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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516화 (513/1,590)

# 516

회귀자 사용설명서 516화

제발 나를 죽여줘(1)

‘괜찮겠지.’

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본인 역시 실수했다는 걸 인지한 모양인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계속해서 입을 놀리는 건 여전했다.

아마 녀석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

자기 딴에는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쪽에서 계속해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아직도 처절한 외침으로 나를 부르짖는 모습은 가슴이 찡해올 정도.

“기영 씨, 접니다.”

‘나도 알아. 이 새끼야….’

“제발 눈을 뜨세요.”

‘눈 뜨고 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아주 잘 들린다. 아주 잘 들려.’

검을 한 번 날리는 것보다 내면에 있는 빛기영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로 보인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한 것인지 그 처절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그렇게 울부짖는 중이다.

간혹 처절한 외침을 선보였을 때 머리를 부여잡은 효과가 있었던 게 분명하리라.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을 거로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먹힌 것 같았다.

‘그러니까 1회 차가 그 모양 그 꼴이 됐지, 이 양반아.’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격언은 아니었지만, 녀석을 보니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본인 몸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

어떻게든 이쪽을 제정신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회귀자의 1회 차가 어땠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인의 몸을 먼저 챙기지 않는 걸 보면 딱 봐도 답이 나온다.

본인 다리보다 내가 부여잡은 머리가 더 걱정되는지, 디아루기아와 거대한 뼈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내면서도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두통이 있는 것처럼 살짝 머리를 부여잡기가 무섭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쪽 손을 뻗으며 한쪽 머리를 움켜쥐는 기믹은 또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는다.

가면을 쓴 쪽의 얼굴이 고통스럽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면서도 김현성이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최대한 컨트롤한다.

김현성은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지만, 디아루기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견제를 잘해주고 있었다.

‘얘, 꽤 세네.’

전설 등급 중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는 생명체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던 게 바보같이 느껴진다.

물론 녀석이 아직도 뼈 감옥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적재적소에 들어오는 디아루기아의 역병의 숨결도 결코 무시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거기에….’

김현성으로서는 저 뼈의 파도 사이에 유령들이 숨어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을 테니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

아마 여기저기에 뿌려놓은 것들이 무척 귀찮고 짜증 나게 느껴질 것이리라.

‘갉아먹어야 돼.’

김현성과의 전투는 그렇게 진행해야 한다.

만약 녀석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벌써 거리를 내줬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녀석은 결코 베스트 컨디션이라고 볼 수 없다.

이지혜의 잘못된 운용에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고, 자잘 자잘한 상처도 쌓인 상태였다.

몇 시간 동안이나 전쟁터에서 격전을 치렀으니 지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게다가 지금은….

‘다리, 저거 괜찮겠지?’

다리까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단다.

유령에 영향을 받아 천천히 굳어가기 시작하는 다리는 더 이상 김현성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마력으로 최대한 억누르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기능을 못 할 것은 이미 예정된 이야기였다.

실제로 녀석의 움직임은 그 범위가 점점 제한되고 있는 중.

마력을 아끼며 몸을 피해내는 것보다 검을 직접 휘둘러 오는 빈도가 높아졌다.

제대로 피해낼 수 있는 공격보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공격의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김현성에 이러한 태세 전환이 전투에 변화를 준 것은 당연지사.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콰지지지지지직!!!!

녀석이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뼈의 파도가 갈라지고 디아루기아의 브레스가 빗겨 나간다.

그 영향에 이미 폐허가 된 도시는 사막이 지형을 바꾸는 것처럼 다시 한번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쪽 역시 입술을 조금 더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뼈의 산이 다시 한번 공중으로 치솟는다.

괴물의 거대한 팔 수십 개가 동시에 가로로 두 동강 난다.

소비된 만큼 채워주는 것 역시 일.

벨리알의 마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10번은 넘게 리타이어했을 정도로 힘에 부친다.

하지만 그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이 싸움 아닌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

한쪽 눈으로 사방을 살피자 전투 중인 것도 잊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몇몇 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말도… 안 돼….”

“이게 인간의 싸움인가…. 정말로 인간이… 맞는 건가….”

“저건 대체….”

나 역시 공감할 수 있다. 애초 개인과 개인의 격돌로 도시 하나가 쑥대밭이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니까.

타락한 용을 탄 채로 도시의 반절 이상을 오염된 뼈의 파도로 뒤덮은 남자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을 전부 베거나 튕겨내는 검사.

희미한 빛에 둘러싸인 녀석의 모습 때문인지 둘의 모습이 더욱더 대비되고 있으리라.

‘어이구야, 좋다. 얼씨구야, 잘한다!’

관객들의 시선이 점점 집중되는 것이 당연하다.

아직도 저항하고 있다는 듯이 가면을 쓴 쪽에 계속해서 손을 가져다 댄다.

