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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91화 (582/1,590)

# 591

회귀자 사용설명서 591화

키 플레이어(2)

“어디 가시는 겁니까?”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혹시나 현장으로 간다고 하면 따라나선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짐을 챙기는 모양새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일단은 눈치를 보며 가방에 짐을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수납 가방에 갈아입을 옷들과 개인 보급품, 그곳에서 혹시나 연구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간이 연금 키트도 챙기는 게 좋겠지.

쉬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체스판도 챙겨가야지.

이것저것 많이 챙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김현성이 선물해 준 무한의 가방의 수납 공간은 넓다.

그 와중에도 김현성은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중.

인간관계에 서투른 만큼 지금 자신이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이 자리를 뜨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맞는지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뭐라고 말을 건넬 리 만무.

이미 원정 준비를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미묘한 대치 상황은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이거 그냥 말하는 게 좋겠는데….’

계속해서 저기에 저렇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입술을 오물거리기가 무섭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그러니까… 어디 나가시는 겁니까.”

‘그냥 말하자, 그래.’

당당하게 말하고, 따라올 것 같으면 당당하게 쳐 내자.

“잠깐 현장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5현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무너진 현장 복구 작업의 진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피해가 큰 것 같아서… 덕구와 하얀이도 데리고 갈 테니, 걱정하실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조금 더 휴식을 취하는 게 좋지 않….”

“건강합니다. 머리에도 이상 없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어요.”

‘이 새끼가 언제부터 내 건강에 신경 썼다고 그래. 가서 수련이나 해.’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니까요. 현성 씨가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9개월 동안이나 수련에 힘쓴 것처럼요.”

“그건… 죄…송합니다.”

‘아니, 왜 사과를 하고 그래. 사과할 일이 아닌데.’

“아니요,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저도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중요한 일이지 않습니까.”

‘네 일만큼 내 일도 중요한 거 알고 있지? 그러니까, 이번 것만 마무리 하자.’

“그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현장을 복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요. 제 실수고, 제 일이었으니, 제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

“…….”

“네, 이해… 이해했습니다. 그럼.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글쎄요,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는 예상할 수 없지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 것 같네요.”

‘따라온다고 하지는 않네.’

초반에 쌓은 빌드업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굉장히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목구멍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대처였다.

이미 사건이 다 터진 이후에 안전, 안전, 건강, 건강, 떠들 면목이 있을 리가 없다.

박덕구와 정하얀을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된 셈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쪽 역시 같은 프레임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지 않은가.

녀석 역시 필요한 일을 위해 잠수를 탔으니 이쪽 역시 그럴 수 있는 게 당연했다.

최대한 방해하지 말라는 티를 팍팍 내며 입을 열자, 못 이기는 척 수긍하고 있는 김현성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니까요.”

“…….”

“그런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온 건 아닐 텐데….’

딱 녀석의 얼굴이 그랬다.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표정이었으니까.

그제야 용무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예상해 보건대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은 느낌. 맨 처음에 보였던 불안한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또 뭐가 터진 건가? 현재 상황에서 터질 만한 게 뭐가 있지?’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같지 않은 김현성의 진지한 표정은 괜스레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들어와서 앉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한 발 내딛는 김현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 *

“차는 뭘로 드실 겁니까? 아니면 커피는 괜찮으십니까?”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그보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별로 상관없습니다. 출발 시간은 조금 늦어지겠지만… 천천히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중요한 이야기니까요.”

‘그러니까 빨리 입 털어봐. 궁금해 죽겠다, 새끼야.’

“그러니까…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예전에 했던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그러니까 키 플레이어들에 대해서….”

‘기억하다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1회 차의 위협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두 회차의 흐름이 확연히 다르기는 했지만, 재능이나 특별한 힘을 가진 인간들마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정하얀이 여전히 마법에 대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이들 역시 이전 회 차와 같은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고, 구태여 이쪽이 접근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머니를 뚫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들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다수의 네임드들은 전장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정도로 강하거나 자신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전황을 뒤바꿀 힘이 있었고, 위기에 몰린 아군을 이끌고 나갈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병력이 단순한 폰들이라면 이런 네임드들은 적 병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나이트와 비숍들.

쓸 만한 패가 더 늘어난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렇기 때문에 나와 김현성은 1회 차의 네임드들에게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구태여 파란 길드로 들이지는 않았지만, 1회 차의 영웅들과 내가 가능성이 있다고 한 이들은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

성장에 제동이 걸릴 때 즈음에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면서까지 이놈들의 성장에 집중했다.

