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0
회귀자 사용설명서 470화
이간질(1)
“위하여!”
“위하여!!”
‘지랄 났네. 아주 지랄 났어.’
벌써 5번째 모임, 이곳에 온 지 고작 5일이 지났다는 걸 생각해 보면 5번의 회식을 가졌다는 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참 대단들 하다. 대단해.’
놀고, 먹고, 씹고, 뜯고, 즐기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놀게 되면 조금 물리기 마련이다.
우리 김현성이 입을 열어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쯤 되면 움직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할 리가 없다.
대륙의 거의 모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전부 모이는 자리, 훈련 같지도 않은 훈련을 하며 허비한 시간이 벌써 5일이다.
내 나름대로는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곧바로 달려오지 않은 김현성을 보고는 아직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X라에몽을 찾는 진구처럼 곧바로 달려오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사실.
하지만 예민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일단 혼자 어떻게든 해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무리 해봐라. 그게 생각대로 되나.’
사실 은근슬쩍 베니고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다가올 위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녀석이 먼저 내 쪽에 다가오는 그림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
여러모로 유리한 점도 많고.
질문을 김현성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한 사이 벌써부터 주변에서는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땀을 흘린 뒤에 마시는 맥주는 맛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기영 명예 추기경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있으니 더욱더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이것 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 가 봅니다. 전 대륙이 이토록 화합할 수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대륙이 하나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게 말이야 방귀야.’
“잔이 비어있네요. 한잔 받으세요. 명예 추기경님.”
“감사합니다. 자밀라 님.”
“소문으로만 들었었는데…… 그동안 너무 뵙고 싶었거든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찾아뵙기도 쉽지 않았고 또 그동안 교국과 저희 왕국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으니까요. 정말,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사실, 자밀라 님처럼 아름다운 여성분이 있으신 줄 알았더라면 제가 먼저 찾아뵀을 겁니다.”
“빈말이라도 기분 좋네요. 후훗.”
“빈말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받은 느낌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두 분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이거 이러다가 오늘 밤에 어딘가로 사라지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게르한 님도 참…… 짓궂으세요.”
하하 호호 즐거운 분위기에 주변을 둘러보자 오늘도 시간을 허비하기 여념이 없는 적폐 여러분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시야에 비쳤다.
‘김현성이 이 꼴을 봐야 하는데.’
대부분이 각 왕국의 유력길드를 맡은 이들이었는데 그다지 정상적인 놈들이 없다는 게 특징 아닌 특징이었다.
지옥불의 어쩌구와 철혈 어쩌고 별명이나 직업명 하나는 거창한 놈들이지만 이름값을 하는 놈들은 몇 놈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쓰레기들, 특히 내 옆쪽에 앉아 있는 자밀라라는 여성의 행동은 가관이라 할 수 있으리라.
짓궂다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한 소리는 아닌 모양,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얼굴과 표정은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가슴을 훤히 내놓고 있는 복장과 은근히 유혹하는 듯한 말투는 이게 한 클랜을 대표해서 온 지도자인지 쇼걸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합격한 유력 클랜이라고 들은 적은 있었지만, 훈련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녀의 접근을 반길리 만무.
최근 중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하얀을 생각해 보면 솔직히 이런 자리도 조금씩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 어떤 것보다…….
‘적폐 흉내 내기도 참 힘들잖아.’
이 사회의 암덩어린 척 연기하며 비위 맞춰주는 것도 참 힘들다.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도덕 사회의 일인으로써 이런 적폐 축제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지사.
마음에도 없는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마치 잘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할 리가 없다.
물론 아주 가끔은 덩달아 즐기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적폐 축제는 이기영이라는 인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서로를 밀어내려고 하는 N극과 N극이요. 이혼한 부부 사이나 다름이 없다.
‘아 연기하기 진짜 힘들다.’
“게르한 님.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이것 참 영광입니다. 명예 추기경님.”
“영광일 것도 많습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반응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훈련 중도 아니고 친목 도모를 위해서 모인 회식 자리 아닙니까. 훈련도 최선을 다해 완수했으니 친목 도모 역시 최선을 다해야지요.”
“역시 명예 추기경님 이세요.”
“자밀라 님도 한 잔 더 받으시죠.”
“네, 물론이에요.”
“자밀라 님이 많이 취하신 모양입니다. 어깨라도 빌려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게르한 님의 어깨보다는 명예 추기경님의 어깨가 더 좋은걸요.”
“하하하. 이거 정말로 오늘 두 분이 일이라도 치르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게르한 님.”
“이거……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럼 어떻게 제가 이런 말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 분이 밀착하고 있는 모습이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하…… X바 진짜 연기하기 너무 힘들다.
