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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17화 (514/1,590)

# 517

회귀자 사용설명서 517화

제발 나를 죽여줘(2)

“제발… 나를… 죽여줘.”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는 덤. 닭똥같이 떨어지고 있는 악어의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채로,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고, 더 이상은 힘들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자 당혹스러워하는 김현성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의 완벽한 기믹에 환호성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기쁜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처절하고, 최대한 슬프게. 억지로 감정선을 조절하며 모두 포기한 것처럼 자신을 내려놓는다.

손발이 없어질 것 같은 부끄러운 감정이 딸려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 이 장면보다 중요한 장면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게 바로 자기희생의 끝이지. 아암, 그렇고말고.’

대륙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의지.

이 모습을 이 땅 위에 선 모든 인간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등 뒤로 쭈뼛쭈뼛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하는 타락한 빛기영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뻔했다.

김현성뿐만이 아니다.

박덕구와 차희라는 물론, 방금까지만 해도 이쪽의 응원을 보내던 관계자들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뭔가 할 말을 찾고 있는 녀석을 향해 입을 열자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쥐는 김현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기, 기영 씨.”

“현성 씨가… 해주셔야 합니다. 더 이상은….”

“정신이 드신 겁니까.”

“크으윽!!”

“기영 씨.”

“아아아아아악!”

“빨리 저를…. 아아아아악!”

“기영 씨!!!”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는지 앞뒤 안 가리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꼴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빛기영의 따뜻한 품이 아닌 디아루기아의 거대한 손톱.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처박히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정타로 들어간 것 같은데….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더 시선이 집중된 것 같아서… 둘 다 상처투성이인 모습이 더 아름답게 비치지 않겠습니까.’

-어쩌다… 내가 이런 인간과… 아니, 방금은… 어떻게 자기 입으로… 그, 그따위 대사를… 수치심이라는 것도 없는 겁니까?

수치심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잖아.

“구역질 나는 인… 제발… 아아아악! 네가 아직! 크흑!”

“…….”

“현성 씨… 현성 씨, 제발! 그… 으읏… 하아, 하아, 하아.”

“…….”

“아아아아아아악! 하아, 하아, 부탁….”

“…….”

이기영 전 생을 통틀어 가장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 안기모나 김예리도 이 정도 연기를 선보일 수 없으리라.

내면에서 빛기영과 둠기영이 정신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광경은 그 어떤 싸움보다 처절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온몸이 뒤틀린 채로 헛구역질을 내뱉거나 가슴을 부여잡는다.

비릿한 미소를 흘리면서도 슬픔에 가득 찬 눈은 계속해서 악어의 눈물을 쏟아낸다.

악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듯이, 더 이상은 한계라는 듯이 계속해서 거친 숨을 몰아쉰다.

아마 현재가 시청률이 꼭대기에 자리해 있는 타이밍이 아닐까.

단언컨대 전 대륙의 인간들이 지금 이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고 있으리라.

제발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이 저 타락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기를.

제발 베니고어의 화신이 벨리알의 힘에 저항할 수 있기를.

제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빛과 함께 싸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본래 관객들의 기대는 배신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빛기영이 마지막 말을 내뱉기 위해 튀어나왔던 것도 잠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둠기영이 몸의 지배권을 가져온다.

“하아, 하아, 하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다시 한번 가면을 매만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비열한 미소를 내보내며 다시 한번 육체의 지배권을 획득했음을 알리는 알리는 신호탄을 전 대륙에 쏘아 올린다.

“푸하하하하핫!”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중2력이 충만한 웃음소리였지만, 누군가에는 절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명장면.

연기가 걷히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김현성의 얼굴은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뭔가 결심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에 괜한 걱정이 들어와 꽂히기는 했지만….

‘이 새끼가 미쳐 가지고 진짜로 죽이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 없다. 조금 전에도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직접 입을 열지 않았던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웬만해서는 지키는 스타일인 만큼 녀석이 이쪽을 포기할 리는 없다.

아마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금 전방을 바라봤지만, 김현성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아니지? 현성아. 우리 아직 친구 맞지?’

‘기영 씨 죄송합니다. 그게, 기영 씨의 뜻이라면….’이라는 말을 해오지는 않을까 불안했지만, 다행히 그런 대사를 쳐오지는 않았다.

대신이라 하기에는 뭐하지만, 녀석은 살기가 돋는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을 돌려줘. 네 몸이 아니야, 개자식.”

“그가 나고 내가 곧 그다. 주제도 모르는 인간.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멍청한 인간 놈이.”

“너는 그 사람이 아니야.”

“네가 어떻게 생각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본질을 변하지 않는 법이니.”

“돌려줘. 이 개자식.”

“말하지 않았나.”

“돌려줘….”

“앵무새 같군.”

“돌려줘, 돌려달라고!!! 이 씨발!! 개새끼야아!!!”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래… 현성아….’

“멍청한….”

“개자시익!!!!”

녀석이 몸을 튕기듯이 다가오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이 새끼 왜 이래. 시발, 정신 나갔어. 씨발! 너, 왜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눈이었다.

