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4
회귀자 사용설명서 564화
1년 이후의 대륙(2)
“크으, 역시 이거 덕분에 살맛이 난다니까. 술맛이 기가 막히는구만.”
“알겠으니까 옷 좀 입어요. 왜 계속 웃통을 까고 계세요?”
“아, 이걸 아직도 벗고 있었나. 미리 좀 말해주지.”
“들어올 때도 말씀드렸거든요.”
“뭐, 그게 뭐 중요한가. 자, 한잔들 더 받으쇼. 아, 너무 맛있다니까. 이 술 때문에 여기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거 아니요.”
“이 지역에서는 유명하다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가지고 가고 싶군요.”
“떠날 때 한 병 사가세요. 아니면 여기 근처에 감독관들한테 달라고 해도 되고요. 아저씨들은 실적 좋아서 보급품으로 나온 거라도 드리려고 할 걸요.”
“어? 그래도 되나.”
“네, 당연하죠. 하루에 작업을 얼마나 하는데. 아무튼, 짠 한 번만 더 하고 마무리해요. 더 있다가는 내일 작업에 지장 생기겠다.”
나머지 한 잔을 빠르게 털어낸 이후에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다른 아저씨들은 전부 더 있고 싶어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아직도 20대인 줄 아나 봐.’
일에 영향이 갈 게 분명했다. 한 발자국 앞에서 둘이 어깨동무하는 모습은 가관.
조용히 걷기도 심심해 다시금 여신의 손거울을 꺼내 확인하자, 아까 올린 게시물이 눈에 보였다.
한 시간 이후에 다시 돌아온다던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헐, 천연사러버… 진짜 파란 길드 직원이었어.”
확실하게 파란 길드 휘장과 사원증이 인증되어 있었다.
아이디미정인지 뭐인지가 쓴 댓글은 전부 삭제되어 있었고, 눈팅하던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성지라고 떠들어대는 것도 보였다.
[흙수저: 헐ㅋㅋㅋ 진짜였네. 기 받아갑니다.]
[힐못하는제리엠: 파란 길드에 어떻게 취직했는지 좀 알려주세요. 최근에 공채가 안 올라오던데….]
[트레샤: 아이디미정, 입 털더니 결국 빤스런 했네ㅋㅋㅋ 통한의 1비추 누구인지 빤히 보이죠. 비추 실명제 개이득.]
[린델마을주민: 작성자 무사한 거 맞음? 별일 없으면 다행인데… 댓글이 안 올라오니까 불안해진다.]
[흙수저: 중간에 빠졌나 봄. ㅋㅋㅋㅋ 몬스터들이 어떻게 그쪽까지 올라가겠음. 안 그래도 중간 지역은 몬스터들 없기로 유명한데… 아마 근처 숲에 자리 잡았을 테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듯. 그보다 천연사러버님 휘장 보니까 일반 길드 직원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최소 팀장급일 듯.]
괜스레 실실 웃게 만드는 댓글들, 조금 멀리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게 뭔 소리지?’
어두컴컴한 밤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인상을 찡그리며 앞을 바라보자, 저 멀리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형태의 형상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저게 뭐야?’
근 1년 동안 볼 수 없었던 풍경에 조금은 당황한 것은 당연지사.
“최 씨 아저씨, 저게 뭐예요? 저거 몬스터 아니에요?”
“무슨 이 지역에 몬스터가… 있겠어.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도 않던 놈들이 여기 있을까. 많이 취했나 보네.”
“아뇨, 취한 건 아닌데….”
‘거기 어디 작업장임? 지금 여기 몬스터들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중간쯤 있는 작업장이면 조심해. 린델 근처 몬스터들이 씨가 마르다 못해, 이제는 대피까지 하는데, 세상이 진짜로 망하기는 망하려나 봄.’
오늘 베니고어 넷에서 본 리플이 떠올랐다.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몬스터 웨이브다. 몬스터 웨이브!”
“뭐야… 이거 뭐야. 최 씨 아저씨, 이거 괜찮은 거 맞죠?”
