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8
회귀자 사용설명서 538화
히든 피스(5)
‘이게 뭐야.’
너무 어이없어,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와의 전투나 해결 불가능한 퍼즐을 푸는 것 따위의 퀘스트를 예상했건만, 너무나 쉬운 미션에 김이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하지만 길드원들의 표정은 대체로 기뻐 보인다.
특히나 위험에 민감한 한소라는 다행이라는 듯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소소한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보상에 걸맞은 노동을 한 뒤에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쾌감이 있다고들 하지만, 본래 가장 꿀 떨어지는 상황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로 원하는 걸 쟁취하는 상황이다.
‘달달 합니다.’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황이다.
“다… 다행이로군요.”
사랑스러운 회귀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김현성의 얼굴은 당혹감 반, 의심 반으로 물들어 있다.
물론 이해야 간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이템을 하나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어딘가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던전에 입장한 순간 시스템이 보상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면 가지고 나가면 그만, 더 이상 사족을 붙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
‘정말로 히든 피스라고 봐도 되는 거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이 대륙을 위해 몇 가지 안배해 놨고 파란 길드가 그 안배에 다다랐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1회차 회귀자조차 찾지 못했던 거울 호수의 히든 피스, 따위의 생각을 하자 머릿속에 있는 한 줌의 의심조차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럼, 지, 지금 바로 낚시를 시작하면 되는 거요? 정말 그걸로 끝인 거요?”
“네, 일단 다른 변화가 생길 때까지는 퀘스트를 계속해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교대로 보초를 서거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는 전부 해둔 채로… 네. 그렇게 하면….”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 아니요.”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뭔가….”
“정말로 이곳에서 한가하게 낚시나 하고 있기에는 불안한 점도 많으니까. 현성 씨 말도 일리가 있지. 아무튼, 움직입시다. 제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보는 게 유리할 겁니다.”
“네, 부길드마스터.”
“덕구 말처럼 희영 씨가 방금 봤던 바깥의 신이 대륙의 위협이 맞다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습니다.”
“왠지 모르게 감이 파바박 하고 왔다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이곳에 들어왔다고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게 많으니까.”
‘니가 제일 수상해, 이 새끼야.’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확실한 것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가장 값어치 나가는 물건으로 챙겨야 맞지.’
그 말 그대로, 기왕 온 이상 가장 효율적인 물건으로 가져가는 게 옳다.
준신화 등급이나 전설 등급의 아이템들은 애초에 아웃이라는 느낌으로,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최대한 많이 낚은 이후에 그 아이템 중 가장 실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물건을 가져가면 된다.
성장형 아이템도 제외, 쓰기 애매한 아이템들도 모조리 제외, 애초에 사용자를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 가슴 아픈 말이기는 하지만 박덕구를 위해 신화 등급 갑옷이나 방패를 선택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멍청한 선택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되지 않게 아이템 효율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인원을 위한 아이템으로 선정하는 것이 맞다.
그나마 준신화 정도의 출력을 갖춘 이들은 정하얀과 김현성 정도.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차희라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페널티를 무효화해 주는 것으로 모자라 강화할 수 있는 종류의 갑옷이라도 있다면 당장에라도 가지고 가는 것이 옳다.
아, 다방면으로 활용도가 높은 엘레나를 위한 아이템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전투가 지속되는 내내 병력 전체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으로는 그녀만 한 사람이 없을 테니까.
‘버프형 아이템도 괜찮으려나….’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곳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는 것.
어둠의 역병군주나 빛의 연금술사 같은 직업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무척 제한되어 있다.
만약 현자의 돌이 낚인다고 해도 맘 편하게 그것을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전투가 발생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정해져 있었으니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행복 회로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할 마음이 낭낭한 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에 낚싯대가 구비되어 있었는지 한 사람당 하나의 낚싯대를 가지고 있는 모습은 가관.