합동 훈련소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린델에서, 노동현장에서, 혹은 던전에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고,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후원까지 해주고 있었다. 성장하는 것을 기다린 것이다.

그중에서는 과거 김현성과 부딪쳤던 놈들도 있었고, 동료로 활동했던 녀석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눠야만 했던 정적들도 있었으며, 아무런 연관은 없지만 소문으로 들었던 강자도 있었고,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어 빛을 보지 못한 천재 역시 존재했다.

‘그런데 걔네가 왜.’

“…….”

‘걔네들 문제없지 않았나?’

내 기억에는 없다. 오히려 아주 만족스럽게 쑥쑥 자라나고 있었고 사상검증 역시 마친 상태.

빛에 대한 충성심이 교단의 사제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문제요?”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

생각해 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네.”

‘그래, 이 새끼도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놈이었지.’

키 플레이어 중에서도 중요도를 SSS급으로 관리한 진짜배기 영웅 중에 하나.

김현성, 정하얀, 차희라와 같은 레벨이라고 평가받았던 강자.

성검의 선택을 받고 경천동지할 무력을 선보였던, 또 하나의 치트 캐릭터였다.

비록 이전 회차에서는 가면쓰레기 진청의 못된 술수에 의해 성검이 그 빛을 잃고 미치광이가 되어 죽었지만, 김현성이 묘사한 선택받은 용사는 우리 계획에 꼭 필요한 패라고 생각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무려 북서부 지역을 통째로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김현성의 추천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잠깐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지만….

“튜토리얼 던전이 벌써 열린 겁니까?”

다시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잘됐군요. 안 그래도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현성 씨가 그렇게 말할 정도의 강자라면 어느 정도일지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성검이라는 게 어떤 무기일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아마 저희가 세웠던 튜토리얼 최단시간 클리어 기록은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네요. 현성 씨 말대로라면 성검을 가지고 튜토리얼 던전을 빠져나왔을 테니…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접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이들처럼 멀리서 관리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중요한 인물인 만큼 저희가….”

“없었습니다.”

“네?”

“제가 이미 찾아봤지만 튜토리얼 던전의 생환 목록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네?”

‘뭐야, 시바. 이건 또 무슨 경우야, 시발.’

“혹시 착각하신 게 아닌지… 다음 회차에….”

“아닐 겁니다.”

‘그래, 그럴 리가 없겠지.’

1회차의 김현성 역시 녀석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그걸 잊어버릴 리가 없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테니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을 것이고, 종국에는 김현성의 귀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회귀한 직후 떠올린 사람이 선택받은 용사와 정하얀이라고 하니, 김현성이 병신이 아닌 이상에야 놈에 대해 착각할 리가 없다.

‘그런데 시발, 왜 없는 건데?’

아마 김현성이 내게 묻고 싶을 것이다.

‘이거 개시바 머리 아파지겠는데.’

카스가노 유노와 함께 봤던 그 난장판의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5구역 복구 사업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 예고도 없이 날아 들어온 거지 같은 소식.

지금까지 세웠던 계획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하얀이 없는 전투처럼, 녀석이 없는 전투 역시 상상할 수 없다.

튜토리얼 던전에 나온 직후에 혼자 신나서 던전으로 달려들어 가 뒈졌다는 게 오히려 더 설득력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애초에 튜토리얼 던전은 외부의 나비효과가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장소가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당황스러워진다.

“정말로 착각이 아닌 겁니까?”

“네, 분명합니다.”

“후우… 이건 뭐라고 코멘트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계획을 수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 사람 시켜서 꼭 근처를 확인해 주시고.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됐는지도 개인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아마 베니고어가 알고 있을 것이다. 신과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라니. 어떤 방향으로든 베니고어의 영향력이 들어갔을 게 분명했다.

‘아, 왠지 이거 불길해지는데.’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리라.

이 무능력한 여신은 단 한 번이라도 대륙에 이로운 영향을 끼친 적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애초에 네가 성검 내리는 게 맞기는 한 거지? 근데 왜 용사가 시바, 안 튀어나오고 난리야.’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미안해, 나의 사랑스러운 이기영 신도. (0/1)]

‘뭐가 미안한데, 시발….’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성검의 선택을 받은 용사 육성 계획은 예산 부족으로… 전면 취소된 계, 계획이야. (0/1)]

‘…….’

베니고어 파산 사태의 나비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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