“나, 나도 잘….”
“아직 성벽도 안 올라갔는데… 이거 그냥 확 밀려 버리는 거 아니에요? 여기는 병력도 얼마 없잖아요. 마법사 숫자도 적고… 무슨 몬스터들이 저렇게 와요.”
“이거 아무래도… 싸울 줄 아는 사람은 싸워야 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곧 지원이 온다. 지원이 올 때까지만 버티자. 병사들이여, 싸울 수 있는 인원은 무기를 보급받고 성벽에 자리를 잡는다!”
“지원이 올 때까지만 버티자. 성벽 위에 자리를 잡아라. 모두 위치로! 모두 위치로!”
‘무슨 성벽이야, 그냥 담장 수준인데… 이런 걸로 쟤들을 어떻게 막아?’
마력석으로 만들어졌으니 무너지지야 않겠지만, 소형 몬스터들도 점프하면 닿을 높이의 성벽이다.
그냥 담장 높이이니, 수성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지 않은가. 싸우기는 싫다.
하지만….
‘어차피 도망쳐도 죽을 거야.’
지금에 와서 몸을 돌려 도망치는 것도 의미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때 모험가를 지망했던 만큼 희귀 등급의 몬스터 몇몇은 잡을 수 있을 터.
한쪽에서 무기를 보급하고 있는 병사에게 달려가 입을 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활이요.”
“네.”
“여기 오기 전에 모험가였어요. 단검도 하나 주세요.”
‘다른 아저씨들은 어딨지?’
안 씨 아저씨와 박 씨 아저씨, 최 씨 아저씨는 왠지 도망쳤을 것 같았지만, 너무나 복잡해진 성벽 위에서 그들을 모두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박 씨 아저씨랑 안 씨 아저씨는 도망가지 않았을 텐데.’
대충 봐도 한 가닥 할 것 같이 생긴 사람들이었으니까.
‘최 씨 아저씨는 무슨 왕년에 모험가였다더니….’
벌써 몸을 뒤로 빼지 않았을까.
‘지원군은 빨리 올 거야. 분명히 여기 도착하기 전부터 연락이 닿았을 테니까. 그리고 마법사도 있으니까. 너무 오래 버티지 않아도 돼.’
위급 상황 시 매뉴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재빠르게 사격 위치로 올라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아직까지는 몬스터의 사정거리 밖이라 조용히 조준만 하고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런 대규모 전투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연습이라도 해놨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활시위를 놓자,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몬스터의 살가죽을 뚫고 들어갔다.
“발사! 발사!”
어두 캄캄했던 장내가 커다란 화염 마법에 의해 다시금 밝아진다.
콰앙!!!!!!
체류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을 쏟아부은 것이다.
보온 마법을 유지할 수가 없는지 입에서는 입김이 서리고 온몸이 춥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손가락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일반적이었다면 저 커다란 마법이 떨어진 시점에서 녀석들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겠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게거품을 물며 앞으로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들의 마법에 다시 한번 몬스터 한 뭉텅이가 쓸려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결국 성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패를 든 병사들이 앞으로 나가고, 제법 힘을 쓸 것 같이 생긴 격수들이 단단하게 전방을 지켜주는 모습에 숨을 다시 내쉴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넓은 성벽을 전체를 사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에는 거대한 몬스터 한 녀석이 그 거대한 입을 벌리며 담장으로 돌진해 왔고.
‘피해야 돼.’
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잠시 후에 닥쳐올 끔찍한 격통에 불안해했지만, 몇 초가 지나도 몸에서는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시야에 비치는 건 몬스터의 이빨을 양팔로 잡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어, 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거대한 몬스터가 형편없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박 씨 아저씨?”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 공격! 어서 빨리 따라오라니까!”
[전설 등급의 특성 사기의 외침 영향을 받으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대폭 증가합니다.]
‘이게 뭐야.’
최상급 버프라도 받은 것처럼 온몸에 힘이 넘쳐흐른다.
