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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78화 (569/1,590)

# 578

회귀자 사용설명서 578화

악마 계약자(2)

“피… 피해!”

콰드드다드다다닥!

콰지지지지지지지직!

동공을 꽉 채운 뼈의 가시는 다른 형식이나 패턴이 없이 무작정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굉음이 동공의 벽을 긁어 나가고, 보이는 모든 것들을 꿰뚫기 위해 전방으로 나아간다.

누가 봐도 제법 커다란 스케일이 아닐까.

얼굴을 구긴 악마계약자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피했지만, 한 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휩쓸렸다.

“쿨럭… 쿨럭….”

하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피를 내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는 모습에 괜스레 인상을 찌푸린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드럼통 같은 구멍이 팔과 다리는 물론 몸까지 꽤 뚫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지독하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

‘일반적인 역병은 사용이 불가능할 것 같고… 쟤네들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나?’

몸이 녹아내리는 종류로 준비하는 게 더 좋을 듯싶어 급하게 주문을 외우자 희미한 유령들이 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설정상 하루에 세 시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는 둠기화였지만, 전투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니… 현시점에서 사용하는 게 맞다.

물론 페널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죽일 수 있는 건 순도 높은 신성력 정도가 끝인가?’

빛 폭탄 물약을 무척 경계했던 것이 바로 그 이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녀석들을 죽일 수 없다.

분위기로 보건대 목이 달아나도 몸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확실히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어.’

애매한 상처를 주는 건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인원은 약 40명… 좀 많은 것 같은데….’

빛 폭탄을 소모시키기 위해 사지로 밀어 넣은 떨거지 들은 제외.

이 동공에 들어오지 못한 떨거지들도 제외.

악마와 계약한 즉시 전력감이라고 판단한 인원이 약 40명?

아니, 50명 정도… 그 50명 모두가 일시적으로 전설 등급의 힘을 손에 넣은 상위 클래스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3명 정도는 그 이상.’

아마 리더격으로 분류할 수 있으리라.

‘전력은 불리해.’

남아 있는 빛 폭탄 물약은 한 발, 친위대 역시 대륙에서 상위 클래스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죽지 않는 괴물들이다.

전투 경험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는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적 열세.

바깥에 있는 병력, 심지어 자신들의 몸까지 상급 언데드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먼저 체력적 부담을 느끼는 건 이쪽이 될 것이다.

‘여기는 진흙탕이야.’

어떻게든 포위되고 있는 이 형국을 빠져나가는 게 옳다.

뼈의 무덤으로 잠깐 동안 소강 상태가 된 장내에서 녀석들 역시 나처럼 전력을 분석하던 중, 얼굴 위에 천천히 가면이 덥히는 모습을 보고서는 괜스레 입술을 깨무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더러운 사기꾼 자식!”

“닥쳐라! 이 악마의 계약자 놈들. 부길드마스터께서는 스스로 악마와의 계약을 선택한 네놈들과는 다르다!”

“저희가 부족해… 죄송합니다. 부길드마스터.”

‘너무 열정적으로 변호해 주는 것 같은데….’

박리안은 물론 친위대 역시 둠기화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가 가져올 페널티 역시도 알고 있다. 분위기를 살펴보면….

‘자기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네.’

현재 내가 직업을 전환한 이유가 본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금 의아했지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실제로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끈다면 친위대 내에서도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딱히 노리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액션 정도는 취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동으로 얼굴 위에 덥히는 가면을 살짝 부여잡은 채로 비틀거리자.

이쪽을 걱정하는 듯한 박리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 부길드마스터!”

“괜찮습니다. 잠깐 두통이 생긴 것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합시다. 다른 것은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이 곳을 빠져나가는 겁니다.”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저 의욕은 마음에 든다. 눈에 살짝 맺혀 있는 눈물도 말이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내면에 품고 있는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았다.

겨우 이 정도로 저런 반응이었다면 제1차 둠기영 사태 때는…,

‘오열이라도 했겠는데….’

딱 봐도 오열 각이 나온다. 심지어 다른 친위대원들 역시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모습.

‘평소에 이미지 챙기길 잘했네.’

쓸데없는 말을 하는 녀석도 보인다. 원래 다른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례적인 일.

‘강은혜?’

김예리와 같이 대륙에서 태어난 케이스,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부모님을 여의고 친위대로 발탁된 케이스다.

지금의 파란 유소년 프로그램을 있게 한 인재였고 성과.

이를테면 김현성과 나를 부모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으리라.

파란 길드가 아니었다면 어디 노예 시장으로 팔려가지 않았을까.

본인 역시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성심이 대단했고, 그런 마음에 반해 친위대를 축소시키는 과정에서도 제외하지 않은 1인이었다.

그런 그녀 역시 친위대에 들어온 이후에는 말을 아끼는 편.

솔직히 얘가 앞서서 커다란 목소리를 내는 건 처음 본다.

“너희들 역시 속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저자의 모습을 똑똑히 봐라. 저 모습이 정말로 너희들이 지키려고 하는 자의 모습이 맞는지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보란 말이다.”

“그 입 다물어라. 더러운 반동분자 새끼들….”

“너희들은 세뇌된 것이다. 길들이기 쉬운 말이라고 생각해 곁에 둔 것에 불과해.”

