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2
회귀자 사용설명서 552화
복수의 동기(1)
“그래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된 겁니까?”
“글쎄요. 사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있었던 이야기라… 말을 하는 도중에 기억이 나기도 하더군요. 그 이후라면… 아마 한참이나 그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파란 길드원들에게 발견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공략조…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도 공략조가 있었던 겁니까?”
“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정진호라고….”
“아, 그 미치광이 살인범 말씀이시군요.”
“네, 이기철 그리고 정진호를 포함한 몇몇 이들이 공략조를 만들어 튜토리얼 던전의 공략을 완료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요. 이후에 밝혀진 이야기로는 숨어 있던 인간을 몇몇 데리고 가 희생양으로 내몰았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정진호 그 사람은 이후에 어떤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걸었습니다. 대륙에 큰 악영향을 끼친 살인여단의 단장으로서 악명을 떨쳤지만 조금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튜토리얼 던전의 지하로 내려갔을 당시에도 그자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내려가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거고요. 결과적으로는 기영 씨가 유석우…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만약에 정진호를 던전 안에서 처리하지 못했더라면 더 큰 피해가 일어났을 겁니다. 태생이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죽게 됐는지 조금은 궁금하군요. 그러니까 현성 씨가 말하는 1회차에서는 결국 어떻게 된 겁니까?”
“배신당했습니다.”
“네?”
“같은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함정으로 내몰리고 비참하게 숨을 거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자를 죽인 것은 린델 측의 길드였습니다만 아마 그 상황을 만든 건 가면을 쓴 남녀였을 겁니다. 그러니까… 악마소환사 진청… 그자 역시 살인여단에 멤버였으니까요. 정확히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여단 내부에 권력 다툼 때문일 겁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범죄자 역시 악마 소환사 진청, 그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거겠죠.”
“너무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진청, 그자는….”
“네, 그자 역시 인류 최악의… 아니, 이건 조금 더 이후에 설명을 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진청, 그자가 표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진호가 비참하게 죽은 이후였으니… 아무튼 살인마 정진호는 수백 개의 화살을 맞고 숨을 거뒀습니다. 괴성을 내지르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다, 하늘을 바라보고 웃으며, 그렇게 죽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남기면서요. 조금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이 새끼는 갑자기 자기 이야기 하다가 진청 이야기로 빠지고 그래. 그건 한참 뒤에나 일어나는 일이라며.’
“말주변이 없어서 너무 난잡하게 이야기를 푼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악마소환사 진청과 미치광이 싸이코패스 정진호가 일종의 유착관계가 있다는 것은 카스가노 유노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진청 녀석이 결국 뒤통수를 때렸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과연 1회 차에 인류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빌런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믿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들까지 사지로 내모는 냉혈한, 이런 쓰레기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진작 처리해 놓기를 잘했어.’
대륙에 공포를 불러올 두 명의 빌런을 빠르게 처리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편안해진다.
지금 이 시점에서 녀석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여유도 부리지 못했겠지.
‘얘네 생각은 이쯤 하지, 뭐.’
어차피 계속해서 듣게 될 테니까.
지금 녀석들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김현성의 1회차 이야기였다.
‘확실히 재능이 있기는 있어.’
자랑하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1차 전직, 2차 전직을 한 상태로 아귀들 수십 마리를 베어버렸다는 건 재능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머릿속 지식이 들어왔다고 한들, 그 누가 그렇게 싸울 수 있겠는가.
아마 그 형이라는 사람의 위기와 죽음이 김현성을 깨우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곳에서 장렬하게 사망해 줘서 오히려 다행이다. 김현성의 경험치가 되어 사라진 그분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조금 의문이 남는 것은 김현성이 그 사람을 찾지 않았다는 것. 아니….
‘찾아보기는 했지만….’
발견할 수는 없었겠지.
애초에 정보가 너무 없었으니까.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알고 있는 거라고 해봐야 목소리 하나. 심지어 그 목소리도 온전치 않았을 확률이 높다.
김현성으로서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었으리라. 어쩌면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 사람은… 형이라는 사람은 지금….”
“튜토리얼을 진행하며 한번 찾아보려고 했지만, 역시 쉽지 않더군요. 너무 정신없이 달려가서 그 굴에 처박혀 있었던 터라 기억도 나지 않았고요.”
‘찾기는 했었네.’
“아마 살아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말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1회 차에 비해 몬스터의 숫자를 많이 줄여놨었으니까요.”
“가끔 혼자 바깥에 돌아다닌 이유가 있었군요.”
“네, 매번 그 이유로 던전을 돌아다닌 건 아니었습니다만… 아무튼 그렇게 던전을 빠져나온 이후에는 파란 길드에 들어갔습니다. 공략조에 들어가지 못해 상대적으로 주목은 덜 받았습니다만….”
‘낭중지추라고 했으니까.’
아마 훈련소에서 훈련하다 보면 녀석이 숨은 원석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차희라 님이나 박연주 님에게 오퍼를 받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파란 길드를 선택했었습니다.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요. 지금 길드 고문으로 계시는 이상희 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당시에 파란 길드가 사정이 좋지 못해서 고생을 조금 했었습니다. 점입가경으로 이설호 그 사람이 악마숭배자 이토 소우타를 끌어들이며 상황이 더 안 좋아졌고요. 그게 첫 번째 전쟁이었습니다.”
“네?”
