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6
회귀자 사용설명서 576화
반동분자(2)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옆쪽 벽면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쪽을 급습하기 위한 암살자.
내가 입을 열자마자 곧바로 들이닥친 것을 보니 이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골 때리네, 이 새끼들 이거….’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튀어나왔다. 완벽하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하기는 했어.’
빠져나간 자금 사용 출처가 정확하지 않았으니까.
일이 터진 뒤에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잘 맞춰지지 않았던 퍼즐이 완벽하게 짜 맞춰진 느낌.
이지혜가 말한, 조금 더 파보면 뭐가 나올 것 같다는 건 아마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
아마 현재 상황을 보면 분을 터뜨리면서도, 이거였다고 말하지 않을까.
성향과 기벽에 반대되는 행동,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미하일의 대사.
애초 시위를 수습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 반동분자들이 원하는 그림은 나를 이곳까지 끌어들이는 것이었을 테니까.
‘성공은 했네.’
아주 오래전부터 기를 모아온 빌드업이이었다.
이지혜가 말한 그대로 우리가 만든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계획.
주변에 신경을 쓸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눈치챌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와서 하는 반성은 의미가 없다.
통수가 얼얼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나는 지금 녀석들이 원하는 식탁에 제 발로 찾아온 손님이었으니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기는 하다.
‘미하일, 이 개새끼… 무능한 줄 알았는데 X나 유능한 새끼였네.’
박덕구가 아니었으면, 여기 올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일이 터진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게 상당한 의의가 있지 않은가.
사특한 무리를 지금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일이다.
바깥 신 양반이 들어온 이후에 이 반동분자들이 날뛰었다면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침 박, 기, 리 3자매가 밖에서 멀뚱멀뚱 기다리는 상황, 일이 터졌다는 것을 인지하면 곧바로 달려 들어오겠지만, 사실 얘들까지도 필요 없다.
“모시겠습니다.”
“네, 갑시다.”
폭음이 터짐과 동시에 질 좋은 보호 마법이 내 주변을 뒤덮는다.
곧바로 밀집 대형으로 뭉친 우리 귀여운 친위대는 곧바로 전투 준비를 하며 이후에 덮쳐올 적들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예상한 것처럼 무기를 든 무리가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뛰쳐나왔고 친위대와 각자 무기를 부딪쳤다.
사방에서 목소리들이 튀어나와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죽여라!”
“죽여!”
“나탈리 님과 미하일 님의 보호를 우선시해.”
“두 분의 안전은 확보했습니다.”
‘그래. 이 연놈들아. 너희 반동분자 새끼들이 숨기고 있는 게 이놈들이었구나.’
깜짝 선물 하나가 더 튀어나올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익숙한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니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와중에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놈들의 얼굴이 눈에 보인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너무 냉정한 것 같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27군단 납치 사건 이후로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가장 신경 쓴 것이 바로 내 안전이 아니었던가.
쌍검의 박리안을 비롯한 친위대가 괜히 내 주변을 둘둘 싸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평균 연령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한 명, 한 명이 대륙에 나간다면 곧바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만한 실력자.
특히나 박리안은 파란 길드에서도 상위권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지녔다.
호랑이들의 사이에 있는데 강아지 새끼 몇 마리가 달려들었다고 눈 하나 깜짝할까.
아직도 내 주변을 덮은 보호 마법이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그냥 몸을 일으켜서 발걸음을 옮기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친위대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쌍검의 박리안은 거대한 검을 두 개로 나눠 김현성에게 배운 검술을 선보이고 있었고….
그 외 다른 이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강은혜가 좀 눈에 띄네.’
반동 놈의 새끼들의 뚝배기가 갈라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조금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피 한 방울도 보호막에 닿지 못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괜찮네요.”
확실히 직접 체험해 보니 승차감이 다르다.
완벽하게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모습은 지난 시간 동안 이들이 얼마만큼의 훈련을 견뎌냈는지를 절로 깨닫게 만들었다.
물론 이쪽 역시 적재적소에 도움을 준 것은 당연지사.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거대한 용의 팔이 솟아올라 녀석들을 짓누르거나 길을 열고 있다.
“놓치지 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죽여! 대륙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돼.”
“막아라! 막아!”
‘대륙을 위한 싸움이기는 개뿔… 이 많은 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죄송합니다… 부길드마스터.”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사전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확실하게는… 최대한 빠르게 길을 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더러운 개자식! 이 대륙의 암 덩어리야! 이곳이 너의 무덤이다. 절대로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개소리한다, 또….’
마음 같아서는 쌍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미지를 챙기는 게 옳다.
이것도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어느 정도 이죽거리는 화풀이는 하도록 하자. 나도 사람이 아닌가.
“누가 보면 제가 악인 줄 알겠습니다.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게 누구인지는 뻔히 보이는 데 말입니다. 이상을 위해 싸우는 척, 숭고한 척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존경하는 공화국의 잔당 여러분. 옛날에 한 번 베픈 자비와 용서가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표현이 이래서 생긴 모양입니다.”
“닥… 닥쳐라! 네 이놈!”
