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
회귀자 사용설명서 376화
언제나 팩트는 승리하는 법이다(2)
‘어딜 감히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려고 들어?’
증거 없는 말로 떠들어봐야 어차피 선동과 날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다.
제대로 된 증거야말로 가장 확실한 팩트.
어떻게든 이쪽의 이미지를 구기고 싶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나의 계약자, 진청이여. 너희의 바람은 이루어 질 것이다. 어서 이 봉인을 풀어라! 그렇다면 더 큰 힘을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거지.’
-계약자 진청이여. 이 힘이 가지고 싶지 않은가.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힘이다.
‘아암 그렇고말고.’
-크크크큭…. 하하하하하!
‘벨리알 님, 만세다! 씨밤바!’
언제 봐도 실감나는 연기.
안기모나 이지혜조차도 한 수 접어줄 것 같은 메소드 연기의 벨리알에게는 당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하늘 위를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거대한 화면 안에서 나오는 장면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있는 악마소환사 진청쓰레기의 모습이다.
빛의 진영을 핍박하는 장면은 덤.
아마 공화국 진영 쪽에서는 저 장면을 처음 보는 이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공화국과 교국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만약 교류가 있었다고 해도 정보통제에 민감한 저들이 저런 영상이나 소문이 나돌아 다니게 둘 리가 없다.
물론 알게 모르게 알고 있는 이들이야 있겠지만….
‘이런 건 처음 봤을 거다, 이 새끼들아.’
아마 저들 역시 교육을 받기는 받았을 것이다.
‘공화국의 군사 진청은 죄가 없고 모든 것은 교국의 선동이며 날조다.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조작된 이야기다. 절대로 믿어서도 안 되고 또 동요해서도 안 된다. 교국의 선동전술에는 절대로 말려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국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꼬투리를 잡고 있다고, 악마와 내통하고 있는 것은 신의 등 뒤에 숨은 교국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떠들어 대며 전쟁에 출사표를 던졌을 터.
병력의 대부분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 듣는 것과 직접 자신이 증거를 목도하는 것에 대한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은 의심하는 동물이거든.’
지휘부에 의문을 품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
물론 이 영상의 여파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당연히 공화국 병사들의 멘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교국이나 엘프만큼 흑마법에 민감하지 않다고?’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어. 지금 이 상황에 민감하다, 민감하지 않다가 눈에 들어오겠어? 응?”
이건 심미안에 관련된 이야기다.
마력 홀로그램으로 출력되고 있는 벨리알의 모습은 내가 봐도 심장이 떨려올 정도.
벨리알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악마의 이미지보다 더욱 악마 같다.
현세에 드러낸 녀석의 모습이 정말로 벨리알의 본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출력되고 있는 외관은 그렇다.
얼굴을 불의 번개와도 같았고 눈동자는 심연에서 타오르는 불길.
입은 바위의 갈라진 틈 같았으며 커다란 날개는 구겨진 하늘을 꾸역꾸역 집어넣은 듯하다.
겉모습만으로도 이질감이 느껴지고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저런 걸 보고도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아암. 빛이 괜히 빛이고, 어둠이 괜히 어둠이겠어.’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은 내가 알기로 존재하지 않는다.
빛으로 둘러싸인 빛기영과 구역질이 나올 만큼 오염된 뒤틀린 악마의 진영.
어느 쪽이 정의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현재 이 마력 홀로그램을 보고 있는 갤러리들 역시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무리해서 눈에 마력을 집어넣기 시작.
꽤나 먼 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특성의 영향 때문인지 저 멀리까지 놈들의 얼굴이 보인다.
‘새끼들. 사색이 됐네. 사색이 다 됐어.’
이방인은 그나마 낫다.
하지만 공화국민으로 보이는 녀석들의 표정은 가관이다.
멍하니 마력 홀로그램을 보고 있는 그 모습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일그러져 있었다.
교육을 받았고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저 모양 저 꼴.
몇몇은 이미 얼굴에 불안감이 들어서고 있다. 물론 이방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기도 했고 탄식을 내지르기도 했다.
-더러운 빛의 종자들아. 이게 바로 지옥 마법의 힘이다. 계약자 진청이여, 네가 원하는 바는 이루어질 것이다!
‘키야!’
-고맙다! 고맙구나! 계약자여!!
때마침 영상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 중.
아주 약간의 각색이 첨가되기는 했지만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며 팩트다.
이 대륙에 조작 감별사 같은 건 없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이 박진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상대 진영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지사.
허겁지겁 뛰어다니며 사태를 수습하는 공화국 측 지휘관들을 보니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뭐라고 소리를 치는 모습.
물론 이쪽에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예상이 된다.
‘현혹되지 마라!’
라든지.
‘저건 만들어진 영상이다. 진실이 아니야. 현혹되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최선을 다해서 멘탈을 수습하려고 하지만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에 지나지 않다.
저런 식으로 생난리를 치는 게 오히려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의 의구심을 키울 것이다.
녀석들이 이대로 가만있을 수 있을 리 만무.
다시 한번 증폭이 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 이제 그만할까요?”
“아냐. 아냐. 뭘 벌써 끝내? 한 번만 더 보자.”
“네!”
