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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73화 (564/1,590)

# 573

회귀자 사용설명서 573화

시위(1)

“내부에서?”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렇게까지 커다란 문제가 될까 싶지만,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복지를 받지 못하고 있거든요. 태업은 점점 더 심해질 거고, 어쩌면 극적인 시위로 치달을 수도 있겠네요.”

“아직 조금 더 찾아봐야 한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렇게 확정 지을 수 있는 단계에 있는 게 맞아?”

“네, 확정 지을 수 있어요. 어찌 됐건 관리를 개판으로 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정황상 미하일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확정된 사안이거든요. 문제는 증거예요.”

“증거….”

“정황은 있는데, 증거는 없다는 거죠.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먹어야 할 파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어딘가로 파이가 빠져나갔다는 증거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거예요. 누가 그 파이를 꿀꺽했는지는 너무 뻔한데…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요? 너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 있어서 저도 놓칠 뻔했다니까요.”

“누나가 그렇게 느꼈다면 확실히 능력은 있다는 거네.”

“다른 건 몰라도 비자금 숨기는 능력만은 기가 막힌다고 봐야죠. 자금 흐름을 최대한 추적하고 있는데… 세탁을 얼마나 잘했는지 제대로 잡히지도 않네요. 이 정도면 세탁소 차려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욕심이 많은 사람처럼은 안 보였었는데, 의외야.”

고유 기벽과 성향 자체가 완벽하게 정상적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당황스러웠다.

상태창에 나오는 성향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상황만 만들어지면 인간은 언제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아마 녀석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마련된 거겠지, 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수도 있다.

‘능력이 좋다고 해야 되는 건지, 멍청하다고 해야 되는 건지.’

조금씩 빼돌렸다면 티도 나지 않고 좋지 않은가.

그 커다란 현장에 직접적인 타격이 올 만한 자금을 빼돌린 주제에 증거까지 완벽하게 은폐했단다.

시간이 짧기야 했지만, 지혜 누나가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거의 허점이 없다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 하나는 잘 봤네.’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본 셈이었으니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능력을 쓸데없는 곳에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내가 신경을 너무 안 썼나 보네. 쥐새끼들은 전부 다 처리한 줄 알았는데.”

“오빠가 뭐 신도 아니고 이 넓은 대륙을 어떻게 다 관리해요? 이건 오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봐요. 급하게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모자라 돈 뿌려가며 급하게 건물 올린 부작용이요. 미하일은 그 허점을 잘 파고든 거고요. 사실 저도 이런 상황이 터질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오빠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야죠.”

“아무리 그래도….”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저희 눈을 벗어났는데 누가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겠어요?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이유도 너무 궁금하고, 그 돈이 어디로 새어나갔는지는 더 궁금해. 지금까지의 이력을 봐도 그런 것들은 찾아볼 수 없어서 더 의외인 것 같다니까요. 물론 아직 제대로 파고든 건 아니지만….”

“결과가 나올 것 같기는 해?”

“안 나오면 만들어서라도 나오게 해야죠. 최선은 직접 흐름을 파악하는 거지만 차선도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굳이 머리 아프게 이것저것 잴 필요 없으니까. 달려가서 뚝배기만 깨면 만사 해결이라고요. 물론 이 정도로 치밀한 경우라면 검찰소환이나 대륙 국정 감사에도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요. 뒷말이 안 나오게 하려면 정식으로 처리하는 게 베스트이기는 한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시간을 들여서라도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확 터뜨려 버릴까요?”

“일단 조금 더 뒤져봐. 작정하고 쥐 잡듯이 잡으면 뭐 하나 나오겠지. 돈세탁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새끼가 예전에 활동하던 지역까지 범위를 넓히고… 가족들은 조사해 봤어?”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요. 어디 보자…. 자식은 없고. 와이프 이름이 나탈리…. 나탈리랑은 예전부터 한 고향에서 자란 친구 사이였네요. 이 사람들 연애 사정은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와이프가 불임증이라는 게 흥미롭기는 해요. 그런데도 아직 두 번째 부인을 들이지 않은 그 사람도 신기하고요. 이런 사회 환경이라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디 사는 누구랑은 딴판이네요.”

“…….”

“이 여자는 그저 그런 여자예요. 뒤에서 내조나 하고 다니면서 집안에서 남편만 기다리는 그런 스타일이요.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 있잖아요?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 뒤져보기는 할게요.”

“그렇게 해봐. 보통 윗대가리에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그 주변 사람들이 개판 치는 경우가 더 많거든. 어쩌면 그런 경우일 수도 있어.”

“만약 그런 거면 어떻게 하게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굳이 말할 필요 있어? 조금 더 보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글쎄요, 확실하게 언제라고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래서요. 최대한 빠르게 캐볼게요.”

“아니, 이거는 내가 직접 한번 보는 게 좋을까? 순찰하는 것처럼 한 바퀴 돌고 오는 건 어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그림보다는 중요할 때 한 번 등판해서 해결해 주는 그림이 더 어울리잖아요? 어차피 갈등은 심화될 가능성이 커요.”

“글세, 그쪽에서도 냄새를 맡았다고 생각하면… 이쪽 눈치를 보지 않을까 싶은데… 무엇보다 일이 커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으음, 조용히 처리하고 싶다는 뜻이에요?”

“현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최대한 지양하고 싶어. 사실 터져도 상관은 없지만….”

“차선보다는 최선이라는 뜻이죠? 그렇게 한번 움직여 볼게요. 증거 모으고 기소하는 방향으로….”