“거, 연어 낚시나 하려고 가져온 낚싯대였는데… 이렇게 또 도움이 되는구만! 내가 이래 봬도 강원도 낚시왕 강덕구라고 불렸다는 거 아니요. 도대체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믿으라니까.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아이템을 낚을 거라니까.”
‘저 새끼는 이제 미안해하지도 않네.’
오히려 의기양양하다.
“이런 건 처음인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이템이 바늘을 물기라도 하는 겁니까?”
‘알아서 잘 해주겠지. 조혜진, 쟤는 뭐 저런 걸 궁금해하고 그래.’
“저, 저는 식사준비라도 할까요? 그러고 보니 아까 먹었던 거울 연어 이후로는 아무것도 안 먹은 것 같은데….”
엘레나와 한소라는 심지어 식사준비를 하고 있고.
“저는 보초를 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역시 믿을 놈은 창렬이밖에 없다. 조금은 우울하고 조용했던 분위기가 뒤바뀌는 것은 순식간, 이쯤 되면 휴가의 일환이라고 봐도 문제가 없었다.
박덕구 녀석이 이쪽에게도 커다란 낚싯대들을 내밀었고, 나 역시 건네받은 낚싯대를 다시금 김현성에게 내밀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장비를 받아드는 김현성의 표정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 그 자체.
한마디 건네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얼굴이었다.
“낚시는 해보셨습니까?”
“아니요, 처음입니다. 사실 어떻게 하는지도 잘… 차라리 저도 보초를 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위에서 보고 있는 건 창렬 씨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뭐, 이런 낚시에 경험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던지면 낚이는 거지.”
“그런 겁니까?”
“아마 이 버려진 차원의 바다라는 곳 밑에서는 여러 종류의 아이템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우연히 바늘에 걸리길 기도하면 되는 상황이니 미끼를 갈거나 챔질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놀러 나왔다고 생각하시고 즐겨보세요.”
“그럼….”
휘익 하는 소리가 들리고 퐁당 소리가 들려온다.
진지한 표정으로 낚싯대를 휘두르는 김현성의 모습이 그렇게 어색해 보일 수가 없다. 검을 들고 있는 모습과는 천지 차이다.
낚시왕 강덕구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을 보니 녀석의 자세를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안기모는 뱃멀미가 나는지 우욱거리는 중이다.
정하얀은 옆에 찰싹 달라붙어 행복해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즐겁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을 때였다.
“왔드아!”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 것.
“왔다니까! 이거 만만치 않은 놈 같은데! 대물이요! 대물! 대물이 확실하다니까!”
온갖 오바 생쇼를 하며 아이템과 힘겨루기를 하는 박덕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네 떠나가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정말로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여서, 아직도 상기된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었다.
단순히 아이템을 낚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정말로 물고기와 싸우는 것처럼 힘겨루기하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저쪽에서 힘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거, 만만치 않은 놈인 것 같소.”
“아, 아, 아이템이 올라오기 싫은가 봐요.”
정하얀의 재미없는 농담에 가볍게 입꼬리를 올린 순간 갑작스레 몸이 앞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극적으로 꺾였는지 물에 빠질 뻔한 걸 김현성이 막아줬을 정도였다.
‘이거 뭐야, 시바.’
박덕구의 오바가 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낚싯대를 꼿꼿이 든 채로 허리를 최대한 꺾자 진동이라도 온 것처럼 부르르 떨리는 손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이거 뭐야.’
“형님도 왔나 보구만! 크으….”
‘말 걸지 마, 이 새끼야. 말할 여유 없어.’
몸에 있는 마력까지 집어넣어 가며 계속해서 녀석을 당기고 있었지만 정말로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느껴져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찌 됐건 재미있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뭐가 올라올지 기대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은 적어도 자신이 준신화 등급 이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왜 낚시하는지 알겠다, 야.’
그 말 그대로였다.
손잡이를 계속해서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
박덕구는 그사이에 묵직한 녀석을 끌어올렸는지 연신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준신화 등급이요! 형님! 이거 준 신화 등급이라니까아!!!”
