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
회귀자 사용설명서 374화
PTSD(2)
“뭔가 부자연스러운 점이나 이상한 정황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만 좀 해라.’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현성 씨.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휘부가 최대한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해는 되지만 너무 걱정하시는 것도 안 좋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네.”
“혹시 디텍팅 마법은….”
“이미 그쪽은 확인을 끝냈습니다만… 다시 한번 정밀히 조사할 수 있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전혀 못 알아들었잖아. 슈바.’
걱정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상 진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는 시점.
갑작스럽게 이 작전에 합류하게 된 만큼 다른 부분을 신경 쓰기도 충분히 힘에 부친다.
기본적인 것들을 체크하기에도 바쁜 시간.
매일 같이 찾아와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은 정말로 PTSD라고 겪은 듯한 모양새였다.
‘이 새끼….’
지금 보여주는 표정 역시 대놓고 불안하다는 얼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표정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어제의 표정이 다르고 오늘의 표정이 다르다.
심지어 나조차도 영향을 받아 이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정을 늦추거나 다른 방향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전력상에서도 충분히 우위에 있다고 판단해도 될 상황이었고 뚫어내지 않는다면 불리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김현성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시간을 늦출 수는 없는 타이밍이었다.
이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낸다는 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캐슬락을 버린다는 말이나 진배없었으니까.
살짝 고개를 돌려 사랑스러운 회귀자를 힐끔 쳐다본 것은 당연지사.
겁을 집어먹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더 걱정하는 것 같은 얼굴이다.
김현성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성벽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성벽 자체에 어떤 마법이 있을 수 있고 또 성벽을 지키는 병력에게 폭약 마법이 내장되어 있을 가능성도….”
‘저만한 병력을 희생시킨다고?’
“내부의 감시 역시 조금 더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드워프에 대한 경계를 조금 더 철저히… 조금 뜬금없지만 역병에 대한 조사 역시 진행해야 됩니다.”
“역병 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역병드립이야. 이 자식아.’
“현재 대치 중인 병력이 집단 감염이 됐을 확률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염되는 종류의 바이러스로….”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폭약 마법도 폭약 마법이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집단 감염 드립에는 잠깐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의 말대로라면 현재 우리를 막고 있는 병력 전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보균자라는 이야기.
이런 발상은 또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진청쓰레기라고는 해도 그 정도로 비인도적인 선택을 할 리가 없다.
‘그야 가면쓰레기도 그 정도는 아니지….’
“조금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에는 조심스럽게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다시 한번 천천히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괜스레 나도 슬슬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영 씨.”
“저만한 병력을 단순 함정을 위해 희생시킨다는 건… 공화국에서도 내리기 쉽지 않을 겁니다.”
“공화국을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진청 그자가….”
“…….”
“진청 그자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지만 악마 소환사 그자는 피아 구분을 하지 않을 겁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을 거고 공화국의 병력이라 할지라도, 혹은 민간인의 희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꼭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그자가 공화국이나 어떤 집단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단순히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장치라고 가정하시고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심지어 그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도요. 병력을 얼마만큼 희생해서 승리를 일구어 냈는지에 대해 고려할 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 새끼 너무 하는데….’
아무리 진청쓰레기라고 해도 그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닐 텐데.’
“적어도 인도적인 방법이나 대륙법으로 지정된 전쟁법은 고려할 거라 가정하시면 안 됩니다. 여자나 아이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이들일수록 장기 말로 사용될 확률이 큽니다. 소년병 같은 경우에는 특히 더 주의하라고 전파해 주십시오.”
“네. 아, 알겠습니다.”
“그 밖에도 외부에서 오는 보급품이나 물건에는 손대지 않도록….”
“네.”
“특히 적 병력이 사용한 보급품 일수록 더욱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투가 끝나는 즉시 사용한 보급품은 즉시 폐기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미친 소리처럼 들리시겠지만 전투가 끝난 직후를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현성 씨. 가슴 속에 새겨듣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기영 씨. 아… 그럼 마저 주무시면….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새벽에 찾아와서.”
“아뇨. 아닙니다. 어차피 오늘은 일찍부터 일어나 있을 참이라. 그리고 이런 방문은 오히려 반갑습니다.”
‘그런데 좀 작작 찾아와라.’
오늘만 벌써 세 번째다.
오후에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그리고 새벽에 한 번.
한 번에 생각해서 좀 말해주면 좋으련만 가만히 있다가도 뒤통수 맞은 기억이 떠오르는 모양.
아마 아침식사나 점심식사를 마친 직후에도 다시 한번 찾아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리라.
김현성이 가면쓰레기에게 뒤통수를 어떻게 맞았는지 간접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왠지 모르게 양심이 콕콕 찔려온다.
물론 가면쓰레기와 나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1회 차의 현성이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솟았기 때문이다.
인질극은 기본 옵션.
