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1
회귀자 사용설명서 461화
조혜진 사용설명서(6)
‘조혜진, 메이크업 오버, 성공적.’
조심스레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조혜진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당연하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하리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나 역시 믿기지 않았으니까.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는 만화 같은 반응은 가관.
‘이게… 나?’ 같은 오그라드는 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말 돼요. 얼마나 힘을 썼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죠. 제 화장도 이렇게 공들여서 하지는 않아요.”
“노, 놀랍군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건지….”
“생각보다 크게 변한 건 아니에요. 조금 억울한 느낌이지만, 어디까지나 본판이 좋았으니까요. 내가 봐도 예쁘네. 제길, 예쁜 것들은 다 죽어야 한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변할 수 있을 줄은….”
나도 상상 못 했다.
달라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의 날카로운 창 같았던 조혜진은 온데간데없다.
모든 남자의 워너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에 김현성 따위는 손가락으로도 꼬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조금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라 판단했던 것이 사실.
그 기간을 단축하게 생겼으니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다음 미션은 뭐예요?”
“본격적으로 들어가 봐야지. 고생했어, 지혜야. 자. 일단 장비부터 받으세요, 혜진 씨.”
“장비 말입니까? 무슨 장비가 필요합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바타처럼 움직이게 될 거라고요. 아네모네의 눈이 항상 따라다닐 거고… 여기, 이건 수신기입니다. 귀 안 쪽에 넣으시면 됩니다.”
“…….”
“…….”
“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겁니다. 이런 거 없으면 창이나 휘두르고 있을 텐데. 현대였다면 문자로 조언해 드릴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해야 되는데… 솔직히 혜진 씨를 믿을 수가 있어야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미션은 꼭 따르셔야 됩니다. 부끄러워하거나 거부하는 순간 분위기 싸해진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본격적으로 밀어 드리려고 하는 거니 숟가락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꼭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최우선 사항이에요. 약속해 주세요.”
“그건….”
“약속해 주세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약속한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괜찮을 것 같은데.’
본인의 입으로 알겠다고 말했으니 아마 이쪽의 말을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
조혜진은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인간이니까.
“자자. 그럼 나갑시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긴 어딥니까. 우리 현성이 집무실이지. 업무 남아 있다면서요.”
“이 상태로 나가는 겁니까?”
“그럼 푸르딩딩한 갑옷 입고 가려고 했어요? 어차피 평상복입니다. 길드 내에서는 편하게 다닐 수도 있잖아요. 매번 갑옷 입고 다니는 게 질리지도 않습니까. 아무튼 빨리빨리 움직여요.”
“네… 아, 알겠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정말로 나가야 하나 움찔움찔거리는 모습은 괜스레 화를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
하지만 심정이 어떤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조혜진은 저 갑옷을 벗어본 적이 없다.
길드 하우스의 밖에서는 당연했고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그 마저도 몇 달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이벤트.
주어진 임무가 호위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그 누구도 조혜진에게 하루 종일 갑옷을 입으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
어째서 그녀가 저런 스타일을 고수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무거운 갑옷이 편하게 느껴진 것이 분명 하리라.
갑작스레 풀 세팅을 하고 길드 안을 돌아다니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허들이 높은 주문이라는 거다.
‘얘도 참….’
“자신감 가지세요. 거울 봤잖습니까. 몬스터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찌르시는 분이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겁을 먹습니까?”
“겁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뭔가 어색해서….”
“어색할 것도 많네요. 그만 주춤 거리고 빨리 문 열고 나가기나 하세요. 무슨 던전 진입하는 것보다 더 긴장하는 것 같은 표정이야.”
“알겠으니까 그만 재촉하셔도 됩니다. 후우.”
“아니, 좀 빨리 나가요.”
“아, 알았다니까요.”
“…….”
“…….”
“좀 나가요!”
“아, 알았다니까!”
계속해서 멈칫거린다.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사족을 하나 붙일 수밖에 없었다.
“…….”
“…….”
“하. 진짜 예쁘다니까 그러네.”
“…….”
“누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솔직히 제 입으로 이런 말하는 게 자존심 상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여요. 걱정할 필요 하나 없습니다. 평소처럼 사냥 나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아니면 임무 같은 걸 한다고 생각해도 되고요. 첩보 활동 같은 거 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쉽겠네요.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일단은 움직입시다.”
“알… 겠습니다.”
조혜진의 등을 탁 하고 밀어버리니 그녀답지 않게 툭 하고 밀려나는 모습이 보였다.
살짝 뒤를 돌아본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감돌기는 했지만 닫히는 문사이로 뭔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준비됐으니 이쪽도 대충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피식 웃으며 곧바로 방 한쪽으로 들어가 상황실을 세팅하기 시작하니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진다.
마력 홀로그램 모니터만 5대.
조금 오버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주 약간의 감정도 곧바로 캐치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오히려 부족한 상황.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밀착취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오늘 가장 수고해 준 이지혜 역시 조심스레 작업실의 셋팅을 돕고 있었는데 무일푼의 노동에 끌려와 고생해 준 것치고는 그리 나쁜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이번 작업이 내심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고마워, 누나.”
