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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65화 (364/1,590)

# 365

회귀자 사용설명서 365화

빛기영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노라(3)

‘정말로 살아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해서 불길한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

사실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괴물이 마차를 한 입에 삼켜 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엘룬 나이트들이 저지른 실수.

함께 온 인간들을 원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입안에 쓴 맛이 감돈 것은 당연.

인간들에 비해 엘룬 나이트들이 너무나 유약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황 판단은 물론 정신 상태까지.

특유의 오만함으로 무장한 엘룬 나이트들과는 다르게 이 인간들은 항상 침착하고 겸손하다.

실제로 겸손하다는 뜻이 아니다.

적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언정, 이들은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만약 이 인간과 엘프의 기본적인 스펙이 같다고 가정해도 나이트들과 그들의 차이는 결코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엘룬 나이트뿐만이 아니야.’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신경 쓸 수 있는 거리에 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못했다.

그 압도적인 크기와 위용에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괴물.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봐도 다리가 덜덜 떨려올 정도.

다른 엘프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이들은 다른 종류의 걱정 따위는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롯이 이기영이라는 인간의 생사.

그 거대한 괴물이 얼마나 커다랗고 어느 정도로 강한지에 대해서는 전해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사고의 충격으로 반쯤 정신을 놓은 것 같은 마법사나 완전히 입을 닫아버린 파란의 길드 마스터.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작은 암살자와 창을 든 여전사는 이해가 간다.

백번 양보해서 커다란 방패를 짊어진 전사까지 포함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직 경지에 닿았다고 말하기 힘든 이들의 얼굴도 공포로 일그러지지 않았다는 건 정말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믿고 있는 거겠지.’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 지는 뻔한 일.

자신보다 긴 검을 든 채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파란의 길드 마스터를 믿고 있는 것이리라.

실제로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전투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

딱 그런 표현이 어울린다.

속도는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였고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대한 악마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검으로 인간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전신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원정대는 강하다.

단언하건데 이들이 상대하지 못하는 몬스터는 대륙 위에 찾아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상대도 상대 나름이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가정들이 떠올랐지만 이 괴물이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진입해도 승부를 점칠 수가 없는 상황.

체력적 페널티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괜스레 고개가 저어졌다.

‘이런 페이스로 괜찮은 건가?’

현재 원정대원들이 충분히 무리하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모두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전투가 없어도 행군하기 어려운 지역을 악마들과 몸을 부딪치며 넘어왔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지나 이곳에 도착한 여파로 몇몇 이는 이미 한계를 맞이한 상태.

이런 몸으로 그 악마를 상대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엘리오스 님, 정말로 이대로 계속해서 진행해도 괜찮은 겁니까?”

생각에 빠졌을 때 마침 들려온 질문.

고개를 돌리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한 엘룬 나이트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 무리하게 원정을 진행하고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 물론… 저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금 이 상태라면 싸우기 전에 패배하는 전투가 될 겁니다.”

“나도 알고 있다.”

“외부에 지원요청을 하는 게 좋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질문을 던져온 엘프는 공포에 질려 있다.

괜스레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저 질문에 내면에 담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의 뜻을 눈치챘는지 얼굴이 붉어진 녀석이 보였다.

하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다.

상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물.

체력을 회복하지 않고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자 창을 든 여자,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혜진 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엘리오스 님.”

“네.”

“길드 마스터께서 던전의 끝에 가까워졌다고 판단. 지친 엘프분들은 이대로 휴식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잠깐 체력을 회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본대는….”

“본대는 계속해서 원정을 진행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파란의 한소라, 김창렬, 유아영은 이곳에 남아 엘프 여러분과 함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길을 뚫어놓을 테니 이후 정리를 부탁드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인가.’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의 시야에 들어왔으니까.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마법사는 벌써 일어서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이기영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나 역시 같은 기분이다. 엘레나를 잃는다고 생각한다는 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다.

결국에는 입에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니,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나이트 중에서도 체력의 여유가 있는 자가 있을 겁니다. 부족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엘리오스 님.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었던 심정이라. 함께해 주신다고 하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감사하실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 곧바로….”

“네.”

천천히 무장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당연.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몸은 떨린다.

