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8
회귀자 사용설명서 418화
위쪽에서 생긴 문제(1)
갑작스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시발. 이거 괜히 불안한데.’
본래 익숙하지 않은 상황은 반갑지 않게 마련.
초조한 마음에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해 오는 김미영 팀장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눈물 말입니까?”
“네. 정확한 이유와 원인은 현재 교황청에서도 조사하고 있는 도중이라 전해 들었습니다. 아직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교국민들의 혼란을 고려해 보면 그게 당연합니다만….”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시기와 타이밍이 아니긴 하죠. 아니, 그런 내용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겁니다.”
“네. 몸이 불편하신 건 알고 있지만 바젤 교황께서 하루라도 빨리 수도로 오시길 바라셨습니다. 기왕이면 오늘 내로….”
“끄응.”
“내키지 않으시다면 제가 말씀을 따로 드려….”
“아뇨.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 때문이 아니에요. 내키지 않는 게 아닙니다.”
‘가기는 가봐야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젤 교황의 부탁이다.
다른 일도 아니도 베니고어 교단의 일이다.
내가 가보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라.
아파 뒈지는 한이 있어도 이런 자리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다른 일이라면 가볍게 무시할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권력의 대부분이 여기에서 나온다는 걸 생각해 보면 뺄 수 있을 리가 만무.
문제는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것.
별거 아닌 괴기현상으로 취급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나도 무겁다.
특히나 교국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왜 갑자기 피눈물을 흘리고 난린데. 슈발.’
심지어 여신상에 그런 이상 현상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 그동안은 이런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건지 통탄스러울 지경.
어떻게 봐도 불길한 징조다.
교황청에서 딱히 다른 리액션이 나오고 있지 않은 이유는 교국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리라.
만약 이게 대외적으로 잘못 전파됐을 때의 혼란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일 터.
‘안은 이미 지옥이겠지.’
성정이 화끈하신 바젤 교황의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마 내부 분위기는 지옥 그 자체일 터.
나에게만은 친절한 우리의 바젤 교황님이 한 번 야마가 돌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는 만큼 한차례 침을 삼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기본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원래 신이라는 족속들은 조금 째째한 면도 있고 간혹 이상한 짓을 하기도 하니까.
이를테면 엘룬 쓰레기처럼.
하지만 최근에 꽤나 커다란 컬 터뜨렸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 만큼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으리라.
물론 난 도둑이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여신강림이 개구라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경우.
‘망할 수도 있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게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조금 이른 생각이기는 하지만 교황청 쪽에서 먼저 눈치를 까고 나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신상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도 전부 이쪽을 심문하기 위한 개수작.
물론 이 경우는 그리 심각한 사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베니고어를 통해 다시금 나의 순결함과 순수함, 신성함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조금 짜증 나는 경우는 이보다 조금 더 발전한 경우.
‘베니고어가 통수치려고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베니고어가 본격적으로 이쪽의 통수를 후려치려는 경우다.
교황청에 있는 수많은 사제 중, 베니고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비약.
누구 하나는 분명히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거고 석상 피눈물을 신호탄으로 이쪽에게 물을 먹이려는 수작질을 설계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1회 차 때 내가 조금, 아주 약간, 그러니까 미세먼지 정도로 대륙의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현재 대륙에는 안정이 찾아왔고 신의 아들딸들은 발돋움할 준비를 마쳤다.
위험요소라고 생각되는 나를 잡아 족쳐도 이상한 타이밍은 아니라는 거다.
사냥이 끝난 개는 잡아먹힌다는 옛 사자성어가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내가 방심한 사이를 틈타 위쪽에서 이쪽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너무 간 건가.’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시발 더러운 새끼들….’
세계를 구한 것도 여러 번, 사랑스러운 회귀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은 물론 인류를 하나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엘룬 쓰레기가 버린 딸을 받아줬고 바리안이 싸놓은 똥까지 훌륭하게 처리했다.
그게 어디 보통 똥인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건드리려 하지도 않았으리라.
베니고어 여신의 교도들에게 더욱 강한 믿음을 심어줬고 가장 강한 교단을 만드는 데 커다란 손을 보탰다.
신성한 민주주의로 그녀의 이름을 드높였으며 사악한 언데드들을 처리해 신의 위엄을 공고히 세웠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빛의 이름으로 악마까지 처단하고 라이오스의 국민들까지 위기에서 구해냈다.
박물관에 있는 고대신을 재봉인했으며 대륙의 미래에 위협이 되는 온갖 요소들을 사전에 처리해 미래에 대한 리스크를 줄였다.
혜자 중의 혜자.
이런 혜자도 없을 거라 단언할 수 있다.
‘그런 나를 이제 와서 쳐내겠다고? 말도 안 되지. 이게 진짜면 말도 안 되지. 신의 탈을 쓰고 그렇게 할 리가 없지.’
악마 72군단 벨리알도 그렇게까지 나를 대우하진 않을 것이다.