온갖 쓰레기 짓을 전부 들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동안 김현성이 해준 이야기가 전부 녀석이 경험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 병력이 바이러스 보균자라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정말로 지금 그 작전이 실행 중이라 가정 한다면 가면쓰레기는 천하의 개 쌍놈이자 쓰레기가 맞다.
의도적으로 병력을 죽으라고 내보내는 꼴.
더욱 압권인 것은 눈앞에 있는 병력이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 거라고 생각하며 싸울 거라는 상황.
‘이게 진짜 기만이지. 기만.’
말 그대로 기만이다.
가면쓰레기 진청이 녀석들에게 심어놓은 사상, 전쟁을 일으킨 대외적은 명분, 자신의 진영이 정의라고 외치는 이유 모두가 개소리고 저들을 희생시키기 위함이다.
보통의 전쟁이라는 게 모두 그런 식이기는 하지만 일부러 보균자를 만들어 전쟁에 투입시킨다는 것은 가면쓰레기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다.
물론 눈앞의 적 병력은 보균자가 아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눈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그렇다.
“그래도 뒈질 거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아암 그렇고말고.’
아무튼 간에 기쁜 소식은 있다.
일단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진청쓰레기가 가면쓰레기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는 것.
아직도 긴가민가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보여주는 반응으로는 거의 확정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걸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하루에 몇 번씩 찾아와 자신의 불안감을 성토할 리가 없다.
‘일단은 안정권 있다고 봐도 되는 거야.’
혹시 몰라 준비해 놓은 게 몇 가지 더 있기는 했지만 이쯤 되면 굳이 작업을 칠 필요도 없다.
사실 작업은 다른 쪽으로 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진청이 간악한 술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시 회귀자의 시선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다른 건 다 되도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만은 막고 싶다.
새로운 자작극이라도 선보여야 할까 고민했을 때였다.
“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 것.
이미 김현성이 밖으로 나간 이후에 한참이나 지난 이후.
‘한 세 시간 지났나?’
혹시나 잠자다가 꿈이라도 꾼 이후에 다시금 경고 아닌 경고를 해주러 온 것이 아닐까 걱정된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갑작스레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발.’
순간적으로 놀라는 게 당연한 반응.
적과 전선을 맞닿은 상황이었고 언제 암살자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당도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것은 당연.
벽 쪽에 몸을 붙이고 곧바로 가방에 손을 집어넣는다.
손에 잡힌 것은 용 숨결 물약.
괜스레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흐른 땀이 턱을 흘러 떨어져 내린 순간,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오는 인형이 시야에 비친다.
“하얀이야?”
“아! 아! 일, 일, 일, 일어나 계셨네요.”
눈에 보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정하얀.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랐네. 진짜.’
“무슨 일이야?”
“아, 아까 낮에 잠… 잠을 너무 많이 자서요. 잠이 안 와서 그냥 그… 네… 그….”
무척 당황한 얼굴.
아마도 또 방에 기어들어오려고 한 것 같았다.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에 기가 차기는 했지만 적당히 머리를 쓰다듬은 이후에는 살짝 웃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푹 쉬어야지.”
“그, 그, 그렇지만 정말로 잠이 안 와서요.”
“마력은 어느 정도로 회복됐는데?”
“크게 회복됐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아무래도 최근에 계속 무리한 것 같아서 아직은 조금….”
“이번에는 무리하면 안 돼. 최대한 전투에서 빠져 있어야 하는 거 알지?”
“네. 물, 물론이죠.”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개입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잠깐 밖으로 나갈까?”
“네!”
함께 산책을 하는 게 기분 좋은지 연신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너무 방심했는데, 이거.’
물론 그 와중에도 이쪽은 자기반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이어서 다행이지.’
물론 외부의 침입은 거의 불가능 하다.
에베리아 왕국은 세계수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단순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인만큼 만약 8좌급의 암살자였다면 뚫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호위 좀 달라고 해야겠는데….’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지만 최소한 시간을 벌어줄 호위는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목책 위로 올라가자 제법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오늘도 여전한 성벽 역시 눈에 띄었다.
‘며칠 안 남았나.’
목책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당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항복하십시오.
음성 마법으로 증폭된 목소리.
‘선전 활동이네.’
커다란 음성 마법을 틀어 본인들이 일으킨 전쟁을 합리화하는 시간.
항복을 종용하고 함께해 줄 것을 권고하는 시간.
교국의 현 체제와 상태를 비판하고 자신들이 정의라는 것을 어필하는 시간이다.
비유하면 적군에게 보내는 전략 확성기나 다름없다.
‘뭐, 저런 것도 중요하긴 하지.’
이쪽은 오늘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지만 꽤나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친애하는 이종족 엘프 여러분. 그리도 일부 드워프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저희 반교국연합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대륙을 어지럽히는 교국의 간악한 거짓말에 속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희 반교국연합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즉시 병력을 물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쯧.’
말을 내뱉는 꼬라지가 가관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정하얀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뭐 선전활동 한번 해보자고?”
이런 활동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상대 지휘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