“뭘요. 다 필요한 일인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앙큼하단 말이야.”
“뭐가?”
“굳이 모른 척할 필요 없어요. 오빠 생각이 뭔지 알 것 같으니까.”
‘내 생각이 뭔데…?’
평소 이지혜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 대충 눈치챌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뭔 소리를 하냐는 듯 그녀를 슬짝 바라보자 테이블을 정리하며 입을 열어오는 이지혜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현성이 오빠 쪽에 자기 사람 하나 꽂아 넣으려는 거 맞죠? 확실히 슬슬 생각해 볼 때긴 하네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오빠가 그 사람 생각하는 거 보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보험 몇 개 들어서 나쁠 건 없죠. 중전 만들기 같은 느낌 들어서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저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다니까. 역시 그래야죠. 그래야 내 이기영이지.”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멍청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지혜의 생각과는 다르게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녀석을 잡아주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런 부가적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보자면 더욱더 그렇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쪽은 김현성과 영원히 붙어 있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력이 계속해서 커질 거라고 가정해 보면 여러모로 복잡해지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은 없는 파벌이 생겨날지도 모르고, 파란 내에서도 정치적 싸움을 해야 하는 시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압도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쪽에 반하는 이들이 생긴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겠지만, 이후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조혜진을 꽂아 넣는 그림이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황궁에 비를 꽂아 넣는 이 대감의 포지션.
말로는 불쾌하다 어쩐다 하지만 조혜진과 나 사이에 묘한 유대감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 여겨졌다.
‘괜찮네.’
물론 단기간에 실효성을 볼 수는 없는 프로젝트지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뭐, 꼭 그런 것 때문인 건 아닌데… 누나 마음대로 생각해. 저쪽도 좀 치워줘. 아무래도 홀로그램 하나 더 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 어련하시겠어요. 이거 저도 같이 해도 괜찮은 거죠?”
“애초에 그게 편할 것 같아서 부른 거야. 누나 업무는 다 끝났어?”
“네. 조금 남아 있기는 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일단 대충 셋팅 끝나고 빨리 앉아요. 궁금해 미칠 것 같으니까. 사실 개인적으로 보면 조금 부정적이기는 한데… 저도 일이 어떻게 될지는 궁금하기도 하네요. 솔직히 저는 현성 오빠 고잔 줄 알았거든요. 아니면 호모나 섹상에일 가능성도 생각해 봤고요. 우리 연주 언니한테도 별 반응도 없고, 튜토리얼 던전 때를 생각해 보면 더 그렇죠.”
“왜?”
“내 입으로 이런 말 하지만 저도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잖아요? 눈길도 안 주는 거 보고 솔직히 자존심 엄청 상했다니까.”
“하긴….”
“오빠랑 저녁 먹었다는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지금은 많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솔직히 낯선 사람이랑 밥 먹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나도 놀랐어. 아, 저기 마력 연결 좀.”
“네네. 음. 이쯤 되면 제법 볼만 해진 것 같은데… 뭐 더 필요한 거 없어요?”
“아니, 크게 없어.”
“그럼 시작할게요.”
“응. 부탁.”
이지혜가 준비를 하자마자 꺼져 있던 마력 홀로그램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혜진이 바라보는 정면.
조혜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시점.
심지어 몸 전체가 보이는 홀로그램도 있다.
손짓 발짓도 충분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있는 거니까. 물론 섹슈얼한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가장 처음 눈에 보였던 것은 잔뜩 긴장한 조혜진의 표정.
마치 클럽 한가운데 놓인 아웃사이더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인사들 사이에 파묻힌 사회 부적응자의 표정이라 할 만했다.
평소처럼 당당한 발걸음과는 다르게 어색하고 주눅 들어 보이는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저건 뭐야.’
곧바로 교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
적당히 입을 열자 깜짝 놀라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마이크 테스트. 아. 뭐, 죄지었어요? 움츠려 들지 말고 당당하게 좀 걸읍시다. 당당하게. 그렇다고 너무 팍팍 걷지 말고 조금 조심스럽게 걸어요. 허리 좀 펴고 가슴도 쫙 펴고. 기껏 꾸몄는데 길드 직원들한테도 한번 보여줍시다. 아, 이거 들리죠? 들리면 입술 한 번 쓰다듬어요.”
들리는 거 맞네.
“잘했어요. 지금 자세 괜찮네요. 어디 가지 말고 곧바로 들어갑니다. 업무하러 가는 거예요.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한다고 생각합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가끔 첫 술에 배 부르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그런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라고 생각합시다.”
-그,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무슨 소리 했습니까? 그리고 웬만하면 허공에 대고 말하지 마요. 자자, 괜한 고민 말고 빨리 문 여세요. 천천히 열고 천천히 닫읍시다.”
살짝 얼굴을 붉힌 조혜진이 숨을 크게 몰아쉬고 문을 잡아 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행동이 무척 조심스러웠는데 아마 저건 평소에도 저럴 거라고 생각했다.
김현성이 있는 집무실로 들어가는 일이었으니까.
마력 홀로그램에 김현성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녀석이 보여주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새끼, 구두는 왜 쳐다보고 있어?’
책상 위에 놓인 신발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