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3
회귀자 사용설명서 603화
일생일대의 고민(1)
-이러한 의견들을 종합해서 저희 교황청에서는 대륙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회색빛의 성검이 있는 지역을 전면통제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말씀은 교황청과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 일반인들이 시험에 도전할 권리를 빼앗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아, 기자님들 죄송합니다만… 질문은 모든 발표가 끝난 이후에… 따로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글랑 주교님. 이후 드릴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니 곧바로 답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거짓 없이 말씀드리건대 저희 교황청과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는 대륙민 여러분들이 시험에 참가할 권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자격의 심사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전 대륙에 있는 주요 길드나 베니고어 넷을 통해 정식으로 시험을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하신 모든 분을 대상으로 교황청에서 제시한 간단한 사전 시험을 통해 인원을 선별할 것입니다.
-만약에….
-시험은 투명하게 공개될 것이며 모든 분이 참관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회색빛 검의 시험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 역시 여신의 거울을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추가로 일정 기간을 두고도 적합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작위로 인원을 선발하도록 하겠습니다.
-…….
-회색빛의 검의 주인을 선별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교황청에서 지불할 것입니다. 나이도 출신도 묻지 않겠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어떤 일을 하시고 계셨든 간에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모험가 타이틀이나 기존에 있었던 명성으로 적합자를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진정으로 대륙을 위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떠한 자격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와 교황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이용해 선택받은 용사를 선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다시금 여러분께 약속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네, 지금까지 제이나 대변인의 입장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짧게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님들께서는….
-방준우 기자입니다! 현재 이기영 위원장님의 상태가 궁금합니다. 여신님을 직접 몸에 받으신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어떤 증상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기영 명예추기경님께서는 현재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상태입니다.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어하시기는 하지만 몸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베니고어 님의 말씀을 교황청을 비롯한 타 교단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기영 위원장님께서는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사안이 아닙니다. 비교적 가까운 시일 내에 언론에 공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회색빛의 용사에 대한 대륙인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적합자가 나타난다면 정확히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또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교황청의 소속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소속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교황청에서는 회색빛의 검을 뽑을 수 있는 용사를 찾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후의 일에 대한 논의 역시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소속에 대해서는 최대한 용사님의 의견을 존중할 생각입니다. 답변이 되었다면 좋겠군요.
-회색빛의 검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입니까.
-현재로서는 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검의 기능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성검의 정보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관련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모든 대륙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짧게나마 부탁드립니다!
-시간관계상 질의응답 시간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말씀만 더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번에 5현장에서 나타난 악마계약자들과 관계가 있는 일입니까!
-악마계약자 사태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황청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기영 위원장님의 현재 상태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글랑 주교님! 제이나 대주교님! 한 말씀만 더!
‘무슨 좀비 떼거리 같네.’
동의한다는 듯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자들이 무섭네요.”
“어쩔 수 없지 뭐.”
그만큼 관심이 쏠려 있는 사안이었으니까.
“저거 요즘 너무 날뛰는 것 같은데… 한 번 잡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예상했던 반응인데 뭐. 오히려 저 정도 반응이 없으면 이쪽에서 섭섭했을걸.”
“하긴… 그렇기는 하네요.”
전 대륙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걸 생각해 보면, 반응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무려 인생을 바꿀 찬스가 아니던가.
교황청에서는 용사 지원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아마 모두 비슷한 걸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인생역전! 로또! 성검코인!’
선택받는 순간 쏟아질 관심과 명예, 힘과 권력. 상급 모험가들의 튜터링, 영웅 등급 이상의 아이템들.
장담하건대 전장의 최전선에서 싸워야 한다는 건 잊고 있을 것이다.
책임보다는 얻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일반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자리에 앉아 맛좋은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았다면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 신청자들의 대부분이 그런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하며 도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오빠. 이거… 그쪽에서 받아온 거 맞아요?”
“응, 그쪽에서 받아온 성검 맞아.”
“너무 절차가 귀찮을 것 같은데… 이거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 나타나는 게 확실하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대답이 너무 자신감이 없는 거 아니에요?”
“아니, 나도 진짜 모르겠으니까 하는 소리야. 그래도 대륙에 한두 명 정도는 적합자가 있지 않겠어? 왠지 누나한테도 반응할 것 같은데… 한번 선택받은 용사 해볼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니야. 진짜 가능성 있다니까. 최소한 거부 반응은 안 보일 것 같은데… 살짝 손댔다가 정신을 놔버리는 성기사보다는 오래 버틸 수 있을 거야.”
“쓸 수 있는 사람이 써야죠. 전력 하나가 아쉬운 상황인데.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니까요. 이거 너무 범위가 넓다고요. 사막에서 바늘 찾기고 대륙에서 김 서방 찾는 것 같은 느낌인데… 만약에 정말로 선택받은 사람이 안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누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을 심하게 가리지는 않을걸.”
신화 등급의 무엇 무엇들은 대개 입맛이 무척 까다롭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기는 했지만, 요 녀석은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1회 차의 성검처럼 심혈을 기울여 주인을 결정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거다.