내 안에 저항하고 있는 녀석만 아니었다면 김현성 따위는 한입에 삼킬 수 있다는 듯한 표정을 내보이는 것도 포인트다.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리무르아의 촉매를 이용한 촉수들이 녀석에게 뻗어 나간다.

1페이즈는 워밍업이었다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녀석을 압박하는 중.

“재미있군. 재미있어. 푸하하하핫!”

오그라드는 대사지만 이런 대사 정도는 한 번 쳐줘야 관객들이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사랑스러운 회귀자 역시 리무르아의 촉수를 직접 겪어본 적이 있는 만큼 얼굴에는 약간의 신중함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저 촉수들은 리무르아의 것의 열화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숫자만 엄청 많을 뿐이지.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 일단….

‘스케일이 죽여주잖아.’

집채만 한 촉수가 휘둘러진다고 상상해 보라. 커다란 마력은 들어가 있지 않지만, 질량 그 자체가 무기다.

갤러리들이 바라보기에도 위협적인 장면이라는 것은 굳이 고려할 필요도 없다.

또 그걸 멋지게 잘라내는 사랑스러운 회귀자 역시 비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애초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대륙인들의 기준으로 보기에도 현재 보이는 장면은 충분히 비현실적이다.

콰드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미친….”

-그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콰지지지지직!!

“푸하하하핫!”

“저건 도대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신이시여….”

“베니고어시여….”

콰아아아아아앙!!!

그에 화답하듯 김현성은 더욱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절대로 입은 쉬지 않는다. 녀석으로서는 아마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테니까.

“제 목소리가 들리시는 겁니까. 기영 씨. 제발… 들린다면 제발… 대답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물론 목소리는 들린다만 이쪽은 대답하지 않는다.

“기영 씨, 제발… 대답해 주세요.”

‘하, 이 새끼, 이거….’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발 눈을 떠주세요. 이겨내실 수 있을 거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계실 거라고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다리신다고 믿는다고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이렇게 앞에 왔습니다. 다시 한번 눈을 떠 저를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부디. 부탁드립니다.”

“…….”

“기영 씨가 저를 믿었던 만큼 저 역시 기영 씨를 믿고 있습니다. 지지 않을 거라고 지금도 싸우고 계시는 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영 씨가 계실 곳은 그쪽이 아닙니다.”

‘이 새끼가 괜히 사람 감성 자극하네.’

“제발… 제발… 포기하지 마세요.”

“…….”

“저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기영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기영 씨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형님, 형니임! 눈을 뜨쇼. 제발 눈을 뜨쇼!”

‘박덕구, 이 새끼….’

“형님이 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게 진, 진짜 그렇기 때문에 말해준 거라는 거… 잘 알고 있다니까. 형님이… 끄윽… 형님이 먼저 앞서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뒤따라갈 수 있었던 거요. 튜토리얼 던전 때처럼 형님이 먼저 방향을 잡아줬기 때문에 내가 걸어갈 수 있었다, 이 말이요.”

“…….”

“나는 알고 있다니까. 형님이 이 악마들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걸, 이 동생은 분명히 알고 있소.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는 것도. 이제 곧 이겨낼 거라는 것도 전부 다 알고 있다니까.”

“…….”

“이기영 개새끼. 이 개새끼. 정신 못 차려? 이 개자식. 정말로 이곳이 사라지는 꼴 보고 싶어?”

‘희라 누나까지 왜 그래….’

“잘 먹고, 잘 살자고 말한 건 너야. 남자 새끼가 맞으면 떨쳐내고 일어나. 개자식.”

‘어우야, 간질간질하긴 한데… 나쁘지는 않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재미있다는 얼굴로, 마음껏 개소리를 해보라는 표정으로 악마들과 싸우는 이들을 바라본다.

이미 녹초가 된 엘레나와 선희영을 비롯한 파란의 길드원들 역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이쪽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이들은 모두 울부짖으며 목소리를 내뱉고 있다.

여기서는 팬서비스 차원으로 크게 고통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여주자.

“제길! 제기일!”

기회라 생각했는지 김현성 역시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 왔는지 이쪽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도시를 좀 먹고 있었던 이형의 뼈와 촉수들 역시 움직임을 멈추고 온갖 소음이 끊이지 않았던 장내가 순식간에 침묵으로 가라앉는다.

“제 손을 잡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는 제 차례입니다. 부디… 눈을 떠… 주세요.”

“…….”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습니다. 길드원들과 함께 가기로 한 피크닉도… 항상 하얀 씨가 가고 싶어 했던 거울 호수도… 이번에는 꼭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손을 뻗는 녀석,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를 보며 웃음 짓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라 들릴 거라고 분명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이쪽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는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면을 쓰지 않은 쪽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

‘좋다.’

그리고 꼭 해보고 싶었던 대사.

“제발… 나를… 죽여줘.”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진짜 지렸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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