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3
회귀자 사용설명서 433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저 세계 생활(2)
대충 몸을 점검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것은 당연지사.
조금 더 늦게 광장으로 간다면 파티를 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짐을 점검하는 나를 바라보는 이지혜의 표정은 조금은 황당해 보였다. 정말로 내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정말 가게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담. 그냥 여기서 푹 쉬지 그래요?”
“아니. 안 그래도 한번 둘러보려고 했다니까. 테스터들을 밀어 넣기도 전에 오픈하는데 급했던 만큼 불안한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정확한 문제점이 뭔지는 직접 파악해 봐야지.”
“언제부터 그렇게 열정적이었어요?”
“그만큼 중요한 일이야.”
갑작스럽게 원정을 떠나는 이유가 꼭 그것만은 아니지만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이건 정말 중요하거든.’
물론 이지혜와 김미영 팀장이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능력이 있는 것과 던전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
백 번 양보해 그들이 박물관 관리자였다면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대륙에 있는 박물관 관리자는 나와 막스뿐이다.
그것도 녀석은 5급. 나는 4급.
오늘 오픈 될 박물관의 총책임자가 바로 나라는 이야기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을 진행하는데 CEO가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거다.
대륙의 명운이 걸려 있는 만큼 허투루 진행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욕심쟁이의 심정이었다.
균형 있게 빨아 먹는지 봐야 해.
너무 심하게 빨아먹어서도 안 되고 너무 약하게 빨아먹어서도 안 된다.
계속해서 희망을 심어주면서 아슬아슬하게 손해를 누적시키는 게 중요하다.
플레이어의 성장 역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장사이니 만큼 그들을 절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균열 랜드의 존재 의의다.
이방인들을 필사적으로 만드는 것.
추가로, 엄청난 금전적 이득을 파란으로 가지고 오는 것.
말은 쉬워 보이겠지만 여러모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항.
내가 직접 서민체험을 해보는 게 딱히 이상한 그림은 아니라는 거다.
“오빠는 얼굴이 너무 팔렸는데… 그건 어떻게 하려고요? 마법으로 대충 버무리는 것도 무리일 것 같고….”
“대충 변장해서 나가면 되지 않나. 의외로 흔한 얼굴인데.”
“솔직히 말하면 흔한 얼굴은 아니죠. 특징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머리스타일이랑 평소 입고 다니는 장비만 조금 손보면 얼핏 달라지기는 할 것 같아요. 이기영 명예추기경이라는 게 딱 스탠다드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이미지만 벗어나면 괜찮을지도…?”
“…….”
“아니, 그래도 안 되겠네요. 일단 얼굴이 너무 눈에 튀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니까.”
“그래도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죠. 아니면 가면이라도 쓰고 갈까요? 조금 수상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어딜 큰일 날 소리를! 지혜야! 정신 나갔니?’
“그건 기각.”
“하긴. 괜한 경계심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으니. 희귀 등급 들어갈 거는 아니죠? 영웅 등급?”
“응.”
“그럼 마법도 기각이네요. 전부다 눈치챌 테니까. 아! 잠깐만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네요. 여기서 기다려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이지혜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마치 욕탕에서 뛰쳐나오며 유레카를 외치는 듯한 표정.
뭔가 뾰족한 수가 생각난 것이다.
나 역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후 이지혜가 가져온 해결책에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면 되겠죠?”
“뭐야? 얘네들은 또 어디서 났어?”
“혜진 씨가 유니콘 데리고 왔을 때 숨어온 애들이에요. 괜찮죠?”
“괘,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이건….”
“어차피 효과도 며칠 안 간다면서요? 딱 적당할 것 같으니까. 이걸로 해요.”
“나쁘지는 않겠네.”
* * *
“철우 오빠?”
“…….”
“철우 오빠!”
“아, 민지야.”
“어때요? 쓸 만한 사람은 있어요?”
“아니.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린델에서 후위 구하기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찾으니까 정말로 힘드네. 조금 괜찮다 싶으면 전부 일행이 있고…. 사실 우리 전위도 그렇게 탄탄한 건 아니라서 우리가 원하는 마법사들 눈에는 성에 차지 않을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마법사들을 클랜에 들였어야 됐나 봐.”
“그게 말이 쉬운가요. 괜히 들였다가 성장하지 못하면 그건 그거대로 낭패니까. 무늬만 마법사들이 많은 것도 문제고…. 파란 길드에 정하얀 같은 사람 어디 딱 안 나타나주나. 그럼 정말로 잘해줄 텐데….”
“정하얀이야 워낙 특이한 케이스니까. 중견 길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법사라도 아쉬운 심정이야. 그만큼 마법사 풀이 적다는 거겠지.”
“그러지 말고….”
“응?”
“이왕 이렇게 된 거 악마의 첨탑에라도 지원해 보는 게 어때요? 보급품도 많이 준다는 이야기도 있고 공격대에 들어간다면 지금보다는 파티 구성하기가 쉽지 않겠어요? 같은 공격대에 들어간 마법사들과 친해지면 클랜으로 들어오라 은근슬쩍 제안할 수도 있고… 마도 왕국이잖아요? 괜찮은 마법사들은….”
“그건 안 돼.”
“아….”
“아직 위험해. 우리 수준으로 끼어들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글쎄요…. 듣기로는 옆집나무 클랜도 악마의 첨탑으로 향한다고 하던데….”
