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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72화 (371/1,590)

# 372

회귀자 사용설명서 372화

운수 좋은 날(3)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해요. 할 일이 워낙 많아서요.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어서 보고서 작성이 늦어졌거든요. 사실 하루에 일어난 일을 다 정리하기도 바빠요. 뭐 무사할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생각보다 더 쌩쌩한데요?”

“칭찬이지?”

“물론이죠.”

검은백조 길드원의 안내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지혜가 곧바로 자리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오랜만에 본 것 같은 기분에 반가움이 생기기는 했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겉모습은 그대로.

작은 키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려보이는 외관도 여전하다.

최근에 잠을 잘 못 잔 모양인지 조금 쾡 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니 최악 중의 최악은 면한 것 같았다.

“일단 앉아계세요. 차 한 잔 타드릴 테니까. 그나저나 정말 놀라셨겠네요.”

“당연하지.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게 정말로 이렇게 터질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도대체 이게… 아니, 그전에 누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가 제일 안전한 것 같으니까 여기 있는 거 아니겠어요?”

“…….”

“…….”

‘얘는 진짜 쓰레기네.’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것은 당연지사.

본래 이지혜가 쓰레기 같다곤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보다 행동이 더 재빨랐기 때문이다.

다완 쪽이나 캐슬락, 혹은 라이오스에 있는 것보다는 여기에 있는 게 안전한 것이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세계수라는 방어체계가 깔려 있고 최소한 직접적인 위협은 없으니 가장 안전한 곳을 꼽으라면 여기가 맞다.

내가 놀란 것은 그녀가 지나치게 당당했다는 것.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얼굴은 빛기영의 시선으로 봐도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뭐예요. 그 표정은. 실례라고요. 이런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경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물리적 충격도 저한테는 최소 치명상이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줘야 한다고요. 솔직히 오빠였어도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왔을걸요.”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 속으로는 동의한 거 맞죠?”

순간적으로 뜨끔하기는 했지만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

이때다 싶어 입을 열어오는 이지혜의 얼굴이 다시금 시야에 비쳤다.

“뭐, 사실 정말로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에요. 적어도 할 일은 있었으니까. 오는 길에 드워프들 봤으면 어째서 제가 여기 있는지 대충 아시겠네요.”

“아. 맞네. 걔네들은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눈물로 호소했어요.”

“…….”

“라이오스 사건 때 돌아다니던 영상이랑 그동안 오빠가 힘들어 했던 것들 편집해서 보여주면서 눈물로 호소한 게 유효했죠. 드워프는 단순하거든요. 정도 많고. 물론 정말로 이유가 그것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아마 본인들이 얻을 이득이나 이권 같은 것보다는 눈물의 호소가 먹혀들었을 걸요. 어때요. 이것도 꽤나 명연설이었는데 한번 볼래요?”

“아니…. 괜찮아.”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여기 있어야 오빠랑 빨리 만나지 않겠어요? 딱딱한 상황실에서 전달받는 것보다는 이렇게 듣는 게 편하잖아요. 으음. 어디에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감이 안 오는데… 어디서부터 듣는 게 편해요?”

“그야 물론 처음부터.”

내 말이 끝난 직후 이지혜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뭔가 생각할 게 있을 때 보이는 제스처.

괜스레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는 했지만 일단은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약 3분 정도가 지난 이후.

계속해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들려온다.

하지만 이지혜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반갑지만은 않았다.

“처음은 다완이었어요.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의견이 분분하기는 한데, 교국이 먼저냐 공화국이 먼저냐가 중요 쟁점이겠죠. 당연히 저희 입장에서는 저들이 먼저 들어온 게 맞고요. 걔들 입장에서는 이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주장 중이죠. 아무튼 간에 거기서 일어났던 작은 마찰이 조금 커졌고… 그게 빵 하고 터진 게 전부예요.”

“딱히 선전포고는 없었던 건가?”

“그 이후에 있었어요. 다완 전선에서 죽은 이들을 걸고 넘어졌지만 사상자가 있었던 건 저희 쪽도 마찬가지였었거든요. 어떻게 봐도 먼저 시비를 걸어온 거나 다름없죠. 그것도 다분히 의도적으로요. 다른 조건이나 배상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어요. 그날 밤에 곧바로 병력으로 밀고 들어왔거든요. 저쪽에서도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죠? 물론 기습에는 대비할 수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일 만에 다완 전선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후에는 바로 위에 있는 캐슬락 쪽에도 영향을 미쳤고….”

“…….”

“캐슬락이 현재 고립되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대충은. 하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나?”

“마도 왕국을 비롯한 몇몇 왕국이 반대쪽에서도 밀고 들어왔거든요. 그사이에 캐슬락은 고립됐고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저희 쪽에서도 캐슬락은 버릴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니까. 지원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공화국 연합 측에서는 엘프 왕국을 압박하기로 결정한 거고….”

“그래서 누나가 드워프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특사로 파견된 거구나.”

“네. 비슷해요. 캐슬락 쪽에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주고는 있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그 누구라도 알고 있을 걸요. 교국과 라이오스 측에서도 최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캐슬락 쪽이 위험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빠 일행이 딱 맞게 도착한 셈이네요. 안 그래도 밀어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점이었거든요.”

“…….”

“저희 목적은 캐슬락에 지원 병력을 보내는 거예요. 적어도 10일 안에. 만약 실패한다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거예요. 캐슬락을 잃으면 린델까지는 또 금방이고.”

“린델까지 닿으면 수도까지는 또 금방.”