아마 입맛에만 맞으면 곧바로 달려들지 않을까.
문제는 적합자가 필요한 게 녀석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선택받은 용사가 중요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1회용이 아니라 여러 번 사용할 인재다.
기왕이면 이쪽과 맞는 인원을 선별하는 게 편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성향 자체는 어떻든 별 상관없지만… 이를테면…..
‘나이가 어리고 쉽게 휘둘리는 성격.’
쓸데없는 책임감에 똘똘 뭉쳐 있으면서도 사고의 전환이 자유로운 인재.
‘권력이나 물욕에 관심이 없고….’
순수하기까지 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 회색빛의 성검은 타락한 천사가 사용했었다는 설화가 붙어 있기도 하니, 순수한 인간을 타락시키는 종류의 기믹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게 아니라고 해도 이쪽에서도 어느 정도 합의해 줄 용의가 있다.
결국,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녀석이 원하는 적합자와 내가 원하는 적합자의 교집합이었다.
물론 쉽다고는 볼 수 없다.
내 조건에 맞는 이들을 찾았다고 해서 녀석이 쉽게 응해준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적당한 합의점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대국민 시험이었다.
최대한 내 조건에 맞는 인원을 선별한 이후에 물량으로 때려 박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사전 시험으로 비적합자를 골라내고, 쉴 새 없이 인원들을 밀어붙이다 보면 한 명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어 내놓은 특단의 조치이기도 했다.
‘그럴듯해.’
“일단 홍보 효과가 기막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이지혜의 말처럼 홍보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또 새로운 일로 갈릴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리기는 하지만요.”
“웬만하면 나도 계속 부여잡고 싶기는 한데… 사실 나도 그럴 여유가 없거든… 정말로 여러 가지로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 당분간은 5현장에 틀어박혀 있을 거야. 자주 들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누나. 연락도 매일 할 거고. 거의 반반 비율로 왔다 갔다 할 거야.”
“그 약속 지켜야 해요. 진지해요. 요즘 정말로 너무 힘들다고요. 내일이면 합동 훈련소에서 병력 들어오는데… 각 전진기지에 병력 배치하는 것도 일이에요. 그 와중에 이번 일까지 터지니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고요.”
“이번 일만 지나면 푹 쉬고 어디 가서 바캉스나 즐기고 오자.”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이네요.”
“아니면 한 일주일 정도 쉴래? 그동안은 김미영 팀장한테….”
“그건 좀…. 사실 일을 안 하면 불안하거든요. 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지금까지 쌓아놓은 게 전부 망가지게 생겼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입장이었으면 콱 망해 버려라 하는 심정으로 침이라도 뱉었겠지만… 지금은 잃을 게 너무 많아요.”
‘얘는 진짜….’
“내 권력, 내 남자, 내 돈, 이걸 어떻게 얻었는데… 전부 포기할 수 있겠어요?”
리스펙 할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
괜스레 엄지를 추켜세우고 싶어졌다.
“뭐, 이야기 끝났으면 저는 다시 일하러 돌아갈게요. 오빠도 일어날 거죠?”
“응, 나도 시작해야지.”
“문제없는 거 확실하죠?”
“아마도.”
‘사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이지혜한테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조혜진이 통수를 친 것도 아니고 정하얀이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소라와 정하얀은 그쪽 연구에 힘써주고 있었으니, 가장 베스트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카스가노 유노 역시 혹시 모를 변수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래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김현성 역시 조혜진이 전해준 소식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시점이었다.
정말로 완전히 의심을 거둔 것인지는 애매하지만, 일단 경과를 두고 보자고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어쩌면 성검 쪽으로 시선이 쏠린 걸지도 모르겠다.
김창렬, 김예리에게는 따로 임무를 내렸고 엘레나, 선희영, 황정연은 길드 업무에 집중하는 중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이었다.
희라 누나도, 디아루기아도, 교황청과 전 대륙에 퍼져 있는 네임드들도 알아서 잘 성장하며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할까.
문제는 대륙이 아니라 하늘 위에 있었다.
‘베니고어, 얘는 또 왜 연락이 안 돼?’
성검 주작 이후로 베니고어에게 그 어떠한 피드백도 오지 않은 것이 문제.
슬쩍 뒤통수가 싸해졌지만….
‘얘는 믿을 만하지.’
빛 폭탄 물약 좀 먹고 예언을 대신 말해줬다고 해서 베니고어가 내게 등을 돌릴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벨리알과의 계약 문제 때문이라도 베니고어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강신도 나 혼자 해결했겠다. 신성을 내려 달라고 청한 것도 아니니 신력이 딸려 피드백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영 설득력이 없다.
여러 가지 추측들이 머릿속에 맴돌기는 했지만, 괜스레 대뇌 전두엽을 스친 생각이 하나.
‘얘, 혹시 상급자한테 털리고 있는 거 아니야?’
근거는 없다.
하지만 영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구금되고 이런 건 아니지? 내 말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