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3
회귀자 사용설명서 493화
반전의 반전의 반전(1)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아직도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벨리알이 준비해 준 상황실, 돌아가는 전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다시 한번 마력홀로그램을 돌려 봤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광견병에 걸린 미친개마냥 돌진하는 도노반. 그가 커다란 노호성을 내지르며 커다란 성벽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패널티를 받고 있다고 한들 준 신화급은 준 신화급.
성벽 안에 있는 인간들은 공포에 질려 마법과 화살을 퍼부었고 그렇게 공성전이 시작됐다.
전 인류가 힘을 합쳐 도노반을 밀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연방 병사들의 피해가 누적되기 전에 4국 동맹과 공화국의 지원이 적절하게 도착할 거로 생각했다.
거대한 병력을 상대하느라 지친 도노반이 김현성에 의해 목이 잘리는 것이 그리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고, 잠시 후에는 이 그림이 완성될 거라 100%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직후 흘러나오는 마력홀로그램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김현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거점을 버리고 더욱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는 교국의 본대.
도노반이 41거점에서 날뛰고 있는 사이 43거점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간 것이다.
처음엔 병력을 뒤로 물린 것은 아닌지 고민했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로 김현성은 연방을 버렸다.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몇십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는 했지만, 김현성이 연방을 희생양으로 사용하는 그림은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다.
녀석의 성격상 죽어가는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더욱더 그렇다.
녀석이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지만 이번 행동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손가락질을 받을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한 갈등도 당연히 예상이 가능했던 거고.
인류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과업을 달성한 회귀자가 스스로 갈등을 유발할 거라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퇴로도 생각하지 않은 건가? 지금 이렇게 들어왔다가 도노반한테 샌드위치 당하면 어쩌려고.’
그야말로 후진이 없는 전진이라 할 만했다.
다른 요소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시간 내에 도착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병력 구성과 진영 자체도 완벽한 창. 단지 뚫어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구성된 병력은 어떻게 보면 기형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진짜 빠꾸 없는 건데….’
이쪽이 상상하고 있던 계획표가 휴지 조각이 됐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대륙 연합, 아니, 적어도 김현성은 거점을 차지한 이후 땅따먹기를 할 생각이 없다.
거점에 틀어박혀 정보를 모을 생각도, 전진기지를 앞세워 게릴라전을 펼칠 생각도 없었다.
애초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직진 또 직진.
보급품을 최소화시키고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 이후 아메라를 최단 시간에 도착하는 것.
전략이라고 볼 수도 없다.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앞으로, 더 앞으로 병력을 밀고 들어갈 뿐이었으니까.
보급품이 떨어진 이후, 포위당해 발이 묶이는 그림은 그리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지혜가 이 미친 전략에 어떻게 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미쳐 날뛰는 이유가 혹시나 고통받고 있는 동료 때문은 아닐지에 대해 떠올리자 잠깐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괜스레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나 잡아먹어 줍쇼 하고 달려들고 있는 이들을 정말로 잡아먹을 수 있을 리 없다.
실제 전쟁이었다면 사방에 퍼져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아 저 창을 막아낼 방패를 만든 이후 고립시켜 말려 죽였겠지만 내 소중한 파티원들은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다.
사전 설명에서도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이들에 대해 브리핑하기도 했고 악마들 역시 저 창을 막아내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거 실적은 올릴 수 있는 건가.’
여기저기에 선물 상자가 널려 있는데도 불타는 버스를 타고 청와대까지 돌진하는 모습.
아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지 공화국을 비롯한 타국의 영웅들이 주요 거점의 길을 막으며 이쪽이 준비한 이벤트에 참석해 주고 있었지만 겨우 저 정도가 성에 찰리가 없다.
‘도노반 얘는 또 어떻게 해….’
-더러운 벌레 같은 인간들.
-아아아아악! 도, 도망쳐… 도망쳐어어어!
-교국이 배신했다. 대륙 연합이 우리를 버렸어. 제기랄…. 제기랄!
-공화국의 개새끼들아! 하늘이 네놈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지 마! 올라오지 못하게 해라! 올라오지 못하게 해!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저항해!! 수성전이다 아직 우리에게 유리해!!
-네놈들은 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쏴라! 쏴라!!!
-퇴, 퇴로는….
벌써 날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고 절경이라고 할 만했다.
자신의 역할이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연방의 병력들을 닥치고 때려죽이고 있는 모습은 가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마침 녀석이 지옥불의 게르한을 잡아 찢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따위 불꽃으로 지옥불이라고?
-으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
-지옥불을 맛본 적도 없는 구더기 같은 인간 놈이 스스로 지옥불이라 칭하다니. 정말로 구역질이 나는구나.
한쪽에서는 또 자밀라가 영 좋지 못한 꼴로 고통 받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제발….
원래부터 죽을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한때 친하게 지낸 만큼 뜨거운 안녕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갈 땐 가더라도 상처 정도는 만들어줬으면 싶었지만, 그 정도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영웅 등급의 윗자락과 전설 등급의 끝자락에서 놀던 놈들치고는 너무나도 형편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방은 진짜로 회생 불가능하겠네. 회생 불가능하겠어.’
이미 대륙에 커다란 상처 하나가 생긴다는 건 그나마 고개를 끄덕일 만했지만.
‘이걸로 끝나면 안 돼.’
이 정도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도노반이 메인으로 실적을 뽑아내고 있기야 했지만 저건 연기가 아니라 강경파의 그것이나 다름없다.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뚝배기를 깨버리는데 무슨 실적이 쌓이겠는가.