“그렇죠. 또 궁금한 거 있어요?”

“왕국연합 쪽은 전부 돌아선 건지가 궁금한데.”

“아니요. 마도왕국을 비롯한 주축 왕국 몇 개. 물론 정확하지는 않아요. 추측하기로는 그쪽도 반으로 갈라진 걸로 예상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게 많나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사실이라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봐도 되는 거겠네?”

“물론이죠. 사실 왕국 연합 쪽이 참전한 이유가 궁금하기는 한데… 교국 측에서는 혁명사상의 전파를 경계하는 걸로 판단하고 있어요. 바로 옆나라에서 그런 게 터졌는데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었을 리가 없으니까. 안 그래도 근질근질했을 거예요. 마침 공화국이 터져주니 이때다 싶어서 달려든 느낌도 있고.”

“나도 그렇게 보여, 누나. 그 외에 다른 이유가 맞물려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고 봐야지. 악마소환사 쓰레기 진청을 계속해서 품고 있을 만하네. 어차피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면 굳이 큰 손해를 보면서 쳐낼 이유가 없지. 공화국이 흑마법사에 민감한 것도 아니고….”

“뭐, 그렇죠? 아무튼 간에 이건 보고서예요. 방금처럼 약식으로 설명한 게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써져 있을 거예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웬만한 정보는 다 들어가 있겠네요. 그거 한 번….”

“아, 누나 궁금한 거 하나 더.”

“물어보세요.”

“캐슬락에 누가 있지?”

“카스가노 유노.”

“그리고?”

“캐슬락 백작, 아니, 지금은 의원이죠. 저희 길드 마스터도 캐슬락에 있어요. 같은 교국 8좌의 천관위도 캐슬락에 있고. 당장 무너질 상황은 아니에요. 스쿼드가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까. 최소한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봐야죠.”

‘나쁘지는 않네.’

무녀 카스가노 유노, 안개 소환사 천관위, 개개인의 무력이 압도적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든 이들이었지만 이들 역시 교국 8좌에 랭크되어 있는 이들이다.

특히나 수성전에 특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스쿼드.

캐슬락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이지혜가 전해준 보고서를 정독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 자세한 경과를 읽어보니 조금 더 당황스러워 진다.

‘전쟁을 하고 싶었다고 봐야 하네.’

다완 전선에서의 마찰은 애초에 계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명분을 쥐어 짜내기 위해서 꼬투리를 잡은 듯한 느낌.

아마 이 시점에서는 이미 마도왕국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패가 더 좋다고 생각해 카드를 뒤집은 셈.

앞전에 내가 예상한 것이 조금은 들어맞았다.

물론 전쟁의 발단이나 배경에 대해 때려 맞췄다고 해서 기뻐할 수 있을 리 만무.

현재 더 중요한 것은 발단보다는 정황이다.

때마침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지도.

병력의 상황까지 기재되어 있는 미니맵 느낌의 지도였다.

“누나, 이건….”

“아. 이것도 보여드려야겠네요. 이게 가장 최신으로 업데이트된 지도예요. 병력의 상황도 가장 최신이고요.”

“그렇게 최악이라고는 볼 수 없네.”

“그나마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봐야겠죠.”

그 말대로, 상상했던 것만큼 막장인 상황은 아니다.

크게 보면 다완전선이 밀리고 캐슬락이 고립된 것은 맞지만 소소하게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두 개의 전선을 제외하면 동부 전선도 나쁘지 않았고 심지어 서부 전선은 밀고 있는 형국.

적들의 보급로를 끊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처음 들었던 상황에 비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교국이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지.’

핵심은 에베리아 왕국의 병력과 보급을 캐슬락 쪽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보급로가 자리 잡는다면 앞으로의 상황을 이끌어가는 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종족 연합의 병력을 합류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어린애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었다.

어떻게 봐도 뚫어내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라는 거다.

‘이건 조금 익숙한데….’

지난번에 했던 전략 시뮬레이션의 수법과 비슷하다.

여기저기서 천천히 조여 오며 아득바득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 수법.

그리고 손발을 잘라내려고 하는 것까지.

아주 판박이나 다름없다.

가면쓰레기, 악마소환사 진청.

이건 녀석의 작품이 맞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라이오스 안에 들어가 있는 병력이 현저히 적었다는 것.

적군 아군 가릴 것 없이 최소한의 병력만 배치하고 있는 건 확실히 당황스럽다.

곧바로 입을 연 것은 당연한 일.

내 상식으로는 어떻게 생각해도 현재의 라이오스 전선의 상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오스는 왜 이래?”

“아. 깜빡 말씀을 안 드렸네요. 여기는 잠깐 정전 상태예요. 용병여왕님이 있거든요.”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공격하니 별 수 있나요.”

‘정신줄 놨구나.’

“그쪽 국민들 대피시킬 때 용병여왕님이 정신을 놔서 현재는 그 상태예요. 들어가자니 병력 손해가 있을 것 같아서 두 집단 모두 몸을 사리고 있는 상태인 거죠. 현 상황에서 네임드 몇 빼서 그쪽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극심한 부담이거든요.”

‘분명히 시간제한이 있을 텐데.’

차희라가 가지고 있는 특성 피에 미친 광녀는 분명히 한 시간의 시간제한을 달고 있었다.

아직까지 라이오스에 그녀가 있다는 건 마음의 눈으로는 본 그녀의 상태창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라이오스가, 아니, 희라 누나가 그 상태가 된 지는 얼마나 지났지?”

“8일이예요.”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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