박 씨 아저씨가 담장 아래에 내려가 본격적으로 몬스터를 잡아내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옆에 있었던 안 씨 아저시 역시 마찬가지다.
둔기와 방패를 들고 신성력을 뿌리며 몬스터들을 후려치는 모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성기사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신성력, 상위 사제가 둔기와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전투에 임하고 있는 모습은 틀림없이 전사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박 씨 아저씨.
‘저 사람, 누구야.’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그런 범주를 완전히 벗어났다.
방패를 팔에 딱 붙이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들이 나가떨어지는 광경은 믿기지가 않는다.
저 둘이 지나간 곳마다 커다란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스레 병력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느덧 거대한 몬스터들과 회전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지원군을 불러올 필요도 없다.
‘저게… 도대체 뭐야.’
인간이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 것은 당연지사.
강한 모험가 중에서는 간혹 단신으로 전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간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게 사실 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게 된다.
아니, 이미 전투 중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전열이 완전히 기울어졌으니까.
괜스레 여신의 손거울을 꺼내 두 남자를 비추기 시작했다.
북부 전진기지 수성 전 실황이라는 제목을 붙이자, 계속해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눈에 보였다.
[린델마을주민님이 접속하셨습니다.]
[흙수저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천연사러버님이 접속하셨습니다.]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
[…….]
[린델마을주민: 내가 뭐라고 했음. 몬스터들 저쪽으로 갈 거라고 했잖아. 와, 근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네. 생각보다 너무 잘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쪽에는 뭐, 아무것도 없어서 차출된 병력도 없지 않나? 사람들 왜 저렇게 잘 싸움? 여기 성벽 아님?]
[진지충: 그나저나 방송 켠 놈은 뭐 하고 있음? 사람들 다 죽자고 싸우고 있는데… 진짜 개노답이다.]
[린델마을주민: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방송하셈. 지금 전열 뒤집힌 것도 안 보이나. 딱 보니까 후위인 것 같은데… 그리고 병사로 지원한 것도 아니고 노동자로 지원한 건데, 굳이 싸울 필요는 없음. 보호받았으면 보호받았지. 그나저나 저기 앞에 남자 두 명 개잘 싸우네. 대충 봐도 교국 8좌급은 될 듯.]
[아이디미정: 뭐 조금만 세다고 하면 교국 8좌급이라고 하는 놈들 극혐. 그 이름이 애들 장난인 줄 아나 봄 ㅋㅋㅋ]
[흙수저: 저 사람 또 왔네.]
[린델마을주민: ㄴ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대충 봐도 교국 8좌급은 되어 보임. 저거 영웅 등급 레이드 몬스터들도 섞여 있는데 방패 휘두르는 거 봐. 스치는 공격은 그냥 전부 몸으로 맞는 것 같은데, 내구 수치가 100은 넘어갈 듯. 어쩌면 장비 빨일 수도 있고.]
[아이디미정: 내구 수치가 100이 넘어가는 사람이 퍽이나 저기서 저러고 있겠다. ㅋㅋㅋ]
[린델마을주민: 가만히 있으면 망신이나 안 당하지. 누구든지 간에 둘 다 전설 등급 정도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듯. 한국인인 것 같은데… 저런 성기사랑 저런 전사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상위 모험가들은 거의 다 알고 지내는데, 저런 사람들은 본 적 없음. 저거 누구임?]
[아이디미정: 한국인 종특 나왔죠. 조금만 세 보이는 모험가 나오면 전부 다 한국인이래. 그리고 상위 모험가들이랑 다 알고 지내는 것도 허언증. 니가 상위 모험가랑 다 알고 다니면 나는 이기영 친구다. ㅋㅋㅋㅋㅋ]
[흙수저: 관심을 주지 맙시다.]
[린델마을주민: 원래부터 무시하고 있었음. 아무튼, 저거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있음?]
[천연사러버: 박덕구, 안기모.]
[린델마을주민: 어?]
[천연사러버: 찾았다.]
[천연사러버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