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8
회귀자 사용설명서 388화
싸구려 심리전(1)
“…….”
“콜록! 콜록! 콜록! 군사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눈속임입니다. 피해는 없습니다. 카티아, 당신은 좀 어떻습니까.”
“콜록. 네. 저, 저도 괜찮습니다.”
뿌연 연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침이 나왔다.
연기가 걷힌 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군사님의 일그러진 표정.
괜스레 얼굴을 빤히 바라보게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당연한 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려오고 있을 정도.
물론 이 모든 감정이 온전히 그자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 때문만은 아니다.
불안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언니의 현 상태에 있다.
‘괜찮은 걸까. 괜찮겠지? 아니, 괜찮아 보였어.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심한 짓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척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했지만 일단 마력 홀로그램 속에 언니는 무사해 보였으니까.
정당한 포로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한숨 돌릴 수 있다는 표현이 적당하리라.
현재로서는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걱정하는 표정이 티가 났는지 옆쪽에서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브 카리나는 무사할 겁니다.”
“네….”
“그자는 예브 카리나를 필요한 말로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득이 될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장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을 거예요. 어째서 예브 카리나가 그자에게 협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분명 뭔가 약점을 잡혔을 겁니다.”
“네. 저 역시 카리나를 믿고 있습니다. 틀림없이요.”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자 곧바로상황을 살피기 위해 문 근처를 서성이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 더 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들어온 작전부의 일원들에게 브리핑을 해주는 것이 우선.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차선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 섭섭해질 수밖에 없다.
눈앞에 있는 진청 군사님의 브리핑에 예브 카리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눈에 담겨져 있는 것은 오롯이 이기영 명예추기경에 대한 분노.
화가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이토록 흥분하고 이성을 잃은 것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와 같이 차분하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물론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사람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라는 것이 있다.
눈빛 그리고 호흡.
아주 작은 신호지만 제대로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군사님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배신감일 수도 있다.
처음 교국의 명예추기경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군사님은 그에게 일종의 동질감까지 느끼는 듯했다.
그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깨달은 것은 물론 웃기지도 않은 방법으로 궁지에 몰리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으리라.
물론 이번 마력 홀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농락이고 기만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괜스레 한숨을 내쉬는 상황에도 아직까지 브리핑은 계속되고 있는 중.
약식에 불과하지만 자세하다면 자세하다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설명.
금방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들 사이로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자의 말대로라면 에베리아의 군대가 현재 공화국의 수도로 향하고 있다는 건가요?”
“아뇨.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말이 결코 거짓일 확률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명예추기경 그자는 방금 공포탄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부풀리고 또 부풀리고 과대포장하는 사람이에요. 정말로 공화국의 수도로 향할 거라면 이렇게 미리 전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초조해 봤자 달라지는 일은 없다.
손톱만 물어뜯고 있을 수는 없는 만큼 다시금 군사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일리는 있어.’
공화국의 수도로 향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발언.
만약 내가 교국 진영 소속이었다면 그의 주장을 말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리라.
아직 다른 전선들 역시 팽팽하게 유지되어 있는 타이밍.
수도로 진격한다, 안 한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직 에베리아 왕국의 병력은 전선조차 넘지 못했다.
‘미친 짓이야.’
무리하게 전선을 밀어내고 뚫어낸다고 한들, 자신들의 병력만 갉아 먹는 꼴이다.
그런 극단적인 결정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 그럼 군사님. 방금 영상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건지….”
“혼란을 주기 위해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전부 거짓말이고 기만입니다. 말하자면 이건 퍼포먼스고 쇼맨십에 불과합니다. 그자는 광대처럼 카메라를 앞세우고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퍼포먼스….”
* * *
“모두 쇼로군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브 카리나 님.”
“모두 연기예요. 당신이 카메라에 담은 모습. 전부다 당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에요.”
“아니 절 언제 봤다고 본래 모습, 본래 모습이라고 하십니까. 낯선 사람이 아는 척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습니다, 카리나 님. 아. 이제는 낯선 사람이라고 하기엔 제법 가까워졌으니… 음. 뭐, 당신 말도 일리가 있다고 치겠습니다.”
“과장된 표정과 몸짓과 도발하듯 이죽거리는 표정, 모두가 거짓입니다. 자기 자신이 대담한 수를 던질 거라고 과장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건가요?”
