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548화 (539/1,590)

# 548

회귀자 사용설명서 548화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2)

시계가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사흘 정도가 지난 것 같다. 물론 확실하지 않다.

단순히 체감상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세 번 정도 잠을 청했으니 아마 그 정도가 딱 맞으리라.

‘배고파. 밥 먹을 때가 됐나? 아까 조금 먹은 다음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적어도 여덟 시간 정도는 지난 것 같다. 살짝 가방을 열어보니 안에 든 식량과 식수가 시야에 비쳤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꽤 많은 양이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아껴 먹으면 10일, 어쩌면 그 이상도 먹을 수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빵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떼어서 먹는다면 30일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티브이나 인터넷에서도 나오지 않았던가. 물 만 먹고 몇십 일을 버틴 사람들 말이다.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그 사람들보다는 상황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그들 같은 경우에는….

‘괴물 같은 건 없었겠지.’

위험한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이 환경은 평범한 인간들 역시 괴물로 만든다.

식량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거나, 인간성을 잃고 궁지에 몰려 살인 같은 범죄를 일삼는 괴물들 역시 던전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어제저녁에만 해도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자신 역시 괴물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외면하고 등을 돌려 지옥에서 달아난 자신 역시 평범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으리라.

머리끝까지 차오른 자괴감을 애써 외면하듯 배에서는 계속해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바깥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거, 거, 거기… 누, 누, 누구 있나요?”

“…….”

“저, 저도… 좀 들여보내 주세요.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요. 제발….”

“…….”

“제발요. 부탁드려요. 제발….”

애써 귀를 막는다.

“주, 주변에 그… 괴물들이 있는 것 같아요. 부탁드려요. 도와주세요.”

“…….”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도와줘야 한다고,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존 앞에서는 냉정해진다.

‘두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야. 식량도 얼마 없고, 나쁜 사람일지도 몰라. 뺏으려고 할지도 몰라… 분명히 그럴 거야.’

“…….”

“…….”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했던 여성의 목소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아마도 포기한 게 분명하겠지. 아니면 처음부터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했거나.

어쩌면 혼잣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은 것이리라. 조금씩, 조금씩 빵을 떼어 먹으며 허공을 올려다봤지만 보이는 것은 까만 벽.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버텨야 이 지옥이 끝날지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최대한 여기 있는 것들로 버텨내야 한다.

냉정해지고 냉혹해져야지 살아남을 수 있다. 그곳에서도 냉정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던가.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애써 가슴 속 싶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다시금 숨을 죽였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났다.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앉아서 생각할 뿐이었지만, 이 별것 아닌 생각마저 멈춘다면 정신이 망가질 것만 같다고 느껴졌다.

괜스레 상태창을 열어보기도 했고 귓가로 들려오던 목소리가 뭔지 추측해 보기도 했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곳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더 실감했을 뿐이었지.

목소리는 이곳을 분명히 튜토리얼 던전이라고 불렀다.

이곳 이후에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갈 확률은 낮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소위 말하는 레벨업이라는 걸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 이전의 그 지옥으로 되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핏물 구덩이에서 나뒹굴던 시체들과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미 뇌리에 박혔다.

싸움조차 해본 적 없는 자신이 바깥에 나가서 괴물들과 싸울 수 있을 리 만무. 무기라도 있으면 조금 용기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병장기 같은 건 이곳에 없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방패도 내던져 버렸다. 맨몸으로 싸운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또 제자리.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빵 한 조각을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다시 깨어나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하루가 더 흐른 것 같았다. 어제저녁에 괴물들에게 쫓기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좁은 입구를 막아놨다고 한들, 괴물들이 이곳에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자기 합리화.”

스스로가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깨닫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묘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기 사람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그게 무슨 소리요?”

“잠깐만 조용히 있어 봐.”

“알, 알겠….”

“…….”

“…….”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희미한 숨소리마저 들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탓이다.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호의적이지 않다. 어쩌면 저번에 들었던 정진호라는 남자의 동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여기 있고 식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분명히 해코지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그렇겠지.

저번에 그 여자처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뱉었을 때였다.

“거봐. 안에 있잖아.”

“…….”

“여기 밑 쪽으로 있는 구멍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운도 좋네. 막혀 있는 걸 봐서는 안에서 막아놓은 것 같은데, 계속해서 여기서 버티고 있었던 것 보니까 식량도 가지고 있을 것 같고… 어느 포인트에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탈출해서 여기에 계속 처박혀 있으셨나 봐.”

“…….”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쥐새끼처럼 숨어 있을 필요 없고….”

“…….”

“내가 안에 있는 거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끝까지 버티시겠다. 옳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보자고, 언제부터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있는 괴물들을 우리는 아귀라고 부르는데. 이놈들이 시체 썩은 내 하나는 제대로 맡는단 말이야. 근처에 널려 있는 게 사람 시첸데. 네 쥐구멍 근처로 밀어 넣어도 네가 버티나 보자. 아마 거리가 가까워지면 그쪽에서 느껴지는 네 채취도 눈치채지 않을까 싶은데… 비명이 들리면 사람이 있는 거고, 안 들리면 사람이 없는 거겠지, 뭐.”

“…….”