하지만 이번 일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두려움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인간들을 바라보니 아까의 생각이 더 확고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이동하던 원정대는 점점 더 속도를 높인다.

알 수 있다.

‘끝에 다다르고 있는 거야.’

점점 더 안쪽으로 진입할수록 이전에 느꼈던 압박감이 계속해서 전신을 강타하기 시작.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몸이 먼저 거부감을 느끼는 감각은 익숙하지 않다.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점점 각오가 들어선다.

지금껏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김현성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숨조차 쉬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쉼 호흡.”

“네… 네.”

“진입 준비합니다.”

“네.”

“정하얀 씨와 선희영 씨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혜진 씨와 예리는 최대한 후위의 보호에 집중. 정연 씨는 하얀 씨를 최대한 보조해 주시고… 힘들겠지만 안기모 씨가 파티원의 전체적인 회복를 감당하시게 될 겁니다.”

“저 혼자서 말입니까? 길드 마스터?”

“네. 신성력의 대부분은 대미지와 버프 유지로 제한합니다. 전위에 부담이 가겠지만 덕구 씨는 최대한 개인 물약으로 버텨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매뉴얼대로 몸을 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 덕구 씨가 남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마지막에 남습니다. 그리고.”

“네.”

“엘리오스 님 역시 전투의 주축을 담당하시게 될 겁니다.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엘리오스 님이 가지고 있는 힘과 적의 힘은 상극에 가깝습니다. 두려운 건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실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적 역시 엘리오스 님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계속 떠올리신다면 움직이기 편할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

“진입합니다.”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동공 안으로 진입한다.

시야에 비친 것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장소.

뒤틀린 연못이라 전해 들었지만 바로 앞에 있는 것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에 가깝다.

그리고 그 호수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세계수의 뿌리.

그리고 전에도 본 적 있는 흉측한 마수가 뿌리를 감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저 외관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전체적인 이미지는 뱀에 가깝다.

하지만 수만 개의 이빨이 달려 있는 입은 절대로 평범한 뱀이라고 할 수 없다.

마치 시체의 거죽을 뒤집어 쓴 것만 같은 외관.

녹지 않은 얼음 같은 눈이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소름에 몸이 떨려온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방금 전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잡힌 검을 고쳐 잡는다.

거대한 두 개의 혀를 낼름거리지만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가관.

‘싸울 가치도 없다는 건가….’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벌레처럼 보이겠지.’

저 압도적인 존재 앞에 인간이나 엘프는 마치 벌레처럼 보이리라.

그런 녀석의 눈이 경계태세에 들어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뒤 쪽에서 폭발적인 마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 돌, 돌려줘. 히끅. 돌려줘.”

“…….”

“돌려줘! 돌려줘!! 돌려줘!!! 돌려줘!!! 돌려줘!!!!”

“전투 준비.”

“내놔! 내놓으라구! 내놔! 내놔!”

“진입.”

감히 측정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마력.

그 마력은 순식간에 마법이라는 형태로 변화를 시도한다.

캐스팅되는 것은 5개의 마법.

거대한 화염을 비롯한 자연계 마법들이 생성된 이후, 이형의 괴물에게 내리꽂히는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것 같은 이야기다.

땅이 갈라지고 폭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순식간.

검을 든 소녀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곧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모습은 전율스러울 정도.

그 와중에 마법은 결국 거대한 괴물에게 틀어 박혔고 놈을 바닥에 처박히게 했다.

‘말도 안 돼….’

대미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물리적인 충격 때문인지 놈의 몸이 밀려나는 것이 확실히 눈에 보인다.

‘미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마법사를 중심으로 방진이 만들어지기 시작.

선희영이라는 이름의 사제가 기도를 드리자 곧바로 방진을 감싸는 투명한 막과 함께 사방에서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신성화.’

고위사제 중에서도 쓸 수 있는 이가 얼마 없다고 알려져 있는 신성 마법.

벌레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였던 마수의 눈이 뒤바뀐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킨 녀석이 곧바로 전방을 향해 쇄도하는 순간, 어디에선가 날아온 참격으로 인해 녀석이 고꾸라졌다.

시야에 비친 것은 검을 들고 있는 소녀.

파란의 길드 마스터이자 원정대의 리더.

교국 10강이자 신에게 선택받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존재.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쓰레기 자식.”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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