‘진짜 개판이었구만.’
“실리아와 린델의 도시 간 전투가 제가 겪은 첫 번째 전쟁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쟁이 끝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교국에서 어느 정도 중재를 해올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그럴 만하지.’
당시에 교국은 악마숭배자 이토 소우타 녀석이 꽉 잡고 있었으니까.
정계는 물론 교황청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교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교국, 그러니까 구 제국의 입장에서는 강한 무력을 갖춘 두 도시의 싸움을 관망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모험가들의 입지를 줄인다는 과업을 손 안 대고 풀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당시 제국의 대가리였던 황제와 샤를리아, 그 머저리가 그런 상황을 계산하고 관망한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공화국과의 전쟁을 촉진하는 역할에 조미료를 뿌렸을 것이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안 그래도 호시탐탐 교국을 노리고 있었던 진청쓰레기와 공화국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었겠는가.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하면 1회 차는 지옥 아닌 지옥, 전쟁과 전투가 끊이지 않는 개판 오 분 전의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실리아와의 도시 간 전쟁, 살인여단의 등판, 공화국과의 전쟁, 가면 쓰레기 진청이 표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딱 이즈음일 거다.
그다음이 아마 김현성이 회귀를 하게 된 시점의 이야기겠지.
내가 알고 있는 흐름은 딱 이게 끝. 중간중간 던전에 들르거나 여유를 즐길 시간은 있었겠지만, 사건은 끊이지 않았을 거다.
조금 궁금했던 것은 박덕구가 죽은 시점이었지만, 흐름으로 보면 실리아와의 도시 간 전쟁과 살인여단의 등판 사이일지도 모른다.
세세한 이야기 하나도 놓치기 싫은 내 입장에서는 조금 더 김현성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작은 단락을 끝내자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웠네.’
정말로 밤새도록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기영 씨가 파란 길드에 함께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게 달라졌다는 겁니다.”
“아….”
“네, 실리아와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고 교황청과 제국의 힘겨루기로 일어나지 않았죠. 악마숭배자 이토 소우타를 빠르게 퇴장시킬 수 있었고 아까 말했던 진청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륙의 모든 국가가 더 빠르게 힘을 모을 수 있기도 했고요. 1회 차였다면 지금 한참 대륙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을 겁니다.”
“알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군요.”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를 겁니다.”
“그럼 실리아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제가 파란 길드를 이어받았습니다.”
‘딱 그때부터 시작이었구만.’
거기서부터 김현성 정권이 시작됐다.
“실리아와 린델의 전쟁에 대해서는 이후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겠지만, 그 이후에 제가 파란 길드의 길드 마스터로서 활동했습니다. 많은 길드원이 죽었고 린델과 실리아 양 측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생겨났습니다. 제국 쪽에서도 부랴부랴 중재하는 모션을 취했지만, 이미 너무 큰 피해가 생겨난 이후였죠. 아마 이토 소우타가 죽지 않았더라면 전쟁이 더 길게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했겠죠.”
“이토 소우타는.”
“제가 직접 죽였습니다. 제가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운이 좋았었습니다.”
‘이거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
악마숭배자의 최후가 정확히 어땠는지 듣고 싶다.
‘이 새끼도 참 대단하긴 해.’
전쟁으로 인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겠지만 그게 이토 소우타 보다 강해진다는 뜻은 되지 않는다.
당시 이토 소우타의 민첩 수치는 99. 김현성이 아무리 빠르게 성장했다고 해봐야 80을 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특히 재판장에서 녀석의 신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이 있는 만큼 더욱더 놀라웠다.
운이 좋았다는 건 과장이 섞인 표현은 아니다. 물론 그 운이 따를 수 있었던 것에는 김현성의 기본기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궁금해진다.
그때의 상황과 그때의 전투, 김현성이 어떻게 파란 길드에서 자리를 잡고 파란 길드를 지금과 같은 삼대 길드로 만들었을지도 궁금하다.
전쟁이 끝난 직후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김현성이었으니 많은 이들의 지원과 투자가 있었겠지만, 길드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김현성은 무능력의 아이콘에 가깝다.
당시 부길드마스터로 있었던 이상희도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고…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시기가 맞는다면….
‘조혜진이 들어왔겠구나.’
캐슬락 내부고발 사건으로 인해 길드와 클랜을 구하지 못한 조혜진이 파란에 가입했다고 가정하면 대충 아귀가 들어맞는다.
김미영 팀장 같은 유능한 행정자원이 없었을 테니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겠지만, 조혜진과 김현성은 천천히 길드를 삼대 길드와 비슷한 자리로 끌어 올렸을 것이다.
‘영웅 던전 공략 한 번만 성공해도, 뭐.’
쉽게 주목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내 예상대로 김현성은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때마침 혜진 씨가 파란 길드로 들어와 준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맨 처음 혜진 씨를 데리고 왔을 때 비서실장으로 곧바로 임명한 것도….”
“그때 일은 죄,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기영 씨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럼 예리나 하얀이도 당시 파란 길드원이었던 겁니까?”
“하얀 씨는 파란 길드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마도 길드 소속으로… 이후 전쟁 도중 악마 소환사 진청에게 속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
말을 잇다가 내 반응을 살피는 김현성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아마 충격받은 듯한 내 표정을 본 것이 확실하리라.
“쓰레기 같은 자식.”
안절부절못하는 김현성의 모습이 다시 한번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