“사람 시체 뜯어먹으려고 왔다가 진짜 사람도 발견하고 포식하게 생겼네.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조악하게 막아놓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아귀 새끼들 몇 마리만 달려들어도 금방 뚫려 버릴걸. 아귀들이 밑에 있는 그 틈으로 못 들어갈 거라고 생각 하지 마.”

“…….”

“보니까 다른 출구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 아귀들이랑 오붓한 시간 보내시라고. 그럼 우리는 이만 자리 피해 드리겠습니다.”

“…….”

“후회하지 마라. 네가 선택한 거니까.”

“…….”

“자, 들어갑니다요.”

“잠, 잠깐… 잠깐만요. 안에 있어요. 안에… 안에 있어요.”

“옳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 해코지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계속 여기에….”

“아무도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안 물어봤어. 솔직히 나도 별 관심도 없고… 그것보다는 조금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식량 가지고 있는 거 있지?”

“아… 아니요.”

“거짓말 못 하는 타입이네. 자, 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네 말 믿을 게. 형은 마음이 넓거든. 하지만 그 쥐구멍 안에서 이쪽으로 뭐라도 밀어 넣어야 할 거야. 식량이든 식수든 네가 가진 게 있으면 무조건 이쪽으로 밀어 넣는 거야. 내 말 알아들어?”

“정, 정말로 없어요. 정말로요… 아무것도 없어요. 무기도 없고. 방, 방패도 잃어버렸고…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요. 저도 배고파요. 정말이에요.”

“밀어 넣지 않으면 그쪽으로 아귀 새끼들이 들어갈 거다. 배짱 튕기겠다고 버티고 있지 마, 동생. 나도 말 많이 하기 입 아프고. 딱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줄게, 동생. 나는 양보 안 해.”

“하지만….”

“정확히 오 초 준다. 오.”

‘어떻게 하지? 어떻게?’

“사.”

‘줘야 하는 거야? 정말로?’

“삼.”

‘이게 없으면 어떻게… 해.’

“이.”

선택의 여지가 없다. 2/3가량의 식량을 가방에서 빼낸 이후 가방을 급하게 밀어 넣자 만족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했어. 올바른 선택을 한 거야.”

“흐윽….”

“그런데 말이야….”

“네?”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이… 이 양아치 새끼…’

“주섬주섬 뭔가 꺼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모를 거로 생각했나 봐.”

“저, 저도 정말로 얼마 없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게 끝이에요. 이거 가지고는 3일도 못 버텨요.”

“그건 네 사정이고 3일 치 식량이면 아껴먹으면 10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어. 너는 어차피 거기에 처박혀 있을 거잖아? 우리야 움직이면서 아귀 새끼들 때려잡다 보니 열량이 필요하단 말이야. 네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잖아, 안 그래? 조금만 더 밀어 넣어봐. 형도 양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네가 남은 식량을 주면 거기로 무기 하나 정도는 넣어줄게. 검 한 자루, 어때?”

“필, 필요 없어요.”

“있어서 손해 보지는 않을 거다. 아무튼, 가진 거 있으면 다시 한번 더 밀어 넣어. 이번에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거래는 끝이야. 누가 손해일지 생각해 봐. 장담하건대 굶어 죽는 게 그 새끼들한테 뜯어 먹혀서 죽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울걸.”

“…….”

다시 1/3, 아니, 마지막에 들려온 말에 괜스레 겁이 나 빵 반 덩이를 추가로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으음….”

‘제발…’

“뭐, 이 정도면 커트라인에 합격했다고 해도 되겠네. 어차피 배고프면 밖으로 기어 나오게 될 테니까. 무기는 던져줄게, 동생.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지만 정 힘들면 그걸로 자살해도 돼. 그런 사람도 꽤 되니까.”

이윽고 남자가 내민 무기는 단검보다 조금 더 긴 검. 사실상 단검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정도의 크기.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건만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이 나쁜 새끼.’

“만족스러운 거래였습니다, 고객님.”

“그, 그럼 그냥 가주시는 건가요?”

“그럼. 설마 받을 거 다 받고 널 죽이기야 하겠어? 잘 있어라.”

“…….”

“…….”

“…….”

“뭐? 여기서 나이가 뭔 상관이야. 입 닥쳐. 살인자 새끼랑 같이 다니던 놈 중에는 어린애도 있었어. 이따가 게네 앞에서도 나이 타령할래?”

“…….”

“…….”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행과 의견 충돌이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이윽고 신경질적인 소리와 함께 작은 구멍으로 그럴듯한 검 한 자루와 빵 반 덩이가 굴러들어 왔다.

“운이 좋았네.”

“네?”

“내 동료가 네가 여기에 처박혀 있는 게 가슴 아프단다. 적당히 있다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웬만하면 북쪽으로는 움직이지 말고, 몇 마리 잡다 보면 직업도 얻고 적응도 할 수 있을 거다. 이 주변에는 아귀들도 거의 정리됐으니까. 기왕이면 데리고 가고 싶다는데… 지금 우리도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거든. 네가 너무 어리기도 하고….”

“어린애… 아니에요.”

“몇 살인데.”

“스물둘.”

“이름.”

“김… 김현성이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