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
회귀자 사용설명서 460화
조혜진 사용설명서(5)
이지혜를 등판시킨 이유는 뻔했다.
그나마 내 기준에서 가장 여성스럽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
주변을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애초에 편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차희라나 화장이라는 수단이 필요 없는 외모를 가진 엘레나.
현대에서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쌍팔년도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카스가노 유노, 아니, 얘는 쌍팔년도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오히려 메이지 유신에 가까운 느낌.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뭐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본인은 무척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덜 여문 모습. 이제 막 꾸미기 시작한 대학생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디아루기아도 엘레나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애초에 그 둘은 인간과 거리가 멀었으니 이렇게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
그나마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선희영.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한 모습은 수많은 남심을 홀리기에 충분했지만….
‘이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지.’
그 말 그대로였다.
애초에 비치렐라의 어머니인 이지혜가 있는데 굳이 선희영을 불러올 필요가 없다.
멀리서 본 이지혜는 변신의 달인이요, 변장의 달인이라고 할 만한 수준.
내가 남의 외모를 평가할 처지는 아니지만 이지혜는 제법 평범한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괴물들과는 다르게 작고 귀여운 인상.
차희라처럼 육감적이지도 않고 카스가노 유노처럼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게 예쁜 것도 아니다. 디아루기아와 엘레나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굳이 엘레나와 비교를 해보자면 그녀는 공작이요, 이지혜는 아기 참새.
그럼에도 가까이 붙어 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이지혜 역시 충분히 아름다운 여성이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거다.
이건 마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누군가처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 아기 새는 형형색색의 깃털들을 가지고 와 자신의 몸을 부풀리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이지혜라는 인간의 개성이나 영혼의 단짝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어떻게 봐도 대단한 능력.
심지어 얘는 튜토리얼 때도 비교적 멀쩡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씻을 곳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장소에서도 항상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거다.
새삼스레 예전을 떠올려 보니 조금이지만 소름이 돋는다.
‘뭐지, 진짜?’
원래 다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지혜는 자신을 가꾸고 관리하는 것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외모와 성격이 남의 호감을 이끌어 낸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그런 그녀가 야생의 상태로 몇 년이나 지낸 조혜진의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 만무.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튀어나오는 그녀의 말은 조혜진의 애매한 가슴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여자 맞아요?”
“생물학적인 부분을 물어보고 계신다면 맞습니다. 성별은 일단….”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뭐, 솔직히 비난할 일은 아니기는 한데… 사람마다 라이프스타일은 다른 거니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죠. 그래도 저랑은 너무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아서 오히려 제가 더 놀랍네요. 아!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네요. 손톱 관리도 하시는 거 보니까.”
“이건 훈련에 방해가 돼서….”
“…….”
“…….”
“아, 아무튼 간에 총체적 난국이네요. 기영오빠 말대로 일단 와보긴 했는데…. 그래도 본판은 예쁘시니까 아마 조금만 손보면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질 거예요. 당연하지만 이건 연주 언니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언니 라이벌 돕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네요. 화장은 원래 안하고 다니시는 건가요?”
“어차피 땀을 많이 흘리면 지워지지 않습니까.”
“여기에 워터프루푸 제품 같은 건 없지만, 마법은 호구가 아니랍니다. 간단한 코팅 마법으로도 그 정도는 보안할 수 있다고요. 이건 관심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겠네요. 린델에 널린 게 메이크업 샵인데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검은 백조에서도 관련 샵들 많이 런칭했는데….”
“네. 죄송합니다만 시간이 없어서.”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이죠. 매일 1시간 일찍 일어나고 30분 늦게 자면 돼요. 다음에는 샵도 한 번 데려가 봐야겠네. 없는 게 많지만 웬만한 건 대체할 수 있다고요. 그럼… 어디 보자. 입술은 조금 매트하게 바르는 게 나으실 것 같고… 그리고 저기 있는 푸르스름한 갑옷은 뭐예요? 평소에 저런 거 입고 다녀요? 아무리 갑옷이라고는 해도 신경을 조금 쓰셔야 할 것 같은데….”
“색깔이 예, 예쁘지 않습니까.”
“아니요. 안 예뻐요. 변비 걸린 보노보노 얼굴 색 같다고요.”
“예리가 함께 골라준 갑옷입니다.”
‘키야… 김예리! 이 사탄도 울고 갈 쓰레기.’
아까부터 저 촌스러운 갑옷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김예리가 함께 골라줬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장담컨대 조혜진을 먹이려는 수작이 분명.
만약 그게 아니라면 김예리 역시 절망적인 센스를 타고났을 거다.
아무튼 돌아가는 정황은 나쁘지 않은 상황.
이지혜가 정확히 어떤 진단을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무언가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들어오자마자 강력한 팩트를 퍼붓는 모습은 엄지를 치켜 올리게 될 정도였다.
워낙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확신을 담아 입을 여는 이지혜의 태도가 전문가를 만난 것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실제로도 이지혜는 전문가가 맞았으니 조혜진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 뭐 다른 스케줄은 없죠?”
“오후 훈련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에는 봐야 할 업무도 조금 있고요.”
“오후 훈련, 그건 빼는 게 좋겠네요.”
“네?”
“그건 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일단은 따라와요. 씻는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드릴 테니까. 도대체 무슨 제품을 쓰는데 머리카락 상태가 이런 건지 한번 봐야겠어요. 오빠는 잠깐 여기서 기다려요.”
“응.”