대륙인들에게 임팩트를 준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쁘게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닥치는 대로 뚝배기를 깨버리는 모습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이…. 그래서 적당히 하라고 했는데. 제기랄.’
다행히 본인의 임무를 까먹지는 않은 건지 일부로 틈을 내보여 벨리알 랜드 안쪽으로 인간들을 몰아넣고는 있었지만 예상하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소수.
청룡열차에 준비된 좌석은 50석이건만 20명 정도만 입장한 것과 진배없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진짜.’
적당히 하다 하늘나라로 떠나야 할 놈은 전방에서 트롤짓을 하고 있었고 믿고 있었던 김현성마저 이쪽과 호응해 주지 않는 상황.
‘도노반은 어떻게 죽이고, 얘네 들은 또 어떻게 막아야 돼.’
아무리 생각해도 몇 분 안에 답이 나오는 상황이 아니다.
‘이거 태세전환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인류의 편에 서서 더러운 악마 놈들의 뚝배기를 깨야 하나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다.
베니고어라면 모르겠지만 벨리알의 뒤통수를 칠 정도로 담이 크지는 않다.
얘네들이 2,000년 후에 보험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바로 손절 각을 바라보기에는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다.
‘얘랑은 끝까지 가야 돼.’
어떻게 보면 운명공동체나 다름이 없다.
똥 씹었다는 표정을 너무 오랫동안 유지한 탓인지 상황실에서 함께 마력홀로그램을 바라보던 악마 한 놈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이기영 님.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아. 괜찮습니다. 어제 먹었던 것 때문에 조금 속이 안 좋았을 뿐이라. 전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군요.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역시나….
“지금처럼만 흘러가면 프로젝트가 제법 괜찮게 마무리될 겁니다. 아, 혹시나 특이사항이 있으면 곧바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아. 특이사항 있습니다.
“네?”
-43거점에서 빠져나온 적 본대가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습니다. 아까 전부터 계속 저러고 있었는데….
‘이 새끼는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해.’
“화, 화면 돌려보세요.”
-네.
미친 야생마처럼 달리고 있었던 교국의 본대가 어느 시점에서 멈춰 선 것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가까이 못 보냅니까?”
-감각이 예민한 인간이 있는 터라…. 더 이상 사역마를 앞으로 보냈다가는 아마 눈치챌 겁니다. 이 거리가 한계입니다.
“조금 확대라도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캐스팅을 외우고 있는 것은 당연히 정하얀.
무슨 종류의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요동치는 마력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혹시나 대형 마법이라도 때려 박고 시작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럴 리는 없는데.’
내가 아메라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테오 같은 걸 떨어트릴 리가 없다.
애초 그런 대형 마법으로 승부를 본다고 한들, 그렇게 쉽게 통할 리가 없다.
정하얀이 시전하는 준 신화급의 마법에 대해서는 이미 방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없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법을 쏴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른 이들의 반응이 조금은 심상치 않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소중한 파티원들의 얼굴.
사역마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자세히는 확인할 수 없지만, 반쪽이 된 얼굴들이 시야에 비쳤다.
선희영은 왠지 모르게 1회차 같이 표독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박덕구는 눈이 퉁퉁 부어 있다.
차희라와 카스가노 유노, 엘레나의 모습도 보인다. 저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차희라의 얼굴이 많이 망가져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쟤가 저렇게 망가져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
‘아이고, 얼굴이 반쪽이 됐네.’
마치 폐인이라도 된 것만 같은 얼굴은 가관. 솔직히 뭐라고 다른 수식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괴로워 보이고 후회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현재 마법을 외우고 있는 정하얀과 비슷할 정도로 충격받은 것처럼 보였다.
일만 제대로 마무리된다면 일생일대의 고백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얼굴에 깃들어 있는 감정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얘네… 뭐하려고 하는 거야. 너네, 왜 그래. 단체로.’
하나 같이 목숨이라도 건 것 같은 비장한 얼굴.
본래 자살 특공대나 다름없는 병력을 운용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저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건 그런 종류의 비장함이라고 볼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죽을 사람들처럼 인사를 나누거나 비장한 표정을 선보이고 있었다.
지금 시전하려는 마법이 그 이유라는 걸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재 정하얀이 외우고 있는 마법이 도대체 뭐길래 저런 얼굴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심지어 정하얀 역시 무척 긴장한 것 같은 표정. 평소답지 않은 얼굴이었다.
‘저거 막아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병력을 보내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진다.
엘라나와 선희영 같은 사제들은 손을 모으고 있었고 박덕구 마저 손을 모으고 있는 상황.
김현성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내 완성된 주문이 정하얀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떨어질 운석에 주의하라는 전언을 날리려고 했을 때였다.
-사라졌습니다.
‘나도 눈이 있어서 보고 있어. 이 새끼야.’
마력홀로그램으로 보고 있던 병력이 눈 앞에서 사라진 것.
똘똘 뭉쳐 있던 병력이 자리한 곳에 남아 있는 건 그들의 발밑에 있던 마법진이 전부였다.
‘이게 씨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니네, 왜 이래. 진짜로.’
잠깐 동안 패닉 상태에 빠지기는 했지만, 바깥에서부터 문을 열고 들어온 목소리에 정하얀이 정확히 무슨 주문을 외웠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이기영 님. 주요 공략 포인트인 리, 리무르아 님의 둥지에 적의 본대가 들어왔어요.
‘공간이동 마법.’
이론적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