“저도 참 마음이 약해서 탈입니다… 그래도 당신들의 그 끈끈한 모습은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대충 예상은 갑니다만 그의 죽음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썩은 입으로 군사님을 입에 담지 마라! 더러운 개자식!!”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린 것은 여러분이 악마소환사에게 세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짜 악이… 진짜 악마가 누군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청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네놈이!!!”
대화의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에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귀로 내리꽂힌다.
별것 아닌 도발에 흥분하는 것을 보면 짧은 대화가 성공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만큼 공세가 거세지는 게 느껴졌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네.’
“군사님을 위하여! 대륙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저 독재자 놈의 목을 쳐라.”
“피하셔야 합….”
콰아아아아아아앙!!
박리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를 울리는 굉음.
‘하… 이 미친 새끼들.’
폭발 마법을 건채로 달려들고 있는 자살 특공대.
“보호 마법 외워! 부길드마스터의 몸에 상처 하나라도 생겨서는 안 돼!”
‘그 말이 맞다.’
아픈 게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 몸에 다른 상처가 나서는 안 된다.
‘큰일 나, 이 새끼들아….’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초조함이 갑작스레 솟아났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주변에 있는 다른 동료들의 안전까지 내팽개치고 마력 폭발을 일으키며 다가올지는 누가 알았겠는가.
‘아, 이거 시바 진짜 위험한 거 아니야?’
절로 입술을 꽉 깨물게 되고, 괜스레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뒤를 부탁합니다, 결사단의 동지들이여.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뒤를 부탁한다. 나를 기억해 줘!”
계속해서 굉음이 터져 나오는 만큼 우리를 감싸고 있었던 보호 마법에도 대미지가 누적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폭발음과 연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
내게는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위대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아직은 닿지 못할 겁니다. 계속해서 움직여요. 위쪽으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명대로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를 모시고 위쪽으로 간다.”
용 숨결 물약을 던지고 계속해서 연금 소환 마법을 쏟아붓는 와중에도 터지는 굉음.
보호 마법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여 용의 팔이나 꼬리를 소환해 친위대들이 있는 쪽까지 가로막는다.
이래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박기리 삼 자매가 이곳으로 도착하는 시간까지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외부에서 도움을 기다리면 안 돼.’
안은 이렇게 개판이 되어 있지만, 외부에서는 이곳의 상황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눈치가 있다면 와줄 수도 있겠지만, 원군이 이곳으로 오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 개새끼들은… 아니, 그보다 왜 병력이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은 거지?’
계속해서 꾸역꾸역 밀어붙이고는 있지만, 병력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쌍검의 박리안 역시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
연기에 휘말려 한 치 앞밖에 볼 수 없는 장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상급 언데드입니다.”
‘…….’
확실히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들고 온 것 같다.
이미 죽은 병력까지 사용해 끝까지 목적을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소름이 돋을 정도.
폭음에 휘말려 조각 조각이 난 이들마저 끝까지 기어들어 와 손을 뻗고 있다.
적이지만 칭찬해 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오죽할까. 아직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 더욱더 놀랍다고 느껴진다.
‘이거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닌데….’
이쯤 되면 명분 따위도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쪽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악의가 눈에 보인다. 곧바로 입을 연 것은 당연했다.
“더러운 흑마법사 놈들까지… 공화국 쪽의 흑마법사들은 씨를 말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특한 무리가 아직도 숨어 있었을 줄이야. 이것이 당신들의 방식인 겁니까? 정녕 당신들까지 악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입니까?”
“…….”
“꼭 타락한 군사와 같지 않습니까.”
“군사님은 악마소환사가 아니다! 이 더러운 놈!”
“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작전대로 진행한다.”
“자신의 수하들까지 언데드로 만들어 고기 방패로 내모는 자가 악마소환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악마소환사란 말입니까. 그대들의 모습을 보세요.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그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처럼… 변하시면 안 됩니다. 눈을 뜨세요!”
대사를 치는 와중에도 표정은 최대한 띠껍게. 곧바로 반응이 온다.
“그… 그 더러운 입으로 군사님을 입에 담지 마!!!!!!”
“평정심을 유지해! 함정이다! 함정!! 도발에 걸려들지… 메이퀸!! 제기랄! 제자리를 지켜! 움직이지 마!”
‘한 놈밖에 안 걸렸나 보네.’
폭발로 뒤덮인 공간을 뚫고 쇄도하는 녀석이 한 명, 붉어진 눈을 하고 장검을 든 인형 하나가 곧바로 내 쪽으로 달려왔지만, 박리안이 녀석의 앞을 가로막는다.
검을 휘둘러 왔지만 박리안은 왼쪽 검의 손잡이 끝으로 검을 막아낸 이후에 그대로 그녀의 목에 검을 밀어 넣었다.
푸확! 하는 소리와 함께 혈액이 튀어나온다. 전투력이 꽤 높아 보였던 인원 한 명이 여기서 리타이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데….’
소소한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며 입꼬리를 올렸을 때, 목에 검이 꽂힌 녀석이 스스로 꽂힌 검을 빼내 돌진해 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시발, 저거 뭐야.’
언데드가 아니다.
붉은 눈과 이질적인 피부, 뭔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정확한 상태를 본 후 곧바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더러운 악마 계약자 놈들이….’
“기어코 영혼까지 팔아넘기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