선물을 줬으면 줬지 이런 대우는 말도 안 된다. 정식으로 항의해도 모자랄 지경. 아니, 정말로 녀석들이 악마도 하지 못할 생각을 하는 거라면 지금의 결심을 전력으로 후회하게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내 말 들려? 나를 정말 이렇게 내 치겠다고? 이 새끼들아? 내 말 들리냐고. 만약에 등 돌리면 너네랑 나 전부 다 뒈지는 거야. 알아들어?’
정말로 그렇다.
‘김현성이 니네 편일 것 같아?’
하지만 하늘에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초조해지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 김현성이 갑자기 커다란 생각에 빠진 것도 혹시나 나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개 같은 악마 놈들. 이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혹시나 잠깐 동안 이쪽의 모니터링을 놓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몇 분이나 지났는데도 강제 퀘스트가 생성되지 않는 걸 보면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
아까는 단순한 의혹이었지만 의심이 점점 더 확산되기 시작.
계속해서 테이블을 두드리며 하늘에서 내려올 퀘스트를 기다려봤지만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가능성은 두 가지.
1. 위에 뭔가 문제가 생겼든가.
2. 방금했던 생각처럼 정말로 이쪽을 토사구팽하려고 준비 중이든가.
만약 전자라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정말로 놈들이 후자를 선택한 것이라면 그 선택이 얼마나 그지 같은 선택인지 전력으로 부정해 줄 것이다.
천천히 자리를 일으킨 것은 당연지사.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미영 팀장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부길드마스터?”
“아무래도 수도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은 어떻게 준비해드리는 게….”
“오늘 저녁에는 떠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조금 급하게 움직이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만큼 시급한 사안이니까요. 아무래도 정말 교단에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가실 수행원으로는….”
“수행원으로는 정하얀과 박덕… 아니, 조혜진을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추가로 카스가노 유노와 희라 누나에게도 연락을 넣어주세요. 팀장님. 그리고… 디아루기아와….”
“엘레나 양에게도 연락을 넣는 게 좋을까요?”
“지금 린델에 있습니까?”
“네. 어제 파란 길드 입단서를 수리했고 오늘부로 정식으로 파란 길드원입니다. 직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잘됐군요.”
“전부 함께 수도로 향하시는 겁니까?”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음… 네. 검은 백조 길드를 비롯한 린델 내 길드에는 제가 지금 써드릴 서신을 보내주시고… 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끝날 겁니다. 그리고… 엘프와 드워프들에게는 이 서신을 부탁드립니다. 한소라 씨에게는 이걸 따로 전해주시면 됩니다.”
“네.”
“그리고 지금 써드리는 서신 역시 수도에 도착한 이후, 사건이 터진다면 곧바로 여신의 거울을 통해 대륙에 퍼뜨려 주시면 됩니다, 팀장님.”
“부길드마스터, 죄송합니다만 사건이라는 건….”
“만약 정말로 사건이 터진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받으신 건 곧바로 파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디아루기아의 둥지로 제가 적어드리는 물품들을 넣어주시고요.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좋습니다. 당연하지만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보안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입 밖으로 내지도 티를 내지도 마세요. 팀장님.”
“무, 물론입니다, 부길드마스터. 하, 한데… 이건 그… 혹시….”
“김미영 팀장님이 뭘 상상하시는 지는 예상이 갑니다만…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 준비하는 일이니까요. 네. 만약을 위해서요.”
“그, 그럼 지금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잘 부탁드립니다, 김미영 팀장님.”
“예.”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서는 김미영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괜스레 든든해진다.
‘능력 있는 사람을 밑에 둔다는 건 좋아.’
단언컨대 나보다 몇 배는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처음 들어와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이 없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조금 덜 이기적이었든가.
만약 김미영 팀장이 없었다면 파란에서의 생활이 몇 배는 더 힘들어졌으리라.
괜스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순식간.
‘지혜 누나한테는 미리 알리는 게 좋을까.’
만약 거짓된 신 베니고어와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시작될 깽판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리고 현성이도….’
이지혜도 이지혜지만 사랑스러운 회귀자를 꼬시는 것 또한 급선무.
이쪽은 조금 다루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충분히 넘어오게 할 수 있다.
이번에 교단으로 함께 데려가는 건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관리와 케어가 필요하니까.’
물론 이 모든 게 내 망상일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진실일 경우를 고려하면 수 백, 아니, 수 천 번을 대비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용하고 버릴지언정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건 빛기영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타락해 버린 여신 베니고어와 그를 따르는 쓰레기 일당들에게 언제든지 빛의 철퇴를 먹여줄 준비를 해야 한다.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아니. 아니야. 이거 오해야… 그러니까. 전부 설명할 수… 있… 오해! 베니고어 님! 말 좀!! 안 돼!!! 오해라….(0/1)]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취소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퀘스트 생성이 중단됩니다.]
“타락한 신에게는 빛의 철퇴를.”
어김없이 퍼부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