“등급 판정으로 따지면 최소 영웅 등급 이상의 던전이야. 이제 막 영웅 등급으로 진입한 우리에게는 무리가 있어. 물론 공략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봐. 균열 박물관에서 경험을 쌓은 이후에도 늦지 않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 마도 왕국 행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파티를 구성해야 하는 균열 박물관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악마의 첨탑은 아직 자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연줄이 있기도 했고 보급품 지원도 결코 적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보상으로 얻는 게 더 클 수도 있다.
물론 받은 보급품을 어느 정도 남겨왔을 때의 이야기지만 여러모로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는 거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아직 클랜의 스쿼드로 갈 수 있는 곳은 영웅 등급이 전부다.
그것도 중급 이상을 넘어가면 위험한 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다.
지금껏 클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던 이유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기 때문.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무리하게 이득을 취하려는 행동은 언제나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오빠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이해해 줘서 고맙다.”
“아뇨. 대건이 오빠도 오빠라면 분명히 반대할 거라고 하던 걸요. 그냥 아쉬운 마음에 제가 한번 찔러본 거지. 기대도 안 했어요.”
“대건이도?”
“네. 어려서부터 함께해 온 친구 아니랄까 봐. 둘이 정말로 마음이 잘 맞는다니까요. 어떨 때 보면 정말로 질투 날 것 같아.”
“하하하.”
“웃지 말고요.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고요. 클랜마스터랑 부클랜마스터가 사이가 너무 좋은 거 아니냐고 소외감 느낀다는 클랜원이 정말로 있다니까요?”
“그렇게 느끼게 했다니 미안하네…. 클랜원들한테 사과라도 해야 되는 건가? 그나저나 대건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
“주점 쪽에서 파티 구하고 있어요. 아침부터 술 퍼마시고 있는 마법사가 원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급하다는 거겠죠. 조금 있으면 출발해야 되는 시간인데…. 으으. 정말 사람 너무 없어.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그 악마 관계자들… 싸그리 잡아서 불구덩이로 집어넣고 싶다니까요? 하필이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사실 그렇게 나쁘게 볼 것도 아니야.”
“네?”
“애초에 영웅 등급의 던전이 계속해서 풀려 있다고 한들, 우리가 그 던전을 낙찰하거나 발견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조금 있으면 튜토리얼 던전이 열릴 테고… 이번에는 전 대륙이 하나가 돼서 교육소를 운영할 거라고 하잖아? 아마 많은 대형 길드가 던전 경매에 대해 많이들 신경 쓰고 있었을 걸? 길드에 들어오게 될 초보자들을 키워줘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클랜이 가진 자금으로는… 영웅 등급의 던전을 낙찰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지. 그렇다고 운에 기댈 수도 없고.”
“하긴….”
“풀이 조금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던전에 갈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여신이 직접 관리하고 있는 던전이라면 분명히 이방인들에게도 친화적일 테고. 또 대형 길드들도 중소 클랜을 지원해 준다고 발표했으니까. 이건 어떻게 봐도 기회라고 봐도 무방해.”
“그렇죠.”
“초조해하지 말고 기다리면 분명히 올 거야.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쯤은 있을 테니까.”
“세 시간 동안 구하다가 더 안 구해지면….”
“일단은 출발하는 게 좋겠지? 박물관 앞에서도 낙오한 마법사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제발 있었으면 좋겠네요.”
단순한 희망사항.
던전에 앞에서 파티를 구하는 마법사라니, 어떻게 생각해도 넌센스에 가깝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만큼 필사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저희 우정 클랜과 함께하실 소중한 마법사분을 모십니다. 전위는 탄탄하고 사제도 보유하고 있는 클랜입니다. 목적지는 균열 박물관 영웅등급 던전이며.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사냥하실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능력치와 직업은 일부만 공유했으면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와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오시면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우정 클랜입니다!”
“싸우지 말고 사냥하실 마법사분 모셔요! 저희 클랜마스터 오빠가 정말로 사람이 많이 좋아요! 꼭 좀 찾아와 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함께 입을 벌리는 국민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하지만 광장을 꽉 채운 파티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자 목소리가 금방 묻힌 것은 당연지사.
괜스레 들고 있던 팻말을 더 들어 봤지만 파티원을 구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아보였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지팡이를 든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 것.
‘어?’
전체적으로 미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
찢어진 눈과 새하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이 눈에 띈다.
온몸을 로브로 가리고 있었고 걸음걸이가 묘하게 어색해 보인다. 발이라도 다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자세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생겼지?
섹시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서큐버스가 이러할까. 쭉 찢어진 눈은 이상한 음욕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
전체적으로 야하게 생겼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리라.
사람의 외모를 평가할 때 어울리는 말과는 거리가 멀지만 딱 그 말이 맞다.
지금껏 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이런 생각이 든 외모는 처음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잠깐 동안 멍하니 그 사람을 바라봤을 때, 이질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눈앞에 서서 치명적인 입술을 뗐다.
“마… 법사기는 한데, 조금 다른 갈래의 마법사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파티에 가입이 가능할까요? 균열 박물관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저도 모르게 하체에 힘이 들어갈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자기소개를 먼저 드려야겠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정 클랜 여러분. 소환 마법사 이기연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