“아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네요. 원래 동물들마다 저마다 생존하는 방법이 다르지 않습니까. 겁을 먹으면 덩치를 키우는 짐승들은 지구에서도 많지 않았습니까. 본래 인간은 자연에서 배우는 법입니다.”
“금방 탄로 날 겁니다. 아니, 군사님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포식자들이 멍청해서 속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예브 카리나 님.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생각보다 효과가 있습니다. 조금 예가 다르기는 하지만 거지꼴로 데이트 신청을 건네는 남성과 잘 빠진 양복을 빼 입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사람을 두고 누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동물들은 본래 빤히 보이는 수작에 놀아나기도 합니다. 인간도 동물이고요. 겉모습과 포장이라는 건 그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렇게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딜을 넣어봤자. 제 얼굴은 철판이라 딜 교환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당신 얼굴만 찌푸려질 뿐이에요.”
“…….”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쳤지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재 상황이 저주스러웠다.
‘이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그는 결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아마 그건 자신보다 영상을 보고 있을 군사님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누구보다 남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데 정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마력 홀로그램은 어떻게 생각해도 단순한 심리전이라고 하기 힘들다.
모든 대사, 모든 표정이 그렇다.
영상의 시작부터 자극적이며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를 마치 물건처럼 다뤘던 것도, 삼류 양아치 같은 행동하며, 그의 발언 모두 퍼포먼스다.
가벼운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고 자신은 언제든지 상대를 속일 수 있다고 인지시킨다.
능력을 과시하고 쓸데없는 궤변으로 정신을 흔들어 놓는다.
터져 나온 공포탄과 그전에 있었던 쇼 역시 마찬가지.
앞전에 나왔던 모든 행동과 말투와 도발이 모두 보여주기다.
모든 게 공화국의 수도로 향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쇼.
생각할 만한 여지가 없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다.
‘그는 공포탄 같은 사람이야.’
그것만큼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자를 단순한 공포탄으로 비유하는 것은 과소평가다.
거짓 탄환 속에 진짜를 숨기고 있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군사님도 알고 있을 거야.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답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제 뜻을 전하는 것보다는 혼란을 주는 게 목적이었거든요. 사실… 저보다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예브 카리나 님. 장담컨대 제가 어떤 생각을 할지 알고 있어요.”
“아뇨. 저는….”
“제가 한 말 기억하고 있잖아요, 예브 카리나. 그들에게도 분명히 전했습니다. 저는 양보하지 않는다고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이미 들어간다고 결정을 내렸고 그 들에게도 통보했습니다.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들이 결정해야 할 겁니다.”
“…….”
“저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는 상관없습니다.”
* * *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자는 군사나 책사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기꾼이며 모사꾼이고 남을 속이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폄하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군사님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찝찝한 감정이 날아 들어왔다.
‘인정하기 싫으신 거야.’
이 추측이 맞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방심하고 있거나 상대를 얕잡아 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이기영 명예추기경 역시 자신의 상황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캐슬락의 현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전황이 설명해 줍니다. 저 마력 홀로그램을 보내온 것은 본인의 불안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기영, 그자가 노리는 것은 아마….”
“병력의 분할. 지휘부의 혼란. 가장 원하는 것은 현재 캐슬락 공략을 준비하고 있는 병력을 뒤로 물리는 것. 어떤 식으로든 액션을 취하는 것 자체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군사님, 저들이 공화국의 수도로 향하는 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라이오스를 통해 공화국으로 향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을….”
“그것 역시 염두에 두고 발언한 게 틀림없습니다. 흔히 써먹는 수법입니다. 만약에 우리 수도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영상을 보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가능하기 때문에 던진 거라고 보는 게 맞는 거겠죠. 용병여왕이 머물고 있는 라이오스를 생각해 둔 발언이라고 파악합니다.”
“…….”
“그자는 캐슬락을 버리지 못합니다.”
“네?”
“아마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아니, 그럴 겁니다. 그자는 캐슬락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이쪽으로 찾아올 겁니다.”
“군사님 그 말씀은….”
“……예전의 저였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단순한 기만전술이고 그자의 말은 귀담아 들을 가치도 없다고 말입니다.”
“…….”
“아마 이기영 명예추기경은 수도로 향할 겁니다. 틀림없이요.”
* * *
“그럼….”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또 물어보고 그러십니까. 예브 카리나 님. 저희는 수도로 향할 겁니다. 캐슬락은 버릴 거예요.”
“당신… 진심인가요?”
“그을쎄요…. 진심일까요. 거짓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