“응, 그렇게 한번 해봐.”

사실 억지로 터뜨리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대륙에 조금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경고 차원의 메시지가 보내질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시점에서 대규모 파업이니 시위니 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건….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는 하나, 현재로서는 그 1보 후퇴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알맞은 시기에 경고가 들어갔으니 미하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 문제를 수습하려 할 터.

녀석이 현장의 문제를 수습하는 동안 이쪽은 증거를 모으고 녀석을 기소할 준비를 마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는 없을 테니, 그쪽에서도 대응하기 어려워질 거고….

반대로 이지혜는 움직이기 쉬워질 테니 기소할 증거를 모으기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조금 자존심 상한 것 같기도 하니까….’

나에게는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지만, 지혜 누나의 성격이 그렇게 웃으면서 넘어갈 성격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먹고 뒤를 캐봤는데도 나오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제법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당분간 다른 일은 빼줘요. 여기에만 집중하고 싶으니까.”

“응, 우리 지혜 하고 싶은 거 다 해.”

“뭐예요? 갑자기.”

“아니야, 아무것도.”

“그럼 지금부터 바로 시동 걸게요. 혼자 처리하고 싶으니까. 구태여 도움 주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응, 나도 그쪽만 신경 쓸 수는 없으니까. 이런 거 보면 사람 좀 더 뽑아야겠다 싶어.”

“김미영 팀장님 데려오는 건 어때요?”

“그 사람은 파란 행정 관리하기도 바빠.”

“아깝네요. 훨씬 편해질 텐데.”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안 그래도 이곳의 업무를 조금씩 떠맡기고 있다.

이상희와 선희영, 황정연이 고군분투해 주고는 있었지만, 김미영 팀장이 없는 파란 길드의 행정팀은 역시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욕심에 그녀를 이쪽으로 끌어들였다가는 아마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무조건 잡음이 나오지 않을까.

탐이 나기는 했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이지혜는 빠르게 집무실을 빠져나가기 시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었지만 확실하게 가슴 한구석에 상처를 받긴 받은 모양인 것 같았다.

입도 안 맞추고 그대로 나가 버리는 것 보니까….

아마 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얘가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출처 정도야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요.”

하루가 지나고.

“씨발. 씨발 새끼, 짜증 나 죽겠네. 이 새끼….”

사흘이 지나….

“와, 진짜 어디다 숨긴 거지? 돌았나? 없을 리가 없는데? 분명히 어디서 새고 있는 게 맞는데….”

며칠이 지나도 성과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지혜의 말로는 발견했다고 생각하면 꼬리를 자르는 식으로 탈출한다고 하니 짜증이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분명히 보물 지도를 발견해 흥분된 마음으로 파볼 때마다 계속해서 허탕을 치니 멘탈이 남아날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짜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물론 혼자서 욕을 하는 빈도도 계속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미하일은 계속해서 현장을 안정시키는 중이다.

이대로 안정권에 들어온다면 이지혜의 움직임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그녀 역시 눈에 불을 켜고 세탁물을 뒤지기 시작했고, 정확히 2주가 지나서야 만족스럽게 웃음 짓는 그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기소 조치 밟고 소환 작업 가시죠.”

“찾았어?”

“조금 늦었지만 찾긴 찾았어요.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뒤져보니까. 놓친 부분이 있더라고요. 나탈리예요.”

“뭐?”

“얌전한 것 같아서 바보로 알고 있었는데… 미하일도 미하일이지만 그 여자도 제법이란 말이야.”

“돈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빠져나간 거야?”

“자세한 건 문서에 확인하면 다 나와 있어요. 너무 복잡하게 처리해 놔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지친다니까요. 나탈리가 연합 쪽 고인물들이랑 인연이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미하일의 지시 아래 움직인 건지 아니면 독자적인 행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어쩌면 미하일이 장난을 쳐놓은 거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증거라고 부르기에는 확실한 정황이에요. 지금까지 해 먹은 자금을 전부 환산하니까 양이 꽤 나오겠던데요? 생각보다 담이 큰 성격이었나 봐. 사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시간을 더 들이고 싶기는 한데… 일단은 소환하시고 구속 수사하시는 게 빠를 것 같네요. 그쯤 되면 자금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뒤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꿀이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뭔데?”

“고생한 거에 비해 무난하게 흐름을 따라갔다고 해야 해냐? 혹시나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이에요.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덩치를 키워봐야 저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흠….”

“아무튼, 이제 고생은, 끝. 저도 오늘은 쉴게요. 지금 바로 언론 움직여서 기사 내보내고 정식으로…….”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이지혜와 주고받은 것은 당연지사.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니면 둘이 있을 때는 출입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뒀기 때문이다.

이지혜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문을 두드린 거라면 현재 뭔가 상황이 터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들어와서 보고해요.”

“회의하시는 도중에 죄송합니다.”

“…….”

“저… 5구역에서 파업 시위가 터졌습니다.”

‘뭐야, 그거 안정화되고 있었잖아.’

“현재 5현장의 책임자들은 강제진압의 형태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으며….”

‘뭐야, 왜 그렇게 갑자기 일이 터져?’

“노동자와 기술자들 역시 물러서지 않고 맞서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니, 시바, 이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도 잠시.

이윽고 전령이 가지고 온 영상을 본 이후에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구겨졌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을 거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거요! 미하일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민주 투사, 아니, 이제는 노동 운동의 중심이 돼버린 바쿠더쿠가 시야에 비쳤기 때문이다.

‘이 새끼는 시바 지가 무슨 운동권이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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