뭔가 머뭇거리는 조혜진의 손을 꽉 붙잡은 이지혜가 그녀를 욕실로 데려가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
“속옷도 바꿔야겠네요. 나이가 나인데… 이런 디자인은 조금 그렇죠. 보는 사람이 기겁을 하고 도망갈 걸요. 내가 남자였으면 진짜 싫었겠다.”
“…….”
“그리고 정리할 곳도 조금 많으신 것 같은데. 잠깐.”
“어, 어디에 손을 대는 겁니까?”
“가만히 있어보라니까요?”
“손대지 마세요! 손대지 말라니까! 더 이상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저도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요?! 도와주려고 하는 거니까 좀 조용히 있어 봐요.”
“악!”
단말마의 비명과 조금씩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상황.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조혜진의 비명과도 같은 하이톤 목소리와 농후한 민달팽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성취감이 느껴지는 이지혜의 표정과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조혜진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된다.
그런 조혜진을 화장대에 앉힌 전문가는 드디어 이것저것 입을 열며 자신의 솜씨를 뽐내기 시작.
조금 과장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일단 제가 쓰는 제품만 가지고 왔어요. 비싼 것도 몇 개 섞여 있고요. 매번 도와드릴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 하는 것도 배워보는 게 좋겠네요. 아, 머리부터 정리해야지. 많이 자르지는 않을게요. 그냥 정리만 할 거예요. 웨이브 한번 줘보고.”
“알겠습니다.”
“눈썹도 정리해 드릴 거예요. 대충 라인을 남겨 놓을 테니까 잘보고 따라가면서 그리시면 돼요.”
“아, 알겠습니다.”
“입 살짝 벌리고. 옳지….”
“음….”
“너무 막 칠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게 어울리실 것 같네요. 본판이 좋은 사람은 이래서 부럽다니까. 피부도 정말 좋네요. 탄력 있고,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가? 그리고 무엇보다 몸매가 진짜 끝내주네요. 저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기는 한데… 이런 건 반칙이죠. 비율도 좋고, 지구에 있었으면 모델 했어도 됐겠어요. 농담이 아니라.”
“마, 말씀 감사합니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요. 당당해야죠. 예쁜 사람은 자기가 예쁘다는 걸 잘 알아야 한다니까요. 힘든 점도 있지만 잘만 이용하면 인생 사는 게 얼마나 편해지는데. 외모지상주의는 여기든 저기든 남녀 가리지 않고 똑같다니까. 이런 얼굴이면 남자 꼬시기 정말 쉽겠다.”
“…….”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중간중간에 알 수 없는 용어를 쓰며 설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알아듣기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지혜 그녀가 정말로 잘해내고 있다는 것.
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은 입을 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율하가 왜 뷰티 유튜버들을 구경했는지 알겠네.’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일단 이지혜가 끊임없이 조잘대다 보니 오디오가 비지 않는다.
슥슥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은 추억의 밥 아저씨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쟤는 진짜 유튜버 같은 거 했으면 잘됐겠다.’
당연하지만 계속해서 달라지는 조혜진의 모습도 흥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대충 길드 직원들이 수많은 옷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
커다란 행거 수십 개가 커다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보는 광경.
하나의 옷장을 가지고 있었던 조혜진의 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커다란 방을 옷들이 가득 매우고 있다. 얼마나 많은지 이쪽과 저쪽을 분단시켜 버릴 정도.
실제로 지금은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로 대충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요. 옷 좀 입어보게. 혹시 마음에 드는 옷 있어요?”
“딱히… 굳이 꼽으라면 저, 저 파란색 드레스는 어떻습니까.”
“파란색을 왜 이렇게 좋아해요? 그리고 드레스 빼고 평상복 중에 골라봐야죠. 드레스 입고 업무 보는 모습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장소에 어울리는 복장이 있는 법이에요. 그런 걸 생각해 보자고요. 괜히 오버할 필요 없이 깔끔하게 갑시다. 깔끔하게. 개인적인 취향인데 솔직히 제가 과한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꼭 머리에 이상한 장식 같은 거 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거 완전히 아웃이라고요. 코스프레 하는 것도 아니고… 포인트는 기본 악세나 가방으로도 충분해요. 잠깐 일어나서 만세 해봐요. 입고 있는 옷 전부 벗고요.”
“그렇지만….”
“어차피 저쪽에서 이쪽은 안 보여요. 잠깐 몇 개 좀 대볼게요. 옳지. 음….”
“이건….”
“잘 어울려요. 충분히 예쁘고요. 질투 날 정도로.”
“정말입니까?”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일인데.”
“그렇지만….”
“자아. 한번 봅시다. 오빠, 다 됐어요. 와서 한번 봐요.”
“응.”
수많은 옷의 무덤을 헤치고 앞으로 전진하자 이윽고 천천히 조혜진의 얼굴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딱히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말로 아름다웠다는 것.
살짝 웨이브가 진 머리에 블라우스와 치마.
간단한 구성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된다. 화려하다는 느낌은 없다.
하지만 목에 걸린 목걸이가 옷과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얼굴은 또 어떠한가.
본래도 예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마법으로 버무린 변신은, 동일인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옆에서 뿌듯해하고 있는 이지혜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본인도 이 아웃풋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모양.
영웅 등급의 퀘스트라도 클리어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떻습니까.”
“아름답네요.”
“놀리려고 하시는 말씀이라면….”
“아뇨. 정말로 아름답다니까요. 아직 거울 안 봤어요?”
“자세히는….”
“그럼 한번 봐요. 농담인지 아닌지 보면 압니다.”
본인이 가장 깜짝 놀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현성이 보러 가도 되겠다,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