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6
회귀자 사용설명서 426화
승자와 패자(2)
‘여기 오는 건 처음인가.’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이단심문관들이 운영하는 심문실 같은 곳은 솔직히 나 같은 사람과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뭔가 축축하고 어두운 느낌이 무슨 던전에라도 들어온 기분.
당연히 무슨 사고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심적으로 불안해진다.
그야 그럴 수밖에.
사방에서 비명과 신음이 새어나오는 중.
심지어 죽여 달라고 외치는 녀석도 있다 보니 담이 약한 나로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죽여 달라는 소리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만 굳이 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장면이 있다.
‘이런 건 어떻게 계산되는 걸까?’
베니고어 교단은 본래부터 이단심문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바젤 교황의 등장으로 인해 교단 내 이단심문관들의 입지가 상승했고 배경적 상황이 맞물려 커다란 부흥을 맞이한 것.
모든 종교가 이단심문관이나 악마사냥꾼 같은 이들을 운영하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베니고어 교단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 규모가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이너스 감정을 뽑아내는 공장이 베니고어 파산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베니고어의 독실한 신자이자 바젤 교황의 진정한 우군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이런 공간은 악마들에게나 어울린다.
빛 뒤에 어둠이 있다고 한들, 빛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라기에는 거리가 멀다.
만약 이런 장소가 베니고어의 신성을 깎아 먹고 있다고 한다면 그녀가 파산한 것도 이해가 간다.
버는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사용한 것도 많았던 것이다.
“위쪽도 어렵겠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명예추기경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헬레나 이단심문관님.”
“…….”
“…….”
“저, 명예추기경님. 혹시나 장소가 불편하시다면 제가 따로 악마소환사를 불러….”
“아닙니다. 헬레나 심문관님. 솔직히 유쾌하진 않지만 이런 장소가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불편하다기보다는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 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일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이건 더러운 일이 아니라 그 어떤 일보다도 신성한 일입니다.”
“…….”
“분명 베니고어 님께서도 이 광경을 보신다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하.”
물론 베니고어 여신이었다면 인상을 찌푸리며 이딴 짓 하지 말라고 울부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리 만무.
베니고어에게는 안 좋은 소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종류의 장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나 다름없다.
너무 악이어서 문제지만 어쨌든 간에 필요악이라는 거다.
나로서도 규모를 축소해 베니고어에게 들어가는 신성의 양을 늘리고 싶었지만, 이곳의 규모는 결코 축소할 수가 없다.
베니고어가 오염되어 육체가 썩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장소는 계속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내 의견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천천히 풀어지는 헬레나 이단심문관의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얘랑 둘이 있는 건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신이 자신을 바라봐 준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모양.
조용히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명예추기경님.”
“네, 헬레나님.”
“저… 언제 한번 제이나 대주교님과 함께 기도회를 열까 하는데….”
“초대해 주신다면 당연히 찾아가겠습니다. 당장은 조금 힘들겠지만 헬레나 이단심문관님과 제이나 대주교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회는 제게도 큰 기쁨입니다. 당연히 참가해야지요.”
“…….”
“그… 보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네. 그러시다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천천히 멀어지는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동안 많이 얼굴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녀와 단 둘이 이 정도로 이야기해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제시카 대주교와는 성격이 정반대건만 어떻게 둘이 그렇게 쿵짝이 잘 맞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간에 저쪽의 임무는 이걸로 끝.
이쪽의 임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쯤이었나.”
괜스레 중얼거리며 문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다른 장소라는 질적으로 다르게 특별 관리를 받는 듯한 모양새.
여러 가지 신성력의 결계가 쳐져 있는 걸 보니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내 신성력을 주입하자 결계가 깔끔하게 풀린다.
몇 번이나 비슷한 행동을 한 이후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철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 오랜만에 보는 외관이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니야….”
“…….”
“나는 악마소환사가 아니란… 말이다.”
“…….”
‘진짜 불쌍하네.’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꼴은 가관.
온몸에 상처가 나 있고 전설 등급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쇠사슬로 양발과 양손이 구속되어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정체모를 십자가 같은 것에 매달려 있었는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도구들이 한 쪽에 즐비해 있었다.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괴한 모양만으로도 보기 싫어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
이토록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저 정신력이 놀랍다.
만약 나였다면 저 쇠사슬이 팔에 장착되는 순간 내가 모르는 것까지 전부다 나불댔을 것이다.
과연 한 시대를 지옥으로 만든 가면쓰레기다운 정신력.
어째서 김현성이 과거에 녀석에게 당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나는 악마 소환가 아니야. 나는 공화국의 진청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데, 아무래도 나를 이단심문관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인사를 꺼내야 할지 민망한 것도 사실.
마음의 눈으로 몸 상태를 체크한 이후에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매달린 녀석을 풀어줄 수 있었다.
굳건히 서 있을 줄 알았건만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 아니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조금 귀찮아 지는 것은 당연.
