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
회귀자 사용설명서 396화
회귀자 사용설명서(2)
“방금 뭐예요? 무슨 남자가 공주님 안기를 당해요?”
“봤어?”
“당연히 봤죠. 그러니까 위에 나가서 그렇게 기웃거리면 어떻게 해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오빠 얼굴은 살아 움직이는 도발 토템이나 다름없다고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그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는 것 좀 자제해요. 그러니까 전쟁 통에도 그런 소설이 팔려나가잖아요. 교국이 유지하고 있는 전선 쪽에 여군들 생환율이 그렇게 높은 거 알아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는데 다음 권 기다려야 된다고 억울해서 죽지도 못 하겠대요. 도움은 되지만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는 게 별로 안 좋다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면서….”
“무슨 소설?”
“몰라요?”
“알긴 아는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상한 부분에서 둔하다니까.”
“응?”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나저나 다친 곳은 없죠?”
“응. 누구 덕분에 멀쩡하네.”
“몸조심 좀 해요. 현성 씨 없었으면 어휴. 일단 화면 좀 보세요. 계속해서 네비게이션 찍어줘야 하니까. 이건 오빠가 하는 게 더 낫겠네요. 저보다 현성이 오빠를 더 잘 이해하고 계시기도 하고.”
“이게 무슨 화면이야?”
“전술 김현성 전용 마력 홀로그램이요. 일반 카메라로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벅차서 1인칭이에요. 기본적인 루트는 정해져 있는데… 오빠가 할 일은 네비게이션, 좌표 찍어주시고 목표물 설정해 주시고… 그 외 자잘한 부분에서 지원해 주시면 됩니다. 현성이 오빠 능력을 고려한 이후에 판단하면 돼요. 잘 알고 계시죠? 사실은 제가 맡고 싶지만 오빠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저는 다른 지점도 봐야 하거든요.”
“준비 확실히 했네.”
“톨보이를 쓰려면 제대로 써야죠. 엄연히 체력이랑 마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인데, 아! 무리는 시키지 않는 게 좋아요. 그럼 저도 집중 좀 할게요. 상대도 만만치 않은 것 같으니까.”
“밀리고 있는 건 아니지?”
“밀리고 있는 건 아닌데… 불안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네요. 지금부터예요. 집중.”
“응.”
‘얘가 확실히 난년이긴 난년이네.’
괜스레 그런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방법을 사용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김현성 1인칭 시점. 이쪽의 지시사항이 전달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게임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
그것도 자동사냥이 되는 게임.
굳이 내가 컨트롤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전술 병기 김현성은 알아서 척척 적을 해결해 주니까.
‘이거 괜찮은 것 같은데… 아니, 쩌는데?’
물론 전쟁터 안에서의 김현성의 판단력은 믿을 수밖에 없다.
녀석의 전투 경험은 이쪽의 수십 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대상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대규모 전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김현성의 시야는 한정되어 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전장 자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다.
혼자 흥분하다 고립될 수도 있을 것이고 지원이 필요한 지점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을 보조하는 게 바로 내 역할.
커다란 뷰 카메라 하나와 김현성이 달고 있는 개인 카메라 하나.
장담하건대 이것보다 내게 잘 어울리는 역할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현성보다 내가 녀석의 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렇다.
‘좋아.’
-곧바로 뚫겠습니다.
“네, 현성 씨.”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김현성의 모습은 감히 일반인의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
이지혜의 말이 맞다.
아마 개인 카메라가 아니었다면 녀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눈치챌 수 없었으리라.
‘이거 인간 맞아?’
주변 풍경이 무척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단순히 빠르다는 말로는 이 속도를 설명할 수 없다.
열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보다 더 빠른 느낌.
순식간에 검이 뽑히고 순식간에 앞 쪽에 있는 적의 팔다리가 날아간다.
앞서 벤 적 신체의 일부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김현성은 이미 다른 곳에 자리 잡고 검을 휘두르고 있다.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무기를 흘리고 한 바퀴 회전하자마자 공중으로는 적들의 무기와 팔이 튀어 오른다. 물론 그것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전에 김현성은 이미 그 지점을 벗어나 있다.
-후드득 터엉!
적이 보여주는 반응은 각양각색.
-아아아아아악!
-뭐야! 뭐야? 이게… 이게 뭐야!
-막아! 올라오지 못하게 해! 최대한 막아!
-방금! 아아아아아악!
-제기랄! 의무병! 의무병! 사제!!!
-이게 무슨 미친 경우야! 시발!
정신없는 속도감.
오히려 루트를 안내하는 이쪽의 반응이 더 느리게 느껴질 정도다.
김현성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빠른데.’
11시 방향 A101.
-확인했습니다.
이후 9시 방향 B21.
-확인했습니다.
루트 변경.
남서쪽.
당도한 이후, 적 마법사 사살.
곧바로 E포인트로.
-확인했습니다.
칼이 춤을 춘다.
내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목표물을 전선에서 이탈시킨다.
“지혜야, 이지혜.”
“…….”
“지혜 누나!”
“네… 네? 왜요. 저도 지금 바빠요.”
“내 쪽으로 여신의 거울 몇 개만 더 보내줘. 각 포인트마다 하나씩. 빨리.”
“왜요?”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확인이 안 돼. 빨리. 조금 더 넓게 봐야겠어.”
“자, 잠깐만요.”
“응.”
