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1
회귀자 사용설명서 551화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5)
“버텨! 버텨! 버티다 보면 전부 처리할 수 있어. 모두 정신 차려요. 버티면 됩니다. 유리해요. 유리합니다.”
“키에에에에에엑!”
“제기랄! 뒈져! 뒈져라! 이 개새끼들!”
“아아아아악!”
“물러서지 마. 등 보이면 끝이야. 진형 붕괴시키지 마! 겁먹지 말라고, 이 개새끼야! 찔러! 찔러! 충분히 할 수 있어! 쉬워! 쉽다고!”
“키에에에에엑!”
“방패 들어! 돼지 새끼! 방패 들어!”
푸욱!
“내 팔! 내 팔! 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 아아아아아아악!”
“구하러 들어가지 마! 대열 이탈하지 말라고! 시바! 대열 이탈하지 말라고 했잖아, 멍청한 새끼들! 이 답답한 개새끼들아! 이 씨바 무능한 놈들! 대열 이탈하지 마!!! 흩어지려고 하면 전부 뒈진다!”
좁은 장내를 가득 메운 몬스터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파티,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만큼 많은 숫자의 몬스터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에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저항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숫자가 부족하다.
몬스터들이 나가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아귀라고 불리는 괴물들의 숫자는 도통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개… 답답한 개새끼들아! 내 말 들어! 이 개새끼들! 어우, 답답한 새끼들!”
검을 들어야 한다고. 지금 당장 이곳에서 뛰쳐나가 뒤를 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어… 아….”
하는 소리만 입에서 튀어나올 뿐, 조금만 더 버티라고 지금 도와주러 가겠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알고 있었던 탓이다.
“어… 어….”
‘죽을 거야.’
지금 모습을 드러내면 죽는다.
‘분명히 죽을 거야.’
소리를 내지르거나, 내가 이 장소에 있다는 걸 저 괴물들이 눈치챈다면 틀림없이 죽는다.
겨우 두 마리를 상대할 때도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저 안은 대열을 유지하고 있어서 버틸 수 있었지만, 자신은 지금 혼자다.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패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몸도 정상이 아니다.
다리 한쪽은 상처 때문에 절뚝이고 있었고, 왼팔도 말을 듣지 않는다. 체력도 없다. 이런 상태로 싸우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뒤쪽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 중 일부만 내게 달려들어도 분명히 살 수 없을 것이다. 순식간에 온몸이 뜯겨 나가 도움도 줄 수 없으리라.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팔이 덜덜 떨려온다.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다. 도와주고 구해줘야 한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구해줘야 돼.’
도움을 받았다. 형 때문에 살 수 있었으니까. 도와줘야 한다. 형 때문에 그 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나도 구해줘야 한다.
하지만.
‘형, 형이 아닐 수도 있잖아.’
목소리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아니, 제대로 된 목소리가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목이 많이 쉬어 있는 상태였으니 구별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말투는 비슷한 것 같았지만, 지금 저곳에서 싸우고 있는 파티는 형과 동료들이 아닐 수도 있다.
괴물들의 울부짖는 소리 때문에 목소리도 잘 들려오지 않는다.
점점 더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합리화하지 말라고, 자기변명일 뿐이라고, 만약 형이 아니더라도 도와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들 사이로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눈을 마주친 것 같다.
안심하고 있는 눈이다. 이제 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눈이다.
‘도와줘야 돼.’
“도… 도와….”
‘같이 싸울 수 있어.’
“내, 내가….”
‘그게 맞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누구 때문이야.’
“나도… 싸울 수….”
‘같이 싸우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같이… 가.”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그 기대를 배신한다.
상처 때문에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다리는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수라장이 된 장내를 빠져나간다.
지쳐서 싸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그 지옥에서 멀어진다.
“허억, 허억, 끄윽… 병신 새끼….”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다리에서 감은 천에서는 핏물이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는다.
“김현성, 병신 새끼! 겁쟁이, 겁쟁이 새끼야… 꺼윽, 이 죽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 죽어야 되는 새끼.”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괴감 때문인지, 아니면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눈물은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병신 새끼가 맞다. 겁쟁이 새끼다. 살아남을 가치도 없다. 어차피 지금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 앞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할 거다.
자신을 도와준 유일한 사람을 외면했다. 굴속에 숨어 있었을 때처럼, 그때처럼 또 한 번 타인과 자신의 기대를 배신했다.
또 다른 자신은 이제 괜찮다고, 비로소 안전한 곳으로 왔다고 말하고 있다.
조금 더 멀리 벗어나라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너는 다시 한번 더 살아남아서 이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달리던 발걸음을 멈춘다. 이미 충분히 멀어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가만히 있는 걸 견딜 수 없어서 일 거로 생각했다.
벽면에 그어진 희미한 화살표가 시야에 비친 것은 그때, 바로 그때였다.
“아….”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화살표.
“아….”
굴에서 빠져나왔을 당시에 봤었던 화살표였다.
‘잊지 않은 거야.’
자신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빠져나올 것은 물론, 자신을 따라오고 있을 거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
다시 한번 눈물이 차오른다. 입술을 꽉 깨물고 검을 쥔 손을 다시금 움켜쥔다.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어느새 그 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제발 살아 있어야 돼.’
“허억… 하아… 하아….”
‘아직 버티고 있을 거야. 분명히 살아 있을 거야.’