하지만 살짝 입을 열자 녀석이 곧바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 랜만입니다.”
마치 그리운 연인을 만났을 때와 같은 다정한 어투.
어떻게든 협상에 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건만 예전의 인성을 버리지 못한 가면쓰레기는 급격한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너….”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그동안 식사도 못 하셨을 텐데, 물과 배를 채울 만한 요깃거리도 가져왔습니다. 이단심문관들 몰래 이걸 빼내오느라 무척 힘들었지 뭡니까. 하하하.”
“너….”
“그렇게 쳐다보시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너. 너! 이기여어어어엉!”
“뭐, 뭐야! 왜 이래!”
이래서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던가.
정성을 다해 준비했건만 기껏 준비한 음식들을 쳐내며 이쪽으로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튜토리얼 던전의 아귀와 같은 모양새.
은혜도 모르는 범죄자의 얼굴이었다.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어떻게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다리로 굳건히 몸을 일으켜 주먹질을 해오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물론 모양새만이 아니라 스탯 자체도 아귀급으로 하락한 녀석이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 만무.
신사적으로 대우해 주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내재되어 있던 잠재된 폭력성이 드러나 버렸다.
거북이처럼 둔하게 휘두른 오른쪽 훅을 피한 뒤 왼쪽 옆구리에 바디 블로우.
약자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마력을 넣지 않았지만 진청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커헉!”
쓰레기가 된 것 같지만 간만에 맛보는 강자의 기분.
이미 전투력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음에도 다시금 왼손을 휘둘러 오는 녀석에게 질풍과 같은 발차기를 내질러 주었다.
힘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벽에 부딪치는 진청의 모습은 굉장히 처참하다.
‘이거… 의외로 격투에 소질이 있는 거 아니야?’
괜스레 주먹을 꽉 쥐어볼 정도.
하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토하는 녀석을 바라보자 상처뿐인 승리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흥분한 모습을 버리지 못한 채 커다란 목소리로 명을 재촉하는 중.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주먹을 휘둘러오지 않았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어어! 쿨럭.”
“아니. 뭘 자꾸 죽여 버린다고 그러십니까, 진청 군사님.”
“이기영 개자식! 이기영 개자시이익….”
“저는 대화를 하려고 왔습니다, 군사님. 시비를 걸려고 온 게 아니에요. 참고로 방금 싸움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아무리 저라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사람을 때리는 취미는 없으니 대륙과 같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장을 조금 다치신 것 같은데 제대로 대화할 정도로는 신성력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딱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로만요. 너무 치료해 버리면 다시 한번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저는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니 대화로 해결합시다.”
“너…. 너!”
“그렇게 억울해하시는 걸 보니 제 기분이 더 안 좋습니다, 진청 군사님. 당연히 억울한 것도 이해는 가지만 서로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었습니까? 애초에 전쟁을 먼저 일으킨 것은 당신과 공화국이고 저희야 대응해 승리를 취한 것뿐이지 않습니까. 그 와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입힐 만한 순간이 있었지만 이미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으니 진 쪽은 깔끔하게 이긴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지요.”
“개자식….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라도 반드시. 죽어서도 네놈을 저주하고….”
“죽어서 저주하는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일단 적당한 곳에 앉기라고 하세요. 말했다시피 대화를 하려고 찾아왔으니까요. 결코 쓸데없는 말을 하려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당신한테도 굉장히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대화는….”
“말 그대로 대화입니다. 아니, 오랜만에 옛날이야기 같은 걸 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고요. 원래 호적수라는 건 지난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당신을 상대하는 건 정말로 힘들었다고요. 중간에 탈주하고 싶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명승부라면 명승부지 않았습니까.”
“그 입 다물어.”
“확실히… 승부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참고로 사기꾼과는 대화를 안 한다 따위의 졸렬한 모습은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당신을 악마소환사로 만들어 버리기는 했지만 당신도 저를 전쟁을 일으킨 쓰레기 자식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만약 제가 패배했다면 전범으로 이 자리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있었을 겁니다. 서로서로 이해할 부분은 이해하자 이 말입니다.”
“…….”
“…….”
“지금 와서 당신이 억울해하는 게 코미디 같은 상황이 아닙니까. 흥분은 조금 가라앉혀 주세요. 그래야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까.”
내 말이 맞다.
만약 이쪽이 진청에게 패배했다면 아마 현재의 녀석과 비슷하면 비슷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륙에 혼란을 일으킨 전범 이기영으로 단두대에 목이 썰려나갔으리라.
내 발언에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악마소환사이자 가면쓰레기 진청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기 시작.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것 같은 느낌이다.
본인이 쳐낸 물을 다시금 입 안으로 들이키며 입을 여는 모습이 보였다.
“…….”
“…….”
“원하는 게 뭐지?”
조금은 생각을 정리한 것 같다.
방금과 같이 추한 모습이 아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당당한 모습. 과연 1회 차 최대 빌런다운 멘탈이었다.
“당신이 증언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