교육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뻔할 뻔자.
‘반복 학습이 중요하죠.’
외울 정도로 머리에 집어넣는 게 중요하다.
-지금 당장 조작된 내용의 영상의 송출을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내고 있는 영상은 모두 조작된 내용입니다. 여러분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작극에 불과합니다. 이종족 여러분, 부디 날조된 것에 현혹되지 마시고 진실에 눈을 떠 주시기 바랍니다.
-계약자여! 힘을 원하는가!
-공화국은 악마와 내통한 적이 없으며 진청에게도 그 어떤 흑마법의 징후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결백합니다.
-어서 봉인을 풀어라! 진청! 네가 바로 나의 계약자다.
-바로 저들이 대륙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교국의 사악한 무리들이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대륙을 집어삼킬 수 있는 힘을 내려주마, 진청.
‘키야.’
말하는 족족 마력 홀로그램이 받아쳐주는 느낌이다.
당황했는지 계속해서 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릴 리가 만무.
선동과 날조된 내용을 내보내는 공화국의 마법사들이 오히려 더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주작된 것이라고 외친다고 한들 눈앞에 팩트가 펼쳐지니 정신을 못 차린다.
현혹된 엘프 여러분들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 부대의 멘탈을 더 걱정해야 하는 타이밍.
물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종족 여러분은 지금 즉시 조작된 내용의 영상 송출을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만든 자작극입니다. 공화국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더러운 수작에 불과합니다.
‘그래 이 새끼들아. 백날 떠들어 봐라.’
-형님…. 형님! 누님! 조금만 참으쇼.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될 거요!
-흔들리지 마십시오. 이 모든 건 조작된 내용입니다. 악마를 소환한 것은 공화국이 아니라 교국입니다.
-이 더러운 놈들! 제길. 제길! 형님!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이 올 거요! 그때까지만 버티쇼. 무리하다 죽으면 안 되는 거 알고 있는 거요? 너무 무리하지 마쇼. 내가 경고했소. 너무 무리하다가 쓰러지면 내가 용서 안 할 거요. 내가 용서 안 해!
엘프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게 주작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마력 홀로그램으로 튀어나오고 있는 박덕구의 처절한 모습은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
한소라도 마찬가지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한 모양새.
다시 봐도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빛으로 물든 채 한계를 맞고 있는 나와 정하얀의 모습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신성한 빛에 둘러싸인 채 악마소환사 진청쓰레기가 소환한 벨리알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언급되는 영웅의 모습 그 자체.
아무래도 실제 상황이다 보니 내가 보기에도 영상이 무척 잘 뽑힌 것 같았다.
더러운 악의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채 중립국 라이오스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명장면.
마력 홀로그램으로 나오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괜스레 엘프들 역시 숙연해지고 있었다.
“하얀아, 음성 증폭 마법. 지금 바로 홀로그램에 내 얼굴도 내보내.”
“넵!”
이쯤에서 툭하고 튀어나오는 게 타이밍상 맞다.
천천히 목소리를 가다듬은 것은 당연지사.
오랜만의 복귀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긴장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입은 술술 움직이기 시작.
이쪽의 아가리는 역시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프레임이 중요하지. 프레임이.’
어떤 프레임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교국과 공화국이 겪고 있는 정치적 갈등은 일단은 논외.
교국과 공화국이라는 국가는 이번 프레임에서 완전히 제외시키는 것이 옳다.
생각하고 있는 커다란 프레임은 빛과 어둠이다.
서로 다르다가 아닌 옳고 그름이며 상식과 비상식이다.
이번 전쟁을 두 국가의 갈등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멍청한 일.
이번 전쟁은 삼국 동맹과 반 교국 연합의 싸움이 아니다.
‘정의와 악의 싸움이고.’
‘팩트와 날조의 싸움이고.’
‘빛과 어둠의 싸움이지.’
천천히 목소리가 송출되기 시작.
커다란 화면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차분하게 말을 내뱉자 곧바로 음성증폭 마법이 걸린 내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빛과 함께 하십시오, 여러분.”
-빛과 함께 하십시오, 여러분.
‘좋고요.’
-빛의 편에서 저희와 뜻을 함께해 주십시오. 대륙을 위해 저희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검을 향해야 할 대상은 우리 서로가 아닙니다.
‘음질도 좋네.’
-우리는 공통의 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을 인류는 함께 목도하고 있습니다. 방금 전 여러분이 확인하신 것이야말로 증거이며 사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적입니다.
‘흐름 나쁘지 않고요.’
-삼국 동맹은 대륙을 어지럽히거나 질서를 파괴하려고, 혹은 전쟁을 일으키려고 동맹을 출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대륙 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인류와 이종족, 여신님이 내려주신 땅과 그 위에 살아가는 모든 이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방금 전의 마력 홀로그램을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결코 거짓이나 조작된 내용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몇 달 전 라이오스에 내렸던 악몽이며 우리가 함께 이겨내야 할 시련입니다.
‘아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대륙 곳곳에는 아직도 악마의 세력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라이오스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악마군주를 소환하는 것에 성공한 진청 같은 이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교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교국은 기억합니다. 악마숭배자 이토소우타가 일으켰던 그 수많은 일을… 교국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