“명예 추기경님께서도 기분 좋으신 모양입니다. 최근에 본 얼굴 중에 가장 환하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있는데 기분이 좋은 게 당연하지요.”
“여기 안주 좀 드세요. 명예 추기경님. 제가 먹여드려도 되나요? 아…….”
“자밀라 님…….”
“아이 그러지 말고요. 아…….”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이런 역할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말입니다. 명예 추기경님.”
“네. 게르한 님.”
“갑작스럽게 이런 말씀 들리기 조금 죄송합니다만…… 최근에 있었던 모의전 말입니다.”
“어떤 모의전을 말씀하시는 건지…….”
“대도시 린델 연합과 왕국 남부연합…….”
“아아아아아. 기억이 납니다. 네. 모의전이 있었었죠.”
“큼. 사실은 조금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서…….”
“네? 우려할 게 있었습니까?”
“린델 연합이 필요 이상으로 거칠게 모의전을 진행하고 있다는 여론이 있어서 말입니다. 물론 훈련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린델 연합의 클랜 마스터 분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처사가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왕국 남부연합 쪽의 모험가 중에서는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고요.”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물, 물론 린델 연합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도 완전히 배제 한 채로 말씀드리는 거고요. 다만 이기영 명예 추기경님이 계신 린델 연합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지게 될까 걱정이 돼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아…… 게르한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확실히 부상자가 제법 많았었죠. 포션으로 치유한다고 하지만 축적된 피로도까지 치료할 수는 없고…… 저도 보면서 조금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더군요.”
부상자가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범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사망자가 나온 것도 아니었고 김현성이 생각하고 있는 모의전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적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내 고인물들께서는 린델 연합의 이유 모를 투지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조금이지만 이해가 되기는 된다. 한쪽은 적당히 하자는 느낌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면 한쪽은 죽자 살자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양쪽 병력의 온도 차가 무척이나 심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현성의 절박함이 보이는 모의전이기는 했지만, 가슴 아프게도 녀석의 투지는 우리 적폐 여러분들께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았다.
‘너무 만화 같은 상황을 기대한 거 아닌가.’
굉장히 1차원 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달려들면 상대도 뜨겁게 받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통한의 실수, 대륙 연합에 새로운 활력을 밀어 넣기 위한 김현성만의 비장의 수는 처음부터 이상한 방향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물론, 이쪽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김현성의 계획이 실패하고 있다는 건 내 계획에 한 발자국 가깝게 다가간다는 말과 진배없었으니까.
하루라도 더 빨리 김현성이 기영에몽을 외치며 달려왔으면 좋겠다.
“아. 명예 추기경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사실 저희 길드 마스터께서 이번 훈련에 조금 열의가 넘치시는 상태라…… 이건 제가 따로 한번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마법 병단과 함께 훈련할 때는 쓸데없는 부상자를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보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로서도 일단 말씀을 드리는 것 정도에 불과해서…… 조금 더 도움이 됐으면 좋겠지만……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아…….”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이번 훈련에는 참여하지 않는 걸로 길드 마스터와 합의를 본 상태라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건…….”
“다른 업무를 배정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훈련만큼 중요한 일들도 많으니까요. 병력의 운용이야 본래 길드 마스터의 고유 권한이고…… 사실상 린델의 삼대 길드가 함께 움직이는 터라 이런 부분에서는 크게 도움 드리기 힘듭니다.”
“아…… 그렇군요.”
“네.”
“그, 그래도 이기영 명예 추기경님이 아닙니까. 교국에 최초로 직위를 부여받고 교국의 지도자의 신임을 얻고 있는 분이신데……. 제삼자의 입장에 서 있는 제가 함부로 말 할 입장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네?”
“파, 파란 길드 마스터가 이기영 님을 견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뭔 소리야 이새끼들은…….’
“하하. 그런 게 아닙니다. 조금 오해가…….”
“큼……. 사실 파란길드가 어디 파란 길드 마스터 혼자 키운 길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기영 명예 추기경님이 아니었다면 그런저런 3류 길드로 전락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훈련에서 완전히 배재하다니…….”
‘뭔 배재를 해. 내가 안 한다고 한 거구만…….’
“사냥이 끝난 개는 잡아먹힌다. 저희 나라에서도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제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좋겠지만…….”
‘응 쓸데없는 걱정이야.’
“혹시나 파란 길드 마스터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말 한 번 거지같이 하네. 이 새끼는.’
바보가 아니라면 깨달을 수 있는 상황,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지만, 이때다 싶어 달려드는 꼴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게르한이라는 놈이 뭘 원하는 건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간질.’
이런 놈들 데리고 성과를 내야 하는 김현성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암만 떠들어 봐라. 이 새끼들아. 현성이랑 내가 찢어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