검을 꽉 잡은 손에서는 핏물이 튀어나오고 있었고 방어나 생각 따위는 손에서 놓아버린 것 같은 느낌.

마치 자신을 놓아버렸을 때의 차희라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온몸이 분노로 불타는 것 같은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 숨도 쉴 수 없는 압박감이 저 멀리서부터 느껴진다.

고양이 앞에 생쥐, 아니, 호랑이 앞의 생쥐가 된 듯한 느낌에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첫 대사를 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지릴 것 같다.

빛기영의 생존 레이더는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기 시작,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푸하하하하핫! 재밌구나! 재밌어! 무척이나 재밌어!!”

역할극에 빠진 입은 멋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시발, 어떻게 해! 디아루기아 님…. 시바!!’

-저도 몰라요. 일단 막을 수 있는 데까지는 막아….

“이 개자식!!!!”

‘브레스! 시바! 브레스으!!’

-알고 있습니다!

‘빨리이이이!’

-보채지 마세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건 또 뭐야….”

양손으로 검을 잡은 녀석이 검을 휘두르자 쏘아져 나간 브레스가 너무나도 쉽게 갈라진다.

디아루기아도 당황했는지 다소 거리를 좁힌 녀석에게 앞발을 휘두른다.

제대로 작정했는지 마력까지 퍼부은 것 같기는 했지만 올바른 판단이라고는 볼 수 없다.

지금은 몸을 뒤쪽으로 빼는 것이 우선이다.

디아루기아 역시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인지한 모양인지 서둘러 날개를 펼쳤지만, 녀석에게 벗어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휘둘러진 검에 의해 땅바닥에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이 하늘로 치솟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콰아아아앙!

하는 이해하기 힘든 소리와 함께 디아루기아의 몸이 꼴사납게 자빠지는 꼴은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쪽 역시 다급하게 중심을 잡았지만, 그녀가 넘어지는 방향으로 함께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언제 들어왔는지 코앞으로 들이닥친 김현성이 손을 뻗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꽉 쥔 모습.

‘왜 그렇게 이를 악물어.’

눈동자에서 갈등이 느껴진 것도 잠시, 결심한 듯 팔을 얼굴 쪽으로 뻗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다급하게 벨리알 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벨리알 님! 나 죽어… 나 죽어요!’

동시에 몸에서 내 몸으로는 컨트롤 자체가 불가능한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

그 마력은 어느새 거대한 이형의 악마 형태로 이쪽을 감싸는 중이다.

마치 벨리알의 모습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차이점은 눈에 보이는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정말로 마력이 이런 방식으로 실체화된 것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새끼 진짜 때릴라고!’

이 정도 마력이 있다면 일단은 한 대 맞아도 안심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앙!

몸을 통째로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덮쳤다.

‘아아아아아아악!!!!’

본능적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내 몸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튕겨 나가고 있는 건지,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수 없었다.

심지어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혀왔다.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풍경이 바뀐 이후에야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처박힌 몸.

콰드드드드득!!!

“콜록! 콜록!”

자꾸만 나오는 헛기침.

‘시바, 살아 있는 거 맞지.’

대부분의 충격을 마력이 막아줬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일단은 열심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재미없어. 집에 가고 싶어… 이제 안 할래… 시바….’

하지만 내 뜻과는 별개로 내 몸을 감싼 벨리알의 마력은 몸을 일으키기 시작, 곧이어 검을 들고 덮쳐온 김현성에게 그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김현성은 땅바닥을 나뒹굴었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벌써 눈앞으로 다가와 검을 휘두른다.

‘지금 살려달라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이지, 그렇지?’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몸이 흔들린다.

벨리알의 마력은 녀석의 검을 완벽히 막아냈지만, 몸을 강타한 충격은 진짜.

벨리알로서도 이 내부의 충격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한쪽 괴물이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것 같았지만, 괴물과 괴물의 격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은 나 역시 침을 삼키게 만든다.

서로 계속해서 공격을 주고받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다.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녀석을 보니 괜스레 찡한 감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아이고, 현성아아아아….’

“제기랄!!”

“…….”

“제기라알!!!”

“푸… 푸하하하핫!”

“으아아아아아아아!!!”

녀석답지 않게 억지로 힘을 짜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두드리며 억지로 격전지로 몸을 옮기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벨리알의 마력은 사그라들고, 녀석의 몸에는 상처가 쌓인다.

이미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로 서로가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치고받고 있었으니까.

전장은 이미 소강상태. 한계에 내몰린 모두가 이제는 이 처절한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쓰레기… 치고는 제법이군.”

“구할 수 있어.”

“무슨 말을….”

“구할 수 있어. 구할 수 있다고….”

“…….”

“이번에는 구할 수 있어. 이번에는 분명히… 구할 수 있을 거야.”

누가 봐도 울먹이고 있는 표정은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내몰려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껏 즐겁게만 상황을 관망해 왔던 나조차 양심에 작은 상처를 입었을 정도였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구할 수 있습니다, 기영 씨. 분명히… 반드시… 그러니까 믿고 버텨주세요. 저를 믿고 버텨주세요.”

폐허가 된 린델 위에서 애써 울음을 꾹 참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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