“네놈들이야말로 악마소환사에게 세뇌된 것이다, 반역자 놈들아. 이기영 님은 대륙의 구원자이시며, 새 시대를 이끌어갈 위인이시다. 갈 곳 없는 우리들을 받아주시고 키워주신 은인이시다. 결코 네놈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으실 분이 아니야. 지금도 대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고문하고 계신 모습을 봐라. 정녕 이 모습을 보고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쏟아낼 수 있단 말이냐. 눈을 떠야 할 것은 너희 반동 놈들이야! 이 반동분자 새끼들… 전부 다 죽여 버리겠어. 전부 다 죽여 버리겠다.”

“…….”

“저희가, 저희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부길드마스터….”

평균 나이가 어린 만큼 이런 상황에 잘 동요하게 되는 모양.

괜스레 양심이 찔려와 가면을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경고다. 불쌍한 놈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밖으로 나간다면 네놈들만은 살려주도록 하겠다.”

“닥쳐라! 구더기 같은 놈들! 우리는 부길드마스터와 이 곳에서 함께 죽을 것이다.”

‘죽을 마음 없어요. 죽을 마음 진짜 없어.’

“죽여라!! 저 더러운 사기꾼의 목을 가져와! 대륙의 안전과 군사님의 복수를, 우리 결사단의 숙원을 풀 때가 왔다.”

“부길드마스터!”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동요할 필요도 없어요. 방진을 탄탄히 유지하며 이 장소를 빠져나가는 것부터 생각하시면 됩니다.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무리하게 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기회가 와도 방진을 계속해서 유지하세요. 적들이 악마와 계약해 저주받은 힘을 얻었다고 한들, 아직 저들은 저 힘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네.”

“여러분을 믿습니다.”

“…….”

“…….”

“네.”

“위원장님을 지켜!”

“적들의 손가락 하나도 닿게 만들지 마라! 우리들의 일이 무엇인지 기억해!”

“와라! 악마의 계약자 놈들!”

“죽어라! 개자식들!”

“보호해! 보호!”

“보호막을 부숴! 화력을 퍼부어라! 거추장스러운 뼈들도 전부 부숴 버려!”

콰드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앙!

‘이거 생각보다 빡센데.’

사방에서 솟구치는 불길한 마력, 뼈와 보호막으로 가로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 와중에 출동한 역병 유령 하나가 진청의 잔당을 껴안기 시작.

“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몸이 녹아내리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효과가 꽤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 와중에도 꿋꿋히 화살을 날리고 있는 모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녀석들도 보이지 않는 유령에 대해서 알아차렸는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다.

거대한 촉수를 소환해 한 녀석을 감싸봤지만, 순식간에 지원이 들어와 촉수가 별다른 힘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숨겨둔 역병이 놈의 호흡기로 침투했지만….

‘저것도 리타이어되기 전까지 시간은 좀 걸리겠고… 시바, 확실히 벨리알이 현세에 있을 때랑은 화력 차이가 있네.’

지난 시간 동안 그 갭을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한 모양이다.

수가 밀리니 친위대 역시 점차 움츠러들기 시작했고, 그 반동으로 나 역시 이들에게 점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손을 들어 올려 뼈와 촉수로 지원을 보내는 것도 한두 번, 내가 전체적인 방진의 밸런스를 잘 맡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아, 위험한데.’

정말로 위험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으리라.

보통 영화에 나오는 클리셰처럼 이쯤에서 딱 하고 일 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박기리 삼 자매가 튀어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리 만무, 저도 모르게 출구 쪽을 바라보자 웬 인형이 튀어나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어?”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 말았….’

시야에 비치는 것은 창 한 자루를 들고 있는 조혜진.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뭐라 제대로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동작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잠깐 동안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같지 않은가. 적들한테 둘러싸인 형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을 휘두르며 공간을 확보하고 정확히 찔러 넣는다.

화살이나 검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커다란 막대기 하나로 흘려보내는 모습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뒤에서 창을 휘둘러 오는 적의 공격은 창을 지렛대 삼아 피하고, 순간적으로 위로 쏟아지는 공격은 몸을 비틀어 벗어난다.

‘박기리 얘네는 노동 운동이랑 혁명만 할 줄 알았지….’

김현성처럼 속도가 빠르다거나 차희라처럼 근력이 강한 것도 아니다.

천재가 되지 못한 범재가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의 기술, 스텟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재능.

그 와중에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저 표정까지 마치 한 편의 무협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을 한 번 튕긴 이후에는 곧바로 이쪽의 앞에 떨어진다. 이후, 열어온 입에서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으신 겁니까?”

“혜진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

“제가 먼저 묻지 않았습니까. 부길드마스터.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맙다. 혜진아, 진짜 너밖에 없다.’

“후우… 네… 괜, 괜찮습니다.”

“별로 괜찮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최대한 빠르게… 빠르게 빠져나가겠습니다. 박리안 씨.”

“네, 실장님.”

“부길드마스터의 안전만 신경 쓰세요. 길은 제가 열겠습니다.”

“네.”

그 와중에 날아들어 온 화살을 한 손으로 잡는 잡기까지.

‘누나, 진짜… 왜 이렇게 멋있어.’

이 자리에 없는 김현성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심장 쿵쾅거리잖아, 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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