이 나오지도 않았으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