보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지금 녀석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약 15분이 지날 동안 사방에서 간헐적으로 ‘왔다!’ 따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집중할 여력이 없다.
엘레나와 선희영이 번갈아 버프를 걸어주고 정하얀도 가벼운 근력 강화 마법을 걸어줬을 정도였다.
그만 포기하고 낚싯대를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바로 그때였다.
미친 듯이 진동하던 손잡이가 잠잠해진 것은 물론, 녀석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서둘러 허리를 뒤로 눕힌 후, 계속해서 손잡이를 돌리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길한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는 거대한 창.
[롱기누스의 창-신화 등급]
[신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라 불리 우는 신화 등급의 무구입니다.
정확히 어디에서부터 흘러들어 왔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이 무구 속에 저장된 흐릿한 흔적만이 이 창이 어떠한 무기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창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외 다른 기능은 없습니다.]
‘시이바….’
“오빠아! 오빠아!! 오빠아!!!! 신화! 신화!!”
“기영 씨! 기영 씨!”
양옆에 있던 김현성과 정하얀이 흥분한 듯 방방 뛰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뭐야! 이거 뭐요! 형님. 뭐, 이런 걸!!”
‘이게 나야.’
뿌듯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괜스레 더 콧대가 높아진다.
고생 끝에 나온 녀석이 창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
어떻게 봐도 거대해 보이는 모습은 내가 이걸 정말로 낚은 게 맞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 인증 샷이라도 찍고 싶은 기분이었다.
“거, 이럴 게 아니라. 인증 샷 같은 거 한 번 찍읍시다. 크으… 나는 겨우 준신화 등급의 방패가 끝이었는데, 이거 형님이 한 번 딱 던지니까 신화 등급이 팡팡 하고 튀어나오는 거 아니요. 크으! 역시 형님은 형님이요!”
얼떨떨했지만 아이템의 설명을 읽고서는 더욱더 미소를 크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창은 막을 수 없습니다.’
담백하다. 다른 기능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설명이다.
방패는 물론, 특수한 방어막이나 마법적인 무언가도 저 창을 막을 수가 없단다.
만약 바깥 신에게 이쪽의 공격을 자체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수단을 억제할 수 있는 한 방이 될 수도 있다.
‘그래, 시바! 이래야지!’
이런 종류의 무구에 어떤 기능이 더 필요하겠는가.
“와… 무슨 아이템이… 그냥 이걸로 가져가도 되는 거 아니요? 어떤 공격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거 진짜 미친 거 아니요? 그냥 이걸로 해도….”
“그래도 이제 시작인데. 조금 더 힘써 봐야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가져가. 여기에서 창 쓰는 사람은 조혜진 하나밖에 없는데.’
물론 조혜진이 신화 등급의 창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아무래도 메인을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스펙이다.
한 가지 아이템을 더 가져갈 수 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기는 했지만, 딱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현시점에서는 필수적인 옵션은 아니다.
‘정 안 나오면 이거라도 가져가야겠지만….’
시작이 좋으니 끝이 좋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
눈에 띄는 신화 등급 아이템의 출현은 이것 외에 하나뿐이었지만, 준 신화나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기계적으로 낚아 올리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다시 바다에 던져 버렸을 정도. 마치 피라미를 놓아주듯이 전설 아이템을 휙휙 던지고 있는 풍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또 전설. 나도. 대물. 낚고 싶어.”
첫 입질에 흥분해 소리를 질렀던 김예리도 익숙한 듯 아이템을 회수해 바다로 집어 던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조된 분위기가 펼쳐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키야… 손맛 진짜 죽였다니까! 막 부들부들 떨리는데!”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물고기 낚시보다 더 낫네요.”
“왔어요! 저! 저! 왔어요! 오빠!”
모두가 시끌벅적했다.
아직 단 한 번의 입질도 받지 못해 침울해져 있는 김현성을 제외하면 모두가 행복한 한때였다.
본격적인 퀘스트가 시작된 지 약 6시간이 지난 시점,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낚싯대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아이고야….’
평온해 보였던 김현성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