“형… 형!”
‘분명히 안 죽었을 거야, 분명히. 제발… 제발 살아 있어.’
“제발 살아 있어.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살아 있어요.”
‘제발 살아 있을 거야. 제발, 전직도 했다고. 이제는 싸울 수 있다고 같이 싸울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이… 이 개새끼들! 이 개새끼들아!!!!”
무작정 검을 휘두른다.
‘생각해.’
찌르지 말자. 힘을 주고 한 번에 목을 베어내자.
‘생각해야 돼.’
“으아아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엑!”
검을 멈추면 안 돼. 한 번에 베어내야 돼. 검이 막히거나 걸릴 수도 있으니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자. 피하고 베어내면 돼. 쉬운 일이야. 전부 다 볼 수 있어.
“이 개새끼들! 개새끼들아!! 형! 형!!! 저 왔어요! 조금만… 조금만 버텨요!!”
“키에에에엑!”
사방에서 덮쳐 들어오는 괴물, 몇 번 움직이는 거로 피할 수 있어.
‘그렇게 할 수 있어.’
내가 더 민첩하고 강해.
‘머릿속에 있잖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검을 휘두르는 지식을 얻었잖아.’
전부 다 머릿속에 들어 있다.
쉬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이다. 이미 지식은 주입되어 있다. 그걸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킬을 누르는 거로 생각하면 된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신 몸을 움직일 뿐이다.
왼쪽으로 달려들어 오는 괴물의 목을 검으로 베어낸다. 땅바닥을 기어서 달려들어 와 다리를 노리는 녀석은 한 발자국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피할 수 있다.
뒤를 잡히지 않게 계속해서 움직인다. 조금씩 조금씩 외곽을 죽이면서 깎아 먹는 것처럼 몸을 움직인다.
어렵지 않았다. 리치는 내가 훨씬 더 길었으니까.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그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온 녀석은 단검으로 찌른다.
얼굴에 핏물이 튄다. 하지만 닦을 시간은 없다. 호흡이 거칠어지지만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힘들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억지로 괴성을 내지르며 고통을 참아낸다.
“으아아악! 개새끼들! 덤벼! 덤벼! 개새끼들! 개새끼들!!! 형!! 형!!! 저 왔어요! 김현성이요! 김현성! 김현성 왔어요! 김현성! 22살 김현성 왔어요!!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제가 도와줄게요!”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검을 쥔 손아귀의 힘이 부족해 목을 벤 검이 중간에 멈추고 당연히 공간을 허용하게 된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로 녀석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검으로 커다란 원을 그린다.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돼.’
“내가 더 빨라.”
‘내가 더 빠르다.’
“내가 더 빨라!!”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빠르게! 내가 더 빨라!”
‘그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상관없어.”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빠르게 빠르게 검을 휘두르자. 보지 않아도 된다.
[민첩이 1 올라갑니다.]
베어야 할 곳, 베어내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팔이든 발이든 검에 걸리는 건 무조건 베어내면 된다. 어차피 내가 더 빠르니까.
[민첩이 1 올라갑니다.]
굳이 순서를 정하지 말자. 피하고, 검을 아래로 움직이고,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 휘두를지 생각하지 말자. 이미 머릿속에 다 있잖아. 생각하면 더 늦어지니까.
누군가가 어디로 검을 휘두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공격은 닿지 않을 거니까.
[민첩이 1 올라갑니다.]
“이 개새끼들!! 이 개새끼들!!!”
[새로운 직업을 획득합니다.]
“형! 형! 혀엉!!!”
[일반 등급의 검사로 전직을 완료합니다.]
“내가 더 빨라! 내가 더 빨라!”
새로운 지식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진다. 그만큼 검은 더 예리해지고 움직임은 더 정교해진다.
팔도 무겁고 발도 무섭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하지만 몸을 다시 한번 움직인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재충전되는 것 같다.
아마 안에서 싸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기분이겠지. 계속해서 줄어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희망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남은 것은 중앙에 몰려 있는 열 몇 마리가 전부. 중앙에서 시선을 분산시켜 준 덕분에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폐가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검을 휘두른다. 이윽고 남아 있던 몇 마리의 머리까지 완전히 베어낸 이후, 황급하게 중앙으로 다가간다.
“형! 형!!! 저예요. 구하러 왔어요.”
괴물들의 시체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괴물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것도 일.
“형!”
하지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형… 형!”
몬스터 시체에 파묻혀 있었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린 몇 구의 시체가 눈에 보인다.
“아… 아아아악… 아아아….”
어째서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갔냐는 듯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듯이 처참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내던져져 있었다.
“꺼윽….”
어째서 도망쳤을까.
“죄송해요… 흐윽… 죄송해요… 미안해요….”
왜 조금 더 용기를 내지 못한 걸까.
“꺼으으윽… 꺼윽….”
어째서 피하려고 했을까.
계속해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누가 누구인지조차 알아차릴 수 없다. 누구를 위해 애도를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모두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모습. 어쩌면 이게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아아아….”
자신이 던져준 가방을 메고 있는 남자의 시체를 확인한 이후, 그 시체를 품에 안으며 그렇게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흐으으윽… 꺼윽….”
-살아서 보자.
“흐어어엉… 죄송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같이할 마음 있으면 찾아오고
“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흐어어어어어엉….”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