잠깐 이쪽의 상황을 확인했는지 이지혜가 곧바로 각 포인트를 비추는 거울들을 보내왔다.
실시간으로 보내지고 있는 모습에 정신없이 손과 눈을 놀린 것은 당연지사.
내가 눈알을 굴리는 속도보다 김현성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빠르니 이쪽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없어 헛기침이 나올 정도.
단언컨대 내가 눈깔 사용자라 이 정도로 반응할 수 있다.
이지혜였다면 중간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좌표를 지정하고 계속해서 좌표를 찍어준다.
목표물 설정하고 이 전술 핵 병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전장이 어디인지 실기간으로 파악한다.
‘부족한데, 이거. 개부족해. 머리가 너무 딸려.’
내가 김현성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정보를 전달해 줘야 하건만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이쪽도 답답해서 뒈질 것 같다.
주제도 모르게 첫 차로 람보르기니를 주워 탄 것 같은 느낌.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성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포기할 리가 만무하다.
손가락을 놀리며 전장의 위치를 계속해서 뒤바꾸며 김현성이 달고 있는 개인화면 역시 멈추지 않는다.
김현성이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어 줘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길을 인도해 주는 인도자가 얼 타고 있다면 녀석 역시 이쪽에서 내려주는 지령에 의심을 품게 될 것이다.
‘머리 아파.’
이쪽은 딱히 천재로 아니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뇌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즈음 코 밑이 축축해지기 시작.
비릿한 피 냄새가 계속해서 입가에 감돈다.
힘들지만 조금씩 김현성의 움직임에 따라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
머리를 툭툭툭 두드려 주고 싶지만 그럴 시간 따위는 없다.
적들도 전술핵에 대응하는 병기들을 내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르다.
-이 개자식! 죽어어어!
라고 외치며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던 돼지 하나는 목이 잘려나가며 리타이어.
-실드 마법 유지해! 실드 마법!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
라고 외치며 캐스팅을 외우던 녀석은 손목이 잘리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죽이는 녀석과 죽이지 않는 녀석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 수 없지만 김현성 나름대로의 명확한 기분이 있는 모양.
개인적으로는 전부 죽이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부상자를 만듦으로써 생기는 이점도 존재한다.
“213.41 지역에 캐스팅하는 마법사 확인됩니다. 목표물은 적 본대로 추정.”
-확인했습니다. 이번 것만 해결하고 처리하겠습니다.
“다음.”
-확인.
“다음.”
-확인.
“다음.”
-확인.
제법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당도할 거라고 믿는다.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낸 뒤 곧바로 날리자 적의 실드 마법이 부서지며 그대로 캐스팅 하던 녀석의 이마에 박혔다.
-처리.
‘개빠르네.’
하지만 방금 건 마력을 조금 소모한 행동.
물론 지금은 티도 안 나지만 이후를 생각하면 마력을 아껴 놓는 것이 옳다.
“페이스 조금 늦추셔도 됩니다. 페이스 조금 늦추셔도 돼요.”
-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보고 있는 풍경이다.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을 목전에 둔 병사들과 일부 네임드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단순히 화면으로만 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들의 호흡과 김현성의 호흡, 현장의 긴박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수백 다발의 화살이 한꺼번에 날아들고, 김현성만을 상대하기 위해 꾸려진 소대나 마법들이 계속해서 가로막으려 한다.
한발 뒤로 물러섰을까 싶으면서도 공격을 흘려보내거나 막아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이 정도의 신위를 목도한 적은 없다.
‘이거 너무 센 거 아니야? 밸런스 파괴 아니야?’
신들이 만들어낸 역작이라는 것이 괜한 표현이 아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순수한 경외감이 자꾸만 들어서기 시작한다.
피하거나 벤다.
막거나 벤다.
이 단순한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는 모습 자체가 경이롭다.
‘맞아. 그 말이 딱이야.’
대부분의 병사는 일검조차 견디지 못한 채 팔이 잘리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녀석 역시 최대 십 수를 버티지 못한다.
아마 지금쯤 적 지휘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할 뻔 자.
단언컨대 병력 한복판에 움직이는 핵이 떨어졌다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으리라.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은 실제로 내가 목도하고도 믿기지 않으니까.
적 병력의 움직임이 조금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때.
‘이거 압박 들어오는데.’
전체적으로 보이는 병력의 일부가 김현성에게 집중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지혜 누나.”
“…….”
“지혜 누나!”
“…….”
“자기야! 여보!! 임자!!!”
“네? 네? 또 왜요?”
“사제 하나, 마법사 하나만 더 붙여줘. 주문 최대 사정거리가 긴 네임드로. 아니, 그냥 각 지역 사제랑 마법사 명단 만들어서 이쪽으로 바로 보내.”
“괜, 괜찮겠어요?”
“뭐가?”
“오빠 코피 나요.”
“괜찮으니까. 일단은 붙여봐. 빨리.”
“아, 알았어요. 무, 무슨 저보다 더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여신의 거울이나 띄워줘. 빨리.”
눈앞을 가득 메운 여신의 거울, 아니 마력 홀로그램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장관.
“이거 조작법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혼자서 중얼거려 봤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도 든다.
“그거 재미있겠네요. 타이틀은 뭔데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딱 어울리는 타이틀을 속으로 되뇌었다.
‘회귀자 사용설명서.’
“바로 요거지! 현성아! 사랑한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